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숨기고 살아온걸까…” 정수라 정주영이 공개하지 않은 “충격적인 아들 정체에” 모두가 놀라고 마는데.. 지금 내용을 알아보세요..

“어떻게 숨기고 살았을까…” 정수라 정주영 아들 정체에 모두가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런 농담이

있는데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모르던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자기 회사 직원이 몇 명인지 모르고 둘째는 자기 재산이 얼마인지 모르며 셋째는 자기 자식이 몇 명인지 모른다고 하죠.

연예인과 재벌과의 스캔들이야 항상 있는 이야기이고, 실제 몇몇 사건은 실제 있었던 일로 밝혀지기도 했는데요.

오늘은 제가 존경하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항상 따라다녔던 정수라 스캔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가수 정수라와 정주영 회장 루머는 굉장한 파급력을 가졌죠.

덕분에 정수라 아들 이야기까지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집니다.

다들 궁금해하실 테니 팩트 체크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정주영 회장과

정수라는 과연 어떤 관계였을까요?

이들의 스캔들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세 가지 간접적인 증거가 있는데요.

이런 증거들을 바탕으로 이들의 행동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수 정수라는 본명은 정은숙이고, 1963년 10월 28일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올해 60살이죠.

1974년 초등학교 5학년이던 12살의 나이로 cm송 ‘종소리’를 부르며 가수로 데뷔합니다.

이때의 활동을 기반으로 제1회 한국 가요제에서 인기상과 금상을 수상했지만 대중들에게 얼굴이 잘 알려진 것은 성인이 된 다음이었죠.

먼저 정수라와 정주영 회장의 루머가 나온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1982년 ‘그런 사람이 나는 좋아’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했고, 1983년 건전가요 ‘아! 대한민국’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1980년대를 주름 잡던 정수라는 1990년 미국 진출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1991년 마이클 잭슨의 형인 저메인 잭슨과 함께 듀엣으로 내곡의 노래를 발표하게 되었죠.

저메인 잭스는 “정수라는 신이 내린 목소리 같다. 특히 동양인이면서도 흑인의 독특한 분위기가 섞여 있다. 그래서 내가 정수라에게 듀엣을 제안했다”라고 회고했는데요.

이렇게 정수라는 1991년 미국 활동을 하면서 한국에는 얼굴을 비추지 못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 정수라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 대한 루머가 퍼지게 되었죠.

정수라는 “재벌의 아들을 몰래 낳아 500억 원을 받고 쫓겨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에 미국에서 음반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라고 말했는데요.

정수라가 대기업 회장의 아들을 낳으면 재산을 주려고 했는데, 딸을 낳아서 양쪽 집안이 재산 싸움을 한다는 루머가 돌았고 시간이 지나자 그 루머가 ‘정수라가 쌍둥이를 낳았다’라는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또 김완선과 동서지간으로 재벌 회장이 양말 공장을 줬다는 소문도 돌았고,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장에 검은 선글라스로 변장하고 조문했다는 루머도 있었죠.

정수라는 루머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너무도 뜬금이 없어서 해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악성 루머가 오히려 늘어나게 되었다고 밝히면서 ‘그런 루머는 전혀 사실무근이다. 사람들이 내 진실을 알아줬으면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정수라의 말이 맞을까요? 아니면 세간의 루머가 사실일까요?

여기에 대하여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정주영 회장은 2001년 사망합니다.

당시 현대그룹과 정주영 집안은 그의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르지만, 총 33만 명이라는 엄청난 조문객과 기자들로 인하여 국장이나 다름이 없었죠.

그런데 정수라가 몰래 변장을 하고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장에 다녀갔다는 이야기도 웃기지만 그런 정수라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도 무척 이상합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사진 기자들과 더불어 일반인들은 왜 그런 정수라의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요?

두 번째는 정수라와 정주영 회장의 서로 다른 행보인데요.

정주영 회장은 1992년 국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합니다.

그런데 이때 정수라도 공교롭게 미국 활동 직후 대통령 선거 지원 유세에 나서는데, 바로 민자당의 김영삼을 지원했죠.

당시 정수라는 유세장에서 ‘아! 대한민국’ 노래를 부른 후에 ‘김영삼 후보가 우리나라 지도자가 돼야 한다. 김영삼 후보가 꼭 당선되길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한 왕회장 정주영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본인 역시

유세장 지원이 가능한 연예인들을 더 모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만약 정수라와 정주영의 관계가 실제로 친밀했다면 아마 왕 회장의 성격상 배신자라고 노발대발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을까요.

세 번째는 정수라와 김완선이 정말 동서지간일까 하는 것인데요.

마지막 세 번째 증거는 정수라가 2006년 결혼할 때 나타납니다.

이때 정수라는 결혼식에 자신의 절친 김완선을 초대하는데요.

신부였던 정수라가 던진 부케를 바로 김완선이 받게 되었죠.

만약에 정말로 루머처럼 정수라와 김완선이 동서지간이었다면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하고 또 부케를 던지는 일이 있었을까요.

상당히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죠.

참고로 김완선도 정주영 회장과의 루머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는데, 이에 대하여 다시 언급하자면 그녀가 모 재벌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문이 한국에 돌았습니다.

