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증스러움 그 자체의 사람… “배우 조형기 방송 퇴출 이후 공개된 놀라운 근황…” 그러나 그의 모습에 모두가 분노한 이유..

배우 조형기 씨.

한때는 배우로서, 그리고 인기 예능인으로서, 큰 사랑을 받기도 했던 방송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이 알려진 과거에 있었던 어떠한 사건이 인터넷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공개되자,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에 그는 더 이상 방송에 얼굴을 들이밀지 못하고 훌쩍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조형기 씨.

 

중간중간 ‘유튜브’라는 공간을 통해 조금씩 얼굴을 내비치는가도 싶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죠.

대중들의 싸늘한 시선에 ‘유튜브’에서마저 종적을 감춰버린 그는 이후 모습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사람인 이상 언제까지나 집안에 갇혀 살 수만은 없을 텐데, 밖에 잠시라도 나와 바람이라도 쐬어야 될 텐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모습을 감출 수가 있는 것인지 그의 근황이 진심으로 궁급해집니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사이, 그의 근황이 알려졌습니다.

‘이런 데 숨어 있으니 당연히 볼 수 없었지’라며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예전과 어딘가 달라 보이는 조형기 씨의 모습, 왜 하필 이런 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 슬하에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는 조형기 씨가 자식들과 무슨 문제가 있었길래 연예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자기 자식만큼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인지, 그렇게 잘나가는 연예인이었던 조형기 씨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인지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방송에서 조형기 씨가 어느 순간 종적을 감춰버린 이유는 과거에 있었던 어떠한 사건이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요즘

세상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충격적인 사건인데요.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연기자의 길을 걷던 배우 조형기 씨.

 

 

훗날 예능에서는 연예계 큰형님으로서 대접을 받게 되지만, 데뷔 초의 그는 ‘깡패’, ‘두목’, ‘기둥서방’, ‘폭력적인 남편’ 등 험상궂은 인상의 악역 전문 배우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단역에 무명 연기자의 삶을 살아가던 중 바로 그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1991년 8월 4일 국방부 홍보영화 촬영차 강원도 정선에 갔었던 조형기 씨.

영화 촬영을 하던 중 제작진 일행과 회식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만취가 된 조형기 씨가 자신의 쏘나타 승용차를 운전하다 그만 지나가던 행인을 치게 된 것입니다.

조형기 씨의 차에 치인 행인은 30대의 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여성은 안타깝게도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이것만 해도 엄청난 사건인데,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바로 조형기 씨가 술에 취해 차로 사람을 친 것에 이어, 그 시신을 유기한 것입니다.

차에 지어 사망한 행인을 사고 현장에서 불과 12M 떨어진 도로 옆 숲속에 묻어 시신을 유기한 뒤, 다시 차로 돌아와 차에서 잠을 청하다 이후 7시간 만에 사건 현장에 도착한 경찰에 의해 조형기 씨는 곧바로 체포가 되게 됩니다.

사고 현장에서 불과 12M 옆이라니, 게다가 시신을 유기하고 차에 돌아와 차에서 잠을 잤다니,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무리 술에 만취가 되었을지언정, 시신을 유기한다는 생각은 그리고 이를 실제 행동에 옮기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현장에서 바로 체포되어 구속이 된 조형기 씨.

그는 1심에서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을 받아 겨우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데 이어 최종 징역 5년을 선고받게 됩니다.

술에 취해 운전을 하여 사람을 치고, 사람을 죽게 만들었는데 게다가 유기를 했었는데, 겨우 징역 5년이라니 피해자는 한창때의 30대 여성이었습니다.

무언가 납득이 되지 않는 판결이죠.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이후 조형기 씨는 수감생활 겨우 2년 만에, 당시 김영삼 정권이 새로 들어서면서 가석방 조치되어 석방이 되게 됩니다.

1심의 3년도, 최종 판결인 5년도 아닌 겨우 2년 남짓의 수감 생활만 하게 된 것이죠.

피해자의 가족들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이를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그런데 피해자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91년 8월에 사고가 나고, 1993년에 가석방으로 풀려난 조형기 씨.

