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앓은 응어리 결국… “이제 모든게 끝나버린 충격적인 현재 상황..” 배우 설경구 송윤아 부부의 안타까운 소식이..

‘불멸의 이순신’, ‘하얀 거탑’, ‘베토벤 바이러스’ 등 2000년대 후반을 풍미한 역대급 명품 드라마를 통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연기를 펼치며 ‘연기신’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김명민.

그는

특히 작품마다 캐릭터에 그대로 녹아드는 메소드 연기로 시청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자아냈는데, 일례로 ‘불멸의 이순신’ 촬영 당시에는 극 중 캐릭터가 총상을 입자 일상생활에서도 부상당한 왼쪽 어깨를 내리고 다니는 등 작품 속 배역과 자신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죠.

비교적 늦게 찾아온 전성기에 이 같은 피나는 노력이 더해진 결과였을까요?

 

 

김명민은 중년의 나이가 든 현재에도 ‘우리가 만난 기적’, ‘로스쿨’ 등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력을 과시하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만큼 힘을 못쓰게 된다.

김명민은 ‘베토벤의 바이러스’를 통해 국내 배우 대열에 진입하자마자 영화 활동을 시작, 수업 사이에 1년에 거의 한 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김명민 감독의 전성기 영화로는 ‘귀환’, ‘무방비 도시’, ‘내 사랑 내 곁에’, ‘망한 남자’ 등이 있다.

<연가시>, <판도라> 등 일부 작품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대부분의 필모그래피는 관객과 평단의 냉담한 평가를 받으며 김명민의 이름과 가치에 부응하지 못했다.

잠시 인기를 끌었던 ‘조선명탐정’의 경우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뒤 흥행에 실패했고, ‘몬스터’의 경우 최종점수 72만점을 기록하며 당황하며 김명민의 명성이 무너졌다. .

김명민이 출연한 영화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김명민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연출과 대본에 문제가 많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여전히 “김명민은 디자인 선택에 안목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소문에 따르면 김명민은 영화 관계자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다 촬영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혹평을 많이 받았던 ‘몬스터’의 경우 원래는 정우성이 캐스팅됐지만, 그가 떠난 뒤 어떤 이유에서인지 김명민이 합류하게 됐다. , 김명민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숨길 이유가 없습니다. 배우들이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일을 해왔고 운이 좋아서 모든 일이 잘 되고 있어서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상당히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물론

일이 좋으면 캐스팅 이력과 관계없이 과감히 뛰어드는 것이 좋지만, 주변 배우들이 캐스팅 콜에 응하지 않는 직업인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김명민은 생각나는 작품 대부분을 마다하지 않고 촬영에 임해 신뢰하면서도 무시하는 배우가 됐다.

 

 

앞으로의 실패를 딛고 연극계에서도 활동하시길 바랍니다.

90년대 최고의 코미디 중 하나였던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김수로가 철가방으로 등장해 단숨에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작은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며 단숨에 신인 충무로로 떠올랐다.

이후 김수로는 극의 재미를 부각시키는 감초 캐릭터로 ‘반칙의 왕’, ‘화산고’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점차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영화배우로서 이렇게 잦은 예능 출연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지만, 김수로는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마저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드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작품 속에서 늘 호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김수로를 극장에서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 이유는 김수로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비교적 양호한 모습을 보였지만 ‘우리학교 E.T.’의 실패를 기점으로 시작됐다. 2008년부터 65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오감각’, ‘홍길동의 후예’, ‘퀴즈왕’, ‘로맨틱’ 캡의 ‘나는 왕이다’ 등 김수로 감독의 필모그래피 작품이 공연됐다. 흥행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서 아무도 그들의 제목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드라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공부의 신’, ‘신사의 품격’은 전성기에도 여전히 인기를 끌었지만, ‘돌아와요 아저씨’는 같은 시기에 방송된 ‘태양의 후예’, ‘제발’에 밀린 뒤 실패했다. 돌아와요 아저씨’ ‘오늘부터 시작하자’는 신빙성에 대한 혹평을 받았고, 시청률이 5%를 넘지 못해 흥행에 실패했다.

본인

역시 의식하고 있는지 김수로는 한 인터뷰에서 “가장 사랑받을 것 같은 작품을 골라 열심히 했는데 실패하면 아픔은 끝이 없다”라며 작품 실패에 대한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토로하기도 했는데요.

토크쇼에 출연해서도 작품 흥행에 대한 열망을 내비치고 당시 대세 배우였던 하정우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등 영화와 드라마 양쪽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는 듯 보였습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주연을 맡은 영화 두 편이 잇따라 망하면서 들어오는 시나리오 양 자체가 확연히 줄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한 김수로.

