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생 배우 김청 결국…” 무려 10년 만에 공개된 그녀의 충격적인 근황에 모두가 믿을 수 없다며 눈물 흘리게된 이유..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모든 이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고,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구구절절 각자의 인생이 있고, 고달픈 삶과 행복한 삶을 반복하면서 사는데 최근 배우 김청이 아침마당 ‘화요 초대석’이라는 코너에 나와 롤러코스터 같은 내 인생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대화를 나눴었는데,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그야말로 파란만장 그 자체였습니다.

그녀는 한때 대한민국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연예인 2위에 올랐음에도 밤마다 하염없이 술만 마시며 배우로서 사는 게, 여자로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 결국 기억상실증까지 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왜 여기에 있지’라는 생각에 대한민국이 싫고 방송도 하기 싫어서 이민까지 결정해야 했던 김청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합니다.

1945년, 고등학생 1학년의 김청의 어머니 김도이 씨는 당시 12살이나 많은 동네 아저씨 김청의 아버지가 집까지 자전거로 태워주고 예뻐해 주자, 이내 덜컥 김청을 임신하게 됩니다.

 

 

그렇게 김청의 어머니는 여고생 때 아버지를 만나 연애다운 연애, 데이트 다운 데이트 한번 해보지도 못한 채 엄마가 되고 말았고, 그리고 당시 여고생이 임신을 하자 양가에서는 서로의 자식 단속을 탓하며 자존심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미혼모인 상태에서 사생아로 김청을 낳게 됩니다.

심지어 당시 두 사람은 두 집안이 워낙에 사이가 좋지 않다 보니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김청이 태어난 뒤에도 쭉 떨어져 지내야 했고, 그러다 김청이 태어난 지 100일째 되던 날, 그녀의 아버지가 어른들 몰래 김청을 보러 와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걸 보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부모님께 설득해서 결혼도 하고, 같이 살아야겠다’라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김청의 아버지가 ‘아기가 자신을 많이 닮았다’라며 부모님들을 설득하자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결혼 승낙을 받을 수 있었고, 그런데 이 소식을 누구보다 기다리던 어린 아내에게 달려가던 중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를 당해 김청의 아버지는 28살의 나이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그녀의 어머니는 첫사랑인 아버지를 못 잊어 이후에도 재혼을 하지 않고 여전히 멈춰 있다고 했으며 오히려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영혼 결혼식까지 올리며 여전히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후 시댁에서는 아들이 남긴 유일한 핏줄 김청을 데려가겠다고 하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딸과 떨어져 산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당시 그녀의 어머니는 결국 남편도 없이 시댁에 들어가 살며 매운 시집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당시 시댁에서는 며느리 때문에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해 굉장히 미워하며 아이만 남겨놓고 떠나게 하려고 더욱더 모질게 시집살이를 시켰고, 그래서 결국 견디지 못한 그녀의 어머니가 고작 23살의 나이로 세 살배기 김청을 업으며 야반도주를 하게 됩니다.

이처럼 어머니가 시댁을 나와 이후부터 홀몸으로 김청을 기르게 되었고, 그런데 여기서 반전인 게 외갓집이 부유했던지라 당시 김청은 편모슬하에서도 갖고 싶은 건 다 가질 수 있을 만큼 굉장히 부유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얼마나 부유하게 자랐냐면 그녀를 키워주는 보모가 두 명이 있고, 또한 학창 시절 본인만 외재 보온 도시락에 친구들 반찬까지 따로 싸갈 정도였으며, 심지어 기성복이 없던 시절 종로 샤넬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을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물론 사실 그러면 당시 친구들이 재수 없어 하긴 했지만, 미제 과자나 바나나, 새알 초콜릿을 주면 모든 게 해결이 됐다고 했으며, 그리고 앞서 얘기한 보온 도시락 통에 소시지, 부침, 계란말이를 넣어가면 반 아이들의 눈이 히둥그레졌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나이 20살 때 친구가 떡볶이를 사줄 테니 미스 MBC 대회에 함께 출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따라갔다가, 친구는 떨어지고 본인이 덜컥 합격하고 말았고, 이후 해당될 수상자의 특혜로 MBC 14기 공채 탤런트가 된 그녀는 왕조위를 닮은 세련된 외모와 똑 부러지는 성격으로 단숨에 톱 스타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 얼마나 인기가 많았냐면 그녀가 백화점에서 사인회를 하면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와 백화점 셔터를 내릴 정도였고, 또한 한때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연예인 2위까지 오르며 그야말로 연예인들의 연예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무렵 그녀의 어머니가 가장 아끼고 믿었던 사람한테 잘못된 보증을 서면서 1981년 그 시절 3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빚을 지게 되었고, 그래서 이때 그녀가 앞서 얘기한 대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연예인 2위까지 올랐음에도 어머니의 빚을 갚느라 그 돈들을 구경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녀가 고백하길 “우리 엄마가 가장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을 당하면서 40년 전 30억이라는 빚이 생겼었다. 지금 시세로 치면 100억은 그냥 넘는 금액으로, 그런데 당시에는 내가 잘 몰랐다. 압류가 뭔지도 모르고 ‘우리 집이 없네. 쫓겨났네’ 이렇게 정도만 알았다. 그러다 ‘쇼 2000’ MC를 하면서 빚쟁이들이 방송국까지 찾아오자 그때야 알겠더라 ‘이게 빚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우리가 빚을 졌구나. 그걸 갚아야 하는 거구나’라고 말이다.

