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상한 남편이지 못해 미안해..” 갑작스러운 김병만 이혼 소식.. 12년 만에 그녀와 헤어지게된 안타까운 이유..

김병만의 이혼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김병만의 소속사 측은 한 매체와의 전화통화에서 “김병만이 별거한 지 10년이 넘었다”라며 “아내와 떨어져 산 기간이 기록기에 자연스럽게 정리가 됐다”라고 밝혔는데요.

최근

김병만은 결혼한 지 12년차인데, 헤어진 지 10년이 넘었다면, 처음 2년만 결혼하고 그 다음 10년 동안 동거를 하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연령.

합의 이혼이 아닌 절차상 이혼을 한 것으로 파악되며, 재산분할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었으나 법원에서 분할 문제가 성공적으로 해결됐고, 전 부인과 함께 각자의 지원을 받아왔다고 진술했다. 다른.

 

 

김병만은 지난 2011년 7세 연상의 여성과 혼인신고를 했다. 그의 전처는 교사였으며 재혼하여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딸을 두었습니다.

 

현재

파경 소식이 알려지며 김병만 본인이 심경과 함께 근황을 전했는데, 지난해 5월 모친상을 당했던 것을 언급하며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방송 안 하네’ 이런 댓글이 많더라. 자연스럽게 방송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방송을 줄인 이유도 “무대 위에 서는 게 힘들었다.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가 없어서 버라이어티 예능에도 나갈 수가 없었다. 제가 직업이 방송인인데 웃고 떠도는 방송이 싫다고 하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느냐”라며 “여러 가지 생각을 등에 업고 외곽으로 나오게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혼과 소송으로 방송 활동에 집중이 안 돼 방송에 나오지 못했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렇다면 그는 최근 도대체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었을까요?

김병만은 방송이 뜸했던 사이 최근 3년간 경기도 양주의 산속에 있었다고 하는데, 그는 양주에서 한 놀이문화 공간을 차렸고 이 공간에는 김병만이 직접 깎고 만든 나무공예 소품과 나무로 된 놀이기구가 즐비하며 ‘정글의 법칙’으로 어린 시청자들의 영웅이 된 그가 어린이들을 위해 이 공간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김병만은 “나무를 깎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생각이 많은 편인데 나무를 깎으면 수많은 고민이 사라진 기분”이라며 “양주 산속에서 3년간 있었다. 나무도 좋아하고 땅도 좋아하니까 그런 것들을 찾아다녔다. 앞으로는 어린이 숲도 만들어보고 싶다”라며 향후 계획을 밝혔는데요.

그러면서 그는 “제 길만 열심히 살겠다”라며 “개그맨 동료와 지방을 돌며 달인 쇼도 하고 있다. 코미디를 하면 제가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앞으로도 제 생각, 취미가 녹아있는 재미를 보여드리겠다”라고 밝혔습니다.

김병만은 과거 결혼했을 당시만 해도 “딸의 성을 하루빨리 김 씨로 바꿔주고 싶어서 혼인신고를 서둘렀다”라고 말하며 아내에 대한 극진한 애정을 보여준 바 있었는데요.

 

 

연상의 일반인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공식 발표한 뒤, 김병만은 지나친 관심의 자제를 당부했는데, “많은 분들이 결혼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행복하게 잘 살겠다”라며 “일반인 여자친구의 사생활을 보호해주고 싶다. 일반인인 여자친구와 아이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정중하게 거절한다”라며 당시까지만 해도 가족이 될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는 사랑이 묻어나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12년 연예대상 최우수상 수상 당시에도 김병만은 수상 소감에서 “누나 고맙고 사랑해”라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토록 애정을 표현했던 그가 시간이 흘러 결국 이혼이라는 안타까운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김병만은 2013년에도 결혼 생활을 언급하며, “교수 출신 아내가 자신을 애 취급한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었는데요.

당시 ‘정글의 법칙’에서는 김병만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아내와 전화통화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는데, 김병만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제일 먼저 딸의 안부에 대해 물었고, “앞으로 30일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몸 상태가 심각하다. 앞으로 4일밖에 못 살 것 같다”라며 장난을 치는 등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 바가 있었습니다.

