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황제가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 올해 82세 현철의 최근 다시금 알려진 그의 눈물겨운 근황을 확인해보실 수 있어요..

80대를 넘어선 나이에도 여전히 오빠 소리를 듣는 국민 가수 현철은 40년째 흔들림 없이 국민적 인기를 유지하며 트로트 황제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입니다.

보통

대중 가수의 인기라는 것이 오르락내리락 또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하지만, 현철의 경우는 워낙에 히트곡이 많다 보니 초등학생들까지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를 정도이며 또한 그의 토종 된장 같은 구수한 목소리와 독특한 꺾기 창법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어서 심지어 한때 일본의 어떤 학자가 그의 목소리를 연구해 보겠다며 특별 주문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국민 가수로서 현철은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으며 오랫동안 정정하다면 정정하게 활동하고 있는 편이었지만, 그러나 정말 안타깝게도 2000년대 중반부터 그의 건강에는 조금씩 이상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특히 60대 중반이었던 2007년에는 방송에서의 공연 녹화를 앞두고 3미터 높이의 무대에서 추락 사고가 나 골절된 뼈가 폐를 건드려 사경을 헤매기까지 했고, 그리고 최근에는 병명도 밝히지 못한 채 혼자 걷는 것조차 어려워 2018년 가요 무대를 끝으로 더 이상 볼 수 없는 현철의 가슴 아픈 사연과 최근 근황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합니다.

 

1942년

부산에서 태어난 현철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시장에서 좌판을 깔고 씨앗을 파는 종묘 장사를 했고, 그리고 그때 어머니가 ‘울고 없는 박달재’를 무척 잘 불렀는데, 그 소질을 이어 받은 현철이 학창 시절 노래 대회에도 많이 나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목소리가 독특하니 그쪽으로 한 우물을 파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일찌감치 가수의 꿈을 키웠고, 그러나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아버지가 당시만 하더라도 천시 받던 딴따라를 반대하며 아들 현철에게 은행원이 되라며 노래하는 그를 혼내기가 일쑤였습니다.

결국 현철은 아버지의 고집에 못 이겨 잠시 노래의 꿈을 접고 20살이 되어서는 동아대 경영학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하지만 타고난 끼를 버리지 못했던 현철은 다니던 대학교까지 중퇴하고, 1969년 ‘무정한 그대’로 가요계에 데뷔하게 됩니다.

 

하지만

데뷔는 데뷔일 뿐 당장 스타가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고, 또한 그가 데뷔할 당시에는 남진과 나훈아가 한창 주목받고 있었기 때문에 신인 남자 가수가 그 틈에서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사실상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현철의 서러운 무명시절은 자그마치 20년간이나 이어지게 되는데, 그리고 이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까지 했지만, 워낙에 형편이 어려워서 당시 두 사람은 결혼식은커녕 물 한 그릇 떠놓고 식을 올려야만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당시 현철의 아내가 겪은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는데, 심지어 두 사람이 결혼 후 신혼 방으로 친구 집에서 셋방살이로 시작해야 했고 이후 13번이나 이사를 다니며 쌀 한 가마니 살 돈이 없어서 봉지쌀을 사다 먹고 겨울에는 연탄 낱 장으로 사다가 추위를 달래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이때 현철이 가수로서는 수입이 없다 보니 생계를 위해 두 사람 모두 별의별 일을 다하게 되는데, 당시 현철은 낮에는 건축 현장에서 벽돌을 짊어지고 밤에는 야간업소에서 노래를 불렀고, 그의 아내는 옷과 카세트 장사를 하며 집안의 살림까지 도맡아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당시에는 사는 게 워낙에 힘들어 사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은 포기하거나 헤어질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훗날 그의 고백에 따르면 그 어렵던 시절 서로가 다투거나 목소리를 높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또한 아내는 그런 고비 때마다 참고 버텨주었으며 본인 역시 비록 돈을 잘 벌진 못했지만, 늘 따뜻한 말로 아내를 토닥여 주었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도 무명 생활이 끝이 보이지 않아 그냥 그렇게 버티며 끊임없이 셋방살이를 전전할 수밖에 없었고,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현철은 노래를 놓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1974년에는 본명 강상수를 대신해 친구 집 아들같이 부르기 쉬운 지금의 ‘현철’이란 이름을 이때부터 예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솔로 가수로는 이미 실패해 봤기에 이번에는 7명이 함께 모여 ‘현철과 벌떼들’라는 그룹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당시 이들은 외국의 팝송을 주로 카피하며 번안 곡들을 묶은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해 시간이 지나갈수록 멤버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갔고, 후에는 트로트곡을 전문적으로 작곡하며 명성을 떨친 박성훈과 현찰만이 남았지만 끝에는 박성훈마저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때 현철은 도무지 안되겠다 싶어 가요계를 떠나려고 마음을 먹고 정리를 하게 되는데 하지만 미련이 남았는지 고심 끝에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그동안 자신 때문에 고생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그 유명한 ‘앉은나 서아 당신 생각’을 만들게 됩니다.

