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어머니, “지난 밤 사이 전해진 눈물겨운 비보..” 그의 장례식이 여태까지 가장 눈물이 많았던 진짜 이유..

이상민의 모친 별세 소식에 수많은 연예계 동료들이 빈소를 찾았는데, 특히나 이상민의 모친과 함께 방송을 했던 서장훈과 신동엽이 빈소를 찾았습니다.

이어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탁재훈과 ‘미운우리새끼’ 제작진도 조의를 표하러 왔다고 전하며, 수많은 연예계 동료들도 조의를 표하며 조의를 표하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

조문객 중에는 친아들처럼 큰 소리로 울부짖는 스타도 있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박씨는 한영과 함께 결혼식 주례를 맡은 이상민 어머니 장례식장을 찾았다. 부모님이 집을 떠나 있는 박씨는 자신을 키워준 이모들을 찾아갔다.

당시 방송되지는 않았지만 박씨는 이상민에게 “어머니를 자주 찾아오세요. 찾아갈 엄마가 없어서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이상민은 “비로 인해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병원을 자주 방문했다.

 

한편

윤정수는 장례식장에 찾아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며 이상민을 위로했다. 그는 “이제 빚을 다 갚았으니 효도하는 일밖에는 할 수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가수 채리나도 이상민 모친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녀는 자신의 SNS에 이상민 임여순 어머니의 장례식장 사진을 게재하며 “오늘 또 만나러 왔어요. 제 동생이 더 좋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늘에서 보살펴 주세요.” , “오늘도 왔어요”라는 채리나의 말로 판단하면, 채리나는 이상민 어머니의 장례식장을 여러 차례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미운우리새끼’ MC 신동엽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과거 ‘미운 우리 새끼’에 이상민 어머니가 출연하자 신동엽은 “아버지와 결혼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말했고, 신동엽은 “아버지와 이상 어머니의 결혼식”이라고 말했다. -분. 그는 “시청률을 30%까지 올리자”고 농담했고, 이상민은 “가장 큰 불효는 이혼이다. ”그리고 부모님이 제가 다시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을 후회했습니다.

‘미운 우리 새끼’에서 이상엽 어머니는 “신동엽 아버지 사진을 찾고 있었다”고 말했고, 이미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신동엽은 이상엽이 ‘아빠’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엽민의 취미는 “형이 동생 빚도 갚아준다”며 빚 갚는 것이었다.

‘미운우리새끼’에도 출연한 서장훈이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고, 지난 방송에서 서장훈은 어머니 생각에 오열했다.

그 이유는 어머니가 5년 동안 투병 중이셨고, 이상민 어머니도 병상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서장훈이 유난히 안타까움을 느꼈던 것 같다.

 

 

김구라 역시 장례식장을 방문해 침착하게 조의를 표하는 모습이 포착됐고, 김구라는 과거 추락한 이상민의 회복에 큰 힘을 보탰다.

김구라는 이상민의 일종의 은인이다. 그는 ‘지니어스’ 프로듀서에게 이상민을 추천했고, 이상민은 가까스로 복귀해 ‘지니어스’로 작가 활동의 초석을 다졌다. 이상민의 공황장애 증상을 발견한 사람은 김구라였다고 한다.

평소와 달리 탁재훈은 웃음기 하나 없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이는 어릴 때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이상민의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네 재훈은 친어머니 같아서 더욱 안타까웠고, 이상민 어머니가 평생 손가락이 아팠던 신정환도 조의를 표하러 왔습니다.

신정환이 해외 여행에 소란을 일으키자 이상민 어머니는 고민에 빠졌고, ‘미운 우리 새끼’에서 신정환을 언급하며 걱정까지 했다. 신정환은 살아생전 자신을 어머니처럼 보살펴주던 사람을 떠나며 눈물을 흘렸다.

더욱이 이상민과 절친한 의형제 같은 배우 최민수가 장례식장에 나타나자 이상민은 최민수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두 사람은 1992년부터 인연을 맺었다. 이상민의 춤을 본 최민수는 “오늘부터 너는 내 남동생이다”라고 말하며 의형제가 됐다. 이상민의 이혼 기자간담회에도 최민수가 옆에 있어 힘을 실어줬다.

이상민은 “어머니가 살아계시면 TV에 출연해 마지막 날을 어머니와 함께 보내고 싶다”며 평소 스트레스를 발산하고 어머니에게 화를 냈던 점을 후회했다.

 

 

그의 어머니는 이상민이 파산하고 수십억의 빚을 졌으니 파산하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걱정이 돼서 이렇게 말했지만, 이상민은 심술궂은 표정을 짓고 너무 짜증이 나서 곧바로 집에 자원이 부족한 것을 후회하고 어머니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늘 사과를 미뤘다. ‘미운 우리 새끼’에서 엄마가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이상민 역시 엄마의 말을 들으며 묵묵히 눈물을 참았다.

