“항상 밝은 모습만 보여주던 그의 눈물겨운 고백…” 지금까지 그가 숨겨왔던 눈물겨운 상황 그리고 그리해야만 했던 이유를 확인해보세요..

양세찬의 아버지는 중국집, 호프집과 같은 여러 가지 사업을 하셨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다 잘 안됐습니다.

심지어 연이은 사업의 실패 이후, 아버지는 친구의 보증도 잘 못 서시는 바람에 집안의 상황은 더욱 악화됐죠.

그러다가

양세찬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집에 불이 나며 집안은 완전히 풍비박산 나버립니다.

사건은 어린 양세찬이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친구가 그에게 달려오며 시작됐죠.

달려온 친구는 그에게 ‘야 너네 집 불났다’라고 말했죠.

그러나 게임을 하던 양세찬은 ‘야 뻥치지 마’라고 말하며 게임을 끝까지 다 하고 집에 갔는데, 친구 말처럼 정말로 집이 활활 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집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당시 불이 얼마나 컸는지 집 입구에 소방차가 8대나 올 정도로 엄청나게 큰 불이었고, 그렇게 그들의 집은 모두 타버렸죠.

그리고 그때부터 양세찬의 부모님은 도배 일을 시작하십니다.

 

집이

불에 타버려 당시 지낼 곳이 없었던 양세찬 형제들은 일하시던 부모님과 떨어져 무려 6개월 동안이나 할머니 집, 친척 집 심지어 더 이상 지낼 곳이 없어 아버지가 이전에 함께 일하셨던 동료분들의 집에까지 돌아다니며 얹혀살았죠.

그러나 어린 양세찬이 이런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한 살 차이가 나는 형 양세형의 존재였습니다.

 

 

이 둘은 남의 집에 얹혀살았기에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배고프다고 말할 수 없었고,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이 둘은 항상 서로가 함께였기에 이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고요.

시간이 지나 가족이 함께 지낼 수 있는 정말 화장실 만한 작은 단칸방을 구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죠.

도배 일을 하셨던 부모님은 아침 일찍 집을 나가 저녁 늦게나 돌아오셨고, 가끔은 지방으로 출장을 가시며 길게는 10일 이상씩 집을 비우셨기에 어린 양세찬 형제들은 더욱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요.

집에 먹을 것이 떨어지면 어린 양세찬은 형의 손을 잡고 슈퍼에서 외상으로 산 라면을 끓여먹곤 했죠.

그리고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 이 둘은 지금까지도 서로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남게 됩니다.

이렇게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던 어린 양세찬의 꿈은 고깃집 사장이었습니다.

정말 마음대로 고기를 먹어보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죠.

한편, 양세찬이 고등학생이 되자 부모님은 그가 공부를 잘하는 것도 특별한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가 그들을 따라 도배 일을 하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때부터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는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 고3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그는 극단에서 개그맨으로 활동하던 형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엄청난 감동을 받게 됩니다.

무대 위에 형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박수 치는 모습을 보며 그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는 형처럼 개그맨이 되기로 결심했죠.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형은 동생의 개그맨 시작을 절대 반대했습니다.

그의 형인 양세형은 2004년 SBS 개그맨 최연소와 합격자였을 정도로 개그감이 매우 뛰어났고, 심지어 정식 개그맨 데뷔 이전부터 극단 내에서도 많은 기대를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게 양세찬은 인기 개그맨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던 형의 반대가 너무나도 서운했지만, 형이 이렇게 말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죠.

 

무대

위에서의 짧은 웃음을 만들기 위해 무대 뒤에서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그의 형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개그맨이 되겠다는 동생의 고집을 꺾지 못한 양세형은 동생의 개그맨 시작을 어쩔 수 없이 허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형은 양세찬의 개그맨으로 활동을 하더라도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밑바닥부터 스스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개그맨으로 활동하게 되면 극단에서 절대로 나를 아는 척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까지 하며 더욱 혹독하게 대했죠.

 

 

그러나 당시 어린 양세찬은 이런 형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서운한 마음에 반드시 개그맨이 되어 형에게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작은 극단에서 허드랫일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양세찬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이 개그맨 활동을 시작했지만, 그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특별했죠.

