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우 주윤발이 기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내뱉은 충격 발언…”한국에 한 번이라도 가 보고 하는 말이니..” 모두가 그의 한 마디에 당혹한 이유..

한국에서 주윤발의 이름 석 자는 그 어떤 배우보다 더 각별합니다.

특히

지금의 3050 세대들에겐 그는 웬만한 한국 배우들보다 더 친숙한 인물이죠.

그의 ‘사랑해요 밀키스’가 아직도 우리 귀에 아른거리는 만큼 홍콩 배우 중 가장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있던 주윤발이 갑자기 태권도에 대한 자신의 고백과 더불어 와호장룡 촬영 중 한국 사례를 들며 호통을 치자 중국인들이 매우 격분하여 최근 화제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중국에 맞서 홍콩 정신을 이어가는 주윤발의 묵직한 인생과 더불어 얼마 전 세상을 떠나간 오맹달이 주윤발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 일화,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한 진정한 ‘따거’의 발자취를 짚어볼까 합니다.

1980년대 한국 영화계가 기억나시는 분이 있을까요?

 

이때

우리 영화계는 실로 한국 영화사 통틀어 가장 암흑기에 빠진 시기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잦은 예술 검열에 상상력을 포로로 잡힌 채, 3S 정책에 기반한 온통 한국형 자극적인 음란 영화가 넘쳐났던 시대였죠.

 

 

‘애마부인’의 대성공에 힘입어 이런 부인, 저런 부인 같은 아류작들이 쏟아져 나와서 당시 최고의 흥행 배우는 아이러니하게도 ‘영구와 땡칠이’의 심형래였습니다.

그만큼 아이들과 학생들이 볼 만한 미성년자 관람 가능 영화가 드물었기에, 일반인들의 눈은 자연스럽게 외국 영화로 쏠렸고, 그중에서 홍콩 영화가 단연코 그 시대에는 압권이었죠.

이소룡, 성룡 등 홍콩 영화 황금기의 서막을 연 배우들과 무협 영화가 식상해질 무렵 ‘느와르’라는 새로운 장르로 혜성처럼 우리에게 나타난 이가 바로 주윤발입니다.

3050 세대 중 ‘영웅 본색’에서의 이쑤시개를 문 주윤발을 흉내 내지 않은 이가 과연 우리 중 몇 명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국내 최초의 외국인 CF 모델이자, ‘사랑해요 밀키스’로 더 친근하게 다가온 인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윤발을 홍콩 영화배우 중 가장 진정한 ‘따거’라고 부르고 있죠.

진정한 큰 형님이란 호칭에 어울리는 주윤발의 대인배 인생과 더불어 의리와 굳건한 소신으로 뭉쳐있는 그의 일화 및 한국에 대한 그의 생각, 나아가 주윤발의 한국 발언에 격분한 중국인들의 반응까지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주윤발, 그는 1955년생으로서 홍콩 라마섬의 빈민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처절하게 가난했던 유년 시절을 보낸 대표적인 인생역전의 인물로 꼽히고 있는데, 주윤발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집안 생계가 어려워지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무와 고구마를 주로 먹으며 중학교마저 중퇴하고, 어린 나이부터 생업에 매달리게 되죠.

 

상점

직원과 우편 배달부 등의 일을 하면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나가던 그는 우연한 계기로 친구의 권유를 통해 연극배우를 시작하였고,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의 간절함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성실함으로 재탄생 되었습니다.

성실함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자신의 기회를 노렸던 그는 마침내 1980년작 드라마 ‘상해탄’이 인기를 끌면서 스타가 되었고, 어느 날 지역 신문을 보다가 소년소녀 과장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던 주윤발의 기사를 본 오우삼 감독이 큰 감명을 받아 그에게 캐스팅 제의를 하죠.

그곳이 바로 주윤발의 인생작 ‘영웅 본색’이었습니다.

오우삼 감독은 주윤발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내가 그를 처음 대면했을 때 따뜻한 마음씨와 지금 시대에 잃어버린 의협심 그리고 기사도의 풍모가 느껴지는 소설 속 주인공 같은 인물임을 난 단번에 느꼈다. 의리를 지켜나가는 인물들 간의 관계를 다루는 ‘영웅본색’의 주윤발은 영화 속 인물들보다 더 실제 의리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오우삼 감독이 얘기하듯, 주윤발은 의리 하나만큼은 정말로 유명한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얼마 전 사망한 배우 오맹달과의 일화였죠.

오맹달은 왕년에 술과 여자 도박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이어나간 끝에 거액의 도박 빚까지 지는 바람에 중국의 최대 조폭 삼합회의 협박에 시달렸습니다.

이때 오맹달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친한 주윤발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주윤발은 평소 의리남 행보와는 다르게 ‘네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해결하라’라며 차갑게 단칼로 오맹달의 부탁을 거절해버립니다.

이미 부와 명성을 크게 쌓은 주윤발을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오맹달은 주윤발이 1원 한푼 주지 않자, 그때부터 크게 원망하기 시작하며 분노심을 원동력 삼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본업에 매진하려 했죠.

