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세 번의 큰 기회가 있다’는 인생의 진리처럼 전해져오는 이 말은 한 때 힘든 저에게 한 가지 의문을 남긴 적이 있다.
나한테 기회가 왔을 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수있을까?
기회가 세 번씩이나 오는데 난 왜 이렇게 불행한 인생을 살고 있지?
이런
생각을 가지며 잠깐 방황을 하기도 했는데.
가수 조항조라는 인물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주었다.
그가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은 참 드라마틱했고, 저에게도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데.
그래서 오늘은 그의 치열했던 삶과 그런 그를 헌신적으로 보살핀 그의 아내의 이야기를 전하며, 여러분들이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갖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그리고
오랜 무명 시절을 딛고 결국 큰 성공을 거둔 조항조 씨와 유재석 씨의 소름 돋는 공통점에 대해서도 말해보고자 합니다.
길었던 무명생활
우리에게 조항조 씨는 트로트 가수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록밴드의 보컬이었다.
그의 과거활동 사진을 보면 민소매 옷을 입고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을 한 조항조 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세계적인 록그룹 퀸의 프레드 머큐리가 생각이 날 정도인데.
조항조 씨는 미 8군 부대나 클럽 등에서 록 무대 활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갔다고 하는데.
당시 클럽에서 받는 돈은 고작 3만 원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중 2만 원은 멤버들의 여관비로 써야 했으며 나머지 1만 원마저 나눠 가졌으니 거의 수중에 남는 돈이 없었다.
이처럼 무대 활동이 생계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않았음에도 이어갔던 이유는 오직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였다.
결국 그는 열정 하나만으로 1978년 서기 1999년에 리드보컬로 데뷔하게 되는데.
불행히 그 밴드마저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가난한 가수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 나가던 조항조 씨는 자기 집에 심부름을 온 한국계 미국인 여학생에게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그 여학생이 바로 지금의 아내 홍숙재 씨인데.
당시 그녀가 한국에 들어간다고 하자, 조항조 씨의 이종사촌 이모님이 무언가를 전해달라고 부탁하셨고 홍숙재 씨는 그것을 전달하고자 조항조 씨의 집을 찾아갔다고 하죠.
미국에서 온 홍숙재 씨의 세련미에 반한 조항조 씨는 홍숙재 씨와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녀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연애는 계속되었는데.
그런데 조항조 씨는 홍숙재 씨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아마 그녀가 대학생 신분으로도 조항조 씨를 만나러 한국에 2~3번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녀의 집안은 꽤 유복했던 모양인데.
부유한 집에서 귀하게 키운 딸이 한국의 무명 가수와 교제한다는 소식에 달가워 할 부모가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조항조 씨는 홍숙재 씨와의 결혼에 마침내 성공하게 됩니다.
여보 나 음악 포기할게…
결혼 후 아들까지 품은 조항조 씨는 처음으로 가장으로써의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당시 그의 월수입은 15만 원 정도였다고 하는데.
조항조 씨가 80년대 초중반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으니 사실상 15만 원은 결코 큰 돈이 아닙니다.
세 가족이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죠.
가장으로서 자신의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우친 조항조 씨는 결국 그토록 사랑하던 음악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로 결심합됩니다.
10년 동안의 무명 가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죠.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가 이런 결정을 할 때까지 그의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조항조 씨의 아내는 “음악 열심히 해”라고만 했지, “돈을 더 가져오라”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남편의 수입에 대한 불만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항조 씨는 미국 이민을 결심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죠.
“나 혼자 음악에 빠져 살면서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는 건 아닌지, 내 고집대로 살아왔던 건 아닌지, 가족들에게 미칠 듯이 미안하더라고요.”
그렇게 10년의 무명 생활을 감당할 정도로 음악을 너무나 사랑했던 그는 결국 더 소중한 가족을 위해 그렇게 과감히 음악을 포기하게 됩니다.
록가수에서 트로트가수로?
그렇다면
결심으로 한국을 떠난 조항조 씨가 대체 어떻게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게 된 것일까요?
그 배경에는 아내 홍숙재 씨의 결단력이 있었다.
홍숙재 씨는 조항조 씨로부터 미국 이민을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의 눈빛이 제법 무서웠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눈빛에서 음악으로부터 상처받은 남편의 마음을 느꼈다고 하죠.
그래서 홍숙재 씨는 “음악을 포기하겠다”는 남편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에 도착한 홍숙재 씨는 “아! 이 사람은 무대에 서야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는데.
이에 조항조 씨에게 무대로 돌아가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그는 한국에 있는 친구 유현상 씨의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게 되고, 한국에서 싱글 앨범을 내게 됩니다.
조항조 씨라면 당연히 락 앨범을 냈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그의 싱글 앨범은 트로트로 꾸려졌다.
미국 이민 당시 고향을 떠나 외로운 사람을 살고있는 그에게 트로트가 언제나 위로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와 우리 가락, 우리 정서가 담긴 트로트의 매력에 빠진 그는 트로트 가수의 길에 접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무명은 트로트 가수 데뷔 이후, 9년이나 지속되었는데.
