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 오랜 세월동안 감사합니다..” 방송인 임성훈이 갑작스럽게 전달한 그의 놀라운 현 상황.. 무슨 일이길래..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임성훈 이야기에 앞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 이혼했습니다’에서 전처와 재혼을 약속해 화제를 모은 배우 나한일은 이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다.

이어 기자는 “나한일이 평생 무술을 해왔다고 해서 연예인 중 주먹이 가장 센 것 아니냐”고 묻자 “아니다. 예전에 연예계 동갑내기 친구가 주먹질을 꽤 잘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의 예리한 취향을 베팅 배우 최수종에게서 얻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당시 최수종의 손가락 하나도 건드릴 수 없었고, KO패한 뒤 “내가 틀렸으니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내 동생 최수종은 정말 강하다.”

“그런데 최수종보다 더 강한 사람이 있잖아요. 바로 임성훈이에요. 작아보이지만 주먹으로는 연예계 최강이겠죠.”

가수 배철수도 자신의 방송에 임성훈이 출연하자 “사실 어렸을 때는 성훈이가 굉장히 까다롭고 무서운 선배로 기억했는데 어느 순간 부드러워 보이고 편안해 보이더라”고 털어놨다. 생방송. 배철수와 동갑내기 가수들은 임성훈에게 “익숙한 이미지의 스타가 됐는데 원래의 모습을 아는 나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진다”며 많은 어려움을 드러냈다.

 

 

 

이처럼 임성훈 그는 앞서 서두에서 얘기한 말과 딱 맞는 사람으로, 그간 방송에서는 편안한 진행과 더불어 굉장히 부드러운 이미지의 소유자이지만,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성격이 다혈질이라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욱해서 상대방을 다운시켜 버린다는 임성훈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1950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임성훈은 현재 아나운서 같은 차분한 이미지와는 달리 어릴 때는 끼가 많아 초등학교 시절 영화의 예고편만 보고도 친구들 앞에서 영화의 내용보다 더 재미있게 이야기할 정도로 말 솜씨가 있는 편이었고, 또한 초등학교 6년 내내 반장을 하면서 항상 반 친구들의 오락 담당을 맡곤 했습니다.

하지만 왜소한 체격 때문인지 중학교 2학년 때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애들이 비교적 체구가 작았던 자신을 괴롭히자, 그 친구들을 혼내줄 요량으로 태권도장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런데 그때부터 운동의 매력에 빠져 이후 권투, 쿵푸 등 종목을 바꿔가며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운동을 한 뒤로는 성격이 못 말리는 다혈질로 변해 당시 최고의 스포츠로 각광받던 권투 시합이 있는 날이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본인이 응원하는 선수처럼 주먹을 휘두르며 내내 서서 보곤 했고, 또한 이후 연세대 재학 시절에는 응원단장으로 활동하다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에게 화를 내다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체육관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머리는 워낙에 똑똑해서 공부를 잘했던 그는 앞서 얘기한 대로 연세대에 입학한 것은 물론이고, 또한 당시 외교관이 되고 싶어서 한때 일어나 중국어도 굉장히 잘했었는데, 그런데 어느 날 가수라는 직업의 매력을 느껴 뜬금없이 꿈이 외교관에서 가수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게 노래에 빠진 뒤로 가수의 꿈을 꾸던 그는 어느 날 기타 하나만 달랑 메고 당시 최고의 록 가수였던 신중현을 찾아가 그 자리에서 오디션을 본 뒤 덜컥 합격하면서 이후 두 사람은 앨범까지 내고 또한 그가 ‘시골길’이라는 솔로 노래까지 발표하며 당시 가수로서 꽤나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현재 임성훈의 차분하고 젠틀한 이미지로 인해 그가 원래부터 아나운서 출신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러나 앞서 얘기한 대로 그는 아나운서 출신이 아니라 록 밴드 보컬리스트로 데뷔한 가수 출신의 방송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업 가수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고, 1974년 TBC 코미디 ‘살짝 웃어’로 개그맨으로 데뷔해 이름을 알릴 당시 가장 재미있는 개그맨 중 한 명이 됐다. 코미디언에서 코미디언으로 바뀌었고 그도 그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에는 전문 MC로 변신해 당대 최고의 음악 프로그램인 송톱텐의 MC를 맡아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얻었으나, 앞서 말했듯 성격이 원래 굉장히 터프한 편이었고, 그래서 배철수 이야기처럼 그는 연예계에서 아나운서로 분류되지 않았다. 정말 무서운 선배였어요.

이에 개그우먼 서승만도 “한번은 임성훈이 아내와 함께 나갔는데 아내가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운전석에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차에 있던 두 남자가 옆에서 갑자기 말다툼이 시작됐다. 그는 “나는 걷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임성훈은 직접 아래층으로 내려와 정중하게 진정시킨 뒤 놓아주려 했지만, 두 남자가 아내를 직접 위협하려 하자 번개처럼 주먹을 휘둘러 순식간에 쓰러뜨렸다. 싸움을 시작한 남자들은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그는 조용히 떠났다”고 그는 말했다.

