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아도 너무 많다’
저출산
대한민국의 위기에 일조했다고 하는데, 13남매가 있다고 하니 할 말을 잃었다.
‘국민 여동생’ 남보라는 대가족으로 유명하다.
Nam Bor의 가족 사진은 꽤 오랫동안 공개되었습니다.
남보라는 13남매 중 오빠가 한 명 있어 서열 2위지만, 장녀라 홀로 여러 동생을 키웠다고 한다.
남보라는 여유롭고 동생들을 잘 챙기기로 유명하다.
그녀에게
마음에 울려 퍼지는 그런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생과 헤어지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남보라는 오빠가 떠난 지 3년이 지난 2018년 방송에서 처음으로 오빠와 헤어졌다고 고백했다.
남보라는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활동에 성실함과 성실함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13남매의 장녀로서 그녀는 남다른 고난을 겪어야 했다.
남보라는 1989년생으로 올해 34세다.고교 1학년이던 2005년 버라이어티 신동엽이 주최하는 코너 합창단 ‘엔젤스 합창단’에서 장녀로 활동했다. 11남매의 일상을 담은 MBC ‘일요일 일요일 밤’을 방송한다.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장래희망이 연예인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부모님의 권유와 소속사의 끊임없는 러브콜 끝에 연예인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남보라는 드라마의 조연, 독립영화의 주연으로 꾸준히 출연하며 연기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2011년 영화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해를 품은 달’에서 민중공주 역할을 맡아 호평을 받으며 대세 배우로 거듭났다.
영화 ‘돈 크라이 마미’와 드라마 ‘상어’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으며 귀여운 비주얼로 TV 광고에도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남보라는
‘오은영의 황금상담소’에도 출연했다.
남보라는 “동생들이 엠니라고 부른다. 그저 한 사람의 자식이 되고 싶은데, 부모님 두 분 다 일하시는 상황에서 동생들을 위해 당장 뭔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저라서 돌봐줬다”고 말했다. 제 나이에 거의 동생을 키울 뻔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 남보라는 “12번째 동생을 막내로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키우고 챙겨줬다”고 말했다.
6년 전 남동생이 갑자기 하늘나라로 갔을 때도 울지 못했다고 고백한 남보라는 “큰딸이 되는 건 내 선택이 아닌데, 이 삶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장녀로서의 책임감.
JTBC ‘비밀언니’에서 황보가 남보라에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자 남보라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언니를 보낼 때”라고 답했다. 첫 번째.”
남보라는 당시 친구를 만나러 나간 여동생이 이틀간 연락이 두절돼 경찰서에 갔다고 말했다.
그녀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걷거나 숨을 쉴 수 없었다.”
경찰서까지 가는 데 어려움을 겪은 남보라는 울면서 책임자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지만 누군가 “어? 연예인이다”라며 평생 상처받을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남보라는 “눈물이 흘렀다. 여기서 화를 내면 형을 못 찾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다음날 남보라는 남동생을 찾으러 나갔지만 남보라는 이미 숨진 뒤였다.
그러면서 남보라는 “크리스마스에 동생 집에 갔을 때 정말 슬펐다. 크리스마스는 원래 기쁘고 즐거운데 아직 싫다”고 말했다.
이후 남보라는 자신이 어떻게 사는지 모를 정도로 힘든 시기에 일상을 보냈다고 말했다.
남보라는 매일 아침 일어나 기도하러 갔다고 하며 “제발 살려주세요. 너무 어려워요.”
남보라 동생 남석우의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남보라의 소속사는 “정확한 이유를 밝힐 수 없으니 억측은 자제해 달라”라고 발표하기도 했죠.
한편, 남보라는 8살 어린 여섯째 동생이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동생 휘호가 발달 장애를 갖고 있는데, 경계성이라서 장애 등급을 못 받았다. 경계성에 있는 친구들이 장애 등급 받는 게 진짜 어렵다고 하더라. 그래서 두세 달 동안 여기저기 병원 다니면서 진짜 장애가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검사를 했고, 어제 그 검사 결과지가 나왔는데 장애가 있다는 판정을 받아서 장애 등급 신청하러 갈 거다”라고 밝혔는데요.
이후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선 남보라는 동생 휘호 군과 함께 정신과 병원을 찾았습니다.
