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야구계에 한번 불기 시작한 바람의 손자의 돌풍은 여전히 그칠 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시간 18일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애미 말린스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이정후는 경기 초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끝내 멀티히트를 만들었는데요.
거기다 이 안타들로 9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정후의 활약에 현지 중계진들도 놀라움을 나타냈는데요.
이 페이스는 지금까지 메이저리그를 거쳐갔던 한국인 타자들 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준이여서지요.

만일 다음 경기에서도 이정후가 안타를 치면 한국인 선수로는 역대 최고의 기록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됩니다.
경기가 끝나고 곧바로 플로리다를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야 했기에 주중 경기로는 특이하게도 현지 시간으로 낮에 열렸던 18일 말린스전.
이 경기 초반 이정후의 컨디션은 그렇게 좋지는 못했습니다.
이날도 전 경기에서처럼 3번 타자로 나와 1회초 첫 타석에서 날아온 높은 공에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3루수 앞으로 굴러가는 땅볼이 되어 아웃, 4회초 첫 타자로 올라왔던 두 번째 타석에서는 풀카운트까지 승부를 이어갔지만, 몸 쪽에 바짝 붙는 공에 헛스윙을 해 삼진으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헛스윙을 잘 안하고 삼진도 잘 안 당하는 것으로 빅리그에서도 유명한 이정후로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는데요.
공이 들어온 위치를 잘 보면 존을 벗어날 정도로 가까이 붙었기에, 안치고 그냥 내버려뒀으면 볼넷으로 나갈 수도 있었기에 더욱 아쉬웠습니다.
이 때문에 이날은 이정후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지요.

하지만, 야구란 건 9회까지 가봐야 아는 법이죠.
6회초 1루 주자 상황의 세 번째 타석에 올라온 이정후는 존 바깥으로 빠지는 공을 밀어쳤습니다.
역시 1회 때린 타구처럼 땅볼이라 내야를 못 넘기고 유격수에 잡혔는데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유격수가 선행 주자부터 잡으려다 2루의 주자가 예상보다 빨리 들어온 걸 보고 당황한 덕에 내안타가 되었습니다.
이정후의 타구가 느리게 굴러가 상대 수비가 잡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린 덕도 크지요.
운이 따라줘서 만들 수 있었던 안타였지만, 이걸로 주자 1루 상황이 만들어져 이때까지 한참만 내주고 이정후를 비롯한 자이언츠 타자들을 잘 막았던 선발 투수 트래버 로저스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이정후가 친 내야 안타 덕에 지금까지 자이언츠의 득점을 막던 장벽이 사라진 거라 할 수 있지요.
이어지는 6회 말린스가 한 점을 따내며 동점이 되었지만, 로저스를 대신해 올라온 불펜 투수를 상대로 자이언츠 선수들은 7회의 한 점을 얻어내 다시 앞서갔는데요.
앞서가고는 있지만 안정적인 승리를 위해 점수차를 더 벌려놔야 하는 8회 초, 네 번째 타석에 올라온 이정후.
이번에는 주자가 없기에 6회와 같은 행운을 팔아서는 안 되는 상황.
이정후는 스트라이크존 복판 쪽으로 공이 오자 밀어쳐 유격수키를 훌쩍 넘기며 뚝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었습니다.
이정후의 특기로 알려진 하드 히팅과는 거리가 먼 그리 강한 타구는 아니었지만, 유격수와 좌익수 사이 애매한 공간에 절묘하게 떨어졌지요.
이어서 올라온 호르의 솔레르도 1루와 2루 사이를 가르는 안타를 쳐 2루로 가게 된 이정후.
무주자의 타석에 올라와 득점 추자까지 되었는데요.
솔레르 다음에 올라온 매체프먼이 외야 오른쪽으로 멀리 날아가는 2루타를 때려 이정후는 홈플레이트를 밟게 되었습니다.
점수는 3대1.
자신이 직접 기회를 만들어 점수까지 따내게 되었는데요.
이후 자이언츠의 추가 득점은 없었지만 추가 실점도 없어 경기는 그대로 3대1로 종료.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마지막 점수를 얻어 이정후가 잡아낸 게 인상적인데요.
그렇게 자이언츠는 말린스와의 3연전을 위닝 시리즈로 마무리하며 플로리다 원정을 기분 좋게 마치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정후로서도 빅리그 데뷔 후 첫 동부 원정 마무리를 멀티히트로 하게 되었으니 만족스러웠다 할 수 있겠는데요.