“그렇게 13년간 빚을 갚기 위해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했고, 그러다 마침내 빚을 다 갚는 순간 나는 정말 기쁠 줄 알았는데, 그런데 무거운 짐을 내려놓자 기쁨보다는 오히려 허망함과 극심한 우울증이 오고 말았다”

“그래서 이때 내가 1년 가까이 집 밖에도 안 나가고 사람도 안 만나고 머리도 안 감고,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울고 엄마가 무슨 말만 하면 ‘나가’ 이러고 엄마한테 못되게 굴고 그랬다”

“그럼에도 엄마는 당시 나에게 ‘청아 아무래도 네가 좀 우울증이 온 거 같은데, 같이 병원에 가보자’라며 손을 내밀어 주었고, 이처럼 배우로서 사는 게 여자로서 사는 게 너무너무 힘들 때마다 내 곁에는 늘 엄마밖에 없는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처럼 김청의 20대는 오로지 어머니의 빚을 갚는 데 보내야 했고, 그러다 딱 30살 때 한 선배의 주선으로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남자와 맞선을 보고 금세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준비하게 되는데, 하지만 이때의 사랑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화가 나는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당시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그 남자가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에 있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해’를 입에 달으며 결혼도 일사천리로 준비하다가, 그러나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전화 통화도 제대로 하려 하지 않고 뭔가 쎄한 느낌을 주자 결국 그 남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알아본 결과 놀랍게도 김청 그녀와 결혼 이야기가 오갈 만큼 사귀면서도 당시 가장 잘나가던 후배 연기자 채모 씨와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총각인 줄 알았던 그 남자가 장가를 한 번 갔다 온 이혼남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됩니다.

당시 김청은 ‘하늘이 노랗다는 게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심한 충격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 남자와의 관계를 정리하는데 그러나 그와의 인연은 전생에 악연이었는지, 김청 그녀를 쉽게 놔주지 않았습니다.

남자와 헤어진 후 5개월이 지났을 무렵, 어느 날 갑자기 채모 후배가 남자와 결혼을 한다면서 연예부 기자들이 난데없이 김청의 집으로 찾아왔고, 알고 보니 채모 후배와 그 남자가 홍콩으로 도피를 하면서 두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모두 김청에게 밀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당시 기자들이 그녀에게 한다는 말이 ‘그 남자에 대한 모든 걸 털어놓으라’라고 했고, 그래서 ‘그 남자와는 이미 헤어졌고, 두 사람 사이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했는데도, 기자들이 믿지 않고 심지어 어떤 기자는 3박 4일 동안 그녀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다는 말이 ‘그럼 그 남자를 뺏긴 거냐. 찬 거냐. 차인 거냐’ 등등 수없이 질문을 해대더니, 결국에는 ‘후배 연기자에게 애인을 빼앗긴 김청’, ‘연적에게 남자를 내주고 입 닫은 김청’, ‘남자를 빼앗기다’ 등의 제목을 단 기사들이 전국적으로 공개됐고, 그래서 결국 그녀는 남자에게 속아 넘어간 것도 억울한데 엉뚱한 매까지 맞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이후 그녀는 집 밖에도 나오지 못한 채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했고,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점차 이 사건이 잊혀질 무렵, 그녀에게도 마침내 제대로 된 남자가 나타나게 되는데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당시 이 남자를 너무 사랑했고, 또한 본인이 살면서 별로 후회해 본 적이 없는데, 그런데 이 남자를 놓친 것은 지금까지 후회가 된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녀가 고백하길 “지금 배 아플 만큼 잘 되어 있는 남자가 하나 있다. 어떻게 보면 첫사랑이고 정말 사랑했었다. 그러다 자연스레 결혼 이야기가 오갔고, 하지만 그 집안의 부모님들이 내가 연예인이고 홀어머니 밑에 있다고 하니까 대놓고 싫은 내색은 안 하셨지만, 그런데 뭔가 못마땅 해하는 그 눈빛을 내가 봐버렸다 그래서 이후부터 그 남자한테 못되게 굴었고, 그러다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때 나는 내 성질을 못 이겨가지고 이 사람한테 복수하는 건 내가 결혼해서 안주를 해서 사는 거라 생각하고 내 인생의 최악의 남자와 마음에도 없던 결혼을 하고 말았다”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첫사랑과 헤어진 후 그녀의 나이 37살 때 여러 사람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평소 친분이 있던 언니가 지난번에 갔던 ‘골프장 사장님이야’라며 한 남자를 소개해 주었고, 그런데 사람은 그녀보다 12살이나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저 중년의 아저씨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12살이나 많은 그 사람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부터 ‘김청 씨는 독신주의자이신가요?’라며 다정하게 말을 걸고, 그녀의 대답에 ‘허허’ 웃어주었고, 그리고 그날 이후 그 남자에게서 연락이 오면서 그녀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이후 그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 한 달쯤 지나자 남자는 김창에게 결국 청혼을 했고, 그러자 김청은 행복에 들떠 주위 사람들에게도 본인의 결혼 소식을 알렸는데, 하지만 그녀의 결혼 소식을 접한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시원치 않았습니다.

