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방송 도중 쓰러진 사미자…” 이어진 그녀의 눈물 소식들에 최근 알려진 그녀의 궁금했던 근황을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나이 84세, 성우로 데뷔해 영화와 드라마까지 접수하며 50년 넘게 국민배우로 살고 있는 사미자는 지금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어렵던 1980년대 초반에 계약금만 1000만 원에 드라마 해당 출원료로 300만 원을 받던 그녀는 이내 대한민국 수입이 많은 배우 탑5에 이름을 올렸고, 그러나 하필 그때 남편의 회사에서 ‘이자를 줄 테니까 얼마를 꿔달라’라고 한 게 결국 5억까지 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게 불안한 마음에 이자도 마다하며 원금만 돌려받기 위해 돈을 빌려준 사람한테 가서 ‘원금을 돌려달라’라고 했더니, ‘내일 당장 주겠다’라고 했고 순진했던 사미자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돈을 꿔간 그 사람이 이미 새벽에 미국으로 잠적해버렸고, 당시 너무 큰 충격을 받은 사미자는 결국 급성척추협착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이어진 그녀는 꼼짝도 못한 채 누워 있었고, 그러던 중 어느 날 누워 있던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했습니다.

‘사미자. 너 왜 이렇게 누워 있어. 너 지금 누워 있으면 너희 식구 누가 먹여 살리냐. 돈 없어도 통장에 얼마 있을 텐데, 그걸 바탕으로 해서 일어날 생각을 해야지. 왜 그렇게 누워만 있어’라며 본인 스스로에게 야단을 쳤다고 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스스로 ‘일어나야 돼, 일어나야 돼’라며 마음을 다잡았고,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때 일어나려고 하자 다리에 근육이 빠지긴 했지만, 누워만 있던 그녀가 마침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겨우 기운을 차린 그녀가 회복 5일 만에 촬영장으로 복귀하며 이후 다시 국민 배우로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고, 그렇게 한차례의 시련을 이겨내고 나니 그녀의 인생에는 늘 여유와 웃음이 넘쳐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지, 힘든 시기를 이겨낸 그녀에게 이번에는 더욱 감당하기 힘든 시련들이 닥쳐와 두 번이나 더 쓰러지게 되는데, 당시 그녀는 전신마비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자 ‘화장실만 제 발로 갈 수 있게 해 달라’라고 기도해야 했고, 또한 ‘내가 방송을 못 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에 겁에 질려 ‘차라리 생을 마감하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설상가상 옆에서 늘 지켜주던 아들과 남편마저 하루아침에 암 선고를 받고 내일을 알 수 없게 되자 자신의 고통보다 더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워 ‘제발 우리 가족 한 번만 살려달라’라고 기도해야 했던 배우 사미자의 가슴 아픈 인생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합니다.

1940년 경기도 경성부에서 태어난 사미자는 10살 때 6.25가 일어나 집안이 기울었고, 이후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면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지독한 생활고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녀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는 가정 형편이 너무 빠듯해서 입학금을 달라는 말을 못 해 어머니의 눈치만 보면 가슴을 태워야 했고, 그렇게 입학금이 없어 전전긍긍 안달하던 그때 등록금 마감 며칠 전 그녀의 어머니가 행주치마를 벗어 내동이치며 결연한 모습으로 학교로 나섰습니다.

 

당시

사미자는 무슨 일인가 겁을 먹으며 엄마의 뒤를 밟았으며, 이후 학교에 도착한 어머니가 이내 교장실로 들어가더니 ‘사미자의 입학등록금을 가을 추수 뒤 외상으로 갚겠다’라며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의 담대한 간청으로 겨우 입학을 허락받은 사미자는 헌책을 구해 밑줄 쳐진 부분을 달달 외우며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를 했고, 이후 고등학교 입학도 쌀 세 가마 값을 외상으로 가까스로 입학을 하며 이처럼 어머니의 힘으로 그녀는 학교 공부의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후 대학 진학의 꿈도 꾸며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그러나 대학 입학금은 결국 마련을 못해 꿈을 접고 취업을 해야 했고, 그때 가난한 지금의 남편 김관수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남편이 갖다 준 쥐꼬리만한 돈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었던 그녀는 이후 쌀이 떨어지자 친정에 가서 어머니로부터 든든한 음식을 받아먹어야 했고 그때 남편도 친정에 와서 밥을 먹었지만,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사위만큼은 저녁에 불렀는데 이유가 가난한 딸의 모습을 이웃들에게 보이기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가난으로 힘들어하던 그때 우연찮게 동아방송 1기 성우 모집 전단지를 본 그녀는 한달음에 동아 방송에 응모하게 되는데, 그 이유로는 그녀가 중학교 3학년 때 교실에서 책을 읽을 때 어머니의 목소리와 남자아이의 목소리를 기가 막히게 성대모사를 하는 것을 보고 당시 담임 선생님이 그녀에게 배우가 될 것을 격려했고, 이때의 기억을 상기했던 그녀가 성우 모집에 응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성우 모집 시 채용 조건으로 고교 졸업자에 미혼자야 했었는데, 그녀는 이미 김관수와 결혼 후 심지어 딸까지 있었지만, 이를 속이고 지원해 결국 입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성우에 합격해 일을 하게 되자, 그녀의 딸은 사미자의 어머니가 봐야 했고 그런데 어느 날 딸이 하루 종일 울며 보채는 것을 도저히 달래기 힘들었던 그녀의 어머니가 보채는 손녀를 안고 동아 방송 스튜디오로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당시 채용 조건의 규정을 어기고 입사한 상황이라 사미자는 어머니와 딸을 보자마자 얼른 두 사람을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갔고, 그때 문을 잠그고 우는 아이에게 모유를 물렸지만, 긴장한 탓인지 도무지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더욱 크게 울었고 설상가상 이때 성우실에서는 사미자가 사라졌다며 성우 동기인 전원주에게 얼른 사미자를 찾아오라고 지시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지시를 받은 전원주가 화장실에 있는 그녀를 결국 찾아내 노크를 크게 했고, 그때 할 수 없이 문을 열어주자 사미자에게 아이가 있다는 것을 보고 전원주는 크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결국 화장실에서 모유를 먹이다가 걸려버린 그녀는 당시 전원주에게 짜장면을 사주며 입막음을 부탁했고, 하지만 이내 입이 근질해서 참을 수 없었던 전원주가 딱 두 사람에게만 이야기한다는 게 방송국 전체로 퍼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피디가 사미자를 불러 ‘앞으로 어떻게 어떻게 할 거냐’라며 추궁을 하자, 순간 그녀가 순발력을 발휘해 아이를 꼭 껴안으며 ‘희주야 까꿍, 아이고 까꿍’이라며 몇 차례 을렀습니다.

