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임영웅, “끝까지 숨기고 싶었어요…” 최근에서야 알려진 그가 유난히도 숨겨온 사실 한 가지.. 모두가 그 내용에 충격 오열을

1990년 임영웅의 어머니 이현미 씨가 남편에게 임신 소식을 처음 알렸을 때 덩실덩실 춤을 추던 남편은 방으로 손을 끌더니, 어디서 났는지 커다란 옥편 하나를 꺼내왔습니다.

‘영웅이 어때? 세상을 구하는 영웅. 남자답고 이름 좋잖아. 우리의 영웅이야’

그러자

임영웅 어머니는 “이름이 사람을 인도한다고 하는데 이름이 너무 센 건 좋지 않은데, 아이가 놀림을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늘 영화 ‘영웅의 본색’을 좋아했던 남편에게 “둘째 낳으면 본색대로 지을 건가요?”라고 물었다. – 물어보고 웃었어요.

임영웅은 이듬해인 1991년 한탄강 전망이 좋은 집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화려한 건물이 세워졌지만, 어머니 이현미의 기억 속에는 어린 임영웅이 강물에서 번개처럼 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한편 임영웅의 부모님은 사정으로 인해 결혼식을 치르지 못해 미루기로 했으나,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주문한 청첩장을 돌려주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떠나보낸 어머니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몇 날 며칠을 울다가 소리치다가를 반복했고, 그러다 하루는 문득 눈에 들어온 게 흙바닥에서 뛰놀던 어린 임영웅이 보였고, 그때 어머니가 다시 마음을 잡으며 “그래 우리 둘이 잘 살아보자”였다고 합니다.

이후 어머니는 기술이라도 배워야 아들을 먹여 살린다며 그때부터 미용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들 임영웅을 큰삼촌댁에 2년 정도 맡기게 되는데, 그런데 훗날 임영웅은 쪼끄만 어린애가 유치원 가방에 엄마 사진을 들고 다니며 유치원 가기 전에 엄마 사진 보며 울고 갔다 와서 울고 했던 게 생생히 기억이 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임영웅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다시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와 같이 살게 되었고 그런데 행여나 아비 없는 자식이란 소리를 들을까 봐 임영웅의 어머니는 물론 큰아버지며 고모까지 노심초사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어린 임영웅도 감지를 했는지 하루는 엄마에게 한다는 말이, “엄마, 우리 아빠 없는 거 남들한테 말하면 안 돼?”

그날따라 봄 꽃망울이 소담스레 길벽을 환히 밝혔으며 엄마 새끼손가락만 살짝 잡은 10살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끝에는 엄마, 아빠, 아이가 서로를 향해 웃는 가족들에게 향해 있었다고 했습니다.

 

 

임영웅의 어머니가 고백하길, “우리 영웅이는 항상 단단해 보였다. 내가 남의 머리를 만지며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궁핍한 삶에도 영웅이는 울지 않았으며 자기가 정말 영웅이라도 된 양, ‘엄마 내가 뭐 도와줄까?’라고 늘 말했다. 그런데 그랬던 아이의 얼굴이 어느 날 피범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밤, 밖에서 뛰어놀다가 담벼락에 꽂힌 유리병에 얼굴이 찍히는 사고를 당해 아이의 여린 피부는 속절없이 뚫리다시피 베였었다. 쇳가루가 얼굴에 진창이었고 피가 흘러넘쳐 티셔츠를 붉게 물들였는데도 아이는 “뭐가 자꾸 흐르기에 그냥 땀인 줄 알았다”라고 했고, 결국 그날 30 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대수술에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이 “신경이 죽어 입이 제자리를 못 잡을 수도 있다’라고 했다. 이후 어느 날 얼굴에 상처로 놀림을 받았는지 아이는 눈물 자국이 배어 잠이 들어 있었고, 잠든 아들 얼굴에 약을 발라주다 문득 뒤로 훔치던 눈물에 깨어난 것인지 영웅이가 실눈으로 방긋방긋 웃어 보이며 한다는 말이 “내 얼굴에 나이키가 있어. 이거 보조개 같지 않아?”라고 말하며 제대로 치료해 주지 못해 가슴 아파하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라고 했습니다.

 

 

한편, 어린 임영웅은 7살에 KBSTV유치원 ‘하나 둘 셋’에 웅변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할 정도로 어릴 적부터 남다른 끼를 보여주었고, 그래서 그랬는지 어릴 적부터 유명인이 되는 게 꿈이었으며 그런데 사실 가수보다는 운동인으로서 유명해지길 원했으며 특히 축구와 태권도를 좋아했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때는 진로를 태권도 교육 쪽으로 할까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운동으로는 빛을 볼 수 없겠다는 걸 일찍 깨달아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러다 진로를 음악으로 바꾸게 된 계기가 기가 막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야간자율학습이 하기 싫었던 임영웅은 마침 친구가 실용음악 학원에 등록하면 야간자율학습을 안 해도 된다고 말하자 잘됐다 싶어, 친구를 따라 실용음악 학원을 가게 되었고, 그런데 당시 이 학원은 다니고 싶다고 다니는 학원이 아니라 시험에서 합격을 해야 다닐 수 있는 학원이었는데, 함께 가자고 했던 친구는 떨어지고 오히려 임영웅만 붙게 되어 그때부터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후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도 실용음악과로 진학을 했고 그리고 당시만 하더라도 트로트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그는 발라드나 RNB 장르의 가수를 준비했었습니다.