 

이후

마침내 이 노래가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하지만 이때만 해도 현철 그가 방송에는 자주 출연하지 못한 탓에 당시 노래는 인기가 많았지만 정작 노래를 부른 가수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얼굴 없는 가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7년 아프리카 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장에 있는 한국 근로자들을 위해 조용필, 주현미, 김연자 등 당시 내로라는 최고의 가수들이 공연을 가게 되었는데, 그런데 그때 파견된 근로자들이 고국의 부인이 보고 싶다며 얼굴은 잘 모르지만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부른 가수를 공연단에 꼭 포함시켜 달라고 사전에 요청하면서 얼떨결에 현철 그도 합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얼굴이 잘 안 알려진 글을 보고 당시 사람들이 현철이 리비아로 떠나는 근로자를 오해하기도 했으며 그러나 그가 근로자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 고국의 그리움으로 눈물을 적시던 근로자들의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타 대중들에게까지 전해지자 마침내 20년간의 무명 생활을 정리하고 꿈에 그리던 인기 가수 대열에 안착하게 됩니다.

 

이후부터

현철은 대한민국 가요사에 한 축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말 많은 사랑을 받게 되는데, 특히 1988년에 발표한 ‘봉선화 연정’은 당시 김흥국의 ‘호랑나비’와 더불어 가요계 순위란 순위를 모두 휩쓸면서 마침내 가요 대상에서 최고가수상인 대상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0년에는 ‘현철과 벌떼들’에서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박성훈이 만든 ‘싫다 싫어’로 또 한 번 대상을 차지하며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이자 국민 가수로 우뚝 서게 되었고, 이후 그는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황으로 불리게 되면서 침체기로 접어들던 트로트를 다시 활성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거칠 것 없는 탄탄대로 현철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고, 특히 1990년대에는 무려 6년간 연속으로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인기를 독식해 한때 그가 한국 여론 설문조사에서 나훈아, 남진, 조용필을 제치고 가장 인기 있는 가수 부분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지독한 가난과 끝없는 무명시절을 이겨내며 가수로서는 누구보다 크게 성공한 그였지만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0년대 중반부터는 아무래도 나이 때문인지 전성기만큼은 노래에 힘을 싣지 못하게 되는데, 설상가상 2007년에는 방송에서의 공연 녹화를 앞두고 공연 리허설 중 3m 높이의 무대에서 추락 사고가 나 갈비뼈 세 개의 골절상을 입어 한때 사경을 헤매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사고가 난 지 얼마 안 돼서 같은 해 9월 주치의와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복부와 가슴 밑까지 붕대를 감고 무대에 올라오기도 했으며, 이후부터는 나이에 비해 정정하다면 정정하게 활동하는 듯하다가 2019년부터 또다시 안타깝게도 좀처럼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됩니다.

특히 그가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2018년 가요 무대에서 ‘봉선화 연정’을 불렀었는데 왠지 모르게 어딘가 많이 힘들어 보인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은 그에 대해 많은 걱정과 우려를 하게 되었고, 설상가상 당시 가요무대를 관람한 방청객의 목격담에 의하면 당시 현철이 혼자 걷는 것조차 어려워 피디들에게 구축해서 겨우 걸어갈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후 팬들의 우려가 점점 커지자 2021년에는 그의 아내가 자필 편지로 남편의 근황을 전하게 되는데 편지의 내용을 보면 ‘남편이 큰 수술 후 2년 남짓 재활 치료를 받고 있고 그리고 다시 팬들과 만나기 위해 현재는 재활 치료에만 전념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이번 일을 겪으며 남편에게 제일 큰 힘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리고 남편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시는 팬들에게 감사하다’라며 그 마음을 절대 잊지 않고 조금이라도 보답하며 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그의 아내는 현철의 수술명이나 병명까지는 공개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현철의 오래된 지인에 의하면 현철 그가 몇 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현재 재활 치료 중임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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