실제로 이후 그가 개그맨으로 성공한 이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만일 제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전 데뷔 전으로 가고 싶어요. 처음 극단에서 활동했을 때 돈은 없었지만 정말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고 꿈도 많았기에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이처럼 가장 부족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던 시기를 보내던 양세찬은 개그맨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죠.

 

그리고

그렇게 노력한 덕인지 양세찬은 20살이 되어 SBS 8기 공채 개그맨이 되고, 연이어 SBS 코미디 프로인 ‘웃찾사’의 ‘땁따다’라는 코너로 데뷔를 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데뷔하며 만난 친구들과 함께 계속해서 코너를 만들어갔고 그렇게 어느 날 그는 그의 인생을 바꿔준 하나의 코너를 만나게 되죠.

동료 개그맨들과 함께 한 코너를 대충 만들어 대학로 소극장에서 선보였고 그때의 반응이 너무나 좋았기에 ‘웃찾사’에서 선보였는데, 그게 바로 ‘웅이네’였죠.

참고로 이 코너는 무려 21개월 동안 방영되며 ‘웃찾사’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코너로 기록되었고요.

이때의 인기에 힘입어 이들은 이후 ‘웅이네’라는 그룹을 결성하며 가수로 데뷔도 하고, 더 나아가 SBS 코미디 최우수상까지 받게 됩니다.

그들의 인기는 계속해서 높아졌고 ‘웅이네’는 ‘웃찾사’의 간판 코너로 선정될 만큼 인기를 끌며 팀원들과 한 달에 행사를 50개나 다닐 정도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죠.

그러나 이런 인기의 절정을 누리던 중 돌연 그들은 ‘웅이네’를 끝내기로 합니다.

박수를 받을 때 떠나고 싶다는 결심과 함께 내린 결정이었죠.

그리그 이후 양세찬은 방송계를 잠시 떠나게 됩니다.

당시 그는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어차피 가는 거니 그냥 일찍 끝내버려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이른 군입대를 한 것이었죠.

그리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전역 후 그는 형인 양세형과 함께 ‘코미디 빅리그’에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후에도 그는 ‘남조선 인민 통계연구소’ 이와 같은 생활 공감형 개그 코너로 개그 서바이벌 형식인 ‘코빅’에서 9연승을 할 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사건의 시작은 그가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게 되면서 시작됐죠.

암에 관련된 가족력이 있어 양세찬은 검사를 자주 받아야 했는데, 그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에 깜짝 놀란 형이 그를 억지로 병원에 끌고 가 종합 검사를 받게 했고요.

 

그런데

이후 프로그램 녹화 도중 양세찬은 병원으로부터 한 전화를 받게 되는데, 그 결과가 바로 암이었죠.

개그맨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녹화 전날 조모상을 당해도, 엄마가 암에 걸려도, 계속 웃겨야 하는 것이 개그맨들의 아픔이다”

그리고 정말 이 말처럼 양세찬은 갑상선암 판정을 받은 후에도 몇몇의 지인들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을 뿐, ‘코미디 빅리그’ 제작진에게도 함구한 채, 계속해서 무대에 올라 사람들을 웃겼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관객들이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동정하지 않기를 바랐으며, 또한 개그맨에게 있어 암 환자라는 인식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물론 이후 그의 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처음으로 무대에 섰을 때 실제로 객석에서는 그를 동정하는 눈빛을 보이기도 해 그는 다른 의미로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요.

다행히도 그의 암은 조기에 발견되었고, 게다가 갑상선암은 다른 암에 비해 치료율과 완치율이 높았기에 그는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한 달 만에 무대로 복귀할 수 있었죠.

 

28살

이라는 어린 나이에 암에 걸린 그는 이때를 기점으로 자신의 인생이 많이 달라졌다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암 판정 이후로는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승리나 성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죠. 그 이후에는 제 인생의 전부를 남을 웃기는 데 쓰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와 같은 다짐처럼 그는 활발한 활동을 하던 중, 어느 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티비 예능 프로그램에 대다수 대중들이 아는 ‘무한도전’처럼 모든 국민에게 알릴 수 있는 우리만의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 하지만 한 번은 큰 꿈은 꾸지 않을 것이다. 꾸준하지만 천천히 나아가고 싶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2년 뒤, 그는 ‘무한도전’을 넘어 전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는데 바로 ‘런닝맨’이었죠.

