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빚까지 갚아줬는데…” 가수 장미화 전남편의 눈물겨운 소식에 그 모두가 눈물바다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혼 후 은퇴했다가 이혼과 함께 복귀를 알리는 스타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가수 장미화의 경우인데요.

장미화는 한창 잘나가던 시절 결혼식을 올리고 3년 만에 이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요계로 다시 돌아왔는데요.

화려한 복귀를 한 그녀에게 남은 것은 100억이 넘는 빚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생계형 가수로 활동하던 중 장미화는 사기까지 당하며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전 남편에게 애인을 붙여준 것도 그녀라는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이 전해진 후 얼마 안 되어 전 남편의 비보가 들렸는데요.

장미화가 그를 따라갔다는 소식까지 전해져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대체 그녀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946년생 장미화는 76세라는 나이에 비해 동안 외모를 자랑하며, 가수, 방송인, 사업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녀는 65년 지금의 kbs인 서울중앙방송 주최 가수 발굴 노래자랑 탑 싱어 선발대회를 통해 가수로 데뷔했는데요.

‘안녕하세요’, ‘애상’, ‘어떻게 말할까’, ‘내 인생 구름에 실어’, ‘서풍이 부는 날’ 등의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가요계의 디바로 군림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무대 아래의 모습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을 만큼 기구했습니다.

장미화는 지난 한국전으로 아버지와 5세 때 생이별해 홀어머니 아래에서 힘들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사춘기 시절 외삼촌의 수소문으로 아버지를 만났는데요.

보고 싶은 아버지를 겨우 만났지만, 아버지는 이미 새살림을 차린 후였습니다.

게다가 10여 년 만에 만난 장미화에게 아버지는 살갑게 굴기는커녕 무뚝뚝한 태도를 보였는데요.

 

 

사춘기 시절 예민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위로 6명의 언니를 잃으며, 무남독녀가 된 사연도 공개했는데요.

“친언니는 6명이나 있었는데, 그때 당시 폐렴 주사들이 없어서 돌 되고 100일 되면 다 세상을 떠났어요”라며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안타까운 가정사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장미화는 전성기를 구가할 때 돌연 결혼을 발표하며 은퇴를 알렸습니다.

그녀는 78년 1살 연하 사업가의 김태선과 식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결혼 불과 4년 만에 이혼을 알렸는데요.

장미화는 mbn 예능 프로그램 ‘동치미’에 출연해 전 남편 김태선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이날 장미화는 ‘바람피운 전 남편, 결국 애인도 내가 만들어줬다’라는 주제를 들고 와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전 남편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사업에 너무 광적이었어요.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시키다 보니까 빚더미에 앉았어요. 그래서 이혼하고 빚을 청산한 뒤 재결합을 이야기했더니 전 남편이 ‘내가 이혼했으면 했지 절대 그렇게는 못 산다. 내 자존심이 허락을 못한다’라고 했어요”

“전 남편 얘기를 듣고 욕을 확 했어요. 그러다 결국 헤어졌어요. 결혼생활 4년이지만 세 살 아들이 있었어요”라며 아들을 데리고 헤어졌는데 “어느 날 공연하고 집에 온 아들이 없어졌더라고요. 시집에서 장손이라고 데려간 거예요. 아들을 뺏기고 저와 어머니의 가슴이 새카맣게 탔어요. 그래서 전 남편의 빚을 제가 다 안고 아이를 데려왔어요. 혼자 아이를 키우는 데 너무 힘들었고 빚을 갚는 데 20년 이상이 걸렸어요”라고 털어놔 안타까움을 안겼습니다.

장미화는 이후 아빠 없이 자란 아들에게 미안함을 느껴 전 남편을 찾아갔다고 하는데요.

 

 

장미화는

“아들을 위해 자꾸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아들과 전 남편도 가까워지게 됐어요. 집에는 각자 가지만 만났을 때는 가족 같았어요”라고 회상했습니다.

이어서 그녀는 “어느 날 그 사람이 어떤 여자를 데리고 왔어요. 그리고 그 사람한테 나를 ‘우리애 엄마야’라고 소개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여자에게 ‘이 사람은 지금 나랑 같이 사는 사람이야’라고 했어요. 그때 속으로 ‘나이 60 어디로 먹었니’라고 생각했지만, 친구니까 그냥 넘어갔어요”라며 전 남편의 황당한 행동에 분노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울면서 내게 전화를 하더라고요. ‘언니, 나 너무 속상해 오빠를 많이 사랑하는데, 오빠가 나더러 좋은 사람 찾아가래. 언니가 얘기 잘 해줘’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사랑의 큐피트가 된 거예요. 내가 그 순간에는 다른 게 생각이 안 나고 같은 여자로서의 동질감만 느꼈어요. 그래서 술을 먹다가 전 남편에게 훈계를 하고 둘이 다시 만나게 해줬어요. 나중에 동생들이 ‘언니 간, 쓸개 다 어디다 버리고 다니냐’라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보다 내 자신을 위한 거예요. 내 마음을 비우면 편안해지지 않을까 해서요. 그렇게 해서 전 남편과 10년을 친구처럼 지냈어요”라고 전했습니다.