사업가로 변신한 그녀의 근황에 큰 화제가 됐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사업이 꿈이었다고 밝힌 그녀는 “올해부터 작은 사업을 해보고자 온라인으로 과일을 판매하고 화장품 브랜드도 하게 됐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또 직원은 나 말고 한 명이 더 있다”라며 “처음엔 혼자 하다가 바빠져서 직원을 채용했는데, 일곱 번째 동생을 채용했다. 동생이 야무지고 책임감이 좋다. 일을 시키면 완벽하게 처리한다. 가족이 엮여 있으니 도망가지 못한다”라고 덧붙여 눈길을 끌었죠.
남보라는 부모님에게 의지하는 대신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교를 다녔고, 배우를 통해 번 돈으로 동생들 학원비를 다 책임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과정에서 재벌과의 열애설로 스폰서 의혹이 터지기도 했죠.
물론 이는 근거 없는 루머일 뿐인데요.
그러나
네티즌들은 이례적으로 ‘사실이라도 이해가 된다’라는 반응을 보였죠.
그 이유는 시청자들이 10명이 넘는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남보라의 집안 사정과 속 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보라는 동생들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요.
그런 남보라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왔던 시기가 있습니다.
2015년 이후 몇 년간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는데, 이 시기는 19살이던 남동생이 실종된 후 세상을 떠났을 때죠.
남보라는 당시 심각한 정신적 방황을 겪었고, 가장 그늘이 되어야 할 부모님에게조차 의지할 수 없었으며, 장녀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부모님을 위해 악착같이 버텼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13남매 장녀로 유명한 남보라가 오랜만에 근황을 전했습니다.
남보라의 유튜브 채널 ‘남보라의 인생극장’에는 ‘국내 최초 유튜브 재데뷔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는데요.
남보라는 “다시 유튜브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원래 시작했다가 편집 영역은 내 영역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손 뗐다가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카메라도 샀고, 정말 센스 있는 편집자님도 만났다”라며 유튜브 활동 재개를 알렸죠.
현재 사업가로도 활동 중인 남보라는 가장 먼저 쇼핑몰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사실은 이사도 있었고, 방송 촬영도 있었고, 조금 바쁘다 보니까 일을 좀 소홀히 하게 되더라. 2023년 토끼해. 토끼처럼 팔짝 뛰어서 텐션 좀 올려봐야겠다”라며 각오를 다졌죠.
이어 남보라는 “올 한 해 동안 가계부를 써보려고 한다. 근데 밤 사이에 은행 이자가 나갔다. 자고 있는 사이 나가서 언짢다”라며 통장 잔액을 보고 한숨을 쉬었는데요.
사업가로 변신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한 남보라는 13남매의 장녀로 사랑받아오다 뜻밖의 근황이 전해지며 그녀의 과거 가족사도 재조명되고 있죠.
남보라는 또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리 회사가 그동안 해온 활동들을 모두 인정받아 올해 예비 사회적 기업이 되었어요. 함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는데요.
이어
“전국에서 18개 기업이 뽑혔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랐고, 제가 그 중에 있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남보라는 지난해 ‘보라도리’ 대표가 되어 퍼스널케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하스’를 론칭했다.
‘무하스’는 남보라가 연예인 인지도를 활용해 창업한 기업이 아닌 ‘사회적 기업가 지원 사업’을 통해 사회적 사명을 탑재한 브랜드로 밝혀져 주목받았다.
‘무하스’는 소독제와 비누 등을 판매하고 수익금의 일부를 미혼모 지원에 기부하고 있으며, 평소 금전적 지원과 더불어 한부모가족 인식 제고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남보라는 7년 넘게 작은 마을에서 매월 봉사활동을 하다가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가 걱정돼 엄마를 만났다고 한다.
데이터를 조사하는 동안 그녀는 미혼모의 3분의 1 이상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그녀의 사업에 통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평소
식당 일을 밝은 모습으로 도우면서 부모님의 식당 일을 돕는 게 부끄럽지 않다며, 연예인임에도 지하철을 이용하는 등 소탈한 연예인으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남보라 씨.
현재 배우 활동을 잠시 뒤로하고 동생과 함께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는 남보라 씨.
힘든 상황 속에서도 부모님에게 기대기는커녕 늘 혼자서 많은 짐을 쳐 왔던 남보라 씨가 정말 대견스러울 뿐인데요.
지나친 책임감에서 벗어나 본인의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며 항상 행복한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