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혹시 대한민국의 원로 성우이자 배우인 김기현 님을 아시나요?
은하철도 999, 카우보이 비밥, 쿵푸팬더 등 많은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성우를 맡기도 했으며 일반인들에게는 제5공화국의 장태완 소장 역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최근
10일 방송된 TV조선 ‘건강한집’에서는 성우 김기현 부부의 사연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연예계 대표 부부로 근육질 몸매를 자랑한다.
김기현이 아픈 아내를 위한 건강식을 공개했다.
에너지를 높이고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되는 광어와 쇠고기와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건강 비법으로 아내를 위해 독점 보관했다는 장어 진액을 공개했다. 그는 “아내가 암 투병으로 면역력과 기초체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건강한 집>을 찾은 이유는 바로 심각한 대장암과 폐암 때문이라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더불어 성우계의 전설로 불리는 김기현 님의 삶에 대해서도 조명해 보도록 하겠다.
유명 성우가 되기까지
그는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태어났다.
1950년
벌어진 6.25 전쟁으로 인해 그는 피난을 갔어야 했고, 당시 20살이였던 형은 강제로 군에 징용되었고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의 가족은 엉망이 되었는데.

아버지는 장남을 잃은 슬픔에 식음을 전폐한 채 술로 살았고, 어머니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하루 종일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가족은 너무나 가난했고 어린 김기현은 겨울만 되면, 손을 녹일 장갑조차 없어 동상에 걸려 손이 부어 피가 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그는 당시 현장을 떠올리며 “꿈이 아니라 배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가난하게 살다가 스무 살에 군대에 입대했다.
이후 논산훈련소 조교로 근무하던 중 우연히 KBS 소속 연예인 연습생을 만났다.
연습생은 김기현에게 “목소리가 좋으니 더빙을 해보는 게 어때?”라고 제안했고 연습생이 창고에서 가져온 대본을 우연히 읽었다.
그때 ‘아,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성우가 꿈이었다고 한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1964년 충청남도 특채 1기로 데뷔했고, 5년 후 1970년 MBC 4기 공채 성우로 정식 데뷔를 하게 된다.
이후
‘은하철도 999’, ‘드래곤’, ‘경찰학교’, ‘리옹’ 등 다수의 작품에서 성우로 활약했다.
성우뿐만 아니라 배우로서도.
‘이중경찰3’, ‘캐스터’, ‘제5공화국’, ‘복면의 달’, ‘난폭한 시대’, ‘세종대왕’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특히 그가 ‘제5공화국’에서 장태완 역을 맡았을 때는 관객들에게 ‘장푸시’로 불리기도 했다.
“배반자 자식”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도 있습니다.
당시
남자의 평균 초혼 연령이 24~27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결혼 후 은행에서 돈을 빌려 방 3개짜리 아파트를 새로 지었지만, 빚을 갚기 위해 방 2개짜리 아파트 임대료를 내야 했고, 가난한 삶을 살았다.
결혼 후 MBC 성우로 전향했지만 수입이 너무 적었다.
그는 돈이 없었고 아픈 딸의 치료비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아팠기 때문에 식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김기현은 “큰 딸이 고열이 나면서 게임을 시작했는데 돈이 없어 아무것도 못 해서 그 때 더빙을 포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일생에 한 번 뿐인 기회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브랜드 광고에 목소리를 내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촬영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더빙 광고 섭외가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97년에는 광고상도 수상했습니다.”라고 그는 회상합니다.
김기현은 “첫 진단 후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3년 후 림프절로 전이되었고 3년 후 폐로 전이되었습니다.”
항암치료를 30회 넘게 받았다”고 말했다.
내 인생은 내 아내를 위해
김기현은 “큰 딸이 막 게임을 시작해서 고열이 났는데 아내가 돈이 없다고 전화를 했다. 더빙을 그만둘 뻔했고 할 일이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10일 방송된 TV조선 시사·교양 프로그램 ‘건강한 집’에는 김기현과 아내 손영화 씨가 출연해 건강에 관한 정보를 나눴다. 손영화 씨는 대장암과 폐암으로 13년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대장암 진단 이후 임파선으로, 또다시 폐로 전이된 암세포 때문에 총 19번의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김기현의 극진한 간호로 2017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는
이후 아내를 위해 매일 매일 가자미, 소고기 등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식재료를 이용해 밥상을 차리고 전국 각지에서 보양식까지 구하게 된다.
이러한 극진한 내조 덕분인지 아내는 2017년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또한 그는 ‘내가 아프면 가족도 지키지 못하겠다’라는 생각에 술도 담배도 끊고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그는 한 방송에서 “난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있다”면서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자식들이 볼 수 있도록 수첩에 유언을 적어놓았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공개된
유언장에는 “넘어져도 마스크는 절대 착용하지 말라”는 내용 등이 적혀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김기현은 “살아있어도 호흡기에 있는 생명은 살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부담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언젠가는 혼자 갈 수밖에 없는 때가 올 것”이라고 조용히 말해 스튜디오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김기현은 이제 80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격렬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은 꾸준한 에너지 흐름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하고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