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명은 1939년에 청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학교를 다니기 위해 서울에서 서울로 왔고, 이후 6·25전쟁이 일어나자 대구로 도망쳐 대구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서울 출신이라는 이유로 영토박해를 당했다.
어린 나이에 나는 내가 다녔던 학교나 교실이 아닌 낯선 환경에 있었고, 그 곳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동안 우리 반 친구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 오지명을 ‘설 놈, 못된 서울 놈’이라며 집단적으로 거부했고, 나중에는 구타까지 당했다.
가장 예민한 청소년기에 이런 고통을 겪은 그는 결국 반항아가 되어 대구상고에 입학했고, 학교에서는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당시 대구상고는 아무나 다닐 수 없는 명문고였고, 대구상고나 대구공고에 다니면 천재로 통했다. 오지명은 학교 공부도 잘하고, 리더십도 강하고, 싸움도 잘해 인근 대구공업학교에서 최고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대구 깡패들은 당시 인문계, 토목계, 항소계를 공부하는 애들 중에 싸워서 쫓겨날 만한 애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를 추적하려고까지 했다.
오지명은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수능에 응시했으나 낙방해 재지원하고 또 낙방해 성균관대 경제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이후 그는
대학교 2학년 때 명동을 지나가던 중 우연히 국립극단 단원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연구생으로 연극부에 지원했지만 가족들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
오지명의 아버지는 일간지 기자였다. 아들이 그냥 여유롭게 지내는 줄 알았는데, 극단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아들이 왜 그래?’라고 생각했다. 배우들의 사회적 인식이 가장 낮았을 때, 그는 아들의 극한 삶에 대한 극단의 반대자였다.
그러나 부모님이 없는 것처럼 연기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오지명은 가족의 반대에 굴하지 않고 연기 활동을 이어가며 수십 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실제로 극단에서 함께 일했던 오지명과 여운계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반면, 오현경은 연세대, 이순재와 이낙훈은 서울대를 졸업했다. 대학, 불리한 대학을 졸업하고 연기를 따라가기 위해 누구보다 예술계에서 열심히 일했다는 그는 생각했다.
그러다가 6년 정도 연극계에서 활동하던 중 방송이 개국했고, 방송사의 특별 섭외를 통해 탤런트로 데뷔하게 됐다.
안방극장으로 이적한 오지명은 액션배우로 활약하며 그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으며, 박근형, 이순재 등 다른 배우들이 멜로배우로 활약하는 가운데, 현실감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몸을 희생하지 않는 액션 연기로 많은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평소 온순한 성격이지만 액션씬에서는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뽐내며 드라마는 물론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며 대세 배우로서 대중들에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그는 싸움만 잘한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성격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절대적인 최고 권력자인 pd에게도 할 말은 다 했고, 심지어 몸싸움까지 벌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드라마 촬영 일정이 바빠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배우들이 고생하자, 오지명은 본인이 총대를 메고 피디에게 음식 좀 시켜 먹자고 소리를 내기도 했고, 후배가 pd 눈 밖에 나서 제명당할 위기에 처하자 동료를 동원해 풀게 하기도 했으며, 비상시국이라고 방송국 정문에서 명차를 달고 오라기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표시로 그 길로 그냥 집으로 가버리기도 했는데요.
따져보면 모두 여러 일들에 자신이 대표로 나서다가 생긴 문제들이고, 그 혜택은 동료들이 받았음에도 뒤에선 무서운 사람으로, 때론 정의의 사도로 그렇게 오지명은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과거 드라마 피디였던 고석만 피디가 또 하나의 비화를 밝혔는데, 드라마 ‘제1공화국’ 방영 당시 송추의 신흥 유원지를 통째로 빌려 포로 수용소 세트를 만들고 엑스트라 500명을 투입하는 등 물량과 내용으로 시청자들을 압도하며 큰 사랑을 받게 되는데요.
그러다 보니 인기만큼이나 관심도 많고 시기도 많았는데, 실내 스튜디오 촬영의 경우 방송국 공간이 한정되다 보니 어느 날 두 개의 스튜디오를 통째로 열어 녹화를 하면 다른 프로그램들은 낄 자리가 없게 되는데, 고석만 피디가 2층 분장실을 지나 스튜디오 문을 밀고 들어설 즈음, 어디선가 “야!”소리에 돌아보니 탤런트 오지명이 분장실 문을 열며 자신에게 소리를 지른 것이었습니다.
“나 말입니까?”라는 고 pd의 말에, 오지명은 “그래.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임마!”라고 소리쳤고, 화가 난 피디가 “뭐 임마?”라고 하자 오지명은 “이 자식이” 하며 달려들며 멱살까지 잡게 되는데요.
서로 멱살을
잡게 되고 오지명이 한 대 치자 고석만도 한 대 치고 또 치면 또 받아치고, 멱살 잡고 밀고 당기고 하자 사람들이 달려와 말리게 됩니다.
탤런트 세계에서 오지명은 절대 파워맨이었기 때문에, 당시 현장에 있던 이정길과 김용건은 선배 오지명에게 쩔쩔매며 어쩌지도 못했다고 하는데요.
의상 담당 여성 스텝이 중간에 끼어든 끝에 결국 육박전이 끝나게 되는데, 30초 간의 주먹 다짐 소문은 2층은 물론 3층 제작부 스튜디오까지 순식간에 퍼지며 방송사의 모든 녹화가 일시 중지되게 됩니다.
이 전대미문의 연출자와 연기자의 충돌은 바로 드라마 캐스팅에서 오지명의 소외감에서 비롯된 사건이었는데요.