이에 임성훈은 아내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갖고 있으며, 이후 아내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라디오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전업주부인 아내 덕분이다. 방송을 시작한 지 50년이 넘었지만 항상 내 가장 친한 친구는 아내였다. 아내는 방송을 세심하게 모니터링해 이제는 방송의 성패를 판단하는 전문가가 된 냉철한 조언자였다. 제가 출연하던 프로그램의 첫 방송을 보고 있어요.”

 

 

“이처럼 우리 부부는 가정을 꾸리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게 배우자의 도움과 배려라는 걸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그동안은 내가 방송 일 때문에 바빠서 집안일에는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

“물론 내 나름대로 노력이야 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왜 없었겠나. 그런 부분들을 잘 메워준 집사람에게 항상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라고 전했습니다.

아무튼

이후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전문 mc로서 편안하고 깔끔한 진행으로 꾸준히 사랑을 받아오다가, 그런데 어느 날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해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생겨 mc로서 가장 중요한 목소리를 잃을지도 모르는 큰 위기가 닥쳐 오게 됩니다.

1995년 당시 하루에 담배를 3갑씩 피우던 그는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아 아내와 함께 병원을 찾았는데, 그런데 병원에서 나온 검사 결과가 목 두 군데 성대 결절이 생겨서 당장 담배를 끊지 않으면 목소리까지 잃을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당시

그는 눈 뜨면서부터 자기 전까지 담배를 피웠으니 사실 목이 성할 리가 없었고, 그래서 당시 의사가 그에게 ‘방송 그만하고 싶으면 담배 계속 피우라’라고 하는데, 하지만 담배를 하루에 세 갑 피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끊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아 의사의 이러한 말을 들은 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담배를 못 끊어서 인생을 포기하는 것은 가족들이나 본인한테도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날 병원을 나오면서부터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담배와 라이터를 통째로 버리고 이후 현재까지도 단 한 번도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철저한 자기 관리로 이후에도 수십 년이 넘는 오랜 방송 생활 동안 그 흔한 스캔들이나 루머 같은 잡음이 전혀 없다가, 그런데 딱 한 번 안타까운 일이 있었는데 2004년 방송사로부터 갑질을 당해 강제 하차를 당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임성훈은 mbc에서 ‘토크쇼 임성훈과 함께’라는 프로를 무려 8년 9개월 동안이나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생방송 퀴즈가 좋다’ 역시 5년 넘게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한 사건 때문에 갑자기 mbc가 두 프로그램에서 임성훈 그를 모두 강제 하차시켜버리는 초강수를 두게 됩니다.

 

왜 이러한 일이

생겼냐면 2004년 8월 올림픽 축구 예선이 벌어지던 당시 mbc와 sbs가 올림픽 축구 예선전 중계방송을 기획하며 각자 임성훈을 섭외했고, 그래서 사람들이 임성훈이 mbc와 오래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mbc를 선택하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는 전혀 의외로 sbs와 손을 잡고 방송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 mbc가 그가 출연 중이던 프로그램 모두에서 해고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임성훈은 왜 의리를 버리고 sbs를 선택한 것이었을까요.

사실 이때 임성훈의 큰아들 임형택이 sbs의 pd로 갓 입사한 상태라 그런 상황에서 그는 아들의 장례를 위해서라도 sbs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이후 그는 본인이 오랫동안 진행했던 두 개의 프로에서 모두 하차하게 되었지만, 당시 이에 대하여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고, 그러다 무려 7년이 흐른 뒤에야 2011년 ‘우리들의 일밤’에서 ‘집드림’이라는 프로를 맡은 뒤 현재 또다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mbc와는 연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는 이 프로에서 무려 24년 동안이나 단 한 번도 녹화에 빠지지 않다가, 하지만 최근 전염병 확진으로 인해 처음으로 녹화에 불참하게 되자 이때 그가 큰 아쉬움을 드러내며 ‘건강에 자만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임성훈이 인정했다.

“방송을 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아침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생각을 해요. 나는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고 말했다.

“항상 그런 기대감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한 지 4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설레고 즐겁습니다. 그게 제가 지금까지 방송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에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은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우울하면 프로그램 분위기도 우울해집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맡을 때마다 예전처럼 새로운 각오와 열정으로 임하게 됩니다. 데뷔해.”

“그렇다면 하기 싫으면 열심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방송사가 관성에 빠지지 않고, 특히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까 말했듯이, 그냥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일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저 하루하루를 행복한 마음으로 살았을 뿐인데, 벌써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 아닌 것 같아요. 거의 50년 동안 방송과 텔레비전에서 그 일을 해왔습니다.”

아무튼, 그동안 열심히 우물을 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큰 기복 없이 작품을 이어갈 수 있도록 관심과 공감을 보내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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