 

김완선도 해외에

장기간 체류하다 보니 출산설까지 퍼지게 된 것인데, 사실 모 재벌로부터 백지 수표 유혹을 받기는 했지만 그런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거절을 했다고 말했는데요.

김완선은 사실이 아닌 거짓에 미리 대응하기도 그랬고, 저만 떳떳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이 사건들에서 김완선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죠.

먼저 만약 김완선이 정말 백지 수표를 받았다며, 훗날 이모의 빚으로 그렇게까지 빚에 쪼달리다가 누드 화보까지 촬영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또한 만약 김완선이 스폰서의 돈을 받는 경험을 했다면, 삶의 경제적인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기존의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했을 겁니다.

성매매 여성들이 그 생활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삶이 수동적으로 변하게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김완선의 삶에 대한 적극성 절박함 등은 그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정말로 김완선과 정수라가 동서지간이면 김완선이 그런 정수라의 결혼 초대에 응해 직접 축하하러 가고, 또 본인이 부케를 받을 수 있을까요?

김완선과 정수라의 성격이 둘 다 무척 이상해야지만 발생할 수 있는 아주 가능성이 희박한 사건입니다.

 

이처럼

정수라와 정주영 회장의 관계는 세간의 루머와 당사자들의 관계가 많이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정수라는 남편 장대식을 만나 결혼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죠.

가수 정수라 남편 장대식이 구속이 되는데, 그 이유와 더불어 정수라 이혼 사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때 정수라 이혼 이유가 금전적인 문제라고 알려졌는데, 사실 그 문제 외에도 더 큰 문제가 있었죠.

오랫동안 독신 생활을 해오던 정수라는 2005년 가수 변진섭의 소개로 사업가 장대식을 만나게 됩니다.

정수라는 변진섭이 몇 번이나 골프 라운딩에 나오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설득해서 나가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남편을 처음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에 정수라와 장대식은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고, 2006년 6월 3일 정수라는 결혼식을 올리게 되죠.

 

 

참고로

이 결혼은 정수라에게는 초혼이었고, 장대식에게는 재혼이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왜 정수라처럼 인기 있고 예쁜 여가수가 결혼을 이렇게 늦게 했을까요.

사실 정수라는 어머니와 언니와 함께 살면서 어릴 때부터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했습니다.

정수라는 “장애인인 언니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자신은 평생 결혼을 안 하고 살게 될 줄 알았는데 웨딩드레스를 입게 되리라”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감격해 했죠.

정수라는 남편이 힘들고 지친 자신을 구제해 줬다면서 가수로 데뷔한 뒤 20년 이상 쉼 없이 달려오는 동안 사실 행복하지만은 않았고, 가수 1위에도 끊임없이 떠도는 루머 때문에 상처를 받고 고통도 겪었는데 남편이 안식처가 되어줬다고 말했는데요.

바로 이것이 정수라가 결혼을 늦게 한 이유인데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청춘을 바친 것이죠.

아무튼 이렇게 매력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나이보다 훨씬 동안의 모습으로 정수라는 2006년 결혼하게 됩니다.

그런데 불과 2~3년 후부터 결혼 생활에 대하여 후회하는 듯한 발언을 하게 되는데요.

정수라는 ‘미혼 여성이면 절대 결혼하지 마라 남자들은 3년까지만 괜찮다. 그 후에는 일만 저질러 놓고 나중에야 그가 달콤한 말을 했던 것을 알게 된다’라고 말했죠.

 

이 말은

정수라가 남편으로부터 무언가를 속았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데요.

결국 정수라는 2013년 8월 결혼 7년 만에 이혼 소송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이전인 2012년 5월에 신혼살림 집이었던 서울 방배동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갔고, 정수라가 결혼 전에 살았던 서울 이촌동 아파트도 2012년 연말에 이미 경매로 매각하게 되는 등 금전적인 문제가 많이 발생하죠.

그래서 처음에는 정수라의 이혼 사유가 금전적인 문제로 알려졌는데, 사실 이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정수라 전 남편 장대식은 2012년 10월에 사기 혐의로 구속됐는데요.

장대식은 모 건설사의 대표이사 직무정지 상태에서 약속어음을 3매 발행에 5억 5천만 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았죠.

 

참고로

정수라 부부가 살던 동네 주민의 증언인데 은행에서 와서 집에 빨간 딱지를 붙이려고 하면 남편이 정수라를 골프 치게 보내버렸고, 정수라가 골프 치게 하면서 그 사실을 모르게 했다고 합니다.

정수라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다가 완전히 쫄딱 망했다고 하는데 나중에 나갈 때 툭툭 다 털고 보증금 5천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로 갔다고 증언했습니다.

‘아 대한민국’을 불렀던 정수라는 밝고 희망찬 이미지를 보여주며 유명해졌는데, 그녀의 가족 이야기나 남편과의 이혼 과정을 살펴보면 결코 쉬운 인생은 아닌 것 같네요.

여기까지 가수 정수라에 대해 살펴보면서 이혼 이야기도 함께 알아보도록 하였습니다.

정수라는 사실 나이가 예순 살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데요.

빚도 많이 지시고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였었는데, 노래 ‘환희’처럼 다시 한번 인생의 황금기를 찾으셔서 좋은 나날들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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