이상민은 “10년은 행복했고 10년은 불행했는데 어머니가 20년 동안 고생하셨고, 화를 터뜨린 사람이 어머니였기 때문에 그 10년은 괜찮았고 그 10년은 괜찮았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어려웠던 10년 동안 어머니는 이상민을 어린아이처럼 대했다. 그는 “생각만 해도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병원비는 한 달에 1000만 원이었는데, 수억 원을 들여서라도 어머니의 병이 나아지길 바랐다. 이상민은 어머니가 더 이상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며 흐느끼며 어머니가 기적적으로 쾌차하시면 “사랑해요”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이상민은 한 달 전 ‘미운우리새끼’에 출연해 “엄마가 이제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며 “엄마에게 별로 보여드린 적이 없다. 그런데 어머니 집에 가서 어머니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우리 엄마는 훌륭한 요리사입니다. 사실 밤에 방송하다보니 밥을 주로 사먹는 편이다. 그런데 엄마는 그러지 말라고 해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 주셨어요. 여행이 멀고 힘들기 때문에 매일 전화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어머니의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럼 내가 왜 그랬을까? 이어 “왜 전화를 받았는지 생각해보면 엄마가 갖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솔직히 후회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상민은 모친이 일시적 치매도 알아 목욕을 시켜드리며 눈물을 펑펑 흘렸는데, 건강하셨을 때 사랑한다는 말을 못 했고 치매에 걸리신 후에야 사랑한다고 말한 게 한이었다고 말합니다.\

특히 이상민은 어머니가 아프고 난 뒤 회식 자리도 자주 가지 않았고 갱년기 우울증까지 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병상에만 누워있던 이상민의 어머니는 의식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이상민이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뵈었을 때 “엄마 나 갈게 또 올게”라고 인사했는데, 의식이 없던 어머니가 기적적으로 손을 들어 인사했다고 합니다.

이상민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지만,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될 줄 생각하지 못했죠.

결국, 이상민의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가시기 전 이상민이 빚을 다 갚은 걸 다 들으셨던 것이었고, 또한 이상민이 사랑한다고 말한 것도 다 들으셨고, 손을 들어 인사도 하신 건데요.

현재 이상민은 여동생과 함께 발인을 끝내고 “엄마가 많이 아파서 힘들어했는데 이제 편히 쉬시길 바란다”라며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죠.

그동안 이상민은 모친의 병이 깊어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굉장히 힘들어했는데, 자신의 얼굴도 못 알아보고 섬망 증세까지 보이는 어머니를 옆에서 보며 힘들어했는데요.

방송에서 이상민은 “이제 빚 다 갚고 효도할 일만 남았는데 어머니가 병상에 계신다”라며 안타까워했죠.

이제 빚을 다 갚고 재혼도 생각하고 부모님께 효도 어머니는 그렇게 하늘의 별이 되셨습니다.

이상민은 과거 시상식에서도 어머니를 언급하며 눈물을 흘린 바 있는데, ‘미우새’의 어머니들에게 대상이 수상되었고, 이중 이상민의 어머니 이름도 함께 설명되었지만, 이날 이상민의 어머니는 넘어져 허리를 다쳐 입원 중이라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죠.

어머니를 대신해 무대에 오른 이상민은 “엄마가 시상식에 그렇게 나오고 싶어 했는데 병원에 계신다”라며 “아들이 효도를 하지 못할 때는 건강하셨는데 이제 효도할 수 있을 정도로 조금은 좋아졌는데 어머님이 아프시다”라며 눈물을 흘린 바 있는데요.

이상민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고 홀어머니 손에 컸다”면서 “내가 어렸을 때 부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어머니가 주점을 하신 적이 있다. 근데 손님이 술 먹고 엄마한테 행패 부리고 이런 모습을 어린 나이에 봤던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엄마가 사람들이랑 싸우다가 넘어져서 바닥을 짚다가 깨진 소주병에 손이 찢어지셨는데 그때 내가 엄마를 업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부자가 되는 게 내 꿈이었다”라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는데요.

 

한편

이상민은 건강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된 이유에 대해서 “처음에는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이후 뇌출혈로 쓰러졌고 신장 제거 수술까지 받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상민은 한 방송에서 “자신이 사생아였다”라며 “제 친어머니가 아버지의 두 번째 처다. 많이 복잡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이상민이 말하길, “내가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웠는데 중학교 3학년 때 충격적인 일을 겪기도 했다. 친구가 왜 명절인데 아버지 산소에서 차례를 안 지내냐라고 묻더라. 그래서 그동안 아버지 산소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우리는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산소에 안 가는 것’이라고 변명하셨다. 그래서 신촌 기찻길을 따라 걸어간 끝에 결국 일산에 위치한 아버지 산소를 찾아갔는데, 아버지 비석에 내 이름이 없었고 다른 형제자매들의 이름이 있었다. 큰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상민은 어린 마음에 못으로 아버지의 비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기 위해 애썼고, 그때부터 공부에 담을 쌓고 비뚤어지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어머니가 본처가 아니었고 아버지를 직접 본 적도 없는 혼외 정사로 태어난 사생아였던 이상민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생계조차 힘들었다죠.

그는 “출생신고를 2년이나 늦게 하는 바람에 주민등록상 나이가 2년 늦어졌고 태어난 후 2년 동안 이름도 없이 ‘이애기’로 불리기도 했다”라며 “그러면서 친어머니에게 불효자로서 계속 근심만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다”라며 “여태 겪었던 수많은 일들은 뒤로하고 앞으로 나의 새로운 모습 속에서 행복만 생각하고 싶다”라고 전했죠.

인생의 굴곡이 심했고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고 현재도 살고 있는 이상민의 인생은 그야말로 인간극장 드라마나 영화를 한 편 만들어도 괜찮을 만큼 파란만장한데요.

모쪼록 비보를 당한 이상민에게 위로를 전하고 올해 투병하신 어머니가 하늘에서는 편히 쉬시기를 바라며 삼가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