아내와 통화를 마친 김병만은 “아내가 교수 출신이라 나를 애 취급한다. 집에 있는 딸하고 똑같은 입장”이라며 “지금은 딸이 커버려서 나는 막내 아들”이라고 투덜거렸고, 이에 ‘정글의 법칙’ 제작진은 “어쩐지 가족 자랑 중인 것 같은데”라는 자막을 삽입해 웃음을 자아낸 바가 있었는데요.

또, 당시 김병만은 “아내는 뚱뚱이 나는 땡깡이”라며 부부 사이의 애칭을 공개했는데, 이에 네티즌들은 김병만 아내 얘기 처음 했는데 모두 자랑인 듯 ‘아내 자랑하는 자상한 남편 김병만’, ‘김병만의 새로운 모습’이라는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방송에서도 김병만은 히말라야에서 하산 전날 헬기를 기다리면서, 가족들과 전화통화를 하며 전화를 마친 후 ‘사랑한다’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제작진에게, 김병만은 “서로 감정 표현을 잘 못한다”라며 쑥스러워하는 모습이었고, 그렇지만 “아내를 뚱뚱이라 부르고 저는 부인 휴대전화에 땡깡이로 저장돼있다”라며 주저리주저리 가족에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신난 표정을 지어 강인한 족장으로 활약했던 평소 모습과 다른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그때까지만 해도 방송에서까지 아내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던 김병만은 하지만 시간이 흘러 결국 이혼이라는 가정이 파괴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는데요.

더구나 그의 가정은 어린 시절부터도 너무나 힘든 일들을 끊임없이 겪어야 했는데, 할아버지가 부유하셔서 재산의 절반을 큰아버지에게 물려주시고 나머지 절반은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고모, 이렇게 세 분께 나눠주셨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그 돈으로 ‘집 짓는다’, ‘양장점 한다’ 등 여러 가지 사업을 시작하셨다가 모두 망하는 바람에 재산을 모두 날려 김병만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조금 남아 있었던 산과 밭마저 다 없어지고 초등학교 때부터 집에 오면 일을 해야 했던 김병만은 망치질에, 도끼질에 다시 태어나면 농촌에서 안 태어나겠다고 할 정도로 일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는 별로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고 하는데, 학교 다니면서 빨리 졸업해서 우리 집에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고, 자신이 집안에서 유일한 아들이니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그는 개그맨이 되는 방법도 몰랐고, 그저 tv를 통해 개그맨들을 봤을 때 ‘하늘에 떠있는 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죠.

그 당시 김병만의 꿈은 단순한 기술자였고, 그저 빨리 기술을 배워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는 이런 상황에서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했고 직업훈련소에 가서 일하면서 자격증을 땄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병만은 tv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친구의 모습을 우연히 보았고, 그 친구의 모습을 보며 ‘저 친구가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이렇게 돈을 벌어서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그러면서 김병만은 ‘내가 진짜 하고 싶고, 내가 즐길 수 있는 걸 하자’는 결의로 과감히 도전하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그는 어머니께 30만 원을 받아 바로 상경해서 곧장 연기학원에 등록했지만, 연기학원에 다니는 사람 중에서 가장 작은 키에 촌스러움이 묻어 있었기에 김병만은 배역을 얻지 못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데요.

더구나 그는 체육관 일을 도우면서 숙박을 해결하며 간신히 연기학원에 다녔지만, 체육관에는 샤워실이 없어서 여름에 너무 더워 새벽 2~3시쯤에 아무도 없는 공용 화장실에서 샤워하다 경비 아저씨께 들켜 옷을 입지도 못한 채 도망가는 상황을 겪기도 했는데, 그때 그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길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을 버티면서 연기학원 수료를 앞두고 진행된 개인 면담에서 김병만은 원장님으로부터 “너는 키가 작아서 힘들 거다. 오디션을 봐도 감점 요인이 많을 거다. 다른 일을 찾아보라”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요.

