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숙 결혼도 못하고 10년 넘게 방송에 못 나온 눈물겨운 이유..” 이 모든게 자처한 일들인가.. 끝내 안타까운 소식이…

최근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71회에 반가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날 박원숙은

두 번 결혼하고 이혼한 박해미를 어머니의 마음으로 품어달라고 초대했습니다.

박해미는 “지금 기분이 훨씬 나아졌고 정말 행복하다”고 출연진을 안심시켰다.

인터뷰에 참석한 박해미는 첫 드라마 ‘천국아’ 촬영 소감을 전했다.

첫 악역이 멋있었다는 박해미는 한혜숙과의 첫 만남도 회상했다.

 

 

그는 “생모, 계모 역으로 한혜숙 선배님을 처음 만났다. 내가 실수하면 눈빛이 확 바뀌더라”며 긴장했던 시절의 일화를 털어놨다.

실제로 박해미의 만만찮은 캐릭터를 위압감 있게 만든 한혜숙은 씩씩하고 강인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수업시간에는 자신이 싫다는 이유로 방송국 경호원들을 괴롭히기도 했고, 박해미와 마찬가지로 후배들이 운영을 하면서도 어색함을 느낄 정도로 불쾌한 지시를 내리는 선배였다.

한 영화를 찍으면서 후배들을 감옥에 가두기도 했다고 한다.

 

많은 논란

때문인지 그녀는 10년 넘게 방송에서 모습 한 번 비추지 않고 있습니다.

대체 어떤 이유로 그녀는 은퇴 절차를 밟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그녀가 평생 독신으로 산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주인공 한혜숙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2010년 드라마 ‘보석 비빔밥’을 끝으로 모든 연기 활동을 완전히 중단하고, 사실상 연예계 은퇴를 한혜숙.

독신에다, 건강 문제까지 없는 그녀가 오랫동안 보이지 않은 데에 많은 사람이 이유를 궁금해하고 있는데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치부하며 넘기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그녀가 지금까지 무수한 논란을 낳은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1951년생

한혜숙은 연기 경력이 단 한 번뿐이며 예민한 성격을 자랑했다.

그는 역내에서 좋지 못한 상황들로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후배들을 향해 선배로서의 지위를 악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행위로 인해 방송계에서 퇴출됐다는 의견도 많았다.

한혜숙의 듬직하고 강인한 성격은 연기 활동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70년 MBC 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한혜숙은 이듬해 KBS 1기 공채 탤런트로 발탁돼 드라마 ‘꿈나무’에서 하명중과 호흡을 맞추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드림트리 오디션 드라마 경쟁률은 3,500대 1에 달했다.

 

 

한혜숙은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안방극장의 인기 스타로 급부상했습니다.

한혜숙은 신기록을 많이 세운 여배우로도 유명한데요.

70년대 톱스타 관문이 되는 드라마 세 편에 모두 출연한 기록입니다.

당시 여배우들이 톱스타로 올라설 수 있는 관문이 되는 드라마가 세 편이 있었는데요.

 

바로 구미호와

춘향이 그리고 토지였습니다.

이 세 편의 드라마는 워낙 유명한 명작품들이라 계속해서 리메이크 되는 작품들인데요.

한혜숙은 제1대 구미호와 1대 춘양이 토지에서 역시 1대 최서희 역할로 출연해 주목받았습니다.

영화에서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김지미와 문희 같은 대스타들만이 춘향 역을 맡았었는데, 드라마에서는 바로 한혜숙이 춘향이 역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입니다.

큰 키에 세련되고 청순한 미모를 가진 한혜숙은 70년대 수많은 남성을 설레게 하며 시대를 풍미했는데요.

60년대 주름 잡았던 트로이카 여배우들이 모두 은퇴하고 난 후 혜성처럼 등장해 새로운 세련된 미녀 상을 선보이며, 70년대 가장 주목할 만한 여배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브라운관의 김지미’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독보적인

그 당시에는 영화 속 ‘스트립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영화에 나오는 게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한혜숙은 성격이 너무 대립적이어서 노출이 많은 작품에는 출연을 거부했다.

