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미로, 꼬마인형 부른 가수 최진희…” 입이 돌아가고 말도 못하더니 수 십 시간 넘게 의식불명에 상태에 결국… 근황이 공개되고..

가수 최진희의 본명은 최명숙으로 1957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와 함께 상경하여 오아시스 레코드사의 오디션에 합격하였는데요.

이후로도 음악 학원에 드나들면서 음악 공부를 하였던 그녀는 또래의 여자아이들과 뜻을 모아 6인조 밴드인 ‘양떼들’을 결성하여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한 이 ‘양떼들’은 명동 등지의 클럽을 돌면서 공연을 하며 경험을 쌓아갔는데요.

 

 

그렇게 수년간 경험을 쌓은 이들은 어느덧 입소문이 나서 그 실력을 인정받아 유명한 나이트클럽으로 옮겨 다니며 공연을 하는, 실력 있는 밴드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특히 남다른 가창력으로 돋보였던 최진희는 1982년 호텔 엠버서나이트클럽에서 공연할 때 또 다른 팀의 악장이었던 김희갑 씨의 눈에 띄게 되어 당시 김희갑이 맡았던 KBS의 드라마 ‘청춘 행진곡’의 주제가였던 ‘그대는 나의 인생’을 부르게 됩니다.

그리하여 급하게 ‘한 울타리’라는 그룹사운드를 결성하여 첫 번째 음반으로 발매된 하게 된 ‘그대는 나의 인생’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는데요.

1984년도 라디오 방송 횟수에서 1위를 기록할 만큼 엄청난 인기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데뷔하자마자 뜨거운 반응으로 주목을 받았던 최진희는 이후 김희갑의 곡으로 수록된 정식 데뷔 앨범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솔로 앨범의 타이틀곡이 바로 그 유명한 ‘사랑의 미로’입니다.

이 ‘사랑의 미로’, 최진희 씨의 대표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노래는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를 끌며 국민 애창곡으로까지 등극하게 되는데요.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지 엉뚱하게도 국내뿐만이 아니라 멀리 북한에도 이 노래가 퍼져 그 인기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훗날 최진희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평화 협력 기원에 초청되어 그곳에서 ‘사랑의 미로’를 열창하기도 하였는데요.

그 반응이 상당히 뜨거웠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사랑의 미로’ 말고도 현이와 덕이의 ‘뒤늦은 후회’도 꼭 같이 불러 달라는 요청에 최진희 씨가 노래를 불러주고 왔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우리의 대중가요가 널리 인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대는 나의 인생’, ‘사랑의 미로’로 스타덤에 오른 최진희는 1985년부터 KBS의 10대 가수상을 받기도 하고, MBC 드라마 ‘물보라’의 주제가를 부르며 백상 예술 대상에서 주제가상을 받고, 이듬해인 1986년에는 ‘바람에 흔들리고 비의 젖어도’를 부르며 서울 국제가요제에서 금상을 받는 등 당시 김수희, 심수봉, 주현미 등과 같은 톱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외에도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미련 때문에’, ‘꼬마 인형’, ‘천상 재회’, ‘여정’, ‘미워도 내 사랑은’ 등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사랑을 받았습니다.

최진희는 1985년 그룹사운드의 드러머였던 이덕규 씨와 첫 결혼을 하였는데요.

오랜 시간 무명생활을 한 탓에 유명해지기까지 얼마나 큰 어려움이 있는지, 몸소 체험한 적이 있었기에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지속적인 가수 활동을 하기 위해 서둘러 결혼을 했었다고 합니다.

결혼생활을 하며 소중한 딸까지 생겼지만, 안타깝게도 이 둘은 결혼 11년 만에 이혼을 하며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는데요.

특별하게 공개된 적이 없는 둘의 이혼 사유는 단순히 성격 차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혼자가 된 이후에 최진희 씨는 이혼 당시 빚이 있었기에 자신의 친언니 집에서 살면서 공연을 하며 힘겹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지금의 남편인 유승진 씨를 만나게 되는데요.

부산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었던 유승진 씨.

최진희 씨는 유승진 씨의 회사 행사에 초대되어 노래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유승진 씨는 최진희 씨를 처음 보고 외모가 마음에 안 들어서 싫었고 단지 노래만 좋았다고 하였는데요.

그날 최진희 씨가 공연하는 모습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볼 정도로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어 공연이 끝날 때까지도 그녀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최진희 씨는 유승진 씨의 첫인상에 대해 유머러스하고 카리스마가 있다고 했는데요.

이후로도 최진희 씨는 회사에 몇 번이나 초대를 받다 보니 두 사람은 점점 더 가까워졌고, 결국 연인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최진희 씨가 한창 힘들었던 시기인 옆에서 심적으로 많은 힘이 되어 준 점에 마음이 끌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결혼에 골인하기까지는 딸의 도움이 컸다고 합니다.

그렇게 새 남편을 만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게 된 최진희 씨.

아무 문제 없었던 두 사람이지만, 역시나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지 그렇게 잘 맞았던 두 사람이 이혼의 위기가 한 번 있었다고 하는데요.

두 사람이 살아갈 집 문제에 관한 의견 차이로 서로 같이 살지 말자는 말까지 나왔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양보하는 마음이 생겨 위기를 잘 극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그녀에게 예상치 못한 큰 시련이 찾아오게 됩니다.

평소 건강이 안 좋았던 그녀의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평생 간호하고 여섯 자식을 먹이고 키운 어머니.

최진희 씨는 그런 어머니에게 ‘여자의 인생은 없었다’라고 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토해낸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뇌출혈로 돌아가시게 되고,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고 혼자가 된 외로움과 허무함 때문인지 이듬해에 어머니도 당뇨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1년 사이에 부모님을 모두 잃은 최진희 씨는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극심한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평소 어머니의 삶이 안타깝다고 말해 왔지만, 나중에서야 보니 자신이 어머니에게 더욱 의지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던 그녀.

그런 어머니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부모님을 잃은 슬픔이야 당연하겠지만, 최진희 씨의 경우는 더욱 마음에 사무쳤는지,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 충격으로 입과 눈 주변 근육이 마비가 되는 구안와사에 입이 완전히 돌아가 버렸고, 실어증까지 오게 됩니다.

거기에 신우신염까지 와서 14시간 넘게 의식이 불명이 되는 등, 마치 세상의 미련을 버리려는 듯, 극심하게 몸 상태가 안 좋아진 그녀.

 

입까지

완전히 돌아가 버려서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고, 가족들조차도 그녀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우울증까지 걸리게 됩니다.

갑작스레 부모님을 여의고 그 충격으로 모든 걸 포기할 뻔했던 그녀.

아마 혼자였다면 이 위기를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천만다행이게도 그녀의 옆에는 사랑하는 딸과 남편이 있었는데요.

힘들어하는 그녀를 위해 딸과 남편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간호를 하자 그녀는 점차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방송에 나와 자신의 근황을 알려주었는데요.

40년간 당뇨로 고생하신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며 자신도 당뇨 진행을 막기 위해 철저하게 건강을 관리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건강한 모습으로 좋은 노래를 많이 들려주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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