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풍미한 가수 홍민, 76세의 나이로 결국 눈물겨운 비보 소식, 그리고 그가남긴 마지막 눈물겨운 한 마디..

여러분 가수 홍민 씨 기억하시는지요?

성함은 잘 모르시더라도 노래를 들으시면 ‘아 이 노래’ 하고 아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바로

1970년대 ‘고별’이라는 곡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큰 인기를 끌었던 가수 홍민이 대장암 투병 끝에 2023년 11월 2일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조사하면서 나는 그가 수많은 히트곡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클릭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모두 이별을 주제로 한 곡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그는 결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기 전에 무엇을 했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네요.

 

그건

과연 어떤 행동이었을까요?

 

 

1947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1년 장미라 씨와 듀엣으로 발표한 김동주 작곡 ‘그리운 사람’으로 데뷔했습니다.

이듬해인 1972년에는 번안곡 ‘고별’과 박시춘 작곡 ‘고향초’를 리메이크해서 큰 호응을 얻었죠.

이후 부드러운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내세워 ‘석별’, ‘공원 벤치’, ‘망양’ 등으로 1970년대를 풍미했습니다.

이수만 씨, 장현 씨와 함께 ‘마삼 트리오’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요.

이 별명 혹시 아시는지요?

당시 홍민 씨의 인기를 곁에서 지켜본 가수 김도영 씨는 그가 ‘오빠 부대의 원조’라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겉으로는 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지만, 그의 인생은 너무나 외로웠습니다.

평생 한 번도 그를 따뜻하게 어루만져준 보호자가 없었어요.

부인마저 지난 2019년 1월 31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는 가수 홍민 씨가 출연했는데요.

그동안 단 한 번도 공개하지 않은 가족사부터 이혼까지 73년의 인생사를 고백했습니다.

이날 홍민 씨는 그리움의 원천에 대해 ‘부모가 그리움이다’라며 ‘부모를 모르고 살았다. 막연하게 저는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저는 모르는데 그냥 담담하게 사는데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이제 와서 생각하니까 그런 게 되어 있었겠다 싶다. 자란 환경에서 부모를 그리워하는 게 있잖나. 막연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그럴 수 있겠다 싶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홍민씨는 또 이런 말도 하며 어렵게 아픈 가정사를 고백했어요.

“추억이 없다. 추억이 없는 건 불행한 거다. 기억이 아예 없다 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월북하셨는데 그런 이야기하면 안 되는 시대였다. 연좌제라는 게 있어서 납치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더욱 비극적인 사실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릴 적 월북한 것만 해도 기가 막힐 일인데, 아버지를 찾으러 집을 떠난 어머니도 돌아오지 않으셨다고 해요.

그래서 그는 성장하면서 행복한 기억이나 추억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계셨더라면 그래도 사랑받을 수 있었을 텐데, 두 분 모두 안 계시니 고아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사실은 고아보다 더 불행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그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되어 가정을 가졌는데도 아주 나쁜 생각을 할 정도로 더욱 불행해졌어요.

부인과는 우연히 택시에 합승하게 되어 사는 동네가 같은 곳임을 알게 된 후 두 사람은 결혼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나중에 부인이 기관지가 좋지 못해 시골에 가서 살자고 하는 바람에 부인을 위해 시골에서 거주할 정도로 부인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아주 행복한 가정으로 대중에게 소개되었죠.

그러나 그의 인생 말년의 모습은 전혀 달랐습니다.

요즘 박지윤, 최동석 부부가 소문난 잉꼬 부부였는데 충격적인 이혼으로 세관에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홍민

부부의 보이지 않는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그래서 연예인 커플이 쇼윈도 커플인 게 맞는 것 같아요.

오늘 방송된 다큐멘터리 ‘마이웨이’에서 홍민은 친구 집에서의 일상을 이야기하며 “이혼 후 이곳에 산다”며 담담하게 이혼을 인정했다.

‘왜 혼자 사느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홍민은 “이혼을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이제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홍민은 “우리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는 세대였다. 나 역시 첫 아이와 함께 결혼생활을 시작했다”며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결격사유가 없다. 우리는 생각과 가치관이 다릅니다. “그냥 그렇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막연한 대화 끝에 마침내 그 이유를 밝혔는데, 꽤 충격적이었다.

구체적인 이유는 “카드 없이 돈을 다 썼다. 나는 내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돈을 벌어도 손댈 수가 없었어요. 내 이름으로 휴대폰을 마지막으로 소유한 지 불과 4년 만이다. 즉,이 방법.” “살다보니 자연스러워졌어요. 포기했는데 살아있네요 오래전 아내에게 등록증과 인장을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 살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홍민은 “직접 정신과를 찾아갔다”며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내 뇌 위에 벨트가 놓였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그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고통을 참으면서도 사랑을 줄 줄 아는 정말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2023년 1월 이미 암 투병 중이었지만 가요계에 등장해 ‘안녕’을 부르며 이별을 알렸다.

6개월 뒤인 7월에는 다시 무대에 올라 기타를 치며 ‘행복의 나라로’를 열창했다.

성민은 암 투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출연을 자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그때 너무나 가슴 찡한 말을 했어요.

그는 “나의 마지막 고별 무대가 될 것 같으니 많은 분이 시청해 달라”라고 마지막 무대를 예고했는데요.

실제로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 무대가 마지막 무대가 되었죠.

그는 고통의 이승을 떠나 행복의 나라로 갈 것이라는 암시를 담은 노래를 부르며 자기를 사랑해준 대중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의 준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어요.

2023년 제천시 홍보대사로 활동했던 고인은 올해 제천시에 장학금 3천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자기의 최선을 다해 사랑을 베풀고 행복의 나라로 가셨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