 

같은

해인 1993년 4월에 MBC ‘베스트 극장’에 출연하며 활동을 제기하기 시작합니다.

그야말로 나오자마자 ‘바로’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런데 또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라고 해야 할지 계속 무명의 배우 생활을 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하필이면 이때부터 조형기 씨는 슬슬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니, 후에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나오며 코믹한 모습으로 팝송을 부르는 등 큰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이때부터 수십 년간을 ‘큰형님’, ‘편안한 아저씨’와 같은 이미지로 톱 스타의 인기를 누린 조형기 씨.

하지만 이를 지켜봐야 하는 피해자의 가족들은 TV만 틀었다 하면 나오는 조형기 씨를 보고 어떠한 심정이었을까요?

조형기 씨는 2017년까지 예능 방송에서 활약하였습니다.

요즘이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사건의 주인공인 조형기 씨가 이렇게까지 오래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는 조형기 씨가 주목받는 연예인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이러한 내용을 잘 몰랐던 것인데, 2010년 이후가 되면서 인터넷이 발달하며 이 조형기 씨의 사건도 재조명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비난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조형기 씨.

 

하지만

그를 향한 비난이 점점 더 심해지자 그는 2017년 인기 예능 방송인 ‘황금알’을 마지막으로 방송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한동안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조형기 씨.

사람들도 서서히 그의 이름을 잊어갈 때쯤, 별안간 그의 복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TV 방송이 아닌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서 말이죠.

우리들이 잊고 살아온 지난 추억 속에 살아 있는 이야기를 소환한다는 무언가 조형기 씨에게는 알맞지 않은 그런 주제의 방송이었는데요.

어쨌든 유튜브를 통해 다시금 재기의 기회를 노려봤던 조형기 씨이지만, 이제는 예전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조형기 씨의 과거의 사건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결국, 꾸준히 영상을 올리는가 싶더니만 어느 순간 새 영상이 올라오지 않으며, 현재까지 유튜브 운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2021년까지의 일이었는데요.

이 이후로 조령기 씨의 소식은 완전히 끊기게 되며 그 누구도 조형기 씨를 봤다는 사람조차 전혀 없게 되었습니다.

유튜브는 물론, 어떤 인터넷 공간에서조차 말이죠.

그러던 중 뜻하지 않은 제보가 나오게 됩니다.

‘내가 조형기를 봤다’, ‘지금 내 눈앞에 조형기가 있다’, ‘이런 데 숨어 있을 줄이야’, ‘이러니 여태 모습이 안 보였지’

제보와 함께 올라온 조형기 씨의 사진. 사진 속의 조형기 씨는 함께 온 일행들에게 자신의 휴대폰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왜 조형기 씨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조형기 씨를 봤다는 곳이 국내가 아닌 바로 미국의 필라델피아라는 지역의 한인 마을이라고 합니다.

 

이러니

당연히 조형기 씨를 스치듯이라도 전혀 볼 수가 없었던 것이죠.

초라한 모습의 조형기 씨.

왜 머나먼 미국으로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이에 대해 주변의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첫째로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조형기 씨의 과거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고,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에 도저히 눈치가 보여서 한국에서는 살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바로 자신의 아들.

슬하에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는 조형기 씨.

이 두 아들들도 연예인인 아버지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아 첫째 아들은 힙합 음악을 하는 래퍼, 그리고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 이어 배우로서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형기 씨는 방송에서는 코믹하고 유쾌한 이미지이지만, 집 안에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그야말로 무뚝뚝한 아버지라고 합니다.

자식들과도 전혀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특히 연기를 하는 둘째 아들과는 골이 아주 깊다고 합니다.

자신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를 닮았다는 둘째 아들.

안 그래도 아버지라는 사람과 거리감이 있었는데, 연기 생활을 하며 사람들이 자신을 자신을 보고 ‘조형기의 아들이다’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바람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아버지와는 더더욱 어색한 관계가 되었던 것이죠. 이런 아들을 볼 낮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결국 미국의 한인 마을에서 지내고 있는 듯한 조형기 씨.

그의 초라한 근황과 속 사정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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