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는 늘 따뜻함이 배어 있습니다.
어릴
정은아 아나운서는 고향 동네 언니 같기도 하고, 학창시절의 우아한 국어 선생님 같기도 하다.
직접 만나보니 키가 5피트 10인치에 나이에 비해 꽤 어려보여서 아나운서 체격이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제 어느덧 어느덧 정은아 아나운서는 우아하고 꾸준한 진행 실력이 돋보이지만, 어느 순간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는 안타까움을 겪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일찍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습니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정은아 아나운서는 1997년 3월 손범수와 함께 회사를 떠난 뒤 프리랜서를 선언했으며, 이후 계속해서 각종 프로그램 출연 및 진행을 맡아왔다.
정은아의 대표 프로그램으로는 ‘아침의 광장’, ‘굿모닝 정은아’, ’21세기 위원회’, ‘자랑하자’, ‘비타민’ 등이 있으며, 이 프로그램에는 남성 아나운서들이 다수 출연했다.
물론 정은아의 삶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은아는 프리랜서로 전향해 KBS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 진행을 했으나 하룻밤 사이에 해고돼 갈 곳이 없게 됐다.
편안하고 친근한 진행자로 인기가 많은 정은아 아나운서는 2017년 KBS 직원 총파업 당시 생방송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방송을 공개하고 일반 언론처럼 운영해 줄 것을 촉구했다. 회사.
정은아 씨는 “후배 동료들이 파업을 하기로 했을 때 출근해서 빈 책상을 보는 게 힘들다고 생각했다. 눈에 띄는 후배들이 힘내서 잘 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초 오영실은 정은아를 대신해 방송을 진행하기로 했으나, 정은아의 파업 지지에 보복 차원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방송을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오영실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우리의 흔한 저녁길, 오영실입니다’로 이름을 바꾸면서 정은아의 복귀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어
정은아는 당초 파업 지원 의사를 밝히며, ‘파업이 끝날 때 돌아오겠다’라는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힌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황당함은 더 컸죠.
정은아 아나운서가 국민들의 박수를 받은 그 순간에 이미 본인도 모르게 해고자가 되어 있었으며, kbs pd들은 작년 조직 개편 이후 새 프로그램이 통과되기까지 최소한 몇 주의 시간이 걸린다는 기본적인 관념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는 저녁길, 오영실입니다’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당일에 바로 통과되는 기적과 같은 장면을 이번에 처음으로 목격했다며, 프로그램이 신설된 이유 또한 석연치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게다가 담당 pd와 해당 채널 pd들, 라디오 사업부 직원들 중 누구도 며칠 동안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황당해했는데요.
즉, kbs 경영진들이 일방적으로 강제 인사나 프로그램을 폐지할 수 없는 제도가 마련돼 있는데,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죠.
더욱
황당한 건 오영실의 앞뒤 안 맞는 행동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오영실은 자신이 출연한 tv조선 ‘인생 다큐 마이웨이’에서 말하길, “kbs 근무 당시 나이 들면서 중견 아나운서들 10명이 단체로 지방 발령이 났다. 묵시적인 권고사직이었던 것”이라며, “제가 그때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라고 전한 바 있기에, 자신의 행동과 대치돼 더 황당함을 갖게 했죠.
배우로 전향한 이유를 설명하며 한 말이지만,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인사를 당했을 정도면, 또 누군가의 부당한 인사에 분노를 해야 하는데, 얼씨구나 자신의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채우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에 앞뒤가 맞지 않았는데요.
애초 대타 mc로 들어간 건 비판받을 이유가 전혀 없지만, 프로그램 이름을 바꾸고 자신이 공식 mc로 출연한다는 것은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정은아의 이런 생각을 보면서 참 이미지처럼 바르고, 자신의 역할과 현재의 일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참 존경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그런데 정은아의 인생에 또 한 차례의 위기가 찾아오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비타민’ 정은아 사건이었죠.
원래 정은아가 ‘비타민’을 맡아서 거의 10년 가까이 진행을 해왔는데, 갑자기 하차가 결정되었고 후임에 은지원, 박은영 아나운서가 결정됩니다.
사실
박은영 아나운서는 나중에 결정되었고, 당시에 은지원 때문에 논란이 컸는데요.
담당 pd는 전날 녹화를 1시간여 앞두고 “다음 ‘비타민’ 녹화에 정은아 아나운서를 교체할 예정이니, 오늘 녹화 방송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라”라는 황당한 지시를 받았는데, 이는 제작진과 어떤 논의도 없이 본부장과 국장에 의해 전달되었죠.
이 때문에 당시 말들이 많았는데 정은아 아나운서는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였는데요.
녹화 마지막 날 후배 pd들이 많이 미안해하면서 ‘선배님이 오늘 녹화 안 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했지만, 정은아는 “왜 그래. 그게 무슨 말이야. 잘 마무리해야지”라며 녹화 방송은 물론 송별회까지 마무리했죠.
정은아는 ‘비타민’을 하차한 이후 공백기가 찾아오자, 그때 남편이 “솔직히 그동안 지나치게 많은 걸 누리지 않았어. 나 같으면 더 이상 원도 없겠다. 그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 여행이나 실컷 다니면서 푹 쉬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남편의 그런 말이 처음엔 그저 하는 위로의 말이려니 했는데, 몇 번을 곱씹어 보니 정말 고마운 말이었고, 그때부터 남편 말처럼 홀가분하게 휴가를 즐겼다고 하는데요.
