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도중이었는데 결국…” 전 스키 국가대표 서보라미 향년 35세로 영면에… 정말 안타까운 그녀의 사인에 모두가 눈물만..

대한체육회측은 10일 ‘서보라미 선수가 9일밤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라고 밝혔고 사인은 심장마비로 알려졌다. 얼마전 결혼한 고인은 당시 임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보라미님은 고교재학중이던 2004년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 장애를 겪었다. 이후 그는 ‘국내1호 장애인 크로스컨트리 스키선수’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2008년

스키에 입문한 그녀는 2016년 장애인 동계체전2관왕, 2017년 같은대회 3관왕에 올랐다. 2010년 벤쿠버대회와 2014소치올림픽, 2018년 평창대회까지 3연속 동계패럴림픽에 출전했다. 서보라미님은 최근 E채널스포츠 예능‘노는언니’촬영을 마쳤다. 13일방영을 앞두고 사망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9일 ‘노는언니’공식 인스타그램에는 ‘설원을 가르는 철인, 패럴림픽 국가대표 서보라미,노는 언니와 신나게 놀 준비됐나?’라며 예고글이 올라왔다. 누리꾼들은“안타깝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등의 댓글을 남기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고인의 빈소는 원주의료원 장레식장 1층 4호실에 마련되어있다.

 

고인은

최근 박세리, 남현희등 여성스포츠 스타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 ‘노는언니’녹화에 장애인 국가대표 서수연과 함께 출연했다. 오는 13일 방송을 앞두고 갑작스런 비보가 전해진 것, ‘노는 언니’제작진은 유가족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충분히 상의후 방송여부를 결정하고자 내부적으로 의논중에 있다.

 

 

서보라미님은 고교시절 무용을 전공을하였고 사고를 당하면서 무용수라는 꿈을 잃어버린 그녀는 1년동안 방황을 하였다. 하지만 2006년부터 재활을 위해 좌식스키를 배웠고 이를 계기로 전문선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 국내엔 다른선수가 없어 장애인 전국체전에 출전을 해도 메달을 받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꾸준히 국제대회에 나가며 경험을 쌓은 그녀는 2010벤쿠버 올림픽에 출전하며 새로은 꿈을 이루었다. 하이원팀에 입단을 하면서 안정적으로 운동을 할수 있게 되었고 소치 대회에서는 성화봉송주자로 나섰고 빼어난 외모덕분에 ‘얼짱스키선수’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지난

평창올림픽에선 아쉽게 메달획득에는 실패를 하였지만 최선을 다한 레이스를 펼쳐 대회 폐막일인 18일 최보규(김현우 가이드),이도연과 출전한 10킬로 혼성계에서는 13팀중1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이때 서보라미는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하다.오늘 경기는 즐겼다. 최하위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행이다”라고 하였다.

노르딕 선수들은 최근 1년동안 개인적인 생활도 포기하고 운동에 집중하였다. 전세계를 다니면서 전지훈련을 하느라 집에도 거의 가지 못했다. 서보라미는“짐가방을 풀일도 없었다. 훈련이 끝나고 돌아와도 다시 짐을 싸고 또 풀고 싸는 일의 연속이었다”며 패럴림픽이 끝나도 소속팀 훈련이 있어 바로 쉬진 못한다. 마무리 훈련을 마치고 휴가를 갈 생각이라고 하였고 그는 “4년뒤 베이징에 나갈지 에 대한 질문에는”정말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지만 나가게 더 노력할것 같다. “엄마들이 출산이 힘들어서 아이를 다시는 더 안낳는다고 하면서 또 낳는 심정이 아닐까?”라며 웃었다.

 

 

서보라미에게 평창패럴림픽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대회였다. 변변한 선수도 없던 한국이 처음으로 노르딕 스키에서 메달을 두 개나 땄기 때문이었다. 서보라미님은 “신의현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시상식을 보는데 눈물이 나오더라, 우리종목에선 처음으로 겨울올림픽 한국 첫 금메달을 땄기 때문이었다. 동양선수들에겐 쉽지 않은 종목이라 비장애인에서도 메달이 없는데 신의현 선수가 큰일을 해내 기뻤다”라고 했다.

그는 “국민들의 기억속에 평창 패럴림픽출전선수들이 남을 것 같다.이번만큼 큰 관심은 아니겠지만 영원히 간직하게 될 것이라며 그는 사고나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장애를

극복한 서보라미의 질주는 “어머니와 외할머니등 가족의 사랑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하였고 병원에 있을때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어 힘들었고 가족들이 옆에 서있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고 혼자만 있었다면 제가 이렇게 서있지도 못했을거”라고도 하였다. 당시 극단적인 생각만 하면서 병원에서 눈물만 흘리던중 자신을 위해 희생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재활의 의지를 다지게 되었다고 한다.

 

 

서보라미님은 아직 메달은 없지만 눈밭을 달릴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하였으며 평창 올림픽에서는 메달은 없지만 평창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가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하였다.

서보라미 선수는 자랑스런 횡성군민에 선정되기도 하였는데 횡성에서 태어나 5살때인 1990년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간후 사고를 당해 무용수의 꿈은 접었지만 ”고향 횡성을 잊지 않고 늘 밝고 건강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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