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를 어쩌나.. 태진아 부인의 충격 소식.. 그리고 최근 그가 “옥경이와 함께 가겠다..” 갑작 선언한 진짜 이유

가수 태진아가 신곡 ‘같이 가겠다’로 활동 중이지만, 현재 투병 중인 아내를 위한 노래로 알려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태진아의 아내 이옥형(71)씨는 현재 심각한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년 전부터 시작된 치매는 최근 남편 태진아와 둘째 아들 가수 이루 외에는 다른 사람의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속도로 악화됐다. , 때로는 남편조차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데, 이제는 그녀가 남편보다 이루를 더 알아본다고 한다.

또한

이옥형 씨는 일상생활 능력과 사회활동 능력을 모두 상실한 상태이고, 물건을 두고도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찾아 헤매는 것은 물론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하고 약속을 하고도 잊어버리며 간단한 계산도 틀리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는 등 혼자 외출해 목적지에 가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현재 간병은 남편인 태진아와 아들인 가수 이루가 함께하고 있는데, 태진아는 아직 자신이 현역 가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아내를 위해 방송과 행사를 많이 줄였고, 자신이 아내 옆에서 40%를, 이루가 60% 정도 간병을 하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태진아는 아내가 자신의 얼굴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집 안에 함께 찍은 사진들을 여기저기 걸어놓았고, 신곡 표지에도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을 표지 사진으로 넣었으며, 신곡의 노랫말 역시 태진아가 직접 썼고, 아들 이루는 작곡을 해 평생 남편과 아들을 뒷바라지한 이옥형 씨에게 부자가 합작하여 눈물의 사부곡이자 사모곡을 발표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편

태진아는 “신곡을 듣고 아내 반응에 대해선 가족 모두가 울었고, 아내도 많이 울었다. 아내는 휴대전화로 그 노래를 듣고 따라 불렀다. 이 노래를 듣고 울었는데, 제가 좋아하는데도 그 분이 주셨어요. 2년 전부터 서서히 가사를 쓰기 시작했어요. 가사를 쓰면서 많이 울었고,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녹음을 시작하자마자 이틀 동안 쉬지 않고 울었고, 체력이 떨어져서 녹음을 잘 못해서 녹음을 하게 됐어요. 3~4일은 쉬면서 감정을 정리한다. 이어 “다시 녹음했다.

태진아는 심한 치매에 걸린 아내를 보며 “꽃처럼 아름다웠던 청춘이 가버리고 얼굴의 주름살이 슬프게 울고 있다”고 글을 남겼다. 인생의 길이 힘들고 지칠 때에도 당신이 있어서 힘든 줄 몰랐습니다. 생명은 생명이다. 1989년 ‘옥경’ 발매 이후 34년 만에 아내를 위한 노래를 발표했는데, 그 가사에는 ‘그 사람과 함께한 삶은 당신의 행복이었다. 당신의 인생 여정이 끝날 때까지 나는 당신과 함께 갈 것입니다.

그는 “곡 작업을 하면서 ‘인생은 삶이었고 삶은 행복이었다’라는 가사를 썼는데, 가사처럼 아내가 그렇게 살고 나도 나대로 살아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평생 당신과 함께 갈 것입니다.’ 문자 내용대로 아내와 죽을 때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얼마 전 한 지역 행사에서 처음으로 신곡을 공개적으로 부른 순간을 회상하며 “관객들이 이 노래를 듣고 많이 울었다. 나 역시 이 노래를 부를 때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데, 나도 모르게 울기 시작해서 노래하는 게 힘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굴곡이 있지만 태진아는 가장 힘든 시기에 이옥형을 만났고, 태진아가 가수이자 대세 스타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많은 동고동락을 함께 하여 아내의 병을 도와준 것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수 생활에 실패한 뒤 미국으로 건너간 태진아는 어린 시절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중학교 교육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녀는 동생들의 학비를 지불해 주었고 구두닦이, 중국집 배달원, 식당 직원으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일이 없다고 하더군요.

가수로 데뷔한 이후에도 ‘추억의 푸른 언덕’이라는 곡으로 일각에서 유명세를 탔지만, 다른 곡들은 모두 실패해 결국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적합한 직업이 없었던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생계를 꾸리던 중 남진의 소개로 이옥형과 결혼하게 됐다.