결국 정은아는 약 2년간의 공백기를 가졌고, 종편 프로그램으로 복귀하게 되었죠.
정은아 아나운서의 단발 헤어스타일은 커리어 우먼들이 지향하는 스타일이고, 몸매는 키가 커서 그런지 참 멋진데요.
남편과의 사이에 정은아 아나운서는 아이가 없는데 불임이 아니냐는 말들도 있었죠.
정은아 아나운서는 이러한 불임 사연을 고백하며 남편에 대한 고마움도 전하며 속사정을 밝혔습니다.
그녀가 30년간 방송에 매진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의 몫이 8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죠.
정은아 아나운서 남편의 직업이 치과의사라는 항간의 소문도 있지만, 사실은 무역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인데요.
정은아 아나운서 남편의 나이는 정은아보다 4살 연상입니다.
정은아는 불과 20대 중반의 나이로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침마당’을 맡아서 뛰어난 진행 실력을 보여주었고, 훗날 그녀를 뒤이어서 맡은 이금희 아나운서와 더불어 크게 호평을 받았죠.
이렇게 보면 정은아가 천성적으로 방송을 좋아했고, 또 강심장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런데 정은아에게 아나운서를 추천해 주었던 당시 남자친구, 정은아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리고 정은아에게 아이가 없는데 정은아의 입장은 무엇일까요?
대학 시절, 신입생과 복학생의 만남으로 처음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남편이 반년 동안 정은아를 지켜보다가 그해 8월 개강하는 날, ‘시간이 있냐’라고 물어보면서 만남이 시작되었는데요.
3수 끝에 kbs에 입사했는데, 아나운서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다시 원서를 가져다준 사람도 남편이고, 그동안 정은아가 한 방송은 물론이고, 신입때 라디오에 10초 안내 멘트 나가는 것까지 다 녹음해뒀을 정도로 방송인 정은아의 성장 과정을 모두 지켜본 사람이라고 하죠.
정은아는 “언젠가 대통령 담화 특별 방송이라 속으로 굉장히 긴장하면서 진행했는데, 남편이 그걸 보고는 콕 집어내서 ‘저 때는 긴장했구나’라고 말했다”라고 전했죠.
자신이 긴장했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남편은 정은아를 속속들이 잘 아니까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작은 실수까지 여지없이 알아챘다고 하죠.
사실
결혼 초기에는 아나운서로서의 본업에 집중하기 위해 자녀를 가질 계획은 없었고, 다음으로 미뤘다.
물론 나중에는 아이를 갖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지금은 자연대로 살려고 마음을 바꿨다.
정은아는 아이가 없는데도 자신감이 넘친다.
그럴 경우 사람들은 후회와 답답함에 스스로를 범죄자 취급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은아 아나운서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별로 욕심을 내지 않는다.
이 말을 정리하자면,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지금은 자연에 순응하는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편의 추천을 세 번이나 받아 1990년 1월 1일 아나운서가 된 정은아는 지난 4월부터 ‘나라가 다 됐다’ 생방송을 시작했다.
입사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젊은 아나운서가 KBS 간판 아나운서로 임명되자 아나운서 측에서는 반대했지만 제작진에서는 이를 원했다고 한다.
당시 KBS 간부들 사이에는 ‘정은아가 누구의 딸이다’라는 루머까지 돌았고, 정은아의 아버지가 모 정부 기관에 근무했다는 루머도 돌았다.
정은아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생방송이고 중요한 프로그램이라 초보 출연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반대 측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루루랄에 갔는데, “안녕하세요 정은아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어쨌든 생방송은 처음이라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2년 동안 아나운서 시험에 실패한 것은 엄청난 경험이자 준비 기간이었다고 한다.
제작진은 ‘이 아이는 여러 번 실패했지만 결국 성공한 아이니까 뭐든지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정은아는 중학교 때부터 방송 수업을 받으며 아나운서가 됐다고 한다.
라디오 수업은 중학교 때 정은아 선생님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국어시간에 시를 읽어달라고 해서 별 생각 없이 읽었더니 “시를 이렇게 읽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한국어 선생님이 다음 학기 라디오 방송 수업을 만들었고, 정은아가 당시 중학교 라디오 방송 수업의 첫 번째 아나운서였다고 합니다.
“아나운서의 성공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은아 아나운서는 “기술적인 노력과 본능적인 느낌, 어머니의 칭찬에서 얻은 자신감”이라고 답했다.
정은아 아나운서는 특별한 운동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가끔 걷거나 뛰기도 하며, 속도감은 없지만 지구력이 좋아 오래 참는 편이다.
무엇보다
일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그녀의 건강 비결이라고 했는데요.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그 외의 시간에는 스케줄을 잡지 않고, 11시가 되면 잠을 자야 하는데 일주일에 이틀은 쉰다고 합니다.
술도 안 하고 잘 자고 잘 먹고 그게 건강 비결이라고 하는데요.
그녀는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하고 기분 좋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브라운관을 통해 그녀를 만난 지 30여 년이 훌쩍 지났건만, 늘 사람 냄새나는 방송인으로 겸손하고 친근한 모습은 변함이 없죠.
정은아 아나운서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길 바라며 대중들에게 편안한 진행으로 오랫동안 방송 활동을 해줄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