그러나 당시 런닝맨 상황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시청률은 역대 최저인 2%를 기록하고 있었고, 그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제작진은 새로운 인물인 양세찬과 전소민을 영입하기로 결정한 것이었죠.

이 시기 언론에서는 ‘이번 영입이 런닝맨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라는 기사들을 쏟아냈고, 많은 시청자들조차 ‘얼마 못 가 프로그램이 아예 폐지될 것’이라는 상황을 매우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걱정과는 반대로 두 사람이 합류한 직후 런닝맨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시청률 10%를 넘기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한편, ‘런닝맨’의 활약과는 달리 양세찬의 런닝맨 적응기는 정말 너무나도 힘들었죠.

그도 그럴 것이 7년 동안 호흡을 맞춰온 멤버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전소민과 양세찬이 마주한 상황은 무척이나 달랐죠.

함께 합류했던 전소민은 투입 직후 이광수와 함께 어마어마한 활약상을 보여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지만, 양세찬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거였죠.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미움보다 무서운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무관심”

출연 직후 전소민은 큰 관심과 함께 따라온 엄청난 비난으로 힘들어했지만, 그에 반해 양세찬은 대중들의 무관심으로 힘들어했습니다.

매번 이광수와 전소민만이 주목받았고, 양세찬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죠.

 

그렇게

프로그램 내 그의 부진은 무려 2년을 넘어서게 됩니다.

한편, ‘런닝맨’과는 별개로 그는 코미디 프로에서 ‘여자 사람 친구’, ‘리얼극장 선택’, ‘러브이스뭔들’ 이후에는 ‘부부이스뭔들’과 같은 ‘뭔들 시리즈’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었기에 주변 사람들이 특히나 안타까워했죠.

물론 장난이었겠지만, 그의 주변 개그맨들조차 당시 그에게 ‘런닝맨에서 활약이 너무 없다’, ‘분발해야 된다’, ‘아주 그냥 C급 인물이다’ 등과 같은 혹평을 했으며, 이를 양세찬 스스로가 인정했을 정도로 당시 그의 ‘런닝맨’ 내 비중은 너무나 적었습니다.

그는 ‘런닝맨’ 참여 1주년 인터뷰에서도 “‘런닝맨 멤버들과 같이 있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던데’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걱정이 많았고 또 심하게 위축돼 있었죠.

한편, 그가 칭찬도 비난도 아닌 무관심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런닝맨’의 정철민 피디는 “눈에 띄는 전소민에 비해 양세찬은 누군가 희미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비빔밥에 모두가 고추장이면 맛이 없잖아요. 어우러지는 맛이 있어야죠”라며 그를 향한 변치 않는 믿음을 보여줬죠.

 

물론

런닝맨 멤버들도 그를 계속해서 응원해 줬구요.

이처럼 런닝맨 팀원들을 포함해 제작진들의 적극적인 칭찬과 응원 덕분인지 그는 프로에 합류한 지 약 2년이 지나서야 전소민과의 비즈니스 커플 컨셉트로 활약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데뷔한 지 20년이 되어가는 프로 개그맨답게 순발력을 잘 살려 매번 상황에 웃음을 더하더니, 결국 2019년에는 SBS 연말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우수상을 받기까지 했죠.

이후에는 ‘런닝맨’ 자체가 힘과 몸을 쓰는 미션보다 애드리브 위주의 콩트나 토크 위주 미션으로 변경되며, 그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했고요.

 

이후

그는 퀴즈게임에서 바보 캐릭터 ‘깡깡이’를 만들어내 새로운 전성기를 시작하며 이런 상승세와 함께 2021년에는 SBS 버라이어티 최우수상까지 맡게 됩니다.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그는 힘들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제가 런닝맨을 한 지 5년이 좀 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4년 넘게 헤맸고, 말은 안 해도 속으로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멤버들이 끝까지 웃어주고 기죽지 말라며 응원을 해줘 너무나 고마웠습니다”라며 눈물을 뚝뚝 흘렸고 이 말을 듣던 런닝맨 멤버들 또한 많은 눈물을 흘렸죠.

이후에도 그는 ‘구해줘 홈즈’와 같은 프로에서도 본인의 존재감을 뽐내더니, MBC 연예 대상에서 우수상을 받기까지 합니다.

계속해서 본인의 전성기를 갱신하고 있는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대중에게 건강한 웃음을 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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