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옥 어쩌다 이런일이… “최고령 85세 배우의 충격적인 소식에 임영웅이 한 아름 눈물을 흘리게 된 사연을 확인해보세요..

신구, 이순재 씨가 자신보다 연상이지만 드라마에서 아들 역할을 한다는 현재 대한민국 현역 최고령 여배우 김영옥 씨.

‘인생 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배우 김용옥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맏손자의 교통사고와 큰 오빠가 6.25 전쟁 때 인민군으로 끌려가는 등 가슴 아픈 가정사를 털어놨는데요.

오늘은

김영옥 씨의 근황과 가슴 아픈 그녀의 인생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배우 김용욱 씨는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14살 초등학생이었고, 큰 오빠는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2학년인 21살이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오빠들을 인민군으로 끌려간다는 소문을 듣고 다락방에 숨겨놨었다며 생생했던 과거를 회상했죠.

하루는 친구가 오빠를 부르러 왔는데, 엄마가 “애들 나갔는지 없어”라고 말하며 돌려보내려 했는데, “학교에서 소집을 하는데 지금 안 나오면 학교에서 재적당한다고 전해달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있던 오빠는 곧바로 뛰쳐나와 학교에 갔고, 결국 서울을 점령하고 있던 북한군으로 끌려가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는데요.

어머니는 당시 “큰오빠를 다락방에서 못 나오게 말렸어야 했다”라며 피눈물을 쏟아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50년간 가족들은 큰오빠 소식을 알지 못하고 죽은 줄 알고 살았는데요.

어머니 별세 후 10년이 지났을 때, 큰오빠 김영환이 북에서 가족을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큰 오빠가 북한에서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한 것이었죠.

김용옥 씨는 5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2000년 이산가족 상봉에서 큰 오빠를 재회했던 일화를 털어놔 모두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50년 만에 금강산에서 상봉을 했는데, 21살이던 큰 오빠는 머리가 흰 71살 노인이 되어 있었죠.

김영옥 씨는 이후로 ‘오빠를 보지 못했다’라며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해 주위를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며 김용옥 씨는 2015년 불행한 일을 또 겪게 되었는데요.

김용옥 씨의 큰 손자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장애인이 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당시 27살이었던 김용옥 씨의 손자는 길에서 택시를 잡고 있었는데, 차가 인도까지 올라와서 손자를 뒤에서 받았고 손자는 혼수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차는 술에 만취한 사람이 운전하는 대포차였고, 운전하는 사람은 면허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 사고 후 딸은 깨어나지 못하는 손자의 손을 주무르고 수건으로 닦고 마사지를 해주며 지키다가 결국 사고 1년 만에 쓰러졌죠.

김용옥 씨는 “딸까지 아프니까 내가 미칠 것 같다. 딸이 손자를 돌보느라 더 아플까 봐 내가 손자를 데리고 있다. 내가 버텨야 이 아이를 챙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건강을 챙기고 있다”라고 밝혔었죠.

천만다행으로 손자는 이후 의식을 회복해 휠체어를 타고 움직일 만큼 좋아졌지만, 여전히 김용옥 씨의 딸은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꿈 많던 여중생 시절 학교 연극반 활동을 시작으로 연기의 길에 들어선 김용옥 씨는 한국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58년 만 20살의 나이에 한국 최초의 TV 방송국을 통해 데뷔합니다.

드라마 촬영 도중 NG가 나더라도 그대로 생방송으로 방영될 만큼 방송 환경이 열악했지만, 그녀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떴다고 합니다.

 

하지만

방송국에 불이 나면서 무대를 잃었고 그녀는 아나운서와 성우를 거쳐 다시 배우가 될 수 있었는데요.

첫 방송부터 어머니를 연기했던 그녀는 연극에서는 28세, 드라마에서는 31세 등 젊은 시절부터 할머니 연기를 시작합니다.

그중 ‘욕쟁이 할머니’로 변한 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는 김용옥의 연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인데요.

‘이 시베리아 벌판에서’로 시작되는 속사포 대사가 대 히트합니다.

이 대사는 어린 시절 지켜본 동네 약장수의 어투를 응용한 것이라고 하죠.

김영옥 씨는 시트콤 ‘몽땅 내 사랑’에서도 못하는 게 없는 거의 만능 캐릭터로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는데요.

한 에피소드에서 김갑수가 사기꾼들에 속아 몸에 좋다는 돌 돌덩이를 샀는데, 금자 씨 분장을 하고 직접 사기꾼들을 찾아가 화려한 언어를 선사하시며 깔끔하게 환불받았다고 합니다.

 

김영옥

씨는 1191년 KBS 드라마 ‘옛날의 금잔디’를 통해 대한민국 배우 최초로 치매 환자 역할을 수행해냈죠.

그가 치매 환자를 연기하고 나면 시청자는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난다”라며 편지를 보내오기도 해답니다.

그래서 치매 환자 가족들을 생각하면 치매 환자를 연기할 때 더 큰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는데요.

올해로 86세에 접어든 그녀의 주변에도 치매 환자들이 늘었답니다.

김용옥 씨는 “치매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인만큼 나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이 나이쯤 되면 치매 예방을 위해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한다”라고 말했죠.

서울 서초동에 사는 그녀는 남편과 함께 자주 우면산 인근을 산책하고, 매년 잊지 않고 꼬박꼬박 건강 검진도 받는다고 합니다.