김병만은 그때 속으로 “시작할 때 진작 알려주지”라는 생각도 했지만, “두고 봐라 사람 잘못 봤다”라고 이를 갈면서 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배우며 매년 개그맨 공채에 응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개그맨 공채에 무려 6차례나 연이어 낙방하고 말았는데, 시험에 앞서 연습할 때에는 완벽했지만 울렁증이 심해 실전에서는 실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시험장에만 서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긴장 때문에 김병만은 불합격 통지를 받는 일이 반복되기만 했습니다.

개그맨 공채 시험은 1년에 한 번 있는 것이기에 떨어지면 1년을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고, 김병만은 도무지 생활이 어려워 신문 배달을 비롯해 통신, 전기 배관,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해 나갔는데요.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러가지 기술을 배웠지만, 점차 저축을 하면서 꿈을 쫓기 시작했고 갑자기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생활비를 충당하고 나서 다시 운동에 매진했고 그 시절도 그랬다. 2000년에 나는 PD 라디오 방송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전화는 그에게 코미디 페스티벌에 참석하도록 격려하는 것이었고 물론 그는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김병만 씨는 먹고살 방법이 없어 시골로 돌아와 동네 아줌마들과 동네 아이들에게 농담을 하며 열심히 운동했다. 이것 때문인가요?

그는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당당하게 2위를 차지했고, 현지 추천으로 영화 ‘선물’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곳에서 김병만은 개그맨 지망생 이수근을 만나 함께 호흡을 맞추며 오디션에 합격했다.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며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도 당시 감독은 “이 아이들은 코미디 콘서트에 나와야 한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김병만과 이수근은 감독의 추천과 ‘개그콘서트’ 출연 기회를 얻게 됐다.

처음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생겼을 때 개그맨이 된 줄 알았으나 2001년 개그맨 시험에 다시 응시해 합격했다.

그는 ‘개그콘서트’에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개그맨 공채 시험에 떨어졌고, “신선하지 않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병만은 개그맨 지망생으로 ‘개그콘서트’ 무대에 계속 출연하며 “이거 하면 그냥 공짜로 주겠다”며 마음 속으로 큰 후회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개그맨 지망생으로 열심히 활동했지만, 친구 이수근이 생활의 어려움으로 인해 다른 길을 가야 했고, 그 상황을 알던 그는 이수근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김병만은 방송국의 연락을 받고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무림남녀’를 시작했고, 2002년 드디어 꿈이었던 개그맨 시험에 합격했다.

김병만은 오랜 고민 끝에 개그맨의 꿈을 이뤘을 때 환호는커녕 말없는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김병만은 자신의 우울증의 원인을 뒤늦게 깨달았다. 무대에 오르기 전 그는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내 말이 틀렸다면 어쩌지?” 또는 “내 대사와 사람들이 웃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것은 우리 앞에 있었습니다.

그의 긴장감을 눈치챈 ‘개그콘서트’ PD는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말더듬이도 정답이다. 틀려도 계속 진행하세요. 무대에서는 누구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네가 옳아. 그는 “나쁜 말을 해도 긴장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김병만은 실패를 각오하고 무대 위에서 연습을 했고, 생각을 바꾸면서 실수를 해도 무대 위에서는 마음이 편해지고 무대 불안도 완전히 극복하게 됐다. .

‘마스터’라는 코너가 큰 인기를 끌면서 결국 인기 개그맨이 됐고, 그 인기를 발판으로 ‘정글의 법칙’에 출연해 포기하면 표적이 되어 기뻐하기도 했다. 첫 번째 실패였다면 지금의 ‘마스터’, ‘정글의 법칙’으로 알려진 김병만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힘든 역경을 딛고 톱 개그맨으로 우뚝 서게 된 김병만.

이후 그는 반려자를 만나 결혼까지 골인하며 행복한 가정까지 꾸리게 되는데요.

하지만, ‘정글의 법칙’이 해외 촬영이 많아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촬영 도중에는 크고 작은 여러 사고로 부상도 많이 당했으며, 이후 그의 어머니가 전북 부안의 갯벌에서 조개를 채취하다가 밀물에 고립돼 끝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를 당하기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여러 불행한 일을 겪어온 김병만은 끝내 아내와도 파경을 맞이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된 것인데요.

모쪼록 결혼 생활의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한 김병만이 하루빨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를 바라고 다시 브라운관에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개그맨 김병만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