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순간도 엄마가 부끄러운 적 없다..” 방송 도중 홀연히 눈물을 훔치며 공개한 가수 송가인의 눈물겨운 어머니 사연…

가수 송가인이 갓 돌이 되었을 무렵 그녀의 어머니 송순단 여사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네가 이 길을 걷지 않으면 네 딸한테 고스란히 업보가 찾아갈 거다’

 

대체

송순단 여사는 그런 무서운 예언을 누구에게서 들었는가?

그리고 그녀의 최종 결정은 무엇이었나요?

가수 송가인은 엄마를 위해 뭐든지 해주고 싶은 순종적인 딸이다.

 

 

이제 그녀를 훌륭하게 키워준 어머니와 가족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고통스러운 망각의 시기를 거쳐 송가인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알려진 유명 가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실제로 송가인이 지금의 성장을 이루는 데에는 어머니 송순단 여사의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

송가인이 민요를 배우기 시작하고 판소리를 넘어 트로트 가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송순단 여사의 조언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송가인을 위해 송순단 여사가 희생한 사연은 무엇일까.

실제로 송가인이 태어나기 몇 년 전, 그녀의 가족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송가인의 부모님은 과거 주머니에 1000원짜리 지폐 한 장도 없을 정도로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이 때문에 둘째 아들 송가인을 아주 어린 나이에 보내야 했다.

아기는 급성 내피염을 앓고 고열로 끓어오르고 있었지만, 송가인 엄마, 송순단, 조연환 아빠는 아기를 병원에 데려갈 돈이 없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 즉시 병원에 가세요.

이에 송가인의 부모는 태어난 지 1년 반도 채 되지 않아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아들을 온전하게 천국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이런 경험을 겪은 후 송가인의 어머니는 결심을 하게 됐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남은 아이들이 굶어 죽게 놔두지 않겠다.” 송순단 여사가 눈물을 흘리며 내린 결단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이런 다짐을 내린 뒤 몇 해가 지난 1986년 12월 26일 어느 추운 겨울날, 전남 진도군의 작은 마을에서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려왔죠.

너무나 가슴 아픈 가정사를 딛고 마침내 추후 대한민국 최고의 트롯 여제가 될 송가인이 세상에 태어난 겁니다.

일찍 떠나버린 아들을 제외하고서도 이미 두 명의 아들이 있었던 송가인의 부모님 때문에 이들은 어여쁜 딸의 얼굴을 보며 또 다른 희망을 느끼게 됩니다.

다시 마음을 잡고 떡두꺼비 같은 자녀들을 키워보려던 찰나, 송가인의 어머니 송순단 여사에게는 너무나 청천벽력 같은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송순단 여사에게 찾아온 불행의 정체는 다름 아닌 원인 불명의 괴질이었습니다.

 

 

막내딸 송가인이 갓 돌이 되었을 무렵 송가인의 어머니는 서서히 몸이 불편해지는 걸 느끼게 됐는데요.

이 병은 무려 3년 동안 송순단 여사를 떠나지 않고 그녀의 몸과 정신을 갉아먹었습니다.

나중에는 물조차 삼킬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느끼기도 했죠.

병원을 아무리 찾아가도 알 수 없던 진단명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당집을 찾았던 송순단 여사는 그제야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바로 신병이었죠.

갑작스러운 신병 발병으로 꼼짝없이 무당이 되어야 하는 상황.

천금 같은 딸이 무당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심지어는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말까지 듣고 어떤 어머니가 가시밭길을 마다할 수 있을까요?

 

끝내

송순단 여사는 31살이 되던 해, 신내림을 받게 됩니다.

남편 조연환 씨는 ‘오히려 무속인이 되면 더 큰 고생이 시작될 거다’라며 그녀를 만류했지만, 딸의 운명을 망치고 싶지 않았던 송순단 여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죠.

