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요사의 큰 발자취를 남긴 원로 가수 조미미가 2012년 9월 9일, 향년 65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이날
오전 서울 구로구 오류동 자택에서 간암으로 숨을 거둔 고인은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1965년 ‘떠나온 목포항’으로 가요계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1969년, ‘여자의 꿈’을 히트시키며 이름을 알렸고, ‘바다가 육지라면’을 비롯해 ‘선생님’, ‘먼 데서 오신 손님’, ‘단골손님’, ‘눈물의 연평도’, ‘개나리 처녀’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습니다.
정규 음반도 5장을 남겼으며, KBS 1TV 가요 무대에 출연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조미미의 부고 소식에 사람들은 “섬에 관련된 노래를 많이 부른 가수라서 애환이 담긴 노래들이 많은데, 안타깝다”, “70년대 서민을 위로한 가수” 등의 글을 남기며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가수 세븐도 “바다가 육지라면 가수 조미미 선배님이 오늘 오전 별세하셨다고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며 추모 글을 올렸습니다.
당시
23세 조미미는 1947년 영광에서 출생하여 목포여고를 졸업하였으며, 1965년 동아방송에서 ‘떠나온 목포항’으로 데뷔하였습니다.
선배 가수 남진과 조미미의 염문설은 대중 가요계의 골동품 같은 설담입니다.
둘은 동향이고, 한 살 터울 (1946~1947년생) 선후배였습니다.
조미미 1964년, 남진 1965년으로 데뷔 시기도 비슷합니다.
1968년 남진의 해병대 입대와 월남 파병, 파월장병 위문 공연도 말꼬리의 단초가 됐습니다.
위문 공연은 1965년 6월부터 1971년까지 83차례에 걸쳐 1160명이 파월되었고, 2922회의 공연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공연단에 조미미가 포함되었던 것입니다.
남진의 전역 후 귀국 시기에 조미미가 부른 노래도 팬들의 이야깃거리가 됐죠.
조미미는 ‘제2의 이미자’로 불렸습니다.
그녀가
서울로 와서 ‘지구 레코드’를 드나들 때, 이곳의 전속 가수 이미자와 이름이 같아서 ‘미미’로 예명을 지었답니다.
‘유정천리’, ‘대전 부르스’의 작곡가 김부해가 지어준 선물입니다.
1965년 그녀가 데뷔한 동아방송 민요 가수 선발가요 백일장은 김부자, 김세레나와 같이 데뷔한 무대이며, 이후 ‘서 산갯마을’, ‘여자의 꿈’, ‘선생님’ 등으로 인기를 이어오던 중 ‘바다가 육지라면’을 통해 인기는 하늘을 찌르게 됩니다.
대중음악 평론가로 유명하신 임진모가 말하기를 가수 조미미에 대해 “1960년대 중반 대중가요에는 남진, 나훈아, 이미자, 조미미 씨 네 명의 가수가 주도했다”라고 밝혔을 정도로 조미미의 당시 파급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임진모는 “특히 조미미는 후덕한 외모와 맑은 목소리 등으로 이미자를 뒤잇는 인기 여가수로 각광받았다. 노래를 특히 잘했고, 남진과 함께 호남 지역을 대표하던 스타였다”라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조미미는 “남진 선배님이 초등학교 2년 선배님이세요. 같이 자라다시피 했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목포 방송국에서 전속 가수를 뽑는 콩쿨에 출전했다가 1등을 했어요”
“그 덕분에 서울 동아방송국에서 개최한 제 1회 가요 콩쿨 대회에도 나가게 되었고요. 그 콩쿨에서 특등을 했어요. 그리고 가수의 꿈을 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바로 서울로 올라가서 음반을 취입했어요”
조미미는 1973년 재일교포 안성기 (일본 이름, 야스다 에이키츠)와 결혼하면서 잠시 가수 활동을 중단합니다.
조미미의 남편은 사업가로, 이후 조미미는 딸 두 명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1974년에 딸을 출산했고, 이후 복귀해서 1976년에 다시 10대 가수에 복귀합니다.
당시
여자 연예인들은 결혼한 다음에는 활동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는데, 조미미의 경우는 60년대부터 팬층이 워낙 탄탄했기 때문에 복귀에 무리가 없었던 것이었죠.
조미미는 80년대와 90년대도 꾸준하게 활동하다가 2000년대에 들면서는 거의 활동을 중지하게 됩니다.
조미미 “재일 동포사업가 남편이 소천한 다음에는 모든 게 허무해졌어요. 그냥 눈물만 나오고 노래도 하기 싫었죠”
그러던 중 조미미가 지난 2012년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간암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요.
당시 유족들은 “한 달 전 갑자기 몸이 부어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더니, 간암 말기 판정이 나왔다. 최근까지 종종 가요 무대에 나가 건강하게 노래를 불렀는데, 황망한 상황이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조미미
여동생은 “언니가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또 건강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었다. 원래 지난 8월에 갑자기 체중이 너무 빠져서 병원을 찾아가 검진을 하니 간암 말기 판정이 나왔다”라며 “곧바로 치료를 시작했지만, 이미 암세포가 온몸으로 전이된 상태였다. 결국 한 달 만에 언니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요청했고, 자택으로 옮긴 지 3일 만에 눈을 감았다”라고 전했습니다.
조미미의 딸은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당당함을 잃지 않으셨다. 항상 밝게 웃으셨고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라고 전했습니다.
조미미의 여동생은 “건강한 언니가 갑자기 이렇게 되어서 가족 모두 충격에 빠졌다”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습니다.
조미미의 간암의 경우에는 사망 한 달 전 무렵에 갑자기 체중이 빠지는 증상 외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던 모양이네요.
당시
조미미의 별세 소식을 듣고 사실 유무에 대해 의견이 대립하기도 하였으나, 곧 보도가 되었고 이는 사실로 밝혀졌는데요.
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연예인들을 보면 불과 얼마 전에 건강했던 모습이 오버랩되어 더욱 슬픔을 안겨주는 것 같습니다.
‘미리 건강검진을 통하여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참고로 조미미가 생전에 인생의 성공에 대하여 한 말이 있습니다.
조미미 “인생의 성공이란 아마 남편이 살아 있다면, 사랑이나 부부라고 얘기했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인생의 성공은 자식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인기가 영원해서 지금까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의 가장 큰 보물은 두 딸이죠. 그래서 내가 부자라고 항상 생각해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조미미였지만, 자식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평범한 어머니였던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김인순, 조용필 등의 과거 무대가 다시 전파를 타기도 했었는데요.
김인순의 ‘여고 졸업반’,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등을 비롯하여 당대 최고 가수들의 무대가 다시 전파를 타 반가움을 더했고, 이에 네티즌들의 관심을 증폭시키며 한순간에 검색 포털 상위에 그들의 이름이 오르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죠.
트로트 전성 시대를 맞아 많은 트로트 가수들이 방송에 나오고 있습니다.
조미미 씨의 노래 가락이 들려오면, 많은 분들이 흥얼거릴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곳에서는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