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70년대를 주름잡던 여가수, 이은하의 인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3살의
어린 나이에 데뷔해 수많은 히트 싱글을 냈지만 지금까지 결혼도 못하고 70억 원의 빚을 지고 희귀병까지 앓았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먼저 이은하의 어린 시절부터 알아보자.
이은하의 본명은 이효순이다.
이은하는 1961년 3월 29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올해 저는 62세가 됩니다.
참고로 이은하는 데뷔 당시 1958년생이라고 나이를 속였다.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가창력으로 가요계를 강타한 그는 정말 재능이 많은 사람이다.
이은하의 가창력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원래
이은하의 아버지 이배영은 유명한 아코디언 연주자였다.
그래서 이은하는 5살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를 따라 무대에 오르곤 했다.
아버지가 딸을 음악적으로 교육한 방식은 놀랍습니다.
아버지라는 남자가 훗날 이은하의 인생을 두 번이나 망쳤다.
먼저 아버지의 독특한 음악 교육 방식을 살펴보자.
이은하의 음악 활동 중단을 애도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는 어린 이은하를 매일 산으로 데려가 스파르타식 발성을 연습했다.
이은하는 아버지의 노래 칭찬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한 손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연습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녀는 아버지와 노래 연습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칭찬을 처음 들은 지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가수 활동 내내 아버지 눈에 들어오고 싶어서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아요.
아버지의 특별 훈련이 효과가 있었습니까?
이은하는 데뷔 후 17세부터 25세까지 9년 연속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했다.
우리가 아는 히트곡도 ‘넌 여전히 내 사랑’, ‘최진사 셋째딸’, ‘봄비’, ‘너만을 위해서’ 등으로 당시 그녀의 위상을 알 만하다.
그러나
이은하 아버지의 덕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이은하의 아버지가 그녀의 인생을 어떻게 망친 걸까요?
우선 이은하의 혼삿길을 망친 아버지 얘기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은하는 24살의 나이에 첫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이은하보다 1살 어린 연하의 애인이었죠.
당시 그녀는 아버지의 엄격한 음악 교육에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첫사랑이 그녀에게 청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이은하는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든 첫사랑과 결혼하여 아버지 곁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대실패였다.
이은하의 아버지는 결혼을 반대하며 수정 재떨이를 남자에게 던졌다.
당시 이은하의 아버지는 눈이 하얗게만 보일 정도로 화가 난 상태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은하는 말했다.
“나를 선택해, 그를 선택해.”
그녀는 마침내 첫사랑과 헤어진다.
이어 이은하는 첫사랑과의 이별을 노래한 ‘웃으며 나를 보낸 것처럼’을 불렀다.
지금도 이 노래를 부르면 눈물이 조금 나온다고 한다.
따라서 이은하는 결혼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며느리로서 결혼을 못한다는 이유로 바쁜 생활을 정당화했지만 사실 금전적인 문제도 있었다.
이은하의 아버지도 원인이 됐다.
계속해서 아버지 때문에 파산한 이은하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1980년대 가요계를 장악했지만 1990년대 돌연 활동을 접었다.
왜?
20억원의 빚을 졌기 때문이다.
당시 건설회사 사장이었던 이은하의 아버지가 보증에 착오를 범한 것이 빚이었다.
이에
90년대 당시 무려 8억 원에 달하던 서울 자택까지 넘어가게 되었고, 그녀는 20억 원의 빚을 갚기 위해 매일 밤무대를 전전해야만 했습니다.
사실 이 빚은 아버지의 빚이라 이은하가 갚을 책임은 없었습니다.
법적으로 이은하의 아버지가 죄를 인정하면 끝나는 일이었죠.
그러나 이은하의 아버지는 자기는 죽어도 감옥에 못 가겠다며 이은하 더러 책임지라고 하였고, 이에 이은하가 빚을 다 떠안았다고 하네요.
그렇게 그녀는 죽어라 노래를 불렀고, 약 10년이 흐른 2002년이 되어서야 아버지의 빚 20억을 다 갚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이은하는 2015년 파산 신고를 하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법원에 파산을 신청하게 되고 이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건강을 잃고 맙니다.
어떤
희귀병이 그녀를 찾아온 걸까요?
그녀는 빚을 갚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해야 했습니다.
스케줄은 그녀의 허리에 무리를 주게 되었죠.
그러나 그녀는 돈을 벌어야 했기에 수술을 받을 수 없었고, 이에 스테로이드 주사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 됩니다.
스테로이드 주사는 통증 경감에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은 주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은하는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게 되었죠.
그 이름도 무서운 쿠싱 증후군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쿠싱 증후군’은 우리 몸의 호르몬 이상으로 생긴다고 하는데요.
이 병에 걸리면 고지혈증, 당뇨 현상은 물론이고 급격하게 살이 찌게 된다고 합니다.
특히 얼굴과 목, 허리 부분에 살이 집중적으로 찌게 되는데 이에 이은하의 아름답던 미모가 순식간에 망가지게 되죠.
그녀는 쿠싱 증후군으로 인해 1년 만에 체중이 30kg이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급격하게 찐 살을 무릎이 견디지 못해 인공관절을 삽입하는 수술까지 해야만 했죠.
당신 무릎 통증으로 인한 진통제 과다 복용으로 기절까지 했다고 하니, 고통을 이루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은하의 인생을 돌아보면 이은하는 아버지에 대한 심경이 참 복잡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어린 나이에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음악적 성공을 이루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 때문에 사랑도, 젊음도, 건강도, 돈도 모두 잃었다.
그래서일까요?
이은하가 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됐다.
이은하는 왜 개인이 되었나?
이은하는 2020년 ‘불후의 명곡’에 출연한다.
이번 방송에서 과거와 달라진 외모지만 가창력은 녹슬지 않은 모습을 자랑한다.
그래서 그녀는 돌아오는 길에 다시 발판을 찾은 것 같았다.
그러나 인생은 얼마나 쉬운가?
인생은 항상 우리를 시험합니다.
2021년, 그 소식은 청천벽력처럼 그녀에게 떨어졌다.
쿠싱 증후군 후 그녀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상당히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방사선 치료를 받고 세상을 떠납니다.
경기도 사찰에 들어가 6개월 동안 채소만 먹으며 자연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제 자연의 삶에서 벗어나 강화도의 그림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다.
그가 사는 곳은 창밖으로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고 한다.
그녀의 곤경을 알게 된 한 팬이 보증금 없이 집 한 달치 월세를 빌려줬다고 한다.
이제 이곳에서 힘들었던 과거를 잊고 속히 회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