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문숙은 1962년에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안문숙은
설날 때 친구들과 자치기 놀이를 하다가 자신의 막대기가 이웃집 지붕에 올라가게 되는데요.
그래서 막대기를 주우려고 지붕에 올라갔는데 그만 지붕 위를 작게 가려놓은 플라스틱에 발이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침 그 집은 설날 차례를 지내고 있어서 안문숙의 다리가 조상님들 차례상 위로 떨어지게 되는데요.
너무 화가 난 이웃집 아주머니는 안문숙을 데리고 그녀의 어머니에게 가서 따졌고, 그날 안문숙은 어머니로부터 회초리를 많이 맞게 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안문숙을 때리면서도 웃으면서 “남의 집 지붕을 뚫어서, 대통령 될래? 판사가 될래?, 그런 어머니의 교육 덕분에 안문숙은 야단을 쳐도 긍정적으로 말해야 한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 또한 자신은 나중에 정말 크게 될 사람이라고도 생각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커서도 안문숙의 어머니는 결혼을 못 하고 있는 딸에게 욕을 할 때 “결혼 늦게 해서 애를 한 열 낳을 가시내야”라고 하곤 했는데, 이런 말들에는 안문숙 어머니의 긍정적인 성격 외에도 딸에 대해서 제발 그러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깃들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낸 안문숙은 1981년 미스 롯데 선발 대회에 참가하며 연예계에 데뷔하는데요.
당시 안문숙의 어머니는 딸이 평범하게 살길 바랐기 때문에 대회에 나가는 걸 반대했지만, 안문숙이 어느 날 친구 따라가 방송국에 갔다가 현관에서 나눠주는 미스 롯데 대회 원서를 별생각 없이 받아들었는데, 그 모습을 본 방송국 경비 아저씨가 안문숙에게 집에 가서 공부나 해라라고 말하는 바람에 순간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오기로 원서 접수까지 하게 됩니다.
그렇게
욱한 마음으로 대회에 출전하게 된 안문숙은 당시 독특한 행동과 발언으로 주목을 받게 되는데요.
당시 무대에 올라가서 자신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빨렸다는 그녀는 대회 출전을 위해서 시장에서 옷도 샀고, 화장도 볼 터치만 진하게 한 바람에 그래서 광주 댁, ‘컨츄리 꼬꼬’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당시 다른 참가자들은 예쁘게 웃는 것만 할 수 있었지만, 안문숙은 스스로 망가지는 연기로 심사위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이후 연예계에 데뷔하게 된 안문숙은 선배들의 요구로 군기반장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인사를 하지 않는 등 버릇없는 행동을 한 후배들에게 그녀는 따끔한 충고를 하곤 했는데요.
그렇게 안문숙은 연예계에서 자리 잡으며 예능과 드라마를 통해 왕성한 활동을 펼쳤지만, 그녀에게 항상 들어오는 역할들은 대부분 노처녀 역할들뿐이었다 보니 자신은 늘 비슷한 캐릭터만 연기하게 되는 현실에 어느덧 큰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그 뒤로 연기를 결국 그만두면서 4년간 극심한 우울증을 앓으며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원래 성격이 밝은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니 오히려 더 극복하기 어려워지면서, 끝내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하게 된 안문숙은 이번에도 어머니에 ‘네가 그런 걸로 힘들 성격이냐’라는 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어머니의 도움으로 우울증을 극복하게 되는데요.
또한 안문숙은 환갑이 된 아직까지도 결혼을 하지 못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외롭지 않냐’라고 물어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혼자 살면 외롭지만 둘이 살면 괴롭다며, 차라리 괴로운 것보다 외로운 것이 낫지 않냐. 그러나 요즘은 괴롭고 싶다. 결혼을 안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분이 아직 안 나타났다. 남편 복은 없는 모양이다. 신랑과 자식이 없으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바쁘게 살아야 할 것 같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사실 안문숙은 과거에 외국 남자를 만나본 적이 있긴 한데요.
호주에 사는 언니의 소개로 소개팅을 했는데, 상대는 호주에 있는 은행의 지점장으로 이름은 개리 빅이라는 남자였습니다.
