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관 280억 빚 끝에 결국…” 차에서 잠을 청하고 매 식사를 삼각김밥 먹어가며… 눈물겨운 그의 근황을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송대관은 지난 2013년 사기 사건에 휘말리면서 방송가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후

2015년 결국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160억 원이라는 엄청난 빚을 떠안아야 했습니다.

송대관의 빚은 말이 160억 원이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상상도 못할 엄청난 빚이었을 텐데요.

그가 말하길 “당시에 괴로울 때 제 나름대로 속죄하는 마음으로 남산의 교회까지 걸어가는데, 마포대교를 걸어가고 있었다. 마포대교를 건너는데 사람들이 뛰어와서 나를 붙잡더라. ‘그러시면 안 된다’라고 하면서, 그러니 내가 더 비참해졌다. 내가 거기까지는 아닌데 사람들 눈에는 거기까지 비춰졌구나 싶었다”라고 당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또한 송대관은 많은 빚을 탕감하고 큰 빚을 지게 된 원인 제공자인 아내 이정심 씨와 이혼하지 않은 이유를 밝히면서 눈길을 끌었는데요.

 

 

그는

“아내가 사업을 이상하게 땅에 투자를 하면서 곤두박질을 쳤다. 땅을 6만 5000 평을 샀는데 팔리지도 않고 이자만 계속 올라가더라. 그러니까 딴따라한테는 큰돈을 안 주시나 보다, 적당히 먹고살게끔 해 주시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조금 덜 부끄러운 게 무엇이냐면 모든 것을 다 팔아서 최선을 다해서 부채를 갚을 때까지, 은수저 하나까지 팔아서 갚겠다고 한 것이라고 합니다.

아내의 잘못으로 한순간의 삶이 무너져 버렸지만, 그는 끝까지 아내의 손을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집사람이 돈을 많이 잃어버려서 부작용도 있었지만, 재산을 잃어버렸는데 제 아내까지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왜 이혼 안 하냐?’라고 하지만 제가 관리를 잘못한 탓이다. 아내를 탓하고 욕해봐야 제 가정만 망가지고 제 자식도 있지 않나, 아들도 있고 손자도 있는데, 가정마저도 무너지게 되는 비극이 오면 그때가 내 절망이다”라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당시 방송에서 송대관은 “사기 사건에 연루돼서 힘든 것은 제가 사랑하는 70억 집이 날아간 거다. 30억 헐값의 경매에 넘어갔다”라며 “그 집은 연예인 집 중에서도 가장 예쁜 집으로 소문이 났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KBS “여유만만”에서 송대관은 자신의 이태원 집을 공개한 바가 있는데, “우리 집은 4층 집이다. 유행가 성공 후 1층 짓고, 네 박자 발매 후 수익으로 한층 짓고 이런 식이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방송을 통해 공개된 송대관의 집은 남산에 자리 잡아 서울을 한가득 품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옷장 등 필요한 수납공간을 설계에 포함해 집에 가구가 없어 깔끔하고 심플한 느낌을 자아냈습니다.

 

 

또한 층마다 독립된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어 가족들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연예인 동료들로부터 부러워하던 집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제 땅도 날아가고 제 집사람 땅도 300억쯤 날아갔다. 지금은 강남의 월세에서 살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또한

방송에서는 송대관과 태진아의 라이브 콘서트 현장이 공개됐는데요.

송대관은 태진아에 대해 “태진아와 함께한 라이브 콘서트가 거의 10여 년 될 거다. 내가 없으면 태진아는 혼자 못한다”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태진아는 송대관에 대해 “실과 바늘이다. 콘서트도 10여 년 이상 하고 있는데, 송대관 선배가 없는 태진아는 없고, 태진아 없는 송대관 선배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가수왕도 먼저 하셨고, 10대 가수도 먼저 하셨고, 돈도 나보다 많이 버셨고, 히트곡도 더 많고, 제가 뭘로 형님을 이기겠나. 저는 형님을 존경한다”라고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아내에 대하여 송대관은 “그 사람의 희생 없이 오늘 제가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다. 저는 그냥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아내는 혼자 외롭고 긴 세월을 고통 속에서 보냈던 날들이 많았다. 저 사람은 저에게 보상받아야 할 일들이 많다”라며 “제 아내도 이 세상을 떠나버리려고 작정을 했더라. 제가 그 낌새를 알아채고 밖에 나가 있는 동안 누누이 문자를 보내며 말렸다. 그러다 어느샌가 다시 돌아왔더라. 나는 아내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며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쁘게 일에 매진한 송대관은 70대 나이에도 차에서 쪽잠을 자고 삼각김밥을 먹어가며 하루 5개 행사를 뛴 끝에 법원에서 10년 동안 갚으라고 했던 회생을 4년 만에 거의 90%를 다 갚았고, 이제 신곡도 준비 중이라고 열성적이고 밝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는 “잘 안 하는 공연도 닥치는 대로 했다. 자존심 내버리고 빨리 남에게 갚아줘야 할 빚도 다 갚아줘야겠고 그래서 열심히 하다 보니까 다른 때보다 일의 양이 많았다. 막연함도 있었지만, 운도 좋았던 것 같다. 하니까 되더라”라고 말했습니다.

열심히 살고 계신 송대관 씨.

남은 빚마저 깔끔하게 청산하시고 다시 한번 멋진 모습으로 재기하셔서 좋은 모습 보여주시면서 행복하게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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