또한, 그녀는 무속인이 된다는 압박감에 희망을 놓는 대신 오히려 돈을 벌어 자녀들을 더 편안한 환경에서 키울 수 있도록 남다른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선배들의 지독한 텃세를 견디며 굿을 다년간 배웠는데요.

망자의 넋을 거두고 위로하며 더 좋은 곳으로 보내준다는 ‘씻긴 굿’ 이처럼 좋은 마음을 먹었기 때문인지 실제로 이후 송순단 여사의 삶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합니다.

덕분에 그녀는 무형문화재 제 72호로써 ‘씻긴 굿’ 명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돈을 벌어 딸 송가인이 민요와 판소리를 배울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해줄 수가 있게 되었죠.

그렇게 송가인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인 가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사실 딸을 위해 밤낮없이 일을 하고 또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희생을 베풀면서도 송가인의 어머니에게는 한 가지 마음의 짐이 있었는데요.

 

그건

바로 무당인 엄마를 아이들이 부끄러워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는 무속인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시절이니 송순단 여사의 입장에서도 자녀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느껴질 법한 대목이죠.

그렇지만 송가인은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난 단 한 번도 엄마가 부끄러웠던 적이 없다”라고 말이죠.

실제로 송가인은 한 방송에 출연하여 “우리 엄마가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도 씻긴 굿을 해주셨던 분이다. 지역에서는 나보다 더 유명하다”라며 어머니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던 적이 있는데요.

뿐만 아니라 “나라에서도 인정해 준 직업인데 부끄러울 게 뭐 있냐”라는 말로 언제나 어머니에 대한 프라이드를 드러내 왔습니다.

그녀는 과거 ‘전국노래자랑’에서 우수상까지 탔을 만큼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어머니를 고스란히 닮아 어린 시절부터 노래의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17살부터는 진도 민요 경창대회와 정부 주간 국악 대회 등지에서 대상과 문체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놀라운 쾌거까지 이뤄냈을 정도였죠.

하지만, 아무리 굳센 송가인이라도 험난한 국악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지쳐가는 딸을 바라보던 그녀의 어머니는 한 가지 묘안을 내게 되는데요.

그게 바로 트로트로 전향을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트롯

송가인은 가수 활동을 시작하면서 예명에 어머니의 성을 추가했다.

자신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하시고 축복까지 받으시며, 인생이 어려울 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신 어머니께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송가인은 트로트 가수로 전국 노래대회에 출연해 어머니가 오래전 불렀던 진도아리랑을 불렀다.

어머니를 향한 그녀의 효심은 심사위원과 청중을 감동시켰고, 결국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트로트 가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물론 첫발을 내디뎠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송가인은 오랫동안 무명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머리핀을 만들어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시기에도 송가인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좋은 성품을 유지했다.

이 기간에도 그녀는 차츰차츰 돈을 모아 산불 피해자들을 위해 기부하는 등 선행을 이어갔다.

그리고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자신이 아닌 남을 생각하던 송가인에게 어느 날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그건

바로 ‘미스 트롯’ 섭외 전화였죠.

출연을 고민하던 송가인은 곧바로 어머니의 의견을 물었고 송순단 여사는 ‘즉시 방송에 출연한다면 딸이 무조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예감하게 됩니다.

그렇게 모녀가 베푼 수많은 선행과 이로 인한 선한 업보가 모인 결과, 드디어 꿈 많던 가수 그녀는 가인이어라, 송가인으로서 많은 대중에게 사랑을 받게 된 것이죠.

한때는 무명 가수로서 외로운 시간을 보냈으나 이제는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국내 최초로 4000만 회가 넘는 인증 횟수를 보유한 유일무이한 가수 송가인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받을 만큼 돌려주는 그녀의 심성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미 탑 중에 탑 가수가 된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사랑해 주는 팬들을 위해 기꺼이 무대에서 내려와 진심으로 악수를 해주는가 하면 한명 한명의 팬들을 모두 생각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감사를 아끼지 않으니 대체 누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부디 앞으로도 그녀의 삶의 모든 순간에 많은 사랑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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