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손자’ 이정후가 이름에 걸맞은 멋진 수비를 보여줘 미국 야구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우리 시간 3일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경기에서 4회말 자이언츠는 주자 이루 상황에서 외야 좌중간으로 뻗는 타구를 허용했습니다.
이사였기에 한 명만 더 잡으면 무사히 이닝을 넘길 수 있었는데, 이 한방으로 실점할 위기에 처했는데요.
자이언츠 선수들이 지난 두 경기 연패에 이어 이번에도 지게 생겼다고 생각한 순간, 외야에 있던 이정후가 놀라운 수비력을 발휘해 스윕을 기대했던 팬웨이 파크의 모인 관중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정후가 뭘 했기에 이러 반응을 보인건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이날 경기 3회 자이언츠와 레드삭스 두팀 모두 한 점씩 점수를 따내 스코어 1대1 의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는데요.
그래서 앞서 보여드린 4회말 이사 주자 이루 상황은 경기의 향방을 가를 수 있었던 중요한 순간이었으며, 앞선 두 경기 승리를 통해 위닝시리즈를 확정지은 레드삭스는 여기서 역전에 성공하면 기세를 타고 스윕도 노려볼 수 있었지요.
평일 낮에 열린 경기임에도 홈 파크를 꽉 채워준 팬들에게 줄 선물로는 딱이라고 생각했을 건데요.
반대로 자이언츠는 이 경기마저 패한 채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주말 사연전에 돌입하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이 상황을 무실점으로 무사히 넘겨야 했었는데요.
마침 타석에 선 레드삭스 타자 재런 튜라는 노볼에 2스트라이크로 카운트가 완전히 몰려 있어 스트라이크 하나만 더 나오면 이닝을 그대로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투 스카일 해리슨이 주자의 몸 쪽으로 던진 공은 방망이에 맞고 외야 중간을 향해 날아갔는데요.
담장 앞까지 멀리 뻗는 타구는 아니었지만 안타가 되기에는 충분한 속도였습니다.
이에 팬웨이파크 관중들도 이걸로 역전하는 것인지 모두가 기대하고 있었지요.
그렇게 모두가 이 안타로 레드삭스가 역전하겠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외야 뒤쪽에 있던 이정후가 공을 향해 부리나케 뛰어왔습니다.
공이 떨어지려고 하는 지점과 이정후가 있던 위치가 다소 떨어져 있었기에 모두들 이정후가 잡기에는 늦지 않았나 생각했는데요.
특히나 팬웨이 파크를 가득 메운 레드삭스 팬들은 몸까지 던질기세였던 이정후를 보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럴 만도 했던 게,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들어 준 게 다름 아닌 이정후였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닝에 앞선 상황에서 이정후는 자기 쪽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잡아냈어야 했는데요.
느리게 날아가는 데다 담장에 닿기에도 모자란 누가 봐도 충분히 뜬 공으로 잡아낼 수 있었던 공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날 경기는 대낮에 치러졌었는데요.
해가 중천에 떠 있어서 이정후는 햇빛 때문에 공의 위치를 정확히 포착하기 위해 공이 떨어지는 위치를 잡아보려고 움직이다가 스텝이 꼬여 뒤로 벌러덩 넘어져 버렸고, 그 사이 공은 이정후의 옆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덕아웃으로 들어갔어야 했을 타자는 무사히 이루에 토달했지요.
경기가 열렸던 시간대는 좀 다르지만, 지난달 초 오라클파크에서 했던 수비 실책과 비슷한 장면이 나와버리고 만건데요.
이 타구가 안타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확률은 겨우 1%에 불과했습니다.
잡았어야 했을 타구를 햇빛이 너무 강해 놓쳐버렸던 거지요.
그렇기에 관중들이 그런 장면을 바로 조금 전에 봤으니, 이정후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어림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정후는 그러든 말든 떨어지는 공을 향해 몸을 던졌습니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가 벗겨질 정도로 필사적인 다이빙 캐치였는데요.
다이빙 캐치와 함께 담장을 향해 굴러가고 있어야 할 공은 차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잠시 후 몸을 일으킨 이정후는 모자까지 벗겨질 정도로 땅을 세게 내려치며 기쁨을 토해냈습니다.
그의 글러브 안에 공이 들어가 있었던 건데요.
방금 전 자신이 저질렀던 어마어마한 실수를 자신이 직접 멋지게 해결했으니 기뻐할만도 했습니다.
격하게 기쁨을 표출해낸 이정후에게 동료들도 다가와서 잘했다고 칭찬해줬고 그렇게 4회말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종료되었습니다.
이정후가 공을 잡는 장면을 다시 보면 다이빙을 하면서 글러브를 포수가 투수공을 받을 때처럼 앞을 향해 뻗어서 날아 들어오는 공을 잡을 수 있도록 했음을 알 수 있는데요.
보통은 떨어지는 공을 받기 좋도록 글러브가 위를 향하게 하는데 이정후는 자기가 있던 위치상 그렇게 공을 받아내기에는 늦었음을 직감하고 글러브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방향을 바꾼 겁니다.
