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세 배우 양희경 눈물 소식…” 전신으로 전이된 암에 점차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다 최근 그녀 따님의 눈물겨운 소식을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드라마 속 익숙한 얼굴로 47년간 연기 인생을 살아온 배우 양희경은 1975년 데뷔 후 현재까지 거의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기하는 국민 배우이며, 드라마에서 고모 역할을 많이 해서 ‘국민 고모’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특히

정확하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대사는 그녀가 수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며,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인기가 좀 있건 없건 큰 상관없이 그녀만 할 수 있는 연기를 하다 보니 많은 계층에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재미있어하는 일로 돈도 벌고 기쁜 거 할기도 얻을 수 있으니, 본인이야말로 누구보다 제일 행복한 삶이라고 했지만, 인생사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그녀의 웃음 뒤에 가려진 진짜 인간 양희경의 삶은 사실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한때 이혼이라는 말이 생소하던 시절 계모 밑에서 구박을 받으며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에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고, 또한 훗날 이번에는 본인이 계모가 되자 곧 하늘 나라로 떠날 딸아이의 병간호를 하다가 자식이 부모 앞에서 임종을 보이면 평생 가슴에 묻고 사는데 딸아이는 가는 날까지 ‘효녀’라고 고백한 그녀의 가슴 아픈 인생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합니다.

 

 

1954년

육군 대령의 딸로 태어난 양희경은 아버지가 가족을 북에 두고 온 뒤 낳은 자식이라 어린 시절부터 끔찍이도 많은 사랑을 받게 되는데, 당시 아버지는 귀한 반찬일수록 그녀에게 먼저 주었고 그리고 어린 양희경이 동네 애들을 못살게 굴고 다녀도 훈장처럼 포장해서 예뻐해 주었습니다.

한편, 그 어려운 시절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을 정도로 엘리트였던 아버지는 그녀와 더불어 세 명의 딸들에게 클래식을 비롯한 많은 음악을 들려주었고, 그리고 어머니 또한 당시 종로에서 노래 잘 부르기로 유명해서 일요일만 되면 두 분이 음악을 틀어놓고 탱고나 왈츠를 추곤 했습니다.

이처럼 풍요롭고 부유한 집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의 큰 다툼이 있었고, 그때 어머니가 속상한 마음에 단순히 아버지를 혼내주려고 잠시 친정에 가게 되는데 하지만 그날로 아버지가 집에 새로운 여자를 데리고 오면서 어머니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바람으로 아름답고 풍요로웠던 가정은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고, 또한 그때는 첩을 뒀다는 말은 있어도 이혼이라는 말은 생소하던 시절로 온 동네에 그녀의 아버지가 첩을 뒀다는 소문이 나면서 어린 양희경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에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계모는 어찌나 구박을 하던지 그럴 때마다 어린 양희경이 늘 소화불량으로 고생해야 했고, 설상가상 2년 뒤에는 아버지의 건강마저 급속도로 나빠져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때 양희경과 자매들은 아버지를 혼내주려고 했다가 못 돌아온 친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리고 이후부터는 그저 행복해질 거라 굳게 믿었으나 정말 아쉽게도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친어머니는 양장점을 운영했었는데 하지만 어느 날 양장점에 불이 나면서 모든 것들이 홀라당 다 타버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빚보증을 서준 어머니의 친구마저 야반도주를 하는 등 계모와 살 때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고난과 역경들이 닥쳐오고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 친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드러누워 버렸고, 결국 언니 양희은이 이때부터 소녀 가장을 자처하고 돈을 벌어야 했는데, 그럼 동생인 양희경은 집 안에서 밥하고 빨래를 하며 살림을 도맡았고 그런데 언니가 아버지 노릇을 할수록 점점 일거수일 투족을 다 간섭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양희경은 언니의 속박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2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게 된 것인지 계모에 이어 이번에는 엄청난 시집살이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결혼할 당시만 하더라도 몸무게가 50kg였는데 시집살이를 하면서 스트레스 때문에 먹어도 배가 고파서 끝내에 83킬로까지 찌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첫 번째 남편과도 그리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하지만 두 아들을 위해서라도 이혼만은 안 하고 살려고 했지만, 당시 시어머니와 갈등과 더불어 여러 문제들이 얽혀 결국 오랜 별거 생활 끝에 1997년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하게 됩니다.

 

한편

당시 탤런트로 활동하던 그녀의 이혼 사실을 아는 사람은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일단 이혼 사실을 숨긴 채 배우 활동을 해야 했고, 그러던 중 언니 양희은이 이혼 후 늘 외롭게 혼자 지내던 동생이 안타까웠는지 ‘이혼이 무슨 흉이냐. 너도 이제 좋은 사람 있으면 사귀고 그래야지’라며 한 남자를 소개해 주게 됩니다.