김용옥 씨는 아들딸에게 “만약, 훗날 내가 치매에 걸리면 고민 말고 꼭 요양 시설에 보내달라”라는 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괜히 불효랍시고 집에서 모시면 아무리 잘 모신다고 해도 식구 모두가 불행해지잖아요. 내가 모아놓은 돈이 요양 시설에 맡길 만큼 될 테니까 좋은 곳에 맡기고 자주 보러 와달라라고만 했다. 물론 치매에 안 걸리면 더없이 좋겠지만요”라고 말했습니다.

 

 

작년 김영옥 씨는 고민 상담 프로그램 ‘진격의 할매’에서 박정수 씨와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삶이 힘겨운 MZ 세대와 3040들에게 따뜻한 감동과 위로를 선사하고 했는데요.

때로는 할매 MC로서 시골집에서 만난 할머니들처럼 친근하지만, 현재도 치열하게 현장에서 살아가는 ‘프로페셔널’이자 인생 대선배들로서 글러먹은 사고방식에는 정신 번쩍 들 만큼 가차 없는 돌직구를 날렸죠.

김영옥 씨와 공동 MC 박정수 씨도 가슴 아픈 과거를 간직하고 있는데요.

 

박정수

씨는 1972년 MBC 5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신인연기상을 수상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데뷔 3년 후인 1975년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은퇴했었죠.

은퇴 배경에는 스스로 현모양처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시댁에서도 그의 연기자 생활을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정수 씨는 사업하는 남편을 내조하고 아픈 시부모를 봉양하며 전업주부로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딸 둘, 아들 하나를 낳았지만, 미숙아로 태어난 아들을 1년도 안 돼 잃는 아픔을 겪었죠.

사업가였던 남편은 사업에 크게 실패했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박정수 씨는 16년간의 긴 공백을 깨고 다시 연예계에 복귀하게 됩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처음에는 남편과 서류상으로 이혼했지만, 이후 사이가 더 멀어진 두 사람은 실질적인 이혼을 하고 맙니다.

두 딸을 홀로 키우게 된 박정수 씨는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치던 중 2007년 갑상선암 선고를 받고 수술로 남몰래 투병 생활을 계속했죠.

 

한편

MBN ‘모던 패밀리’에서는 전직 아나운서였던 김영옥의 남편 김영길 씨가 공개되었는데요.

전원주는 ‘마이크 잡을 때부터 정말 멋있었다’라며 김영길 씨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고 이야기하자, 김용옥은 ‘남의 떡이 커 보이지’라고 맞받았습니다.

중앙대 방송반에서 처음 만났고 남편은 정치외교학과이고 김영옥은 국어국문과였다고 하는데요.

둘이 아나운서로 입사하면서 친해졌고 김영옥은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성우가 되면서 24살에 바로 결혼했다고 합니다.

김용옥은 촬영을 하면서 “‘내가 이 작품을 잘 끝내고 아파도 아파야겠고 죽어도 죽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데, 내가 몸이 아프면 못하게 될까 봐 꼭 완성을 해야겠다”라는 책임감이 있다고 했죠.

4년 전 사고를 당한 손주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데 하늘이 야속하고 나한테는 눈물이 없는 줄 알았는데, 노래를 듣다가도 울컥하고 아무 때나 제어가 안 된다고 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김용옥은 이사한 지 5개월밖에 안 된 집을 공개하며 절친한 동료 배우 전원주, 선우용녀를 초대했죠.

김용옥은 선우용녀가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눠 먹었고, 달고 짠 음식은 일절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알고

보니 선우용녀는 뇌경색을 앓았고, 김영옥은 디스크, 전원주는 척추관 협착증이 있다고 합니다.

세 사람은 2009년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 여운계를 떠올렸는데요.

선우용녀는 신장암 투병을 했던 여운계 언니가 어느 날 얼굴에 시술을 받고 왔는데 작품이 들어와서 했다며 좋아했다고 전했습니다.

그 작품이 ‘장화 홍련’이었고 의사가 말렸는데 죽어도 좋다고 했답니다.

당시 여운계가 맡은 역이 치매에 걸린 할머니 역이었는데, 치매에 걸려 주로 밤에 나가는 장면을 찍다가 폐렴에 걸려 너무 안타까웠다고 하는데요.

떠나기 일주일 전에 선우용녀는 여운계를 만났는데 퉁퉁 부은 다리를 감춰 나한테도 아픈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했다고 추억했죠.

김용옥 씨는 많은 배역을 해보았지만, 사극에서 왕비나 대비 같은 역은 거의 해보지 못했다며 청나라의 서태후처럼 권력을 휘두르는 여걸을 연기해 보고 싶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김수미 씨는 서태후처럼 하고 싶다니 중국 가서 하라고 농담을 던지는데요.

김영옥 씨는 80을 훌쩍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뛰어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로 노래 연습을 꼽았습니다.

방송국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성 연습이 된다는 것인데, 그는 최근 TV 조선 ‘미스터 트롯’ 임영웅 씨의 열혈 팬임을 인증하기도 했죠.

대한민국 현역 최고령 여배우 김영옥 씨.

앞으로도 꾸준한 방송 활동으로 많은 후배의 롤 모델이자 배우로 대중들의 곁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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