이제는 대본조차 아예 들어오지 않아 활동을 강제로 중단한 걸까요?

영화의 경우는 2013년 ‘톱스타’를 마지막으로, 주연급 출연은 전혀 없는 상황인데요.

이후 김수로는 연기보다는 제작자로 눈길을 돌려 연극 제작에 힘을 쏟았고, 이제는 어느덧 대학로의 극장까지 소유한 극장주라고 합니다.

연극계에서는 김수로가 제작한 연극은 믿고 본다는 말이 나올 만큼 어느 정도의 입지를 다진 듯한 김수로인데요.

배우로서의 위기를 잘 극복한 것 같은데, 그래도 배우 김수로의 연극 다시 한번 볼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더 문’을 향한 관객들의 신랄한 혹평이 쏟아지며 다시 한번 국밥 배우 이미지를 굳혀버린 설경구.

지금이야 설경구 하면 뻔한 연기 뻔한 작품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설경구는 활동 초반만 해도 믿고 보는 배우 이미지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데뷔작 ‘박하사탕’을 통해 소름 돋는 연기력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이후 ‘넘버3’, ‘공공의 처’, ‘광복절 특사’ 등을 히트시키면서 장르 불문 탁월한 연기 변신에 성공한 살경구는 2003년에 영화 ‘실미도’로 국내 최초 1000만 관객까지 달성하며 연기와 흥행 모두 잡은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과거의 명성과 확연히 대비되는 현재의 필모그래피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2019년 이후 개봉한 ‘우상’, ‘생일’, ‘퍼펙트맨’, ‘자산어보’, ‘킹메이커’, ‘유령’ 등 주연으로 출연한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손익분기점도 못 넘긴 채 실패했죠.

 

이 가운데

가장 폭망한 영화로 평가받는 ‘우상’의 경우 설경구 외에도 한석규, 천우희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관객 18만 명을 동원하며 폭망했는데요.

최근 개봉한 ‘더 문’은 역시 뻔한 스토리와 억제 신파 코드가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자아내며 배우 설경구를 향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더 문’의 메가폰을 잡은 김용화 감독이 ‘신과 함께’로 국내 최초 쌍1000만을 달성한 감독이긴 하지만, 흥행과는 별개로 작품성 관련해서는 엇갈린 의견이 많았던 만큼, 이번 실패는 단순히 흥행만을 목표로 작품을 선택한 설경구의 패착이 되고 말았습니다.

설경구의 연기력에 관해서도 “과거 20년 전 ‘공공의 적’ 시절 스타일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전형적이다”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거기다

전처와 이혼하며 불거진 스캔들 역시 설경구의 이미지에 크게 타격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한때 최민식, 송강호와 함께 한국 영화계 트로이카로 군림했던 설경구.

과연 위기를 극복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지난 7일, 송윤아는 한 홈페이지의 한 기사에 게재된 열애설에 대한 악성댓글(악플)에 불쾌감을 느낀 뒤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을 게재해 일부 장면을 재방문했다.

당시 열애설이 사실이냐는 MC 이경규의 질문에 설경구는 “설명할 길이 없지만 재혼과 동시에 퍼즐이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송윤아가) 동거했다”, “전처와 (송윤아)가 머리를 잡고 손을 잡고 말다툼을 했다”, “재혼 직전에 이혼했다” 등의 루머는 사실이 아니다” – 그는 말했다. 그는 말했다.

그는 “내가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이야기들이) 사실이 됐다. 이어 “송윤아 씨에게 개별적으로 답변을 못 드리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사라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송유나 안타깝네요. 평범한 삶을 살던 여자가 엉뚱한 남자를 만나 괴로워했다”고 고백했다.

 

1996년

첫 결혼한 설경구는 4년 간의 별거 끝에 2006년 7월 이혼했다. 그와 송윤아는 2007년 초 소속사를 바꾸면서 공식적으로 교제를 시작했다.

설경구는 “결혼 파탄의 원인은 나였다. 송윤아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송윤아가 왜 나를 만난 것을 후회하겠는가”라며 이러한 소문을 거듭 일축했다. 송윤아의 자필 편지가 공개되자 설경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열했다.

설경구와 송유나는 지난 2009년 5월 결혼해 2010년 8월 아들을 낳았다. 세 가족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기울어진 시선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7년 동안 침묵 속에 살아온 송윤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게재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그들이 알고 있듯이, 내가 정말로 여자였다면 지금 살고 있는 삶을 살 것인가? 이제 그만하시길 바랍니다. 인생의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안돼”라고 큰 소리로 말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해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더욱 정의롭게 살아갈 것입니다. 적어도 나는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잊고 살아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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