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하나만 보고 살아온건데…” 병상에서 위독한 상황을 3번 넘긴 유명 배우의 최근 눈물겨운 사연이 공개되고.. 모두가 눈물만..

여러분 영화 <해바라기>에서 “오태식이 돌아왔구나”라는 명대사를 남긴 이 배우를 아시나요?

이 배우는 바로 영화 <친구> <해바라기> <7번방의 선물> 등에 출연하며 최고의 조연 배우 중 1명으로 자리매김 한 김정태 배우인데.

최근

스크린에서 항상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에게도 안타까운 가족사가 있었고, 이와 관련된 사건들은 아직도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의절했고, 이후 가장 아끼던 어머니마저 잃게되고 만다.

그 후 너무나도 큰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젊은 나이에 간암까지 걸리게 된 배우 김정태…그가 걸어온 길과 근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다.

 

 

그의 어린 시절

김정태는 1980년대 부유했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그는 당시 운전기사와 가사도우미가 있는 집에서 용돈을 따로 받을 필요 없이 자랐으며 부유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데.

“기사가 있는 차를 타고 다니는 집은 우리 집뿐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유한 환경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9년 이후 아버지의 부도로 김정태는 천원짜리 1장이 아까울 정도로 궁핍한 환경 속에서 살아야만 했는데.

김정태는 “17000원으로 일주일을 살아야 했다”

“쌀 한 대만 사고 김치 사고 그런 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고 힘겨웠던 당시를 기억했다.

 

심지어

사업 실패로 인해 아버지가 어머니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폭력적으로 대했다고 하는데.

김정태는 당시에 대해

“아버지가 돈을 좀 벌어서 좋은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친가에서 재산다툼이 나기도 했다”

“돌아가신 어머니 일기장을 보니 별의별 이야기가 다 적혀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 대한 정이 전혀 없다”

 

 

“저희 엄마를 골목에서 막 뜯고…그랬던 것을 내가 다 알고있다”

“이로 인해 사이가 안 좋았고 미워하고 원망했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 속 짐이 간경화로 발전하기도 했다라고 서러움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아버지 때문인지 김정태는 “저희 가족이 4형제인데, 특별히 서로 든든하게 힘이 되었던 모자지간이었다”라며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김정태는 기억나는 어머니와의 에피소드에 대해 말하기를

” 어머니가 ‘연기자 자질이 있다’며 연기자를 권하셨다.그래서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연기를 하려고 서울로 촬영을 하러 간다니.어머니가 카드 한 장을 내주셨다”

“잔액이 3만 원 있더라.멀리서 엄마가 나를 보며 서 있는데 눈물이 났다”

“그 때 당시 전 재산을 주신 거였다고 했다”

“눈물이 앞을 가리더라”

“길 가는 내내 울었다”고 전했다.

 

그는

전 재산을 내어주시는 어머니 덕에 무사히 서울로 상경할 수 있었다.

데뷔 후 조폭 전문배우로..

김정태는 1999년 영화 ‘이재수의 난’으로 충무로에 데뷔했는데.

2001년 영화 <친구>까지는 자신의 본명인 김태욱으로 활동하다가 영화 <친구>를 통해 유명세를 타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선배연예인인 가수 김태욱을 의식해 지금의 예명인 김정태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후에도 그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똥개>, <해바라기>, <7번 방의 선물> 등에 출연하며 형사, 건달, 펀드매니저 등 다양한 캐릭터를 맡으며 명연기를 펼치며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죠.

그는 실제 조폭이라고해도 믿을 범상치 않은 외모 탓에 초창기 배역의 80%는 조직폭력배 역이였다고 한다.

<친구>, <해바라기>, 똥개 등의 작품의 인상이 워낙 강하다보니 조폭 전문 배우, 조폭 스페셜리스트라는 소리도 자주 들었는데.