이번 경기 멀티히트로 타율이 이할 칠푼까지 올라 정확히 이할까지 떨어졌던 8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전 직전과 비교해 열흘 만에 칠푼이 오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 열흘 동안의 타율만 계산하면 삼할 삼푼 삼린인데, 최근 이정후의 타격 감각이 꽤 준수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이거 외에도 미국 야구 전문가들이 이정후의 최근 타격 기록을 눈여겨보고 있는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이정후의 현재까지 타격 페이스가 역대 대한민국 출신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데뷔 시즌 성적과 비교해 독보적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정후는 9경기 연속으로 안타를 기록하고 있는데, 빅리그 데뷔 시즌에 이 정도 기록을 세운 한국인 타자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당장 파드리스에서 뛰고 있는 김하성만 해도 첫 시즌이었던 2021년에는 연속 안타 기록이 5경기밖에 안 됐는데요.
역대 한국인 메이저리그 타자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추신수의 경우 빅리그에서 첫 경기를 치렀던 2005년에는 연속 안타 기록 차체가 아예 없었습니다.
애초에 그의 빅리그에서 뛰었던 경기가 10경기밖에 안 되었으니 놀랄 만한 기록은 아니지요.
달리 말하면 이런 내로라 하는 선수들도 첫 시즌에는 고전을 면치 못할 정도로 메이저리그의 문턱이 높다는 건데요.
그랬던 선배들에 비해 이정후는 아직 개막 후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벌써 9경기 연속 안타에 타율도 이할 칠푼으로 루키로서는 나쁘지 않으니 참으로 대단하네요.
게다가 다음 경기에서도 안타를 치면 한국 선수로는 역대 3번째로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의 10경기 연속 안타를 친 선수가 됩니다.
현재까지 이 기록을 달성한 한국인 선수는 강정호와 김현수 둘밖에 없는데요.
둘 다 각각 빅리그 데뷔 시즌에 두 자릿수 홈런과 삼할 타율을 기록했던 선수들이란 점에서도 이들의 기록과 비교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정후가 빅리그에 잘 적응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할 수 있습니다.
주목할 건 안타페이스만 보면 이정후가 이 둘을 이미 능가하고 있다는 건데요.
강정호의 데뷔 시즌 10경기 연속 안타 기록은 그해 5월 17일에서 29일, 김현수의 경우는 그해 7월 26일에서 8월 9일 사이에 달성한 겁니다.
그런데 이정후는 4월 18일 시점에 이미 9경기 연속 안타니, 19일에 열리는 다음 경기에서 안타를 치면 무려 4월 하순에 접어들기도 전에 10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세우게 되는 겁니다.
한국 선수로는 역대 최단 기간 10경기 연속 안타를 치는 이정후가 메이저리그에 적응하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큰데요.
만일 이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면 이정후는 더 큰 기록에도 일찌감치 도전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한국인 타자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연속 경기 안타 기록인데요.
현재까지 빅리그에 진출한 한국인 타자의 최다 연속 안타 기록은 추신수와 김하성이 세운 16경기 연속 안타입니다.
이 중 김하성의 기록은 추신수가 2013년에 세운 기록 이후 10년 만인 작년에 세운 거니, 이 기록에 근접하는 것 자체도 절대 쉬운 게 아님을 알 수 있는데요.
참고로 역대 2위 기록자인 최지만의 경우, 2022년에 13경기 연속으로 안타를 친 바 있습니다.
강정호와 김현수도 데뷔 시즌 세웠던 10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넘어서지는 못했지요.
즉, 벌써 이 기록을 넘볼 수 있는 위치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이정후는 훌륭한 루키 시즌을 보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선은 10경기 연속 안타부터 달성해야겠지만, 만약에 추신수와 김하성의 기록에 다다르거나 넘어서게 된다면, 이번 시즌 전체 타율에 있어서도 청신호가 켜진다고 볼 수 있는데요.
김현수가 그랬던 것처럼 데뷔 시즌의 삼할대 타율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게 됩니다.
특히 김현수의 경우는 100경기를 못 채우고 달성한 거라는 한계성이 있는데, 그에 반해 이정후는 현재 추세라면 부상이라도 당하지 않는 이상 100경기는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데요.
데뷔 시즌에 117경기를 치렀던 김하성의 타율이 2할 1위로 2할을 턱걸이로 겨우 넘겼다는 걸 생각하면 이는 대단한 기록인 겁니다.
개막 전 이정후를 내셔널리그 신인상 유력 후보로 지목했던 국내외 전문가들의 안목이 절대 틀린 게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거기도 한데요.
어쩌면 이 시점에 벌써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정후를 단순한 일개 신인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 증거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것들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오라클 파크에 돌아가서 치르게 되는 에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와의 사연전부터 잘 치러야 하는데요.
앞서 언급했던 한국인 선수 최단 기간 10경기 연속 안타 기록이 세워질 수 있을지 여부가 당장 19일에 있을 4연전 첫 경기에서부터 판가름이 납니다.
자이언츠에 있어서도 바로 한 계단 위에 있는 다이아몬드 팩스를 누르고 서부 지구 3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니 아주 중요한 사연전인데요.
부디 이정후가 홈팬들 앞에서 플로리다 원정 동안 더욱 발전했던 모습을 선보이고 선배들의 뒤를 잇는 기록도 세울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