특히 결혼하라고 성화를 하던 어머니까지 걱정을 하며 한다는 말이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겨우 한 달 만났는데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 수 있겠냐’라며 반대를 했고, 그럼에도 김청 그녀는 모든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결혼 날짜까지 잡아버렸는데, 그런데 결혼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그 남자에 대해 듣는 이야기도 점점 많아지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그녀가 고백하길 “당시 나는 첫사랑과 이별 후 그냥 일도 싫고 사람도 싫고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사람과 결혼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선택을 하긴 했는데 결혼식 직전까지 주위에서 그 남자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상한 얘기가 들려왔고, 그런데도 이미 결혼 기사는 다 나버려서 결국 귀막고 마음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사실 결혼식 직전까지 신부 대기실에서 고민을 했던 게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30분이나 늦게 식을 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참 건방졌던 게 참고 살면 사람도 바뀔 수 있겠구나. 결국 에라이 모르겠다. 하고 결혼식을 했는데, 그러나 신혼여행지에 가서 그 사람의 실체를 보고 말았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도 남자는 김청의 어머니에게 찾아와 사업 자금을 융통해 달라며 돈을 요구한 적이 있었고, 그때 어머니가 돈이 없다고 하자 ‘그럼 집이라도 담보로 맡기면 되지 않겠냐’라고 하는 그야말로 막장 자체였습니다.

그럼에도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 결혼을 했는데, 그녀의 고백대로 신혼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본색을 드러내게 됩니다.

 

당시

남편은 필리핀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카지노로 달려가 김청을 내팽개치고 3박 4일 동안 카지노 게임에만 몰두했고, 그러자 그녀가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 하다가 3일째 되는 날 쓰러지게 되는데, 결국 그때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그때부터 생각이 드는 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왜 여기에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결국 신혼여행지에서 혼자 한국으로 건너와 곧장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37년 동안 홀로 키운 딸이 신혼여행을 떠난 지 3일 만에 초췌한 몰골로 돌아오자, 당시 어머니는 가슴을 치며 한탄했고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그 남자가 병원에 와서 한다는 말이 “정리하려면 패물도 돌려줘야지. 내가 준 보석 반지는 어디에 있냐”라며 끝까지 최악의 모습들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런데 심지어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이미 네 번 정도 결혼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당시 그것도 속인 상태로 접근했던 것이었고, 아무튼 다행히 두 사람은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기에 헤어지는 데 있어 그저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이 절차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후유증은 컸던 게 이때의 충격으로 이모가 소개해 준 강원도의 작은 절로 들어가 무려 6개월간 외부와의 연락을 일체 끊은 채 밤마다 하염없이 술만 마시며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는 상황까지 오고 말았고, 그래서 그녀가 절을 떠날 때는 지내던 방에서 빈 소주병이 무려 여덟 박스나 나왔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김청 그녀는 20대에는 어머니가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30억이라는 큰 빚을 지면서 그녀가 홀로 13년간 빚을 갚아야 했고, 그러다 이후 두 번의 가슴 아픈 사랑으로 한때는 그녀가 술에 의지하며 단기 기억상실증이 오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모진 삶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다

또 한 번은 이번에는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가 당시 어머니의 노후를 위해 오피스텔 7채를 사드린 적이 있는데, 그런데 인테리어 사업을 하니까 오피스텔의 부실공사를 알게 되어 있는 그대로 그거를 해결해 달라고 하는 과정에서 결국 오피스텔 관계자들과 심한 갈등을 겪으며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이 퍼져나가게 됩니다.

당시 김청 그녀가 현장 소장을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방법으로 괴롭혔다며 온갖 오해와 루머들이 퍼져나가자, 안 그래도 억울한데 당시 너무나 괴로워서 결국 대한민국이 싫고 방송도 하기 싫어 이민을 결정하고 해외로 떠나게 되는데, 그녀가 선택한 나라는 우즈베키스탄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무려 2년간 한국을 떠나 우즈베키스탄에서 생활을 했고 당시 빈털터리로 떠난 여행에서 결국 엄마에게 기대며 엄마와 함께 거주를 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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