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 이윤형 향년 26세에 갑작스럽게…” 측근이 말한 그녀의 평소 소탈한 행실 그리고 사인이 공개되고 모두가 놀라고 말았는데…

2020년 10월 25일 작고한 이건희 씨의 막내딸이 사망했는데, 그 후 밝혀진 내용이 충격적입니다.

대한민국에

제일가는 기업인 삼성을 현재의 위치까지 이끌어온 고 이건희 회장은 원래 자녀가 네 명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삼성전자 회장을 맡고 있는 장남 이재용 씨, 호텔 신라 사장을 맡고 있는 장녀 이부진 씨, 그리고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직을 달고 있는 찬여 이서현 씨, 그리고 막내딸 이윤형 씨죠.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생전 가장 아꼈던 자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바로 막내딸 이윤형 씨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죠.

 

최근

고 이윤형 씨의 사망 원인이 재조명되며 네티즌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었습니다.

이윤형 씨는 1979년 4월 26일생으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홍라희 리움 미술관 관장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늦둥이로 태어나 더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고 해요.

 

 

위의 형제들과 나이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났는데, 오빠인 이재용 씨와는 11살 차이, 언니 이부진 씨와는 9살 차이, 그리고 바로 위인 이서현 씨보다도 6살이나 더 어렸습니다.

이윤형 씨는 플롯을 전공해 예술계 엘리트 중학교인 예원학교 음악과를 나와 대원외고에서 프랑스어과를 거쳐 이화여대 불어불문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뉴욕대학교 대학원 예술 경영학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학창 시절 당시 주변 지인들의 평이 상당히 좋았어요.

대원외고 시절 학교 옆에서 파는 햄버거를 먹으려고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달려가서 줄을 서서 사 먹기도 했는데, 그 당시에도 삼성그룹 딸로 유명해서 주변 친구들은 ‘재벌가의 딸도 저런 음식을 먹는구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당시

그녀의 소원은 경호원 없이 친구들과 소박하게 떡볶이를 사 먹는 것이었다고 해요.

기사나 경호원에게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게 하면 단호한 목소리로 거부하는 모습을 학생들이 많이 봤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평범한 독서실에서 공부를 해서 학생들을 놀래키기도 했죠.

학생들은 우스갯소리로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할 정도로 평범한 생활을 했다고 해요.

그리고 친구들과는 사이좋게 지내서 재벌과 딸이라는 위화감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성향은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윤형

씨의 과 후배는 ‘저희들에게는 언니가 재벌가의 막내딸이는 느낌이 전혀 없어요. 보통 학생들처럼 친한 친구들이랑 이야기도 잘하고 수업에도 잘 들어와요. 그래서 언니가 홈페이지를 만든 이후에도 매체에서는 언니 이야기로 시끄럽지만, 학교 내에서는 전혀 이슈가 안 됐어요”라고 웃으면서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윤형 씨는 2003년 9월 싸이월드에 ‘이쁜이 윤형이네’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신의 일상을 담았습니다.

재벌가 딸이 홈페이지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네티즌들의 방문이 이어졌죠.

당시 네티즌들은 철옹성처럼 쌓여 있는 재벌가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어 이윤형 씨의 홈페이지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다른 홈페이지처럼 이윤형 씨의 홈페이지에 처음에는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과 개인 사진이 올라와 있었어요.

 

 

자신과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와 사진들도 올렸죠.

특히 이윤형 씨의 홈페이지에는 좀처럼 외부에 드러나지 않던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의 일화 그리고 이윤형 씨와 남자친구 사이에 에피소드 등이 담겨 있어 네티즌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습니다.

 

이 밖에도

가족과 함께 보낸 성탄절 이야기, 치아 교정으로 고생한 이야기, 집에서 김장한 이야기 등 재벌가의 사생활도 담겨 있었어요.

이렇게 재벌 딸 티 내고 다니는 면이 전혀 없었고, 성격이 소탈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2003년 태풍 ‘매미’ 때 익명으로 1억 원을 기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주위에 불우한 사람들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주는 착한 성격을 지녔다고 해요.

이런 막내딸을 이건희 회장은 끔찍하게 아끼기로 유명했습니다.

이처럼 아버지의 사랑과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던 이윤형 씨는 2005년 미국에서 돌연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교통사고로 알려졌었죠.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삼성가에서는 남자친구와의 교제를 못마땅해하며 결혼에 크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 남자친구가 바로 싸이월드에서 이미 대중들에게 공개한 남자친구죠.

남자친구는 신 씨인데 신격호 회장의 호적에 기록이 안 된 자식이라는 루머가 있었으나 사실이 아니고요.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 집안 자제였다고 합니다.

결국 부모인 이건희 씨와 홍라희 씨는 이윤형 씨를 반강제로 미국에 유학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윤형 씨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행동을 했다고 해요.

 

그녀는

남자친구를 몰래 불러 미국에서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삼성가에서 알게 되자 이윤형 씨와 가족들의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고 전해집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이윤형 씨의 남자친구 역시 그녀와의 만남을 포기하고 결국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남자친구가 좀 더 뚝심을 가지고 밀어붙이거나 좀 더 기다려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데, 그러기에는 나이가 무척 어렸습니다.

남자친구는 당시 27살이었죠.

삼성가가 보기에 대기업이 아닌 중견기업 자재는 자기들과 레벨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그 남자친구 또한 한 가정에서는 누구보다 소중한 자식이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아들, 딸은 출신에 관계없이 부모의 가장 소중한 자식이잖아요.

그래서 이 과정에서 그가 얼마나 상심하고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짐작 가능합니다.

그런데 남자 친구의 마음이 변한 것을 알게 된 이윤형 씨는 이런 사실을 견디기 어려워했습니다.

