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70세 사극 전문배우 민욱, “나 대신 행복하게 살아다오” 밤 사이 전해진 그의 눈물겨운 이별 소식과 사인

지난 2017년 3월 2일 배우계의 큰 별이 졌습니다.

배우

민욱이 세상을 떠나고서 한참이 된 5년이 지났다.

고인은 2015년 두경부암 진단을 받고 약 2년여의 치료 끝에 사망했다.

민욱의 딸은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연기에 대한 열정에 대해 “늘 연기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투병 기간이 길었다. 사망 일주일 전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사망했다. 의식을 잃은 상태였으나 멀쩡한 모습으로 가족들 앞에서 숨졌다”고 전해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유가족에

따르면 그는 마지막까지 후배들의 걱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딸은 “아버지가 병상에서도 tv를 보면서 ‘후배 누가 참 잘한다’라고 말하며 흐뭇해하기도 했고, ‘저 배역에는 누가 했으면 좋겠다’라며 후배들의 연기를 모니터 하시기도 했어요. 연기에 대한 애정이 참 많으셨죠”라고 전했습니다.

 

민욱을

우리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두경부암은 머리와 목 부위, 즉 뇌의 하부와 가슴 상부 사이에 발생하는 암을 말합니다.

두경부암은 갑상선을 제외한 신체의 두경부 부위에 발생하는 암을 총칭하는 용어입니다.

머리와 목 부위에는 비강, 혀, 입, 후두, 침샘 등 식사, 발성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비인두암, 편도선암, 구강암 및 혀암이 포함됩니다.

두경부암의 주요 원인으로는 흡연, 음주, 유전적 요인 등이 꼽힌다.

전세계 모든 암의 5% 정도의 빈도로 발생하며, 암이 발생한 부위에 혹이나 통증이 나타나고, 후두암의 경우 목소리의 변화가 나타난다.

그 중 비인두암의 흔한 초기 증상으로는 목의 멍울, 쉰 목소리, 피가 섞인 콧물, 청력 상실, 객혈 등이 있다.

이러한 증상이 지속되면 뇌까지 퍼져 뇌신경마비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증상이 발견되면 즉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최근 비인두암 투병 끝에 드라마에 복귀한 사람은 바로 배우 김우빈이다.

민욱은 20~30대 젊은층에게는 생소한 인물이지만, 중년층에게는 유명한 배우이다.

1969년 KBS 8기 탤런트로 데뷔한 이후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작품을 통해 파격적인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비록 주연은 아니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주연을 맡아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전해진다.

민욱은 KBS의 뛰어난 재능이자, 위엄 있으면서도 잘생긴 외모를 지닌 잘생긴 주연 배우였다.

TBC 대표 배우 노주현과 한진희가 로맨스 드라마에 출연했다면, 민욱은 사극에 출연했다.

 

 

과거 단편 드라마에서 이북의 김 씨 일가 최고 오두머리 역할을 맡았다가 시청자들의 항의가 방송국으로 빗발친 적이 있었는데요.

이는 그의 연기력이나 다른 무언가의 논란 때문이 아닌, 그 역할을 미남 배우인 민욱이 맞는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마마보이란 용어를 안착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기도 합니다.

‘마마보이’라는 용어는 그전에도 한국 사회의 존재는 했으나, 사실 그렇게 대중적이지는 않은 용어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던 것이 민욱이 전국민적인 인지도를 갖게 된 것은 1994년에 방영된 kbs의 주말 연속극 ‘남자는 외로워’에서 마마보이 중년 가장 캐릭터 역할을 맡게 되면서부터였는데요.

민욱은 이전에도 이미 25년 가까이 활동해 온 kbs 공채 출신 중견 탤런트로 이 캐릭터를 자신만의 연기력으로 잘 살려냈습니다.

 

 

그는

사극 쪽에서 굵직한 연기를 주로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조광조’, ‘용의 눈물’, ‘태조 왕건’, ‘왕과 비’, ‘왕의 여자’, ‘장희빈’ 등 굵직한 작품에 출연하였는데요.

‘금쪽 같은 내 새끼’, ‘tv소설 그대의 풍경’, ‘싱글 파파는 열애 중’ 등 현대극에서도 열연을 펼쳤습니다.

특히 암 선고를 받기 전인 2010년까지도 kbs ‘부자의 탄생’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던 민욱의 부고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2010년 출연했던 kbs 드라마 ‘결혼해 주세요’를 끝으로 연기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대중들 사이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 배우 활동 대신 사업에 매진하면서부터였습니다.

60대에 접어들면서 맡을 수 있는 역할의 폭이 좁아진 데다,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이 그의 새로운 삶을 재촉했기 때문이죠.

