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머니를 누나라고 해야하나요…” 생활고로 식음전폐한 김수찬이 가수 남진에 오열 발언한 이유… 그간의 근황을 확인해보세요..

오늘의 주인공 김수찬의 이야기에 앞서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6살쯤 된 아이가 자전거를 배우다 진흙탕에 빠졌다면 한국 부모는 쏜살같이 달려가 아이를 일으켜 세우는 데 반하여 유대인 부모는 스스로 빠져나오라는 말만 남기고 가버린다고 합니다.

때문에

아이는 온갖 애를 쓴 후 겨우 진흙탕을 빠져나오게 되는데 유대인 부모는 그제야 아이를 크게 칭찬한다고 하며 그들은 아이를 세우는 교육만큼 넘어뜨리는 교육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김수찬 역시 20살의 어머니가 미혼모로 글을 낳아 반지하에서 물을 펄 때도 이건 추억을 쌓기 위한 게임이라고 말하며 엄마라 부르는 걸 거부하고 누나라 부르라고 했지만 끝내 소속사로부터 3년간 정산을 받지 못해 오히려 빚만 2억이라 모든 방송을 하차 후 “미안해 엄마”라고 말한 뒤 잠적해버린 김수찬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1994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수찬은 당시 어머니의 나이가 불과 20살로 거기에 남편도 없는 미혼모다 보니 당시 산부인과에 갈 돈이 없어서 찾아가야 했던 곳이 조산소였습니다.

 

그런데

김수찬이 4.2kg의 우량아인 데다가 머리가 너무 커서 지독한 상고에도 불구하고 나오지 않아 결국 큰 병원으로 옮겨가서 유언까지 남기고 목숨 건 출산 끝에 아들 김수찬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미혼모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김수찬은 여러 고난들이 꽤나 힘들었을 텐데 그럼에도 어머니가 워낙에 긍정적이고 심지어 고난을 즐거움으로 만드는 마법사 같은 사람이라 어린 김수찬이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누구보다 밝게 자라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당시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집 안에 온통 물이 들이쳐서 함께 물을 퍼내야 했고 그런데 이때도 어머니가 누가 물을 더 많이 푸나 내게 하자라고 하며 그걸 게임으로 승화해 시합을 하곤 했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당시 친구들이 김수찬이 지하 집에 들어가는 걸 보고 “야 너 왜 동굴 속에 사냐?”라고 놀려도 “우리 집은 시원해서 좋아”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수찬이 고백하길 “내가 화려한 거 좋아하고 번쩍번쩍한 거 좋아하고 방송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안 하니까 ‘김수찬은 금수저일 것이다. 잘 살고 순탄하게 살았을 것이다’ 와 같은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를 스무 살에 미혼모로 낳으시고 가정 형편 역시 몹시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힘든 환경 속에서도 어머니가 정말 긍정적이신 분이라 가난했지만 티 없이 맑게 자랄 수 있었다”

“당시 어머니가 나에게 늘 하셨던 말이 ‘우리는 선택받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하는 사람이야’라는 걸 계속 알려주셨다”

“반지하에 살며 엄마와 함께 물을 팔 때도 ‘이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전국 노래자랑에 나갈 때도 내가 긴장하고 막 그러니까 당시의 어머니가 ‘야 어차피 최우수상이야 이미 결과는 정해졌어 네가 최우수상 받고 앵콜곡 부른다고 생각하고 불러’라고 하셨다”

“그래서 진짜로 앵콜곡 부른다고 생각하고 불렀는데 실제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어머니가 직접 뭔가를 본 것처럼 늘 ‘잘된다 잘 된다’하시니까 자신감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 어린 시절부터 트로트를 좋아했던 김수찬은 특히 남진의 노래를 좋아했고 그러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다가 교장 선생님의 눈에 띄어 2010년 인천 청소년 가요제에 출전해 평소 좋아하던 남진의 노래를 불러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내친 김에 그해 8월 전국 노래 자랑에도 출전했는데 그런데 워낙에 큰 무대다 보니 긴장되고 많이 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김수찬의 이야기대로 당시의 어머니가 “수찬아 어차피 네가 최우수상이야 주최 측의 농간이 아니면 어쩔 수 없어 네가 상 받고 앵콜 곡 부른다는 마음으로 노래해라고 하자”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 정말 앵콜을 부르는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그러자 믿음이 현실이 되어 정말로 최우수상을 타게 되었고 그리고 이때도 남진의 노래를 불렀는데 그런데 남진의 딸이 전국 노래자랑 영상을 본 덕분에 남진과 인연이 닿아 데뷔하기도 전부터 남진 무대에 객원 가수로 뛰게 됩니다.