사실 전 남편 김태선은 장미화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극구 반대했습니다.

 

사업의 부도가

났을 때도 그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김태선은 장미화의 재산과 인지도를 이용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렸습니다.

장미화는 결혼 생활 중 그에게 빚보증을 수차례 써줬고, 이혼 후인 93년도부터 2017년까지 100억에 이르는 빚을 상환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와중에 장미화는 그 시절 흔한 재테크 수단이었던 계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개주였던 후배 가수 정모 씨가 20여 명의 곗돈 수십억을 갖고, 해외로 도망가 잠적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함께 사기를 당했던 김 씨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방송가 사람들 대부분이 그 선배에게 당했을 거예요. 첫 순번부터 마지막 순번까지 자기가 다 꿀꺽했더라고요. 가수 노래는 유명하지만 부를 수 없어요. 손수레를 속아 끌고 가는 그런 노래예요”

 

장미화 역시

이 사건으로 전 재산 12억을 모두 날리고, 10년 가까이 빈털터리로 생활하며 생계형 가수로 보냈습니다.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삶을 끝내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혼 후 아이는 외국에 가 있고,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도 갑자기 돌아가시고 혼자 있으니 ‘왜 살아야 하냐’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죠.

“당시에는 그런 생각에 방충망을 수없이 열었다, 닫았다, 했어요”

그녀는 자신이 우울증이라는 것도 모른 채 나쁜 생각만 수차례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미화는 1년 동안 하루에 업소 12군데까지 뛰면서 일하고, 남들 쉬는 일요일에도 가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 강행군 때문에 대상포진까지 걸렸는데요.

유선 밑부터 등까지 물집이 터진 후 병원을 찾아 의사를 놀라게 할 정도였습니다.

대상 포진은 아이 낳는 고통보다 심하다는데요.

그 때문에 10개월간 약은 기본으로 척추에 주사를 맞았고, 입원까지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그녀의 아들 엄마의 고생을 알아 비뚤어지지 않고 잘 자라주었습니다.

 

장미화는 아들을 키워내기 위해

전 남편과도 친하게 지내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태선은 2018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새벽 6시에 아들한테 전화가 왔어요. 전화를 받으니 아들이 너무 많이 울더라고요. 아빠가 교통사고로 방금 돌아가셨다고 했어요. 그 전화를 받는 순간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어요”

“그나마 한동안 가족처럼 살아왔는데,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 마음속 한구석이 무너졌어요. 그 행복이 사라진 느낌이 들었어요. 혼자서 슬퍼하고 있을 아들이 걱정돼 같이 울었어요. 떠난 그 사람보다 아들의 한쪽이 없어진 것 같아서 슬펐어요”

“아들이 영안실 사진 옆에 혼자서 앉아서 계속 울고 있는데,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내가 뭘 잘못했기에 우리 아들도 이렇게 가슴 아파야 하나, 내가 뭘 어떻게 했기에 우리 아들이 이렇게 아파야 하나'”라며 눈물을 흘렸어요.

전 남편의 비보를 접한 장미화와 아들은 상주로 빈소를 지켰습니다.

그녀는 아빠를 잃은 아들의 슬픔을 생각하며 이혼을 후회했다고도 밝혔습니다.

 

전 남편 때문에

속앓이를 크게 했던 입장에서 그녀의 말은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비보와 함께 난데없이 장미화의 별세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는데요.

장미화는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서 자신에 대한 비보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가짜 뉴스를 전한 보도가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었는데요.

일부 내용 중에서 제가 남편한테 했다는 ‘여보 먼저 가 있으면, 금방 따라갈게’ 이런 말은 ‘아예 소설을 쓴 쓰레기 같은 날조 뉴스’라고 분개했습니다.

그리고 기분은 나쁘지만 죽다 살았다고 생각하면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말이 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장미화가 그동안 많은 시련을 겪어왔던 만큼 앞으로는 좀 더 편안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는데요.

그녀의 긍정적인 대답처럼 더 건강하게 오래 활동하기를 바라며 장미화의 앞날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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