이때 그녀의 딸이 방긋방긋 웃자 기혼자였던 피디도 아기와 함께 크게 웃었고, 그러자 피디가 마침내 노기를 풀고 사미자를 용서해 주고 돌아갔고,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이때는 딸이 나를 살려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후 성우에서 배우로 활동하게 된 그녀는 자식들에게만큼은 가난을 물려줄 수 없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했고, 또한 차츰 그녀가 연기력을 인정받으면서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게 되자 마침내 그녀의 가정도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녀가 국민 배우로 우뚝 서며 한때 대한민국에서 수입이 많은 매우 탑5 안에 들 정도로 승승장구했고, 그리고 그때 그녀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마다 거절을 못 해 되받지 못한 것이 숱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앞서 얘기한 대로 그녀는 그 어려웠던 1980년대에 5억이라는 엄청난 사기를 당하면서 충격을 받아 쓰러지고 말았고, 하지만 이내 다시 힘을 내 일어나면서 또 한 번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05년에는 사미자 그녀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저승의 문턱까지 경험하고 말았으며, 당시 그녀가 얼마나 심각했냐면 말도 못 하고 눈빛으로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였고, 심지어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끝까지 생명줄을 안 넣으려고 했던 그녀가 마침내 심근경색을 물리치고 살아났으며, 하지만 10년이 지난 2018년에 이번에는 뇌경색으로 또다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그녀는 생방송 촬영 중이었는데, 자꾸 몸이 기울어지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자 결국 생방송 도중에 쓰러졌고, 그때 제작진이 위에서 모니터로 보다가 깜짝 놀라 얼른 사미자를 이끌고 나와 병원으로 가야 했습니다.

당시 사미자가 얼마나 심각했냐면 전신마비나 마찬가지로 팔다리를 못 움직이니까, ‘화장실만 제 발로 갈 수 있게 해 달라’라고 기도해야 했고, 심지어 이때 옆에서 그녀를 지켜주던 남편마저도 실수로 넘어지는 바람에 안면 전체가 부상을 당하는 큰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 이때 사미자와 남편을 가장 잘 챙겨주던 큰아들마저도 갑자기 후두암에 걸려 그녀는 자신의 몸이 아픈 것보다 더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당시 아들이 제일 먼저 가는 줄 알았으며, 그렇게 그때는 집안에 환자가 세 명으로 재난 같은 시간을 보내며 삶의 의욕마저 잃어가고 있었고, 하지만 이번에도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병마와 싸워 이긴 그녀는 또 한 번 기적처럼 다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 역시 암세포가 많이 줄어들어서 이 정도면 이겨낼 수 있겠다는 좋은 소식이 들려왔고, 그렇게 힘든 시간들이 지나고 그녀의 가정에도 희망의 씨앗이 피어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미자 그녀가 고백하길 “내가 세 번이나 병을 앓고 난 뒤 이제 삶의 목표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화려한 노후를 맡고 싶다고 했는데, 그러면 욕망이 또 그만큼 끌어오르게 되고 그러니 그때부터는 불행하더라. 오히려 욕망을 다 놔버리니까 마음이 화려해졌고, 그래서 요즘은 되도록이면 그냥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은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야 된다. ‘왜 나만 이렇게 돼야 돼’라는 불평보다는 ‘당연히 이럴 수가 있지’라고 만사를 좋게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긍정의

힘이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사미자 배우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방송에 비추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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