 

 

그러다 2013년에는 히든싱어 남진 편에 출연하여 꽃미남 남진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그리고 당시 패널이었던 김경호가 전라도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이 정도로 디테일한 사투리 발음까지 따라 해낼 수 있냐며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김수찬은 앞서 얘기한 대로 자신이 예전부터 남진을 너무 좋아해서 하루에 4~5시간씩 시간을 투자하여 남진을 연구했고 또한 실제로 남진과 연이 닿아 함께 무대를 하고 있는데 “이제는 신인 트로트 가수”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이 무렵 그는 ‘간다 간다’ ‘대구 아가씨’ 등 정통 트로트보다는 세미 트로트로 가요계에 발을 내딛으며 어린 나이답지 않은 능청스러운 표정 연기와 퍼포먼스로 볼거리 많은 무대를 선보였지만 딱히 히트곡은 내지 못하고 무명 가수로 8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당시 그는 무대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많이 하다 보니 여름이면 땀이 주룩주룩 쏟아졌고 그리고 모든 무명 가수가 그렇듯 대기실도 없어서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또한 차도 없다보니 하루 종일 노래한 뒤 무거운 짐을 들고 열차에 몸을 실어야 했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돈이 없어서 차비가 부족하거나 휴대폰 요금을 못 내서 행사 관계자들과 연락이 두절되기도 했고 하지만 그나마도 아예 스케줄이 없는 날이 훨씬 더 많아 말이 가수지 반백수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 일이 없어 집에서 놀고 있는 아들을 보면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싫은 소리를 할 법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는 게 이때도 도리어 “편하게 즐겨라 지금 쉬어야지 나중에는 길을 못 다닐 정도로 넌 유명해질 거다 그때는 놀고 싶어도 못 논다”며 어김없이 긍정적인 응원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그는 단순히 믿는 것을 떠나 어차피 잘 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어머니의 긍정적인 말들로 힘을 얻어 8년이라는 무명 생활의 시간들을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고 불투명한 미래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그 모든 힘듦이 모두 거쳐가는 단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누가 알아봐주지 않더라도 김수찬은 한 걸음씩 내딛으며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고 그러다 2019년 송가인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에는 트로트 열풍이 불더니 다음에 남자 편인 미스터 트롯이 열리자 그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

미스터트롯에 도전하는 데는 꽤나 망설임이 있었는데 왜냐하면 자신이 비록 무명 가수라고 하지만 현역으로 활동한 지 8년이나 된 기성 가수인데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간다는 것은 다소 부담이 될 수도 있었고 행여나 나쁜 결과로 팬들에게 실망을 줄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같은 기성 가수였던 송가인이 미스트롯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뽐내는 것을 보고 다양한 무대를 경험해온 그도 색다른 도전에 욕심이 났고 그리고 우승까지는 아니더라도 김수찬이 단순히 리틀 남진이 아니라 더 많은 노래와 다양한 스타일의 무대를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참가한 미스터 토론에서 초심으로 경연에 임하고자 자신에게 트로트 인생을 열어주었던 남진의 ‘나야나’로 시작해 이후 경연 내내 승승장구했고 하지만 준결승전에서 뜻밖의 선택을 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는데요.

그건 바로 1위를 독주 중이었던 최강자 임영웅을 대결 상대로 지목하는 모험을 벌인 것입니다.

 

당시

준결승 2라운드는 1대 1 한 곡 대결로 2명이 1곡을 함께 불러 무대를 꾸미며 승자를 가리는 방식이었는데요.

