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축구협회장 경영권 앞으로 전부 XX 시킬 예정” 현대 정의선 작심발언에 모두가 경악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은 5촌 당숙과 조카사이, 전통적인 촌수관계 호칭상으로 당숙질간(堂叔侄間)이다.

정의선 회장의 부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정몽규 회장이 이름에 몽(夢)자 돌림으로 쓰는 사촌형제다.

정몽규 회장의 선친은 2005년 타계한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7형제 중 다섯째인 고 정세영 현대그룹 회장이다.

 

 

정세영 회장은 정주영 회장이 일으킨 여러가지 사업중 자동차에 전념해서 형의 사업을 도왔다. 1967년 현대자동차가 설립됐을 때 초대 사장을 맡았다. 1974년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모델 승용차인 현대 포니를 개발했으며, 1976년, 에콰도르를 시작으로 세계 시장에 포니를 수출하면서 ‘포니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1987년부터 1995년까지 현대그룹 회장과 현대자동차 회장을 지냈고, 이후 2년간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을 지냈습니다.

 

 

정세영 회장은 고인이 된 형의 분신인 현대자동차 회장직을 몹시 탐냈습니다. 정주영 회장의 동생은 제국과 깊은 인연이 있어서 형을 이어받는 것이 사실상 자신의 의무라는 미신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들 정몽규를 현대자동차에 끌어들인 뒤 사장 겸 회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정몽규 회장의 현대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주식을 매수하려 했을 때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현대차는 정주영 회장의 장남인 정몽구 회장의 몫이 됐고, 정세영 회장에게 돌아온 것은 현대산업개발이라는 건설사였다. 워낙 우애(友愛)가 좋은 집안이라 정세영 회장은 그 어떤 불만도 표시하지 않았다.

현대차 대신 현대산업개발을 받은 뒤 정세영 회장이 아들 정몽규에게 “자동차는 한 대 팔아봐야 고작 몇십만원 남는데 아파트는 한 채 팔면 몇억도 남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정몽규 회장은 또다른 가업(家業)을 하나 물려받는데 바로 사촌형인 정몽준 아산재단이사장이 이끌던 축구협회다.

정몽준 이사장은 많은 사재(私財)와 노력을 들여 축구협회를 이끌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유치하고 대한민국의 4강신화를 이룩하기도 했다. 2013년 정몽규 회장이 처음으로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임자이자 삼촌인 정몽준 회장의 이같은 성과, 후광(後光)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월드컵 4강신화가 워낙 눈부신 업적이다 보니, 정몽규 회장이 이끄는 한국 축구에는 경사로 여겨질만한 성과가 없었다. 최근에는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하고 홍명보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과 잡음으로 시끄럽기만 하다.

파리올림픽이 시작되고 정몽규 회장은 5촌조카 정의선 회장에 ‘의문의 1패’를 당했다.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양궁 여자대표팀은 올림픽 10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축구는 예선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아예 출전조차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