그게 어느 정도나면, 영화 <친구> 촬영 당시 머리를 짧게 자른 그의 풍채를 본 유오성, 곽경택, 팬들이 입을 모아 “오줌을 지릴 정도로 무서운 인상”이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정태는 한 방송에서 고충을 토로하며 “항상 조폭 혹은 악역 역할만 하니 실제로 저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깨기 힘들어서 괴로웠다”

“그래서 촬영장에서 항상 계획을 세웠다”

“악한 역할을 할 때는 현장에서 스태프를 엄청 웃겼다.역할이 그렇지 실제 상태는 아니란 걸 알게 하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7번방의 선물> <체포왕> <히트> 등에서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역할을 소화해내며 연기 배역의 폭을 넓혔고, 예능프로그램 <1박 2일> 등에도 출연하며 과거의 이미지에서는 많이 벗어난 듯한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것만 같았던 김정태에게도 남 모를 시련이 있었는데.

간경화…그리고 엄마

김경태는 영화 <똥개>를 찍는 과정에서 32살 젊은 나이에 간경화를 앓아야 했다.

김정태는 “감독님이 살을 찌우라 해서 갑자기 살을 찌우다 보니 간에 무리가 왔다”

“몰래 몰래 병원에 다녔다 혹시나 말하면 잘릴까 봐..” 라고 당시에 어려움을 전했다.

김영태는 “그 탓에 어머니가 <똥개> 무대 인사를 부산에 와서 했는데 내가 어떻게 그 작품을 찍었는지 아시니까 너무 많이 우셨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경태는 이런 어머니가 2008년도에 작고 하셨다고 밝혔다.

김경태는 “저랑 같은 병으로 돌아가셨다”

“간경화로 제가 아프고 나서 이 3년 뒤 발병하셨는데 너무 늦게 알아 치료도 제대로 못했다”

“그런 거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어머니는 나를 살려주셨는데 나는 어머니를 못 살려드렸다”

“성공 조금 할 때 덕 조금도 못 보시고, 너무나 힘들 때 돌아가셨다”

“효도 한번 해드리지 못했다”라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아내와 19년 간의 연애 끝에 2009년 결혼하게 되었는데.이에 대한 슬픈 사연도 있다.

김정태는 “내가 아내와 연애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고 거의 돌아가시게 될 시점이셨다”

“돌아가시기 전 내가 결혼하고자 하는 아내와의 결혼을 알리기위해 어머니가 계신 병원에 찾아갔다”

“그런데 어머니가 결혼을 승낙한 뒤 20분만에 돌아가셨다”

“결혼을 승낙하는지 묻자,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와 이별을 하면서 너무나 슬픈 마음에 예정되있던 결혼식을 중단하고 제사를 지냈다”며 오열했다.

이처럼

김정태는 간질환으로 인해, 인생에도 너무나도 큰 고통을 받아야만 했는데.

그의 시련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2018년 김정태는 드라마 <황후의 품격> 촬영 도중 간암 판정을 받게되며 드라마에서 하차하게 됩니다.

김정태는 최근 자신의 간암 투병기에 대해 밝히길

“드라마 황후의 품격을 촬영하면서 몸이 안 좋은 게 느껴졌다”면서

“병원에 갔는데 방의 공기가 벌써 암이라고 얘기하더라”

“아마 더 늦었으면 안 좋은 상황까지 갔을 수도 있다”

“간암 발병 후 간경화 때와 달리 드라마를 하차한 것에 대해 도저히 연기할 사항이 아니더라”며

“종양이 앞에 있으면 복강경으로 수술하는데 종양이 뒤에 있으니 다 열어서 장기를 빼 수술 시간이 두 배가 됐다더라”고 말했다.

 

그는

수술 후 혼자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로 쇄약해지는 것은 물론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태는 희망을 잃지 않고, 운동도 하고 회복에 전념했는데.

그 결과 지금은 건강 상태가 많이 회복되었고, 다시금 스크린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여전히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는 배우 김정태 그가 앞으로는 꽃길만 걷기를 응원한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