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잘 나가던 사람이 한 순간에…” 트로트 가수 박현빈의 갑작스러운 소식.. 그리고 그가 한동안 방송에 나올 수 없던 눈물겨운 사연..

가수 박현빈의 히트곡 중 하나인 ‘대찬 인생’을 아시나요?

노래는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곡이기도 한데.

그런데

이 노래의 가사가 박현빈의 실제 생활과 닮았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박현빈은 “부서지고 부서져도 뭉치자”는 노래 가사처럼 너무 힘들고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행복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가계의 빚을 갚기 위해 정맥주사를 맞으며 일정을 소화해야 했고, 끔찍한 사고까지 당해 후유증을 남겼다.

박현빈이 이처럼 폭력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2006년 데뷔곡 ‘바라 바르파’로 한국 가요계에 혜성처럼 찾아온 가수 박현빈.

데뷔 이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단단한 길을 걸어온 인물이다.

실제로 그의 데뷔곡 ‘바라바빠’는 정식 발매 전부터 이미 두산 베어스 야구단 공식 응원가에서 제외됐던 바 있으며, 발매 이후에도 트로트차트 1위를 경신했다. 단 한 달 만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게다가

2011년 박현빈은 일본과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일본 국영방송 nhk의 ‘가요콘서트’에 출연해 화려한 데뷔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국내에서 1인 콘서트까지 성황을 이뤘다.

이처럼 놀라운 흥행기록을 가진 가수이기 때문일까.

지금도 온라인상에서는 “박현빈은 원래 부잣집 아들 아니냐.

그러나 사실 그것은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선 완전한 오해이다.

실제로 데뷔 전과 신인 시절 일화를 들어보면 박현빈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박현빈은 엄청난 성공과 막대한 수입에도 불구하고 데뷔 후 2년 동안 포트폴리오에 한 푼도 없었다고 한다.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박현빈의 첫 시도.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났을 때 감당해야 했던 막대한 빚이었다.

박현빈이 부모님의 빚을 알게 됐다.

그는 “지금 못 갚으면 빚은 나에게 넘어간다”며 자신 대신 빚을 갚는 것을 택했다고 말했다.

박현빈은 이후 어머니에게 가족에게 빚진 모든 빚을 수첩에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올 때마다 수첩에 적힌 빚 목록을 한 줄 한 줄 지우며 힘든 시간을 기쁨으로 견뎌냈다고 한다.

물론 이 때문에 박현빈은 데뷔곡 ‘바라 바르파’에 이어 ‘아뜨거’, ‘곤드레’ 등 연이은 빅히트에도 불구하고 한 푼도 손대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다. “. 만드레’.

대신 하루 최대 7~8회, 한 달에 150회가 넘는 행사에 출연하며 24시간도 안 되는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가수들이 하루에 한두 가지 행사만 하면 지칠 때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20대에 불과한 박현빈이 가족의 부담을 덜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당시 그의 스케줄을 지켜본 다른 가수들은 박현빈을 “독하다”, “악마”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침내 박현빈은 2년여 만에 5억원이 넘는 빚을 갚을 수 있었다.

가계부에 부채 한 줄만 남던 날, 박현빈 씨는 온 가족을 불러 “다시는 빚지지 말자”, “이제 우리는 빚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 , 가족을 안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다행히 ‘샤방샤방’ 이후 드디어 번 돈을 모아서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박현민 씨는 부모님을 위해 집까지 마련했다고 한다.

그의 진심어린 효심과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런 행복한 일들만 가득할 줄 알았을 박현빈 씨.

그런데 이 무렵 박현빈에게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이 사건 이후 아직도 많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했다.

도대체 왜 몇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에 대해 악몽을 꾸는 걸까요?

사건은 2016년 4월 29일에 발생했습니다.

당시 서해안고속도로에서 아우디 A8을 몰고 있던 박현빈과 매니저 등 조수 3명.

그 순간, 그의 차량이 갑자기 흔들리며 전방의 25톤 트럭과 충돌합니다.

옆 차선에서 급하게 차선을 바꾸던 다른 차량을 피하려다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해당 장면이 담긴 영상자료와 사진 메시지를 보면 박현빈이 운전하던 차량의 후드가 거의 부서질 뻔했고 형체마저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바퀴가 떨어져 나갔고, 섀시까지 심하게 휘어져 차를 폐차해야 했다는 전언이다.

이렇게 차량이 반파된 상황이어서 박현빈과 차량에 있던 모든 스태프들은 부상을 피할 수 없었다.

박현빈은 오른쪽 허벅지 뼈가 부러지는 골절상을 입었고, 당시 운전기사였던 매니저도 얼굴이 함몰되는 등 중상을 입어야 했다.

이 때문에 박현빈은 1년 반 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고 오로지 회복에만 전념하며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고, 어느 순간 “아마도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것 같다. ”

박현빈 씨는 잠들기 전 눈을 감으면 사고 당시의 순간이 생각나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정신과 치료 후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운전을 꺼리고 지역 행사에 ktx를 몰고 가는 등 트라우마를 경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 힘든 시기에 묵묵히 곁에서 지켜준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인 한국인 무용수 김주희였다.

2021년 7월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한 박현빈이 두 자녀, 아내 김주희와 함께한 일상을 공개했다.

박현빈은 2009년 현재의 아내를 만나 6년 간의 비밀 연애 끝에 2015년 결혼했다.

자세히 보면 박현빈이 사고를 당할 즈음이었고, 결혼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당시 박현빈 자신도 많이 놀라고 속상했을 텐데, 그의 곁에 있던 아내 김주희 역시 큰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주희는 사고에 연루된 박현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남편의 회복을 돕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고 밝혔다.

그녀의 노력 때문일까?

이제 박현빈은 그런 사고를 당한 것처럼 회복한 것 같다.

현재 경기도 광명의 한 아파트에서 조부모, 부모님, 삼촌과 함께 살고 있다고도 했다.

음악인으로 전향해 주말마다 모여 노래도 부르고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는 부모님 덕분일까.

박현민은 전작과 비교할 수 없는 안정되고 행복한 모습을 자랑해 많은 네티즌들의 부러움을 샀다.

사실 그가 온 가족과 함께 아파트로 이사한 것은 2016년 그의 가치관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고 때문이었다.

사고 이후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은 그는 온 가족을 지금의 집으로 옮겼다.

또한 박현빈은 최근 수입을 포기하면서도 행사와 방송 일정을 줄이는 등 딸, 아들, 아내와 함께 평화롭고 조용한 나날을 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온전히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가족의 품만큼 따뜻한 곳이 없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앞으로 박현빈이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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