당시 ‘제1공화국’에는 방송사의 탤런트실 대다수와 연극배우들까지 대거 참여했는데, 오지명은 본인을 비롯 일부 연기자들이 캐스팅해서 소외가 된 상태에서 그 드라마가 방송국 스튜디오까지 모두 점령하자, 역시 자신이 총대를 메고 나섰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후에 알고 보니 사실 오지명은 임화수 역으로 방송 초반에 이미 내정이 된 상태였지만, 아직 제작진이 외부에 공개를 하지 않은 비밀이었기 때문에 본인도 내정이 되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고, 이정재 역에 조경환, 김희갑 역의 정진 등 드라마 후반부에 비장의 캐스팅이 숨어 있었던 것이었는데요.
게다가
다음 날 오지명은 비록 정의감에 불타서 저지른 행동이지만, 몸싸움을 한 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기 때문에 피디를 찾아가 자신의 잘못을 기꺼이 사과했고, 그렇게 둘은 흔쾌하게 화해를 하게 됩니다.
국민 아버지인 대배우 최불암에게도 유일하게 커피 심부름을 시킬 수 있다는 카리스마의 소유자 오지명은 그렇게 아니꼬운 꼴 못 보고, 학벌 좋다고 까부는 놈 못 봐주고, 잘 나간다고 기고만장한 피디는 더더욱 못 참았던 유별난 성격 탓에 방송국에서 힘든 일도 탈도 많았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연기자로서 대변신을 시도하게 되는데, 바로 sbs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을 통해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하던 이후에 ‘순풍산부인과’에서 선우용녀의 남편으로 나오며 환갑 나이에 연기 인생의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imf로 전 국민이 힘들었던 시절, ‘순풍산부인과’에서 오지명은 그야말로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경제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매일 웃음을 선사했던 장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수십 년을 맹활약했던 오지명은 2000년대 이후 갑자기 브라운관에서 사라지게 되는데요.
‘순풍산부인과’ 이후로 2008년에 ‘오포졸’이라는 시트콤을 잠깐 했지만, 경인방송이라는 사람들이 거의 안 보는 작은 채널에서 했던 드라마였고, 더군다나 두 달 만에 종영했기 때문에 시청자들로서는 ‘순풍산부인과’ 이후로는 tv 드라마에서 본 기억이 없다 보니 오지명의 건강이 악화된 것은 아닌지 또는 신변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많은 이들로부터 걱정을 자아내게 됩니다.
그랬던 오지명이 깜짝 등장한 것은 바로 지난 대선 때였는데, 바로 허경영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나선 것이었는데요.
연예인 중 최초로 거대 정당이 아닌 군소 정당의 후보를 지지한 데다가 전 국민에게 퍼주기 식의 다소 황당한 공약을 내걸었던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오지명에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시선을 내보이게 됩니다.
‘순풍산부인과’ 이후 22년 만에, ‘오포졸’을 치더라도 14년 만에 드디어 세상에 나온 오지명은 당시 2022년 하반기에 나올 ‘순풍산부인과’ 같은 시트콤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순풍산부인과’는 최근 케이블 채널들에서도 다시 방영이 되고 있고, 유튜브에도 과거 영상들이 올라오며 화재를 일으키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은 그런 오지명의 소식에 새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게 됩니다.
하지만
2022년이 지나 현재까지도 오지명의 신작에 대한 소식은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요즘 문제를 일으킨 스타가 방송에 나오면 시청자들이 방송사를 상대로 항의하고 하차를 요구해 그를 지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방송사가 이 때문에 캐스팅을 꺼린 게 아닐까?
실제로 오지명의 과거 행적을 통해 그가 소수 후보를 지지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오지명은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맞붙었을 때, 2002년 이회창과 노무현이 맞붙었을 때도 공개적으로 김대중을 지지했다. 이회창씨를 응원합니다.
그래서 오지명은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개인을 바라보고, 정당에 관계없이 자신의 의지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허경영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18세 미만 코로나19 긴급생활지원금. 위 내용에 대해 허 후보가 1억 원을 내겠다고 공약한 것이 말이 되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허 후보는 “계산을 해보니 맞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답했다.
큰 정당이든, 작은 정당이든, 프로듀서이든, 오지명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불의에 거침없이 맞서는 남자다운 남자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는 게 좀 아쉽지만, 그는 누구인가? 그를 지지하고 지지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많은 연예인들은 특정 정부 하에서 더 많은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지지를 선언합니다. 자신이 공개 지지한 후보가 패배하면 해당 연예인의 차기 임기 활동은 제한된다. 당선이 가능했음에도 당선 가능성이 낮은 후보를 지지하는 오지명의 의도는 매우 순수하다고 볼 수 있다.
또 과거부터
자신이 손해를 볼지언정 세상에 할 말은 다 했던 오지명의 성향을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만일 허 후보를 지지했다는 경력 때문에 2022년 하반기로 예정했던 시트콤이 무산이 된 것이라면, 그의 정치 성향을 떠나 ‘순풍산부인과’를 다시 찾아보는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을 텐데요.
시청자의 곁에서 오지명은 그래도 수십 년간 우리들에게 재미와 감동으로 함께 해온 배우이고, 동료 배우인 전원주 역시 박력 있고 매너 있는 오지명이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밝힌 가운데, 현재 건강한 상태라고 알려진 오지명이지만, 그도 어느덧 80대 중반을 넘어 구순을 향해 가고 있다보니 우리가 그의 연기를 볼 수 있는 날들도 결코 많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비록 2022년은 이미 지났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그가 좋은 방송사와 작품을 만나 다시 한 번 예전에 그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게 되기를 빌며 배우 오지명의 차기작 소식을 우리 모두 함께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