미국에서 힘든 삶을 보낸 후 1984년 한국으로 돌아와 ‘경아의 사랑’이라는 앨범을 발매했으나 또다시 실패했고, 1988년에는 두 장의 앨범 ‘나처럼 사랑한 적이 있나요’를 발매했다. ‘떠날 시간이야’도 실패했다. 태진아는 계속해서 가요계의 문을 두드리지만 거듭된 실패로 좌절하고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재미한인 뉴욕폭격의 성화봉송 주자가 되었고, 당시 그의 공연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고, 한화의 양승국 사장은 음악회사 소속사에서 공연을 보다가 양승국이 태진아를 제안했고, 1989년 ‘옥경’이라는 곡이 발매됐다.

‘옥경’은 원래 나훈아를 위해 만든 곡으로 원제목은 ‘고향여자’였다. 나훈아가 녹음을 마쳤으나 앨범이 나오지 않아 태진아에게 곡을 주고 곡명은 ‘옥경’으로 바꿨다.

태진아에게 데뷔 16년 만에 첫 빅히트를 안겨준 곡이다. 앨범 판매량은 150만장에 이르렀고, 당시에는 엄지손가락을 옆으로 내밀어 추는 엄지춤, 일명 옥경이춤이 인기를 끌면서 하루에 한 번만 행사가 열릴 정도였다. 15곳을 방문한 태진아는 이 노래 덕분에 히트가수로 등극했다.

 

 

태진아에게 ‘옥경’은 가수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아내 이옥형의 이름을 노래 제목으로 쓸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가장 감사한 노래다. , 그의 아내는 태진아의 평생 여자이자 은인으로 기뻐했다.

 

더구나

이후 발표한 ‘거울도 안 보는 여자’가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를 하며 골든컵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고, 연말 방송사 가요대상에서는 10대 가수로까지 선정되었으며, 그 인기는 이후 후속곡 ‘미안미안해’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여성 댄서들과 함께 v자 춤을 추며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였고, 그다음 곡인 ‘선희의 가방’과 ‘사랑은 토요일 밤에’, ‘노란 손수건’, ‘사모곡’, ‘사랑은 아무나 하나’, ‘동반자’ 등 태진아는 발표하는 노래마다 모두 히트를 하며 트로트 4대천왕으로 그야말로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또한 배우 김자옥을 스카우트해 가수로 데뷔시켜 ‘공주는 외로어’를 KBS 가요대상 본상을 받을 정도로 히트시켰으며, ‘포기하지마’의 성진우도 제작해 성공시키는 등 대친아는 제작자로도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되는데요.

이 모든 일들이 ‘옥경이’가 히트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고, 만일 노래 옥경이가 없었다면 태진아는 지금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갈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태진아에게 있어 이옥형 씨는 그야말로 인생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더구나 태진아에 이어 아들인 가수 이루도 가수로 데뷔해 히트했고, 인도네시아 시장을 개척해 한류의 주역으로 최정상의 인기를 누렸으니, 이 모든 게 태진아의 노래 ‘옥경이’가 히트한 이후부터 이어진 행운임을 생각하면 태진아뿐만 아니라 이루에게 있어서도 어머니 이옥형 씨는 그야말로 최고의 인생을 살게 해준 고마운 어머니였던 것인데요.

하지만, 태진아 가족에게 항상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태진아는 2004년 어느 가을날, 오후 7시에 공연 스케줄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전북 고창으로 이동하던 중 사망할 뻔했던 대형 교통사고가 났었는데, 그날따라 비도 많이 오는 데다가 공연도 4곳이나 잡혀 있는 등 스케줄이 매우 빡빡할 뿐 아니라 이 상태에서 속도를 높이면 수막 현상이 발생해 사고가 날 수 있어서 당시 매니저인 김 모 씨가 상황이 위험한 걸 알면서도 과속을 할 수밖에 없어 빗길에 과속을 했지만, 이때 빗물에 타이어가 떠버리는 수막 현상으로 차가 미끄러져 도로를 탈선해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세 바퀴 이상을 돌아 언덕 및 낭떠러지로 추락했고, 그 밑으로 심어져 있던 나무에 가지 사이에 차가 걸렸는데 사고의 충격으로 차는 폐차 수준으로 완파되었지만, 타박상 정도에 불과한 상처만 입어 태진아는 죽음의 위기에서 천만 다행으로 살아날 수 있었으며, 해당 소식을 접한 아내 이옥형 씨는 너무나 놀라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태진아가 죽지 않았던 게 이상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그야말로 대형 사고였던 것인데요.

