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트롯 가수 고정우 결국.. “밤 사이 들려온 눈물겨온 소식..” 얼마나 힘들면 그런 선택까지.. 그의 최근 근황을 살펴보세요..

‘미스터’로 알려진 고정우. 트로트’가 대한민국 최고의 작곡가 정경춘에게 곡을 받아 멋지게 첫 앨범을 발매했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한 모습 뒤에 진짜 인간 고정우의 삶은 그야말로 너무나 충격적일 정도로 힘겨웠던 역경 그 자체였다는 사실이 감춰져 있던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정경천 작곡가는 지난 50년간 나훈아와 현철, 진성, 주현미 등 국내 최정상급 가수들의 노래 5000여 곡을 만들어낸 현존하는 최고의 작곡가로 아무에게나 곡을 쉽게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고정우는 그런 대가로부터 신인인 자신의 음반수록곡 중 한 곡도 아닌 전곡을 받는 행운을 누렸지만, 그런 모습 뒤에 그는 사실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하고 자식을 내팽개치고 떠나버려 홀로 남은 할머니에게 떠넘겨지는 슬픔을 겪었고, 바닷가 마을에서 할머니와 둘이 물질을 하며 몸이 부서져라 힘겹게 살았지만, 할머니마저도 그만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며 큰 충격을 받아 통곡하며 고통으로 얼룩진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1998년에 울산에서 태어난 고정우는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던 2살 때부터 할머니에게 맡겨져 자랐는데요.

 

그는

그녀는 해녀였던 할머니를 따라 12세부터 자연스럽게 물질적인 일을 다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안 형편이 나쁘지 않았지만, 삼촌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집을 담보로 받아 보증을 받게 됐다.

집안 형편도 어려웠고, 아프고 연로한 할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고정우는 일찍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겨울이면 손발이 시려 온몸이 추위에 휩싸여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

 

 

보통 십대들은 학교에 가거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바쁘기 때문에 미성숙합니다.

고정우는 나중에 그때를 회상하며 “죽든지 죽든지 살겠다”, “항상 웃자”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많이 외로웠다”고 말했다. 소개를 받았지만 그 사이 힘들게 번 돈 400만원으로 할머니에게 목걸이를 선물로 줬다.

고정우는 방송에 소개된 뒤 유명세를 타며 ‘막내 해남’, ‘울산 손자’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방송에 아무리 출연해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학창 시절 장터에서 대게를 판매하는 등 늘 온갖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힘들게 살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시련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실제로 고정우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고, 반장도 했을 정도로 학교생활도 잘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할머니는 손자 정우에게 나중에 크면 울산 현대 자동차에 들어가라고 늘 말씀하셨고, 고정우 역시 할머니의 말씀처럼 나중에 기술을 배워서 현대 공장에 들어가는 게 가장 출세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어릴 적부터 트롯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보니, 마음 한편에는 트롯 가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자라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정우는 당시를 회상하며, “제 목표는 할머니의 말처럼 기술을 배워서 현대자동차를 가는 거였어요. 항상 가슴속에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형편이었고 물질을 해서 먹고살다 보니 그럴 여건이 안 됐죠. 정말 할머니를 위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가장의 무게를 너무 어렸을 때 알게 된 거죠”라고 말했는데요.

만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할머니께서 갑자기 떠나버리시니 고정우는 황망한 마음도 느낄 새가 없이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하며 주변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게 되는데요.

 

 

할머니는 돌아가시면서 손자로부터 받았던 목걸이를 다시 돌려주며 떠나셨는데, 고정우는 그 목걸이를 손에 쥐자 너무나 찢어지는 마음으로 한없이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가 없었던 정우에게 기꺼이 엄마가 되어 주신 할머니께서 이제는 곁에 안 계시니, 그는 허전하고 조용한 집에서 한동안 삶의 의욕도 느끼지 못한 채 너무나 슬픈 나날들을 보내게 되는데요.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생애 마지막 해에 손자와 함께 KBS ‘노래가 좋아’에 출연하셨는데, 이후 고정우는 할머니와 무대에 섰던 순간을 생각하며 가수라는 꿈을 향해 본격적인 도전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동안은 반듯한 직장인이 되어 장가가는 것을 목표로 달려왔다면, 이제는 인생의 방향을 바꿔 가슴속에 오랫동안 품었던 ‘트로트 가수’가 되기로 결심을 한 것이었는데요.