실제로 민욱은 2012년 kbs ‘여유만만’에서 달라진 삶과 고민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당시 그는 “드라마가 많지 않아서 집에서 애들과 같이 놀고 있고, 그전에 못 봤던 책도 보고 있어요”라며 근황을 조심스레 밝혔습니다.

 

그는 방송

출연 계기에 대해 “그동안에 여러 번 방송 출연 요청이 왔지만, 제가 말주변이 없어 거절했어요”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1970~80년대 유명한 배우로서 인기를 누렸던 당시를 회상하며, 다양한 에피소드를 고백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개런티가 최고지 않았냐’라는 질문에, 그는 ‘아니 그러진 않았어요. 그때는 급수가 있었어요. 지금처럼 계약제가 아니었죠. 제가 아무리 많이 받고 싶어도 급수에 해당을 받아야 했어요. 보통 18등급으로 정해져 있고, 1등급 특1등급 등으로 올라가요. 그중 저는 2등급이었어요”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민욱은 1980년대 출연료 순위 2위라는 소문이 있다는 질문에, “그런 얘기가 있긴 있었어요”라고 밝혔습니다.

‘그 당시 활동했던 노주현과 백윤식처럼 계속 연기만 했으면 인기 누리고 괜찮았을 텐데, 하지 말아야 할 사업을 하지 않았냐’라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기도 했는데요.

그는 “맞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요즘 생각을 많이 해요. ‘그때 한 길로 갔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당시에는 가정에서 생활이 또 사업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할 수 없이 그랬는데 힘들었죠. 술집, 소고기집 등 많은 걸 했어요”라며 힘들었던 당시를 토로했습니다.

 

사업에

손을 대면서 작품 활동이 뜸했다던 민욱은 ‘사업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선택한 길’이라며 자식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연기를 간간히 하긴 했지만, 사업에 집중하느라 작품 활동을 줄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연기와 사업을 병행하느라,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어요. 후회가 돼요”라고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방송 활동이 줄어들면서 느낀 쓸쓸함도 고백했습니다.

배우가 아닌 사업가로, 또 아버지이자 할아버지로 달라진 삶은 수십 년간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살아온 자신으로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방송에 함께 출연했던 절친 배우 황범식에게 “방송도 많이 없어지고, 갑자기 7년 전 할아버지가 되고, 패턴이 바뀌니까 외출이 줄어들더라. 자꾸 나가면 ‘요즘 뭐 하냐’라고 물어보니까, 밖에 나가기 싫더라”라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최초로 딸과 손녀들을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민욱은 딸과 손녀들을 데리고 농촌 체험을 떠났습니다.

이날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에 나선 그의 모습이 보여진 가운데 민욱의 큰 딸과 막내 딸은 연예인 못지않은 아름다운 미모를 과시했습니다.

 

이때

손녀들에게 물을 챙겨주거나, 장난치다가 다친 손녀를 살뜰이도 챙겨주는 등 자상한 할아버지의 면모를 드러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제작진은 ‘손녀들의 부탁이면 꼼짝 못하는 것 같다’라고 하자, 민욱은 “손녀들이 태어나니 웃음도 생기더라고요. 저 개인적으로 참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라고 애정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막내 딸은 아버지에 대해 “엄한 아버지였어요”라고 말문을 연 뒤, “워낙 바쁘시다 보니 집에서 얼굴 뵙기가 힘들었어요. 이에 딸들이 혹여 빗나갈까 봐 엄하게 키우신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큰 딸은 “제가 어디에 있든지 항상 데리러 오셨어요. 학교가 멀었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에 상관없이 데리러 오시더라고요”라며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습니다.

스튜디오에 함께 나왔던 막내 딸은 아버지 민욱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냈었습니다.

“아버지가 고혈압에 당뇨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허리 수술까지 받았어요. 아버지가 뇌 사진을 찍었는데 종양이 발견된 적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없는 것은 상상도 못하겠더라고요”

 

이때 민욱은

“예전에는 세상을 떠나는 것이 무서웠는데, ’60살이 넘으니까 갈 수도 있지’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라고 삶이 끝나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전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가정에 충실하려 했던 그는 결국 향년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떠나는 마지막 길을 추모한 동료 배우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떠나 보냈는데요.

이정섭은 “마음이 참 안 좋네, 그래도 헤어짐이 좀 그렇구나. 먼저 가 있어. 우리도 갈 게”라며 민욱을 향해 영상 편지를 띄웠습니다.

고인의 52년 지기 친구인 황범식은 “낭만도 있었고 인정도 있었다. 내가 빨리 병이 나아서 너하고 악극이나 하고 다니면서, 그렇게 인생 보자고 그랬는데, 잘 가거라”라며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생전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원로 배우로서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 고 민욱.

어느덧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가운데 아직도 고인을 그리워하는 대중들이 많습니다.

부디 그 곳에서는 아픈 곳 없이 편히 쉬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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