결국 조항조 씨는 1998년 ‘남자라는 이유로’가 큰 성공을 치고 난 뒤에야, 약 20년간의 무명 시절을 청산하게 됩니다.
성공의 비결
조항조
20년의 무명 시절을 견디고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 놀라운 이유는 단순히 그가 20년을 버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조항조 씨가 무명 20년 동안 엄격한 자기관리를 끈질기게 해왔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죠.
조항조 씨의 긴 무명 생활…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현실..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했던 자기 관리..여기서 ‘한 사람’이 생각나는데.
바로 유재석 씨입니다.
유재석 씨는 무명 시절이 기약 없이 길어지자, 개그맨의 꿈을 포기하고 호프집에서 일한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유재석 씨는 뒤늦게 찾아온 소중한 기회에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헌신했다.
대표적인 예로 추격전 촬영 당시 숨이 너무 차오르자 그 즉시 금연을 결심한 유재석 씨의 유명한 일화를 들수있죠.
조항조 씨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는 무대에서의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술, 담배 등 몸에 해로운 것들을 모두 끊었다고 하는데.
혹시 좋지 않은 짓을 하면 어쩌나라는 생각에 친구들마저 만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재석 씨와 조항조 씨를 보며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그리고 준비된 사람만이 그것이 정말 소중한 기회라는 것을 알아본다.’라는 당연한 인생의 진리를 새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성공의 비결?
한편
조항조 씨의 성공에 자기 관리가 큰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지만, 그의 성공에 일등 공신은 바로 아내 홍숙재 씨입니다.
그녀는 음악을 포기한 남편을 무대로 돌려보내기도 했으며 무명인 조항조 씨를 묵묵히 내조했는데.
가정에서뿐만아니라 기획사 사장이 조항조에게 조언을 할 때는 반드시 옆에 앉은 상무님과 상의를 했다는데.
상무님은 다름 아닌 조항조의 아내였다고 합니다.
조항조의 의상과 헤어, 무대, 화장, 목소리까지 일일이 체크해서 활동하기에 조항조는 노래에만 집중하며 2030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활동할 수 있었던 곳인데.
그동안 뒷바라지한 남편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 “저 사람이 내 남편이에요.제가 이렇게 열심히 내조했어요”라며 티를 내고 싶을 법도 한데, 홍숙재 씨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이 가수고 연예인이지 내가 그런 것은 아니라며 자신의 평범한 삶에 만족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금도 홍숙재 씨의 가족을 제외하면 그녀의 남편이 가수 조항조라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데.
아마
그녀는 허영심 없고, 소박한 성품의 인물인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홍숙재 씨의 생각은 의외의 부작용을 불러일으켰다.
조항조 이혼, 조항조 재혼이라는 뜬소문뿐만 아니라 홍숙재 씨가 조항조 씨의 내연녀라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죠.
조항조 씨는 최근 이에 대해 밝히길
“신비주의가 아니라 아내가 누구 부인이라 불리면 본인이 너무 불편하니까 그런 거다 한국에서 몇몇 친구들이 있는데 내가 남편인 걸 모른다”
“같이 외출할 땐 내가 모자 쓰고 마스크 쓰고 다닌다 예전에 마트 시식코너에서 먹었는데 어떤 분이 ‘조항조 맞죠?’ 하면서 말 걸었다”
“집사람이 너무 당황해서 도망가기도 했다”
“갑자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뭐야 옆에 있던 사람 아내 아니야? 다른 여자랑 있다가 지금 걸린거야?’라고 쑥덕거려 급히 해명하고 마트에서 나온 적이 있다”
“이후 조항조가 내연녀와 몰래 만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는 에피소드도 공개했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해명하고 싶을 법도 한데, 홍숙재 씨는 결코 자신이 조항조의 아내라는 티를 지금도 내지 않고 있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 홍숙재 씨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남편은 가수잖아요.그래서 가수라는 예술가가 팬들에게 주는 판타지를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귀가해서 집으로 온 조항조는 내 남편이지만 집 밖에서의 조항조는 팬들의 조항조이길 바랐죠.”
홍숙재 씨의 사려 깊은 마음에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인데.
조항조 씨는 이런 아내의 희생과 배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어
그는 2014년 MBC 가요베스트 대상을 수상할 당시에도 아내에게 이런 말을 남깁니다.
“특히 제 사랑하는 아내에게 감사드립니다.사실 연예인의 아내로서 사는 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집에도 잘 들어가지 않고 매일 타지에 나와 있는 제 기준에 맞춰서 살아줘서 참 고맙고 또 사랑합니다.”
자신의 1순위였던 음악을 포기할 정도로 아내를 사랑했던 조항조 씨 그리고 그런 남편을 끝까지 뒷바라지한 홍숙재 씨
두 사람의 끈끈한 사랑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