훗날 그의 고백에 따르면 당시 임영웅을 선택한 이유로는 “자신의 목표가 우승이 아닌 멋진 무대를 보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했으며 그래서 순위 1위였던 임영웅이야말로 함께 최고의 무대를 꾸밀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10대 0이라는 굴욕적인 참패를 당하며 탈락하고 말았고 그럼에도 그는 후회가 없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해 김수찬이 고백하길 “영웅이 형도 저도 현역이니까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마음보다는 마스터 분들 시청자분들께 프로다운 멋진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만약 다시 그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해도 영웅이 형을 상대로 택해 ‘울면서 후회하네’를 불렀을 거다”

“실제로 남진 선생님이 이 무대를 보시고 ‘수찬이가 정통 트로트도 되는구나’ 하시며 칭찬을 하셨고 또한 나의 선택 덕분에 쿨한 상남자의 당당함도 보여줄 수 있어서 그 점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라고 했습니다.

한편 이때 그의 탈락을 두고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던 선배 가수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남진으로 실제로 남진과는 최근까지도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고 있으며 심지어 남진이 한참 선배임에도 김수찬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미스터트롯 준결승에서 탈락했을 당시에도 남진은 김수찬이 걱정이 돼 며칠 동안이나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그가 미스터트롯에서는 비록 중간에 탈락했지만 그의 도전 정신과 발전 가능성은 팬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했고 그 덕분인지 이후 그는 톱7 못지않게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2021년 6월 밝고 긍정적이던 김수찬이 자신의 sns를 통해 충격적인 폭로를 하게 되는데요.

내용으로는 자신이 근 3년간 가수 활동으로 얻은 것이 정산 0원에 데려 갚아야 할 빚만 2억이라 활동을 하면 할수록 빚만 늘어가고 매달 생활비도 못 버는 상황이라는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내려놓고 언젠가 이행하리라 생각했던 군 복무를 지금 하게 되었다고 했으며 그리고 현재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소속사에게 1차 내용 증명서를 보냈고 그 답을 소속사로부터 받아 내용을 검토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폭로한 자신의 sns 역시 소속사가 함께 관리하는 만큼 이 글이 내려질 수도 있다고 했는데요.

 

그리고

뭔가 지쳤는지 “군 복무 기간만큼은 월급이 나오니 그것마저 감사해야 하고 일 그만두게 하고 쉬게 해주고 싶었는데 미안해 엄마”라며 모든 방송을 하차 후 군대로 잠적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소속사 측은 김수찬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지만 김수찬이 또다시 팬카페를 통해 소속사 측의 주장을 재반박했습니다.

이에 소속사는 다시 입장문을 내어 김수찬이 대화를 거부하고 허위 주장을 퍼뜨리고 있다면서 계속해서 허위 주장을 펼친다면 형사 고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수찬 그가 고백하길 “방송이나 인터뷰를 할 때 내가 고생했던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나는 대중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는 사람인데 굳이 내가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물론 그런 이야기들로 대중과 동질감이나 공감대 형성을 할 수는 있겠지만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미스터 트롯 할 때도 울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참았다”

“나는 사실 어렸을 때 많이 울었다. 울 일도 많았고 엄마랑 고생한 것들이 많아서 지금은 내가 우는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도 크다”

“어렸을 때는 지하 단칸방에 들어찬 물을 퍼내며 산 적도 있고 버스비랑 휴대전화 요금을 내지 못한 적도 있다”

“그러나 더 세세한 이야기들을 해서 뭐 하겠나 지금 생각해보면 나라는 사람이 주인공인 재미있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그때가

있었기 때문에 감사함을 느낀다” 라고 했습니다.

한편 김수찬의 고백에 따르면 “자신의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누나라고 부른다”고 하는데요

어머니가 “너를 키울 만큼 키웠으니까 엄마의 길을 당당하게 은퇴하고 내 인생 살 테니 그래서 엄마라 하지 말고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류지광의 증언에 따르면 “김수찬의 어머니를 처음 뵙고 깍듯하게 아이고 ‘어머니 안녕하세요’ 했더니 ‘야 누나라고 불러’라고 해서 그날부터 김수찬의 어머니에게 누나라고 부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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