이정후의 야구 센스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네요.
뒤돌아서 이 장면을 본 해리슨도 멋진 수비에 박수를 보냈죠.
참고로 이타구의 속도는 무려 103.4 마일로 매우 빨랐던 데다, 기대 타율이 육할 육푼에 달하는 공이었는데요.
앞서 이정후가 햇빛 때문에 놓쳤던 공과 달리 안타가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공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바로 전에 실책을 저질렀던 이정후가 멋지게 잡아냈으니 역전 적시타를 기대했던 레드삭스 팬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 장면을 중계한 MBC 스포츠 베이어리어 중계진도 이 플레이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는데요.
“결자해지다. 태양과 겹치는 타구였던 데다 거의 안타나 다름없는 낮은 라인 드라이브 타구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을 열광시키는 플레이를 볼 수 있었다. 올해의 플레이로 뽑힐 만한 수비다”
카일 해리슨도 “정말 좋아한다. 덕아웃도 난리가 났다. 나도 약간 소름이 돋았을 정도다. 단순히 한번 한 점을 막아낸 것일 뿐만 아니라 덕에 해리슨도 보스턴을 상대로 더 오래 던질 수 있게 됐다”라고 극찬했습니다.
이정후의 호수비 덕에 역전 위기를 무사히 넘긴 자이언츠는 7회 2점을 추가해 3대1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스윕을 면하면서 좀 더 나은 기분으로 필라델피아를 향해 떠날 수 있게 되었는데요.
다만 아쉽게도 이날 타석에서 이정후는 안타를 뽑아내지 못했습니다.
이날 때린 내게 공이 모두 외야수들에게 잡히는 뜬공이 되어 덕아웃으로 물러나야 했었는데요.
더 아쉬운 건 지난 이틀 동안과 마찬가지로 이날도 다른 곳이었다면 홈런이 되었을지도 모를 타구가 뜬 공으로 잡혔다는 겁니다.
1회초 야심차게 초구를 때렸는데 우중간 담장 앞에서 잡혔던 공을 말하는 건데요.
보시는 것처럼 조금만 더 뻗었다면 홈런이 되고도 남았을 타구였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네요.
단순히 화면상으로 보이는 것을 통계적으로도 이 타구는 충분히 홈런이 될 수 있었습니다.
구속은 103 마일에, 발사각도 29도인 완벽한 배럴 타구였던 데다, 비거리까지 400 피트에 달해, 이날 나왔던 모든 타구 중 가장 멀리 날아간 공이었으니 말입니다.
안타가 되었을 확률로 계산해 봐도 무려 8할 이정후가 4회에 잡았던 공보다도 안타가 될 가능성이 더 컸던 공이었지요
그러나 우측 담장이 더 멀리 떨어져 있는 펜웨이 파크의 특성상 이 타구는 그냥 뜬공일로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전체 빅리그 구장 중 10곳에서는 홈런이 되었을 공이었기에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 중에는 자이언츠의 홈인 오라클 파크도 있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요.
1경기 9회 담장 앞 뜬공이 되었던 타구에 이어, 오라클 파크였다면 홈런이었을 공이 2개나 아웃된 거지요.
5회에 나왔던 뜬공까지 포함하면 무려 홈런이 3개나 날아간 셈이네요.
여기가 팬웨이파크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긍정적인 부분은 땅볼성 타구가 상당수였던 이정후의 타구가 더 멀리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는 건데요.
비록 이번 삼연전에서는 안타가 하나만 나왔기에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울 수 없었지만, 홈런성 타구만 3개가 나왔으니 다른 구장에서라면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3년 전 동안 나온 타구 대부분의 발사 각도가 20도 이상이었기에 이제는 오히려 발사 각도를 너무 의식하면서 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을 정도인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발사 각도가 너무 낮아서 안타가 생각보다 안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던 이정후가 이제는 발사각도 높이는데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걸 보면 적응이 빠르긴 빠르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물론 이제 빅리그 한 달이 겨우 넘은 선수에게 벌써부터 감놔라 배놔라 하는 듯한 분위기가 좋죠.
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거에 어떻게든 맞춰 가려는 듯한 이정후가 대단한 건 틀림이 없네요.
어쨌든 이정후와 자이언츠 선수단은 주말 동안 필리스를 상대로 사연전을 치러야 하는데요.
펜웨이파크가 앗아갔던 홈런성 타구 3개 중 2개가 여기에서는 홈런이 될 수 있었던 타구였던 만큼, 보스턴 원정 동안 보여줬던 발사 각도와 힘이라면 이번에는 큰 걸 충분히 노릴 수 있을 겁니다.
큰 거 한 방에 집착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아는 이정후라면 얼마든지 멋진 활약을 할 수 있을 건데요.
그러니 발사각도니 홈런이니 언론이 떠드는 거에 휘둘릴 필요 없이 이정후 본인이 하고 싶은,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걸 마음껏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데뷔한 지 한 달이 지났고, 그 사이 이정후는 이미 여러 멋진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그래서 이번 주말에도 그의 활약이 이어질 것이란 걸 우리 팬들은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