예술가적 기질인 농후했던 그녀는 그만큼 순수했고, 나이 또한 당시 26살밖에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큰 충격을 받고 우울한 증세에 시달리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윤형 씨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아파트에서 전기줄로 이를 내고 만 것이죠.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녀의 사망을 몇 시간 후 남자친구가 가장 먼저 발견했다고 해요.

그녀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가 가장 먼저 발견하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너무나 가슴 아픈 이윤형 씨의 러브 스토리가 최근 다시 재조명되며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성공하고 화려한 인생을 인스타 등에 자랑하며 사는 사람들을 보니 그녀의 모습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또한 돈이 차고 넘치는 삼성가에서 역설적이게도 사랑으로 세상을 등진 이윤형 씨를 보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재벌가의 딸답게 어렸을 때부터 오빠, 언니들과 함께 부친인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에버랜드 주식 21만 여주, 삼성 SDS 주식 257만 여주, 삼성 네트웍스 주식 290만 여주 등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25살이라는 나이였던 2004년에 국내 재산 순위 32위, 1950억 원으로 오빠 언니들과 함께 막강한 재력가였습니다.

언니들과 재산이 거의 비슷했죠.

사망한 후 이 재산은 모두 삼성재단에 증여되었습니다.

 

이 많은

돈도 이윤형 씨를 행복하게 못해 주었는데요.

하늘나라에서는 정말 행복한 사람으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윤형 씨의 지인은 일부 네티즌에게 막말하지 말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용기를 내서 씁니다.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지만,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요. 이건희 씨 막내딸 이윤형 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분만 일반인이지, 말 그대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귀하게 자랐고, 여느 나라 공주 왕비 부럽지 않게 고이 막내딸이라 가족의 사랑만 받고 자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랑 달랐습니다. 머리를 쓰지 않고 가슴으로 사람을 대했고, 늘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 기사, 아저씨한테도 꼬박꼬박 존댓말 했고 자기가 가진 것을 남에게도 베풀 줄 알았습니다”

“쓰나미 때도, 태풍 매미 때도 이름 없이 무기명으로 많은 돈을 기부했고, 기본적으로 명품과 비싼 물건들을 걸치고 있었어도 자랑하지 않고 정말 바르게 살았습니다”

“나한테 싸이월드 개설했다고 일촌 신청도 하고, 사진 올리는 거 가르쳐 달라고 했던 정말 귀엽고 밝고 명랑에서 누구든 다 좋아하던 정말 닮고 싶은 언니였습니다”

“이화여대 재학 중 목적이 있어서 접근하는 언니들에게는 깔끔하고 똑 부러지는 태도를 보였던 멋진 모습과 친구들이 자신을 특별히 볼까봐 절대로 모임이나 놀러 갈 때도 자기 분량의 돈만 냈던, 좀 있다고 자랑하지 않던 속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친구들조차도 삼성의 외동딸 대한민국 여성 4번째 부호, 이런 걸 잊게 할 정도로 허튼 낭비는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 기준으로 남이 하기 싫어하는 걸 자기가 했고, 뭔가 모를 중압감에 여자라서 여자기 때문에 조바심 내는 나한테, 남동생들마저 내 적 같아서 언젠가 난 여자라서 안되겠지라는 못된 생각을 하던 내게 아니라고,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형제는 가족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맹목적인 사람들이 뭐라고 욕해도 나를 지켜줄 단 하나의 든든한 빽이라며 예쁘게 웃던 언니였습니다”

“근데 그렇게 죽었습니다. 미친 못하겠습니다. 아닐 것 같고, 3일 전 연락을 받았을 때 농담일 줄 알았습니다. 뉴스에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냥 부풀려진 걸 거라 생각했는데, 근데 왜 사람들은 이렇게 착한 정말 밝고 옆에 있으면 주위가 환해졌던 향수 같은 우리 언니가 죽었는데, 젊은 나이에 그렇게 가버렸는데 왜 욕할까요?”

“나도 만약 내가 죽으면 그때도 사람들이 똑같은 이유로 우리 가족을 나를 욕할까요?”

“슬퍼요. 언니가 이렇게 죽은 것도 감당이 안 되는데,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당신들이 아는 건 신문에서 읽은 글들뿐이면서, 누군가에겐 소중했을 친구를 자식을 이런 식으로 욕해도 되는 건가요?”

“부모라면 삼성이고 돈이고 필요 없이 자식이 죽었는데 가슴이 터질 것처럼 미칠 텐데 왜 이해를 못 하시고, 그런 리플들을 남기시는지. 제 친구가 그러길 ‘죽는 건 다 똑같다’라고 옆에서 그러네요. 부자건 서민이건 죽는 건 똑같잖아요”

“그런 것처럼 자식이 10명이건, 돈이 100억이건 자식이 죽으면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슬픈 게 당연한데, 이 부분에서도 비난받는 이건희 회장님이 안타깝습니다”

“‘젊은 나이에 누릴 거 다 누리고 갔으니 잘 죽었다’ 어떻게 이런 말씀을.. 당신들은 원하는 외모에 원하는 성별을 가지고 대재벌가의 자손으로 태어나서 26세에 생을 마감하라면 그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이건 선량한 국민 하나가 안타깝게 젊은 나이로 죽은 거잖아요. 그냥 명복을 빌어주세요. 하늘나라에서도 편안하기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히 가세요. 정말 너무 좋아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거기 가서도 예쁘게 언니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좋아하는 푸딩도 실컷 먹으면서 행복하게 있길 빌어요”

“편하게 가세요. 저도 언니처럼 살게요. 다시 태어나도 꼭 만나고 싶어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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