그 남자는 수입 가구점을 운영하던 사람으로 어느 날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그 가구점에 구경하러 가게 되는데 하지만 연예인이었던 양희경을 알아보지 못해 그저 손님대하 듯 가구에 대한 설명만 늘어놓았고, 그래서 결국 나중에 본인의 입으로 ‘저기 유명한 가수 양희은 씨 있잖아요. 그분이 제 언니거든요’라고 직접 얘기했더니, 그러나 그것도 그 사람에겐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어찌 됐든 이후부터 두 사람은 오래전 친구를 만난 듯 금방 친해졌고, 그리고 그 남자 역시 양희경과 마찬가지로 한 번의 아픔을 겪은 후 홀로 아들과 딸을 키우고 있었는데, 그런 공통적인 부분으로 인해 가끔 식사도 하며 서로의 말벗이 되어주곤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가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로 친구가 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가족들과도 어울리게 되었고, 그때 그녀가 속으로 ‘이 사람과 결혼을 한다면 괜찮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나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그 남자의 딸을 배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자기 뱃속으로 낳은 딸도 아닌데 그 아이에 대해서 안다고 해봐야 얼마나 알 수 있을지 걱정이었고, 그리고 아빠에게 듣는 것도 한계가 있다 보니 사실 재혼 생각이 있었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는데, 서글피 울어대는 그 남자의 전화로, 처음에는 하도 울어대서 귀가 멍해 순간 잘못 걸린 전화라고 생각하고 바로 끊었으며, 하지만 이내 다시 전화가 와 한참을 울던 남자가 한숨을 쉬더니, ‘딸 아이가 암에 걸렸다. 얼마 남지 않았다’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러한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이런 상황에 모두 다 같은 마음이기 때문에, 다음날 양희경은 남자와 함께 병원으로 가서 도대체 얼마나 암세포가 전이됐는지, 희망은 있는 건지 의사를 붙들고 재촉했고, 하지만 이미 딸아이의 뼈 속 깊숙이 암세포가 자라났고, 게다가 어린아이들의 경우 정상세포가 자라는 속도만큼 암세포도 급속도로 퍼져간다는 절망적인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녀가 의사에게 해결할 방법을 찾아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으며 절망 속에 지내는 남자의 딸을 보며 9살의 엄마를 잃고 이제 열다섯 살이 되어 한창 뛰어놀 나이에 이렇게 그냥 보낼 순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결국

이때부터 긴 고민이나 갈등 없이 남자의 가족들도 그녀의 집에서 함께 살기로 결정을 내렸고, 이후 양희경 그녀가 친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지극정성으로 남자의 딸을 보살피자 한때 병이 나을 정도로 상태가 많이 호전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태는 크게 변하지 않았고, 이후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던 남자의 딸조차 점차 자신의 운명을 준비하기 시작하는데, 하루는 늦은 저녁 남자의 딸이 자그마한 귓속말로 양희경에게 ‘아줌마, 우리 아빠랑 결혼하면 안 될까요? 난 아줌마가 좋은데 아줌마가 진짜 내 엄마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엄마’란 말을 해본 지가 너무 오래돼서 해보고 싶어요. 내 마지막 소원이에요’라며 촉촉한 눈망울로 이야기를 꺼내곤 곧바로 잠이 들게 됩니다.

그렇게 양희경 그녀는 남자의 딸이 아침 식사 시간에 답변을 원할 것이기 때문에, 그날 밤을 하얗게 꼬박 지새우며 생각에 빠져들게 되는데, 곧 하늘나라로 떠날 소녀의 소원 때문에 결혼을 선택한 거란 말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그 아이의 엄마가 되어주고 남은 식구들에게 의지할 버팀목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결국 아이의 소원대로 두 사람은 얼마 뒤 언니인 양희은의 집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치르게 됩니다.

 

이로써

진짜 양희경의 딸이 된 아이는 처음엔 익숙지 않아서 부르기 어렵다던 ‘엄마’ 소리를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신나게 외쳤고, 이후 그녀가 단 한 시간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병간호를 하다가 잠시 옷 갈아입으러 집에 갔을 때 딸아이는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자식이 부모 앞에서 임종을 보이면 평생 가슴에 묻고 사는데, 우리 딸은 가는 날까지 효녀였다’라고 했으며, 그리고 딸이 제일 좋아한다는 오빠들 앞에서 천국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양희경은 자신이 못된 계모로부터 나쁜 추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계모가 된 다음에는 천사 같은 엄마가 되어서 오히려 딸에게 좋은 추억을 남겼고, 사실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지만 양희경의 착한 모습을 보면서 과연 우리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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