‘에버그린’, ‘계보’, ‘최후의 증인’ 등 영화에 출연했지만 모두 사회문제 해결을 설교하는 영화여서 흥행에 실패했다.

대신 그는 꾸준히 TV 시리즈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작가 임성한이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인어공주’에서 장서희와 뺨을 맞대고 열연을 펼쳤던 장면은 지금도 유명하다.

실제로 그녀는 ‘인어공주’ 출연을 거부했다. 처음으로 불륜을 저지르고 가족을 파탄시키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출연은 임성한 작가가 2시간에 걸쳐 전화로 설득한 끝에 확정됐다고 한다.

이후 한혜숙은 임성한 작가의 작품 ‘천국이여’에 출연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을 작업하면서 후배들을 심하게 꾸짖었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윤정희를 집에 데려가서 3개월 동안 연기를 가르쳤어요. 당장 연기를 그만두라고 혼났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윤정희가 우리 집 경비실 옆 잔디밭에서 몰래 울고 있었습니다.” .”

 

한혜숙은

당시 첫 주연을 맡은 윤정희의 연기를 다듬어주기 위해 3개월간 함께 생활하며 연기를 지도했다는데요.

극 초반부에서 한 컷에 한 표정도 어색해 했던 윤정희는 한혜숙의 특훈을 받고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습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윤정희뿐 아니라 이태곤에게도 무서운 선배 역할을 했습니다.

윤정희와 달리 이태곤은 처음부터 연기를 잘했지만, 중반쯤 인기를 얻기 시작하며 연기 정체를 겪었습니다.

이에 한혜숙은 쓴소리를 하며 초심을 기억하게 유도했습니다.

결국 이태곤은 한혜숙의 쓴소리로 정신을 다잡고 연기 정체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언뜻 들으면 후배들을 잡도리하는 무서운 선배의 이야기지만, 후배들의 최고의 연기력을 펼칠 수 있게 큰 도움을 준 것입니다.

 

3개월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후배와 함께 생활하고, 인기가 많은 후배를 격려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쉽지 않았을 터.

한혜숙의 강인한 성격은 다른 일화에서도 느껴진다.

한혜숙은 전성기였던 1980년대 한 방송국 경비원을 다치게 해 피를 흘린 적도 있다.

당시 방송국에서는 이름표를 착용한 사람만 입장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이 점에서는 연예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매우 빡빡한 일정으로 방송국에 서둘러 도착한 한혜숙은 이름표를 남기고 경호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온 국민이 한혜숙의 이름과 얼굴을 알게 되자 거듭 요구했지만 경비원이 단호하게 제지했다.

급하게 촬영을 시작하려는 한혜숙은 경비원의 머리를 신발로 내리치는 바람에 경비원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고 한다.

이렇게 강한 성격 탓일까요?

한혜숙 씨는 70세에도 여전히 미혼이다.

실제로 그녀는 세 번 정도 연애를 했다고 밝혔으나 아직 싱글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녀가 미혼인 이유는 어려서부터 가장을 맡아 네 명의 여동생을 부양하는 환경과 신앙심이 깊고 금욕적인 성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그녀는 다시 태어난다면 비구니가 될 것이라고 밝힌 적도 있습니다.

현재 방송에서 보이지 않는 이유도 종교 생활에 심취해서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방송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불교 행사에는 꾸준히 얼굴을 비추며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2009년 드라마 ‘보석 비빔밥’을 마지막으로 한혜숙은 좀처럼 방송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동안 강한 성격으로 방송국과 척을 지며 어쩔 수 없이 은퇴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는데요.

본인이 직접 밝히지 않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평생 화려한 삶을 살아왔기에 조용한 휴식기를 가진 것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방송에서 모습을 드러내길 바라는 팬들이 많은데요.

한혜숙의 차기작 소식이 들려오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인상 깊은 그녀의 연기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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