 

 

하지만 이미 영화계에서 오맹달은 술과 도박에 빠져 자기 관리가 안 되는 문제아라고 찍혀버리는 바람에 그의 바람만큼 복귀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실낱같은 희망으로 간신히 영화 ‘천장지구’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이때를 자신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그는 인생 연기를 펼치며 그의 홍콩 영화제 남우조연 대상을 타내는 쾌거를 거두고 재기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오맹달은 배신자라고 생각했던 주윤발을 시상식에서 마주치자 아직 앙심이 풀리지 않아 주윤발의 축하 인사마저 냉랭하게 무시했고, 이후로도 주윤발을 용서하지 못하는 모습을 계속 주위 사람들에게 비췄는데, 어느 하루 오맹달을 구해준 작품 영화 ‘천장지구’의 진목승 감독이 술자리에서 오맹달을 부르며 그가 몰랐던 사실을 털어놓죠.

“맹달 씨, 나는 사실 당신을 캐스팅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나 또한 당신이 도박과 술에 빠진 망한 배우라는 소문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당신의 친구 주윤발이 그대를 내게 적극 추천했습니다. 당신의 친구 주윤발이 우리 영화계에서 끼치는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그것은 내게 사실 부탁이 아니라 차마 거절할 수 없는 요청이었고요. 그리고 주윤발은 당신에게 미움받을 걸 알면서도 끝까지 그 사실을 숨겼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신은 당신을 캐스팅한 내게 고마워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친구 주윤발을 찾아가 용서를 빌고 고맙다고 말하세요”

이 얘기를 듣자마자 오맹달은 그 길로 눈물을 흘리며 찾아가 사과를 했고, 주윤발의 인성과 큰 그릇에 다시 한번 감동하게 되었죠.

이런 남자의 의리 말고도 주윤발을 대표하는 또 다른 단어는 바로 소신입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기존 홍콩 주민과 중국과의 갈등은 익히 우리 한국인들도 뉴스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014년 홍콩의 혁명 당시 주윤발은 중국 정부를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홍콩 지지 선언을 하여 영화 및 티비 출연을 금지당했는데, 그때 그는 괜찮다며 돈 좀 덜 벌면 된다고 웃으며 고백해서 홍콩인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으며, 2019년에는 복면금지법에 항의해 검은색 복장의 마스크를 착용한 채 시위 현장에 나타나 큰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인 8100억 원을 죽기 전에 기부한다고 밝힐 정도로 평소 물욕을 초월해 검소한 서민 생활을 이어나가던 그는 돈벌이를 위협하는 중국 정부의 압박이 이렇듯 항상 초연한 모습을 유지하죠.

‘태권도와 김치 종주국이 한국이냐, 중국이냐’라는 논란이 최근 일자, 그는 자신이 경험한 80년대 한국을 언급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시 인천공항도 없던 시절 나는 김포공항을 통해 처음 한국에 도착했는데, 강렬했던 기억 중 하나는 공항에서부터 김치 냄새가 자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한국은 한창 경제성장 중이었지만, 사실 우리 홍콩인들의 삶보다는 아직 윤택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내가 정말 놀랐던 것 중 하나는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이었다. 도시, 시골을 가릴 것 없이 동네마다 학원이 빼곡했었고, 특히 거리에서 태권도복을 입고 다닌 학생들이 눈에 자주 띄어 하루는 통역사에게 누구나 다 태권도를 꼭 배워야 할 만큼 한국은 학교 폭력이 심한 건지, 아니면 북한에 대비하는 건지 상담 삼아서 물어봤을 정도로 한국의 교육열은 내게 인상적이었다”

“한국 기자들이 최근 김치와 태권도 종주국에 대한 질문을 하곤 하는데, 난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다. 중국은 한국처럼 공항에서부터 김치 냄새가 나지 않았으며, 거리에서는 태권도복을 입은 학생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이다”

얼마 전 중국 배우 조문탁이 태권도의 발차기는 중국 것이라는 이런 못난 발언을 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중국 정부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주윤발은 와호장룡 촬영 중 한국에 대한 발언을 하여 일부 중국인들이 크게 격분하며 항의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중국 영화는 중국 정부의 압박과 입김에 의해 지나친 중화사상이 가득한 조작으로 끝나고는 하는데, 할리우드에서도 인정받은 ‘와호장룡’ 역시 초반에는 중화사상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윤발이 감독에게 당시 한국 영화의 급성장을 언급하며, 한국처럼 주제와 연출에 집중해서 누구나 다 좋아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중국의 문화를 자랑하지 않아도 관객들은 알아서 관심을 갖는다고 충고했죠.

 

그래서

자칫 중화사상에 치우친 영화가 될 뻔한 와호장룡은 주윤발이 중심을 잡고 이끈 덕에 오히려 희대의 명작으로 남게 되었고요.

이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은 일부 중국 팬들은 평소 반중국 성향을 내비친 주윤발이 중국의 무협 문화를 다룬 와호장룡에 오히려 한국의 사례까지 들었다며 적절치 못한 출연이라고 격분하기까지 하였죠.

와호장룡이 이런 주윤발 덕분에 오히려 중국의 미를 가장 잘 표현한 영화라고 해외에서 극찬 받았다는 건 격분한 일부 중국인들은 잘 모르는가 봅니다.

진정한 ‘따거’라는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주윤발.

그의 멋진 인생이 앞으로 많은 이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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