또한 태진아는 한때 억울하게 x박 파문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당시 그는 해외 억대 x박설에 대해 결백하다는 기자회견까지 가지며 결국 사실 무근인 것으로 판명이 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퇴진하는 한 매체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라스베거스 일대에서 거액의 판돈을 걸고 x박을 했다고 보도하자 “가족들과 미국 여행 중 일시 방문했을 뿐이다. 억대 x박을 하지 않았다. 진짜 억울하다”라고 해명했고 결백함을 호소하며 수차례 눈물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당시 태진아는 “14살 때 서울로 올라와 무척 고생했다. 그래서 돈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미국에 살 때 남들이 여행을 가는 것이 부러웠다. 가족과 여행 중 재미 삼아 카지노를 방문했다”라며 “저는 절대 억대 x박을 하지 않았고, 아들 이루도 게임을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태진아의 변호사는 “태진아가 본인의 진갑을 맞아 미국 여행을 떠났으며 인근 카지노에서 게임을 한 사실은 있지만, 재미 삼아 약간의 돈을 딴 것이지 억대 x박을 하지 않았으며”, 허위 사실을 보도한 매체 대표가 기사를 무마하는 조건으로 태진아 지인에게 한화로 2억 5천만 원 상당을 요구한 내용이 담긴 통화 녹취도 공개했습니다.

당시 태진아는 “그 매체의 주장에서 사실은 단 하나다. 내가 카지노에 갔다는 거다. 나머지는 모두 다 소설”이라며 “이유야 어찌 됐든 제게 과분한 사랑을 보내주신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고 다시는 카지노 쪽으로는 쳐다보지도 않겠다”라고 말했는데요.

기자회견까지 자청하며 태진아가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했을 때 아내 이옥형 씨 역시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고 걱정이 되었겠으며, 유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액의 돈까지 요구하며 협박까지 당하는 모습에 남편의 가수 인생이 한순간에 무너질 뻔한 가슴 떨리는 일을 겪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아들 이루 역시 억울한 누명을 썼던 적이 있었는데, 이루와 함께 곡 작업을 하던 한 여성 작사가가 이루와 교제를 하던 중 임신을 하게 되었고, 아버지 태진아가 이를 알고 자신에게 낙태를 종용하고 협박하다시피 인격적 모독을 하여 둘 사이를 헤어지게 만들었다며 허위로 폭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바탕 난리가 난 여론들은 매일같이 이루에 대한 비난의 기사를 쏟아냈지만, 결국 이 여성의 주장이 금전을 요구하고자 협박을 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해당 여성은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되는데요.

결혼도 하지 않은 총각이고 당시 적지 않은 여성 팬도 있었던 이루가 이런 일을 겪으며 연예인으로서 쌓아왔던 이미지가 한 방에 날아갈 뻔했을 때, 부친 태진아는 적극적으로 언론에 대응했고, 그 뒤에서 뒷바라지를 했던 이옥형 씨 역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누구보다 아끼는 아들의 고통에 함께 슬퍼했을지 그 아픔은 누구도 짐작조차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결국

남편과 아들의 여러 일들을 겪으며 이옥형 씨는 즐거운 날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또 무슨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항상 조마조마했으며, 그렇게 수십 년간 가족들을 걱정하며 뒷바라지를 하던 중 스트레스가 누적이 되며 결국 뇌신경에 문제가 생겨 현재 중증 치매로까지 상태가 악화가 된 것인데요.

연예인이 돈도 잘 벌고 삶이 화려해 보이지만 자신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항상 걱정을 품고 살아야 하며 그런 연예인의 가족들 역시 항시 걱정을 놓지 못하고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태진아는 신곡을 발표하며 “우리나라에 치매 환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행사에서 노래를 들어주셨던 분들 중 노부부도 계셨는데 자기 이야기라고 공감해 주시고 많이 함께 울어주시더라. 이 노래를 노부부 분들에게 바치고 싶다”라고도 말했는데요.

우리 주변에도 부모나 배우자의 치매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태진아의 노래가 투병 중인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로가 되기를 바라고 이옥형 씨가 모쪼록 부디 쾌유해 다시 예전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라며 이옥형 씨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