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미모는 다 어디로… “충격적인 모습으로 변해버린 가수 이은하의 최근 근황과 모습..” 그저 아무말도 할 수 없게되는데..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가수 이은하가 젊은 시절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발견했다.

제가

지금까지 알던 가수 이은하가 이렇게 미인인 줄 몰랐다.

예전에는 약간의 미인이라기 보다는 유행가를 부르는 가수를 상상했는데 얼굴이 약간 통통하고 살이 좀 찌고 노래를 아주 잘하는 가수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은하는 수십억의 빚을 지고, 불치병과 투병하며, 고통스러운 시련으로 가득 찬 굴곡진 삶을 치열하게 견뎌야 했던 안타까운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은

이은하 씨의 깜짝 놀랄 만한 최근 근황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아는 이은하는 엄청난 몇 옥타브를 오르내리는 곡의 가수도 아니고, 또 가수 나훈아나 조용필 또는 패티김처럼 어느 정도 감히 쉽게 만나지 못하는 레전드 같은 분위기도 아니었죠.

그런데 그 어릴 적 기억의 가수 이은하가 지금 나이를 들어서 살펴보니, 외모는 대한민국 최고의 미녀이며 가창력은 노래를 가볍게 가지고 노는 엄청난 실력의 가수였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이은하는 5살 때부터 노래를 불렀었고 만 12세 나이에 ‘님마중’으로 정식 가수로 데뷔한 노래 천재죠.

브라운관에는 1975년 동양 방송에서 그 해 발표한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으로 처음 모습을 보였는데, 그전에는 미성년자의 방송 출연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어서 출연을 못 하다가 그것도 억지로 나이를 올려서 출연한 것인데요.

첫 데뷔곡인 ‘님마중’은 방송을 타지 못했고, 이은하 본인도 밤무대에서 부를 수밖에 없어 당시 그다지 유행세를 타지 못한 데 비해,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은 방송을 타자마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합니다.

특히, 당시의 한영애를 제외하고 보기 드문 허스키한 여성 보일수록 내지르는 시원한 가창력에 연예계가 집중했죠.

 

방송

풍조상 TBC 전속으로 활동했지만, 이후 1976년 문화방송의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수상하면서 두 방송사를 넘나들며 광폭 행보를 보여 주었는데요.

같은 시기 인기 절정의 대스타 혜은이와 쌍벽을 이뤘던 최고의 여자 가수였는데, 음악의 성격이나 분위기가 서로 달라서 라이벌로 비교되지는 않았지만, 1977년 처음 MBC 10대 가수에 선정된 이후 1985년까지 무려 9년 연속으로 선정되는 기록을 세웁니다.

이후 ‘최진사댁 셋째딸’과 ‘밤차’, ‘아리송해’, ‘봄비’, ‘당신께만’이 연속적으로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그 당시 이은하의 노래가 나오지 않는 곳이 없었죠.

 

게다가 데뷔 무대인 TBC는 당시 한국 방송계에서는 따라잡을 주자가 없을 정도로, 쇼 오락 프로그램 부문에서는 최상위 품질을 자랑하던 곳이었고, MBC는 일본의 후지TV와 제휴하고 있었기 때문에 TBC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쇼 오락 부문에서 맹추격을 하고 있었는데, 이 두 곳의 방송국을 확 잡고 있었으니 대중에게 인기를 끄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당시의 생방송에서 눈물을 흘리는 일은 가요 프로그램에서 주간 차트 1위를 차지했거나 연말 가요제에서 ‘가수왕’으로 뽑혔을 터져 나오는 특별한 감정 상황을 제외한다면, 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제법 큰 방송 사고였죠.

그 결과 보안 사령부로부터 찍히는 바람에 3개월간 방송 출연을 할 수 없게 되어 다음 날인 12월 1일에 KBS에서 진행한 통합 기념 특집 방송에서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출연이 재개된 이후에는 ‘겨울 장미’와 ‘바람에 구름 가듯’을 통해 당당히 등장했는데, 그해 조사된 연예인 인기 랭킹에서 이은하는 남궁옥분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이미자와 혜은이보다 순위가 높았죠.

‘산울림’의 김창완이 작곡해 준 ‘사랑도 못 해본 사람은’이 1984년 방송사 가요 대상을 휩쓸고, KBS 가요대상까지 수상하면서 과거의 명성을 다시 되찾기에 이릅니다.

 

이후

장덕이 작곡한 ‘웃으며 보내주듯’은 긴 곡 제목으로 유명해졌고, 팝 발라드 형식에 이은하의 시원한 가창력이 더해져 기록 경신을 기록했다. 그녀의 연예 경력의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 건설회사를 운영하던 이은하의 아버지가 실수로 채무보증을 해 20억 원의 빚을 지게 되면서 20억 원을 모두 갚아야 했다.

그러나 2015년 아버지의 빚이 50억원에 달하면서 파산선고를 받았다.

이은하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채무보증으로 힘든 하루를 보낸 후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고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당시 이은하는 “수술을 해주는 곳이 많다. 하지만 수술 후와 회복 중에 누가 돈을 버나요?”

이은하는 수술보다 스테로이드 주사를 택했고 스테로이드를 먹은 후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왜 수술을 할까? 수시로 주사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이은하는 1년 만에 35kg이 불어 눈을 떴을 때 눈이 부었지만 물만 마셔도 살이 빠지지 않았다. 그는 내 무릎이 약해졌다고 말했다.

통증이 심할 때는 잠을 못자며 울었다고 한다.

 

무릎

연골이 94kg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닳아서 인공관절 수술까지 했다고 한다.

얼마 전 이은하는 MBC 다큐 ‘사람이 좋다’에 출연해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방송에서 달라진 이은하의 모습에 사람들은 정말 놀랐다.

그녀는 현재 쿠싱 증후군으로 두 달 만에 35kg이 늘었고 이로 인해 척추전방전위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척추전방전위증은 척추뼈가 아래쪽 척추가 아닌 배쪽으로 밀려나 허리 통증과 다리저림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초기라면 약물치료와 물리치료 신경차단술을 병행할 수 있지만 30분 이상 통증 없이 걸을 수 없다면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은하는 수술을 할 수 없어 진통제를 먹고 하루하루 버텼다.

이후 이은하는 강화도에서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살면서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공개했다.

조영구는 “이렇게 좋은 집에 사시냐? 한 방에 살기 힘들어서 돈 많이 벌었잖아. 이은하가 다시 돌아왔다.”

 

이에

이은하는 “방송 후 누군가가 상황을 알고 쉴 곳을 마련해 주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은하의 근황을 알게 된 한 팬이 보증금 없이 집 한 달치 월세를 빌려줬다.

이은하의 집은 깔끔하게 정돈된 아담한 주방이 딸린 강화도가 내려다보이는 반 단독주택이었다. 아늑한 침실 한쪽에는 팬이 직접 만든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이은하는 전성기 시절 노래, 춤, 춤을 출창해 항상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TV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정직한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빚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시청자들은 “오랜만에 낯익은 얼굴이다. 앞으로 방송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행복한 날들만 가득하길 바라며, 건강하게 자주 방송되는 당신의 특기인 당신의 노래로 많은 분들께 희망과 기쁨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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