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사람이 이렇게까지…” 20년 기러기 생활 고수하더니만.. 모든게 변해버린 김흥국의 안타까운 근황..

김흥국의 인생은 항상 즐거웠습니다.

그는

기러기 아빠로 13년 이상을 지냈지만 언제나 흥겨운 모습으로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미투 사건이 터진 후 그의 인생은 꽤나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최근, 그는 유튜브 채널도 개설하여 2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어엿한 유튜버 연예인이 되었습니다.

유튜브 개설일은 2019년 5월 29일이었습니다.

김흥국은 서울 종로 낙원상가에서 하루하루 벌어먹는 무일푼 밴드로 음악가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밴드 이름은 ‘오대장성’이었고 김흥국은 밴드의 드러머였다.

‘라디오스타’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리드미컬하게 젓가락으로 테이블을 쳤다”고 말했고, 드러머가 예능 프로그램이나 라디오에 나갔을 때를 두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건강한 집’에 출연해 김흥국의 근황을 털어놨다.

그는 지난해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축구 경기를 마친 어느 날, 그는 걷는 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가만히 있어도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김흥국은 병원에서 퇴행성관절염 진단을 받았고, 움직일 때에도 무릎이 삐걱거렸고, 축구를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상태가 많이 좋아져 예전처럼 축구를 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넓은 건물에 3채의 주택도 눈길을 끌었다.

김흥국의 거실은 탁 트이고 잘 정돈된 모습과 깔끔한 ​​내부에 배치된 다양한 식물이 인상적이다.

그는 1986년 1집 앨범으로 데뷔했다.

 

 

1988년 2월 15일 M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불치병을 앓는 소녀에 대한 에피소드가 방영됐고, 소녀의 아버지와 가까운 김흥국이 처음으로 TV에 출연해 ‘정아’를 부르며 등장했다. 그녀를 격려하기 위해 그가 쓴 노래.

덕분에 그는 신인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번 곡 ‘정아’는 김흥국의 대표곡 ‘호랑이’와는 상반된 느낌의 여유로운 발라드 곡이다.

 

그는

무대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분위기를 잡고 통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불러왔습니다.

안타깝게도 소녀는 1990년경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런 사연으로 인해 그가 방송에서 주목받게 되었지만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것은 컬트적 느낌의 댄스곡 ‘호랑나비’입니다.

‘호랑나비’라는 한 노래로 김흥국은 가요톱10에서 골든컵을 수상하며 예능에서도 10대 가수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어린이 영화 ‘반달가면’에서 심형래와 함께 어린이 계의 아이돌 자리에도 당당히 오르기도 했습니다.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며 예능인으로도 이름을 알리게 된 그는 다음 앨범에서 ’59년 왕십리’를 발표하는데 ‘호랑나비’와는 달리 제법 세련되고 제대로 된 콘셉트의 명곡으로 꽤 호평을 받았습니다.

김흥국의 노래 ’59년 왕십리’에 대해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 중에는 김흥국 노래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정말 김흥국이 부른 게 맞냐는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사실 원래 이 노래는 가수 김남화가 1987년에 ‘왕십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곡으로 김흥국의 노래와 비교하면 가사 일부가 다른 것도 사실입니다.

김흥국은 꾸준한 활동을 통해 정상적인 노래들로 다시 한번 히트를 치며 베스트 앨범까지 내놓으며 1993년까지 가수 인생의 최전성기를 달렸습니다.

그러나 1993년에 김건모의 4개곡 ‘핑계’가 큰 인기를 끌자 김흥국도 한번 레계곡으로 도전해 보자며 성인들을 위한 레게 음악을 모토로 한 앨범 ‘라스트 레게’를 1994년에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김흥국은 어록 제조기로도 유명한데 ‘터보’의 노래 ‘사이버 러버’를 ‘시 버러버’라고 하거나, UCLA 대학을 우크라 대학이라고 발언한 적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김홍국은 자신이 모르는 노래나 가수가 나오면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읽었을 뿐이며 실수가 있어야 재밌다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레전드 급 방송 실수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엄청난 축구 매니아로도 알려진 김흥국은 연예인으로 인기를 얻은 뒤 월드컵 때마다 항상 연예인 응원단을 조직해 원정 응원을 해왔다고 합니다.

1990년 피파 월드컵 이탈리아 때부터 자비로 원정 응원단을 조직해 월드컵 원정 경기에 꽹과리치며 응원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김흥국은 축구를 잘하며 ‘왕십리 턴’이라는 엄청난 기술을 보유한 동네 아저씨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놀라웠습니다.

A씨는 김흥국에게 미술대학 교수라고 속여 접근해 투자금으로 거액을 요구했지만 김흥국은 사기 사실을 깨닫고 거절했다.

설득력 있는 증거가 나오자 A씨의 주장은 신빙성을 잃었고, 이후 다른 남성 2명으로부터 혼인신고 사기 혐의로 고소당했다.

김흥국은 ‘아이콘 콘택트’에서 팽현숙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현숙 씨는 김흥국의 현재 상태가 걱정돼 전화를 했다.

그녀는 김흥국에게 왜 나쁜 생각을 하지 않도록 전화했는지 기도했다.

 

그리고

과거 그는 소주를 마시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던 자리에서 자신의 실수에 대한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그는 하지말아야할 소주 이후의 운전으로 인해 심려를 끼쳐 미안한 딸과 술을 마시지 않기로 약속했었는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시청자들에게 많은 웃음을 주면서 동시에 논란이 많았던 김흥국 씨가 앞으로는 이름답게 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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