안문숙보다 두 살 연상이었던 개리는 취미가 스킨 스쿠버였는데, 집 안에 스킨 스쿠버를 하며 주었던 조개껍데기가 많았고, 안문숙이 정말 예쁘다고 말하면서 하나를 들었는데 개리가 그 손에 있는 조개를 꽉 뺏어가는데 순간 빈정이 확 상하면서 쇼크가 왔다고 합니다.
그녀는 ‘사람은 누구나 힘든 것 같은데, 솔로의 외로움이 더 클까? 부부 된 이후에 외로움이 더 클까? 그들은 비슷하지 않을까? 죽을 때까지 인간은 외롭다고 생각한다’라고도 밝혔습니다.
사실 부부라고 하더라도 오히려 더 외로운 사람들도 많죠.
그런 안문숙은 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했던 어느 날 ‘오장 육부가 떨린다’라며 다소 긴장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유머러스한 말솜씨는 여전했고, 자신의 집은 여자밖에 없고, 강아지도 암컷 심지어 바퀴벌레도 암컷뿐이라며 맞선을 봤는데, 맞선 남의 입술 밖에 안 보였다며 웃지 못할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힘차게 살아가던 그녀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요.
우연히 건강검진을 받은 안문숙은 뇌의 이상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후 안타깝게도 뇌사 판정까지 받게 됩니다.
당시 그 순간에 영화 필름처럼 지나가던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을 구체적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밝힌 안문숙은 전문가 판정 결과 불필요한 뇌세포가 죽은 것으로, 활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부분 뇌사 판정이 옳다’라는 이야기로 안도하게 되는데요.
이후 그녀는 어느 것 하나 놓지 않고 다 끌어안고 지냈던 것들을 하나 둘 놓고 편하게 지내기 시작했고, 본인이 결혼을 못 해 누군가의 엄마가 되지 못한 삶을 살아온 게 후회된다고도 털어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자신을 평생 이끌어주신 어머니에게도 주기적으로 종합 검진을 받게 했는데, 한 번은 의사가 안문숙을 몰래 불러서는 ‘초음파로는 잘 모르겠으니 큰 병원에 가서 ct 촬영을 해보라’라고 권하게 됩니다.
이후 어머니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냥 큰 병원에서 한 번 검사하자고 말하며 어머니를 모시게 되는데요.
하지만 어머니는 의아해하셨고 결국 큰 병원에 가는 길에 어머니가 눈치를 채시고는 ‘나이가 들어서 몸 고장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편안하게 가고 싶다’라고 말씀하시게 됩니다.
그 말을
들은 안문숙은 자신도 모르게 선글라스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리게 되는데요.
어머니의 별세에 대해 안문숙은 최근의 유행이 심각해 조문객도 많이 못 봤던 시기에 ‘평생 잊지 말라’fk고 하늘 문이 열리는 개천절 날 가셨다고 운을 떼며, 어머니가 50대 후반의 간염을 앓으셨는데, 원래는 당뇨나 고혈압 없이 건강하셨지만 간염이 나이가 들면서 간경화까지 앓게 되면서 88살에 소천하셨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딸만 셋인데 언니와 동생은 호주에 살다 보니 최근의 유행 때문에 아무도 못 들어왔고, 자기 혼자 장례를 치렀다면서 “장례식을 치르니까 그다음이 문제다 평생을 엄마랑 살았는데, 엄마가 없다는 상실감에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은 어머니께 딸이자 아들이자 남편이었다. 다시 웃고 큰소리로 이야기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라고 고백해 안타까움을 안겼습니다.
그러다 결혼도 하지 못한 채 뇌사 판정을 받으며 마음을 졸이기도 했었는데, 평생 자신을 바른길로 이끌어주셨던 어머니는 항상 건강하셨지만 연세가 드시면서 결국 몸이 약해지시더니 끝내 하늘로 떠나가 버리셨고, 그 와중에 자식들 중 혼자서 장례를 치러야만 했는데 어머니가 떠나니 엄청난 상실감에 슬퍼해야만 했던 안문숙의 지난날들.
이렇게 너무나 슬픈 인생을 살아온 안문숙에게 시청자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