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라 정주영 아들의 충격적인 정체… 알고보니… 세상에 이런일이 어떻게.. 대체 어찌 숨기고 지금까지 살아온걸까..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모르던 세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요.

첫째는 자기 회사 직원이 몇 명인지 모르고, 둘째는 자기 재산이 얼마인지 모르며, 셋째는 자기 자식이 몇 명인지 모른다고 하죠.

연예인과 재벌과의 스캔들이야 항상 있는 이야기이고 실제 몇몇 사건은 실제 있었던 일로 밝혀지기도 했는데요.

 

 

오늘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항상 따라다녔던 정수라 스캔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가수 정수라와 정주영 회장 루머는 굉장한 파급력을 가졌죠.

 

덕분에

정수라 아들 이야기까지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집니다.

다들 궁금해하실 테니 팩트 체크하겠습니다.

정주영 회장과 정수라는 과연 어떤 관계였을까요?

이들의 스캔들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세 가지 직접적인 증거가 있는데요.

이때 활동을 기반으로 제1회 한국 가요제에서 인기상과 금상을 수상했지만, 대중들에게 얼굴이 잘 알려진 것은 성인이 된 다음이었죠.

먼저, 정수라와 정주영 회장의 루머가 나온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1982년 ‘그런 사람이 나는 좋아’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했고, 1983년 건전가요 대한민국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1980년대를 주름잡던 정수라는 1990년 미국 진출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1991년 마이클 잭슨의 형인 저메인 잭슨과 함께 듀엣으로 네 곡의 노래를 발표하게 되었죠.

 

 

저메인 잭슨은 ‘정수라는 신이 내린 목소리 같다. 특히 동양인이면서도 흑인의 독특한 분위기가 섞여 있다. 그래서 내가 정수라에게 듀엣을 제안했다’라고 회고했는데요.

 

이렇게

정수라는 1991년 미국 활동을 하면서 한국에는 얼굴을 비추지 못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 정수라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 대한 루머가 퍼지게 되었던 것이죠.

‘정수라는 재벌의 아들을 몰래 낳아 500억 원을 받고 쫓겨났다’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당시에 미국에서 음반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고 말했는데요.

정수라가 대기업 회장의 아들을 낳으면 재산을 주려고 했는데, 딸을 낳아서 양쪽 집안이 재산 싸움을 한다는 루머가 돌았고, 시간이 지나자 ‘정수라가 쌍둥이를 낳았다’라는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아니면 세간의 루머가 사실일까요?

먼저 정주영 회장은 2001년 사망합니다.

당시 현대그룹과 정주영 집안은 그의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르자 하지만 총 33만 명이라는 엄청난 조문객과 기자들로 인하여 국장이나 다름이 없었죠.

그런데 정수라가 몰래 변장을 하고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장에 다녀갔다는 이야기도 웃기지만, 그런 정수라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도 무척 이상합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사진 기자들과 더불어 일반인들은 왜 그런 정수라의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요?

 

 

두 번째는 정수라와 정주영 회장의 서로 다른 행보인데요.

 

정주영

이 의장은 1992년 국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그러나 이때 정수라 역시 미국 활동 직후부터 대선 지지 캠페인을 시작했고, 곧바로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를 지지했다.

당시 정수라는 선거 집회에서 우리 노래를 부르며 “김영삼 후보가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김영삼 후보가 당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정주영의 반응은 어땠나?

나 또한 캠페인을 지지하기 위해 더 많은 연예인을 모으려 노력했지만, 정수라와 정주영의 관계가 정말 가까웠다면 왕회장이 화를 내며 그를 반역자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성격을 고려해서?

세 번째 질문은 정수라와 김완선이 정말 남매인지다.

 

마지막

세 번째 증거는 정수라가 2006년 결혼할 때 나타납니다.

이때 정수라는 결혼식에 자신의 절친 김완선을 초대하는데요.

신부였던 정수라가 던진 부케를 바로 김완선이 받게 되었죠.

만약에 정말로 루머처럼 정수라와 김완선이 동서지간이었다면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하고 또 부케를 던지는 일이 있었을까요?