그런데 학비를 벌기 위해 오전에는 레스토랑, 오후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특히 교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한가한 시간에 같이 일하던 동료 아주머니들과 트로트를 부르곤 했었는데, 그런데 임영웅의 트로트를 듣곤 ‘너무 잘 부른다’며 깜짝 놀란 아주머니들이 가요제에 출전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임영웅에게 트로트를 부를 것을 제안하게 됩니다.

그리고 발라드를 준비해서 참가한 가요제에서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문득 트로트를 해보라는 동료 아주머니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고,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2015년 포천 시민가요제에서 트로트곡을 준비 참가하게 되는데, 당시 임영웅은 ‘내 나이가 어때서’로 최우수상을 차지하며 비로소 입상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 후에도 조금 더 확신이 필요해 각종 트로트 대회에 참가했더니, 참가하는 족족 대회를 모조리 휩쓸게 되었고 그러다 2016년에는 ‘전국 노래자랑’ 포천 편에서도 트로트를 불러 최우수상을 차지하게 되자 그제서야 자신에게 딱 맞는 옷이 트로트라고 판단해 본격적인 트로트 가수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전국 노래자랑’에 출전했던 같은 해에 SBS ‘판타스틱듀오’ 이수영 편에 출연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주목을 받게 되는데, 당시 이미 임영웅은 자신을 홍대 트로트 영웅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이 트로트 가수이지만 젊은 가수만의 신선함과 에너지를 갖기 위해 당시만 하더라도 흔치 않던 한강이나 홍대에서 트로트 버스킹을 한다”라며 자신을 소개했었습니다.

또한, 이때 방송에서 임영웅을 처음 본 장윤정이 그의 트로트 실력에 깜짝 놀라 “넌 내가 꼭 데리고 가야겠다”라고 말하며 최고의 극찬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SBS ‘판타스틱 듀오’에 출연한 뒤 연예기획사에서 연락이 왔고, 2016년 드디어 데뷔 앨범 ‘니가 싫어’를 발매했고, 실제로 연예계에 데뷔하면 톱스타가 돼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돈이 많아서 대박이 났어요. 꿈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가수들이 그렇듯이 임영웅 역시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다고 말했다.

간헐적으로 스케줄이 빡빡할 수밖에 없었고, 아직 초보라서 여행비나 옷을 살 돈도 없었고, 가수 생활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명 속에서 힘든 삶을 이어가던 그는 KBS ‘아침마당’ ‘도전꿈의 무대’에 출연하게 됐다. 이때 임영웅은 “겨울이라 노래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돈을 벌려고 군고구마 장사를 시작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고구마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언젠가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참가한 무대에서 첫 승리를 거둔 뒤 진달래에게 패했지만 패자부활전에서 다시 살아나 프로그램을 5연승으로 마무리하며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릴 기회를 얻게 됐다. ‘포천의 아들’ 임영웅.

‘아침마당’ 방송에 출연한 후 점차 무명가수에서 벗어나던 중 포천의 아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아들로 태어날 기회를 얻게 됐다. 조선TV ‘내일은 미스터트롯’ 대회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임영웅은 이미 실력파로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출전 소식을 듣자 예선을 통과한 101명 중 우승후보로 꼽히며 1번으로 선정됐다. 후보에 올랐고, 장윤정까지 임영웅을 소개하며 “작년 우승자”라고 말했다. 또 “이건 송가인 수준이다. 그는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아무튼 첫 번째 무대에서 임영웅은 아버지를 잃고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노사연의 ‘소원’을 불렀다. 가사가 명확하고 템포를 완벽하게 조절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첫 무대부터 진심이 느껴졌고, 그 순간부터 ‘올하츠’를 받았고, 임영웅이라는 이름이 스승님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이후 결승전 마지막 무대에서는 임영웅이란 세 글자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셨던 ‘배신자’를 불렀는데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결승전 당일이 아버지의 기일로 그렇게 ‘미스터트롯’을 어머니로 시작하여 ‘아버지’로 마무리하면서 임영웅 그는 마침내 ‘미스터트롯’ 우승자로 등재되게 됩니다.

그리고 ‘미스터트롯’ 진의 왕관을 쓰고 눈물로 범벅져 퉁퉁 부은 얼굴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승전 생방송 당일이 믿기지도 않고 말도 안 되지만 그날이 저희 아버지 기일이었습니다. 미안하다고 엄마 혼자 남겨둔 거 미안하다고 선물을 준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아버지께도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포기하지 말고 더 열심히 꿈꾸며 살라는 격려로 여기겠습니다. 항상 효도하는 마음으로 제 목소리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 달려가 위로와 즐거움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