 

그렇게

고정우는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그의 삶은 쉽지 않았다.

 

 

고정우는 “2017년에 포장용 스카프를 들고 서울에 왔다. 보증금과 1년치 집세만 1000만원 냈고, 짐도 최소화했다. 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한국의 이름을 내고 죽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요. 도착하고 나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택배 일도 하고, 횟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온몸으로 모든 걸 쳤어요.

서울에서 사투를 벌인 끝에 2020년 KBS ‘아침마당’ ‘도전꿈의 무대’에 출연했다. 이번 방송에서는 임영웅과 프로듀싱을 통해 트로트의 가능성을 탐색한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졌다. 박서진, 고정우가 파죽의 리더였는데, 우승이라는 남다른 성과로 다시 한 번 이름을 알릴 것이다.

그는 “다행히 시청자들이 많은 표를 줬다. 그때 코로나가 시작돼 4승을 거두고 두 달 만에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에 방송이 연기됐다. 시청자들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번 기회를 디딤돌로 삼아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초청이 늘어나면서 많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고정우는 이름이 알려지자 국내에서 비처럼 진행된 수많은 트로트 오디션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좀 잘할 때 시작하고 싶었고, 준비도 하고, 직장에서도 레슨도 받으며 드디어 ‘미스터트롯 시즌2’ 챌린지를 하게 됐다.

고정우는 “성적은 아쉽지만 앞으로의 목표는 더 크다”고 말했다. 레벨이 높은 편이라 100% 만족했던 무대는 없었어요. 상위 7위를 보면 부러움과 후회가 든다. 그러나 지나간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 다음 버스가 오면 꼭 종점까지 타겠습니다.

‘미스터 션샤인’에 출연한 후 트롯2’는 소속사와 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트로트 보컬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국내 최고의 작곡가인 정경천으로부터 곡을 받는 행운으로 그는 생애 첫 데뷔 앨범을 발매하는 감격까지 누리게 됩니다.

고정우는 “워낙 곡을 쉽게 안 주시기로 유명하셔서 곡 때문에 댁으로 간 날 많이 떨었다. 그런데 흔쾌히 맞이해 주시고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사모님께서도 내가 ‘인간극장’에 나온 모습을 기억하고 계시더라. 선생님은 제 아버지로, 사모님은 제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다가가니까 마음을 열어주시면서 ‘아들’이라고 해주신다. 너무 유명한 작곡가 선생님의 곡을 받아서 부담도 크지만, 그만큼 자부심도 있다”라며 정경천 부부에게 고마움을 표했는데요.

또한 “정경천 선생님께서 정우는 쉼 없이 달려오고 다람쥐 챗바퀴처럼 살아왔다고 하셨다. 할머니 공양하고 서울에 와서 정말 많은 일을 한 것을 이야기하며, 정우처럼 열심히 하다 보면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오래오래 갈 수 있을 것이다. 장수하는 가수가 됐으면 한다는 마음에서 곡을 주셨다.

본 녹음에 들어가서는 저보고 녹음하니까 ‘100점이네’라고 해주셨다. 무대 체질이라며 대박이 날 거라고 격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라며 비화를 밝혔는데요.

 

그러면서

“제 성격이 또 워낙 애교 있기도 하다. 넉살 있게 어른들께 자라다 보니 좋은 인연들이 맺어진 것 같아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항상 겸손한 모습으로 활동하고 싶다”라고 말했고 ‘해물 뚝배기 보이스’라는 별명을 언급하며 “양은 냄비처럼 금방 끓고 식는 것보다 해물 뚝배기처럼 끓이면 끓일수록 구수해지는 가수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고정우가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앞으로의 가수 인생에는 탄탄대로가 펼쳐지기를 바라며 힘든 인생을 살아온 가수 고정우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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