상당히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죠.

참고로 김완선도 정주영 회장과의 루머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는데 이에 대하여 다시 언급하자면 그녀가 모 재벌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문이 한국에 돌았습니다.

김완선도 해외에 장기간 체류하다 보니 출산설까지 퍼지게 된 것인데, 사실 모 재벌로부터 백지 수표 유혹을 받기는 했지만, 그런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거절을 했다고 말했는데요.

김완선은 사실이 아닌 거짓에 대응하기도 그랬고, 저만 떳떳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이 사건들에서 김완선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죠.

먼저, 만약 김완선이 정말 백지수표를 받았다면 훗날 이모의 빚으로 그렇게까지 빚에 쪼달리다가 화보까지 촬영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또한

김완선 씨가 돈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면 인생에 경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전통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했을 것이다.

과연 김완선과 정수라가 처제라면 김완선은 정수라의 청첩장을 직접 축하하고 꽃다발도 직접 받을 수 있을까?

이는 김완선과 정수라의 성격이 매우 이상할 경우에만 일어날 수 있는 극히 희박한 사건이다.

이처럼 수수라 대표와 정주영 회장의 관계는 그동안 공개된 루머나 당사자 관계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남편의 장례식장에서 정수라를 만나 결혼했지만, 그 과정에서 다소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가수 정수라 남편 장대식이 구속됐다. 그 이유와 별개로 정수라의 이혼 이유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수라는 “골프 치러 나가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변진섭의 말에 확신을 갖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남편을 만났다.

정수라는 남편이 자신을 힘들고 지칠 때 구해줬지만 가수로 데뷔해 20년 넘게 쉬지 않고 활동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수 활동 외에도 계속해서 퍼지는 루머에 피해를 입고 괴로움을 겪었고, 그녀의 피난처는 남편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정수라 씨가 가족의 책임을 위해 청춘을 희생하며 뒤늦게 결혼한 이유다.

 

아무튼

이렇게 매력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나이보다 훨씬 동안의 모습으로 정수라는 2006년 결혼하게 됩니다.

그런데 불과 2~3년 후부터 결혼 생활에 대하여 후회하는 듯한 발언을 하게 되는데요.

정수라는 “미혼 여성이면 절대 결혼하지 마라”, “남자들은 3년까지만 괜찮다. 그 후에는 일만 저질러 놓고 나중에야 그가 달콤한 말을 했던 것을 알게 된다”라고 말했죠.

이 말은 정수라가 남편으로부터 무언가를 속았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데요.

결국, 정수라는 2013년 8월 결혼 7년 만에 이혼 소송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전인 2012년 5월에 신혼 살림집이었던 서울 방배동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갔고, 정수라가 결혼 전에 살았던 서울 이촌동 아파트도 2012년 연말에 이미 경매로 매각하게 되는 등 금전적인 문제가 많이 발생하죠.

 

그래서

처음에는 정수라의 이혼 사유가 금전적인 문제로 알려졌는데 사실 이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정수라 전남편 장대식은 2012년 10월에 사기 혐의로 구속되는데요.

장대식은 모건설사의 대표이사 직무정지 상태에서 약속어음을 3매 발행해 5억 5000만 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았죠.

참고로 정수라 부부가 살던 동네 주민의 증언인데, 은행에서 집에 빨간 딱지를 붙이려고 하면 남편이 정수라를 골프 치러 보내버렸고, 정수라가 골프 치게 하면서 그 사실을 모르게 했다고 합니다.

정수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다가 완전히 쫄딱 망했다고 하는데, 나중에 나갈 때 툭툭 다 털고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300만 원 짜리로 갔다고 증언했습니다.

대한민국을 열광케 했던 정수라는 밝고 희망찬 이미지를 보여주며 유명해졌는데, 그녀의 가족 이야기나 남편과의 이혼 과정을 살펴보면 결코 쉬운 인생은 아닌 것 같네요.

여기까지 가수 정수라에 대해 살펴보면서 이혼 이야기도 함께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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