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이상용 이제서야 드러나게된 놀라운 실체, “그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매일 은행부터 찾는” 놀라운 이유를 알아보세요

그러던 어느 날 이상용 씨에게 날벼락이 치게 됩니다.

과거

‘우정의 무대’를 통한 활발한 방송활동 그리고 여러 봉사활동을 통해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이상용 씨.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만 하면 무투표 당선이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뜬금없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됩니다.

그 이유는 이상용 씨가 심장병 어린이 기금을 횡령했다는 것인데요.

‘4500만 원짜리 집이 아니라 40억 호화 주택에 산다’, ’30년 고물차가 아니라 벤츠 승용차를 탄다’, ‘후원금을 빼돌려 파주에 땅 만 평을 샀다’

그야말로 언론의 십자포화를 받게 되는 이상용 씨.

 

결국

그렇게 잘나가던 ‘우정의 무대’에서 하차하게 되는 건 물론 모든 방송 활동을 접어야 했습니다.

당시 이상용 씨는 찾아오는 기자들을 향해 “나한테 그런 집, 차, 땅이 있으면 찾아서 당신이 다 가지시오”라고 말을 하였고, 아니나 다를까 약 3달 뒤인 1997년 2월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되었습니다.

호화스러운 저택, 외제차, 땅은커녕 이상용 씨의 통장 잔고는 불과 40여만 원이 전부였던 것이죠.

이를 보고 그의 담당 수사관조차 “형님 왜 이렇게까지 애쓰며 사셨습니까”라고 할 정도로 어처구니없이 종결된 사건입니다.

그런데 애초에 왜 이러한 혐의를 받게 된 것일까요?

이상용 씨는 이를 정치 보복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건이 터지기 얼마 전, 이상용 씨는 청와대의 측근에 불려가 대전 지역 국회의원 출마 권유를 받았지만, 본인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기에 이를 거절하였는데, 권력자인 자신의 말을 일개 연예인이 거절한 것에 대해 괘씸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마침 이상용 씨가 심장병 어린이 기금을 모으고 있다고 하니 이를 털면 어떻게든 되겠다 싶었는지 바로 경찰 조사가 들어가게 됩니다.

당시 인기 고발 프로그램인 ‘추적 60분’을 통해 이상용 씨를 난도질하죠.

이 청와대의 측근이라는 인물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 씨라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아무튼 대단한 인물이 누구든 이상용 씨는 이 일로 인해 연예계에서 쫓겨나듯이 퇴출당하고 언론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결백을 주장하려고 전단지를 만들어 대전역 광장에서 뿌리다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결국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용의 무죄에 대한 언론 보도는 없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이상용이 과거 비리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이후 이상용은 “나는 정치를 제일 싫어한다. 좋은 사람도 정치에 참여하면 변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수술대 위에는 아이들이 500명 있었는데, 내가 멈추자 500명이 죽었다. 누가 수술을 하느냐. 다들 나한테 돈이 있다고 한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아무튼 이상용은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나쁜 사람이 되었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저축한 돈도 없었기 때문에 여행을 하는 친구와 함께 미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 있는 대리점입니다. 떠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한 충격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몸이 허약해졌다.

이상용 씨는 남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하루 13시간씩 관광버스를 운전하는 관광 가이드로 일했다.

때로는 뽀빠이 이상용을 알아본 한국 관광객들의 팁을 한두 푼 모아 자신의 딸과 결혼시키기도 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아내의 통치를 받아 한국으로 돌아와 시골로 가서 남의 논에서 일하며 하루 2만5천원을 받으며 수년을 보냈다.

최근에야 그는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등 점차 활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의 나이 벌써 여든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정말 한심한 삶을 살았습니다.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늦었지만 이상용은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슬픈 소식이 들려옵니다.

건강의 상징 뽀빠이 이상용이 건강 악화로 쓰러졌다.

이상용은 요즘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여기저기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전립선 문제가 있어서 병원에 갔는데 당뇨병이 너무 심해서 치료가 불가능해서 수술도 불가능했어요.

게다가 식욕도 떨어지고, 체중도 5kg 이상 빠져서 몸에 기력이 빠졌다고요?

심지어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다고 한다.

이상용이 절뚝거리는 모습으로 방송에 등장해 근황을 전했다.

요즘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매일 괜찮냐고 물어보며 걱정이 된다고 합니다.

평생 고생하고 오해를 받으며 좀 더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건강이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그동안 몸과 마음에 과로를 했기 때문일까요?

반면 이상용은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고 한다.

 

결국

과거 수십 년간 치료해 준 600여 명의 아이들이 지금은 40대의 나이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이상용 씨가 언론에 십자포화를 맞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전화라던가 연락이 없었다고 합니다.

 

 

듣기로는 과거에 자신의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제 와서는 남이 알게 될까 봐 창피해 숨기고 싶었다고도 하는데요.

조금은 씁쓸해지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도 밖에 나갈 때면 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에게 드리기 위해 매일같이 1000원짜리 100장으로 10만 원을 꼭 챙겨서 나온다는 이상용 씨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볼 때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고 하는데요.

이런 이상용 씨가 최근 건강이 여기저기 좋지 않다니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뽀빠이 이상용 씨의 고단한 인생사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수십 년간 도와준 사람이 수백 명인데 그동안 전화 한 통 없었던 참으로 딱한 인생이다’라는 생각이신지, 아니면 ‘차마 연락을 못한 건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라며 ‘마음으로 깊은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충분히 의미가 있는 보람된 인생이다’라는 생각이실지,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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