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행동은 좀 아니지 않아…?” 가수 현미가 한밤중에 엄앵란 집으로 도망간 충격적인 이유.. 그리고 최근 공개된 이들의 놀라운 근황..

“그 행동은 좀 아니지 않아…?” 가수 현미가 한밤중에 엄앵란 집으로 도망간 이유에 모두가 당황했습니다..

가수 현미가

한 유부남과 지속적으로 만났지만, 그 남자에게 관계를 정리하자고 요구했다가 같이 죽자며 쫓아오는 바람에 엄앵란의 집으로 피신했다는 사연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과거 현미는 미군 위문 공연에서, 펑크낸 여가수 대신 무대에 오르면서 처음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요.

이런 현미를 눈여겨봤던 작곡가 이봉조는 현미에게 음반을 만들어줬고, 현미는 이후로 이봉조와 혼인까지 하게 됩니다.

현미와 이봉조가 처음 만난 것은 현미가 21살, 이봉조가 27살 때였는데요.

 

현미와 이봉조는

훗날 파경을 맞으면서, 둘은 사실혼일 뿐 이봉조에게 본처와 자식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심지어 현미는 이봉조의 아들 둘을 낳아 기르고 있었습니다.

일각에서는 ‘현미가 설마 유부남인 걸 몰랐을까?’ 하는 의혹도 있는데요.

이봉조의 본처로 알려진 A 씨의 말에 따르면 이봉조는 현미와 만나기 전, 본처 A 씨와 5년의 열애 끝에 결혼하여 연년생으로 두 딸을 낳습니다.

그 후 A 씨는 남편이 젊은 여가수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현미를 찾아갑니다.

 

 

‘처자가 있으니 헤어져 달라’라고 사정하자, 현미는 “딸만 둘 있으시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라고 말하며 나가버렸고, 이후로도 남편과 헤어질 것을 몇 번이나 부탁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미의 기억은 다릅니다.

현미의 말에 따르면 연애 내내 이봉조가 당연히 총각인 줄 알았고, 그러다 임신 8개월일 때 본처가 찾아와 ‘이봉조는 유부남에 아이가 둘이나 있고, 자신의 뱃속에 셋째가 있다’라고 알렸다고 합니다.

즉 A 씨의 주장은 현미와 이봉조가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에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렸다고 하고 반면에 현미는 그로부터 한참 지나 이봉조와 사이에 이미 큰 아들을 임신하고 나서야 이 사실을 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1962년 현미는 큰 아들을 낳고 그해 ‘밤안개’로 유명 가수가 됩니다.

A 씨도 같은 해 아들을 낳는데 이봉조는 두 아들의 이름을 ‘영’자 돌림으로 짓습니다.

현미의 주장에 따르면 임신 당시 본부인이 찾아와 유부남이라는 것을 듣고 뱃속의 아이를 지울 생각을 했지만 이봉조가 아내와 헤어지겠다는 약속을 해서 믿었다고 합니다.

이후 1967년 현미는 둘째 아들을 낳았는데, 이봉조는 이혼 서류를 보여주며 현미를 안심시켰고 이후로 7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이봉조는 본처와의 관계도 몰래 유지하며 이후 막내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대중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현미와 이봉조를 가수와 작곡가 부부로 인식했습니다.

그러다가 1974년 현미는 이봉조와 결별을 선언하게 됩니다.

당시 3류 가십지에는 “대중가요 작곡가 43세 이봉조 씨와 가수 38세의 현미 씨 커플이 자칫하면 타인으로 갈라지게 될 것 같다. 이봉조가 최근 20대의 여가수 김 모 양과 일본으로 여행, 이 씨의 바람기 때문”라는 기사가 나면서 엄청난 스캔들이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많은데 이 중 하나는 김모 가수와 이봉조의 스캔들은 가짜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은 본부인하고 헤어지겠다고 약속하고 심지어 이혼 서류까지 보여줘 믿었던 이봉조가 본처와의 관계를 몰래 유지하며 막내딸을 낳은 사실을 알게 된 현미가 분노했다는 이야기가 정설에 가깝습니다.

공개적으로 ‘내가 내연녀다’라고 공론화하기엔 지킬 것이 많았던 현미가 젊은 여가수와의 스캔들을 이유로 이봉조에게 관계를 정리하자고 요구한 것인데, 한편 이 일로 이봉조가 ‘같이 죽자’라며 쫓아와 현미가 아이들을 데리고 엄앵란의 집으로 피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스캔들 이후로 헤어진 두 사람은 13년간 왕래가 없다가 1987년 이봉조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현미가 그를 찾아갔는데, 본부인과 합치지 않고 혼자 지내는 이봉조의 변한 모습에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오열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재결합을 약속했는데 이봉조는 일주일 후 돌연사합니다.

이후 현미는 ‘나를 속였던 남편을 원망하지만, 그래도 후회한다’라며 살면서 이봉조 아내라는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와서 나는 영원히 운명적인 부부였다’라고 실감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다음 생애에도 이봉조를 만나겠다는 말을 남겼는데요.

인간적인 배신은 있었지만 작곡가로서 그로부터 받은 곡들의 존경과 찬사를 보내며 불렀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한편 현미는 2014년에는 15살 연하 남자친구, 2020년에는 6살 연하 남자친구가 있다고 고백해 눈길을 끈 바 있습니다.

2007년 데뷔 50주년 앨범을 발매했고, 이후로도 꾸준히 활동하는 가수 현미.

그녀의 좋은 활동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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