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선배님에게 평생을 감사해도 모자랍니다..” 돌연 김용만의 눈물겨운 고백.. “지금 그의 놀라운 정체와 인생사를 알아보세요..

1991년 KBS 공채 개그맨 7기로 데뷔해 얼굴을 알린 코미디언 김국진.

그의

동기로는 유재석, 남희석, 박수홍, 김용만, 김수용 등 쟁쟁한 인물들이 있죠.

이 중에서 김국진, 박수홍, 김용만, 김수용은 ‘감자골’이라는 이름으로 그룹 활동을 하게 됩니다.

‘감자골’은 어마어마한 인기를 불러 모았죠.

그들은 SBS로 이적한 선배 코미디언들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대체하며 데뷔와 동시에 많은 인기를 얻기 얻고 상승세를 이끌어갔습니다.

그중에서도 김국진은 남다른 존재감으로 1992년 KBS 코미디 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감자골’ 4인방의 치솟는 인기는 이들의 혹사로 이어졌고, 맏형이었던 김국진은 방송국에 스케줄 조정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방송국에서는 이들의 요청을 듣기는 커녕,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결국 김용만이 지나친 스케줄에 버티지 못해 쓰러졌고, 이에 김국진, 박수홍 그리고 김수용은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선언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워낙 똥 군기가 심했던 시절이었기에, 선배 코미디언들은 신인들의 이러한 행동을 반갑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맹비난을 쏟아부었습니다.

 

결국

‘감자골’ 4인방은 MBC의 ‘일밤’에서 고별 인사를 하며 미국으로 떠나는 결정을 합니다.

그런데 ‘감자골이 모든 프로그램을 하차한 것은 MBC로 이적하기 위해서였다’라는 소문이 방송계에 퍼지게 되면서, 방송 3사의 모든 코미디언들은 ‘일밤’ 녹화장으로 쳐들어와 녹화를 막으며 ‘감자골’ 4인방을 끌어내리는 깽판을 쳤습니다.

이때 김국진은 스텝의 도움을 받으며 우여곡절 끝에 녹화를 마칠 수 있었지만, 결국 방송 3사 코미디언 협회에서 제명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이때 유일하게 ‘감자골’ 편에 섰던 대선배 한 명이 있었는데요.

 

 

대선배 임하룡은 “얘네들이 어린아이들도 아니고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일 텐데, 왜 우리 동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주지는 못할망정, 싹도 안 자란 아이들을 영구 제명시키냐”라며 ‘감자골’의 편에서 옹호해 주었죠.

감자골 사태 후, 김국진은 1년 동안 미국에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김국진은 1990년대 후반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인기를 누렸는데요.

김국진의 인기를 실감하지 못한 분들이라면, 가늠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인기가 어느 정도 수준이었냐면, 당시 대한민국 방송계를 움직이는 사람이 4명 있었다고 하는데, 그 네 명은 KBS 사장, MBC 사장, SBS 사장 그리고 김국진이었다고 하죠.

또한 광복 50년 최고의 연예인에 2위가 가수 조용필, 1위가 김국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최고의 코미디언에 김국진이 선정될 정도였죠.

 

 

2001년에는 잘생긴 아이돌, 배우도 아닌 개그맨이 수목 미니시리즈 주연을 맡았을 정도로 김국진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습니다.

 

이는

단기 임팩트로는 최전성기의 유재석보다 훨씬 더 많은 인기였고, 김국진이라는 캐릭터 자체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전 국민이 빠져 있던 시절이었죠.

엄청났던 김국진의 인기는 그가 방송에서 어느 말을 하든, 다음 날에는 모두 유행어가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예전에 뭔 말만 하면 유행어가 됐다”라는 말이 다소 과장 같아 보이지만, 실제 이야기였습니다.

김국진은 기업까지 살린 적이 있습니다.

김국진의 이름과 캐릭터를 그대로 사용한 ‘국진이 빵’은 IMF 시절 도산 위기에 있던 한 기업을 살려내기까지 했는데요.

이 빵은 하루에 60에서 70만 개가 판매되었고, 월 매출액이 40억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는 2014년 허니버터칩의 3개월 매출이 50억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인 셈이죠.

 

게다가

김국진은 어려운 기업 사정을 감안해 개런티도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최전성기의 김국진은 일주일에 1억씩 벌었을 정도로 매우 바빴고, 하루에 두 시간만 자면서 몇 년 동안 스케줄을 소화해 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99년, 김국진은 갑자기 방송을 그만두고 1년 가까이 휴식을 취했습니다.

세간에는 골프 때문에 방송을 그만뒀다는 말이 돌았지만, 사실 그가 방송을 그만뒀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내가 거기서 방송을 계속하다가는 ‘내가 이때까지 모은 돈이 다 치료비로 들어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제가 했습니다. 절 일으켜 세워서 ‘말 한마디만 해주세요’, ‘네 오마이 갓’그러고 쓰러지고, 3일 동안 뭐 1분도 쉬지 않고 촬영을 했으니까요. 제가 골프 치려고 방송을 중단한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아니에요. 죽을까 봐 방송 관둔 거예요”

김국진은 1년 뒤, 다시 방송에 복귀하여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이혼과 사업 및 투자 실패 그리고 사기까지 당하며 2003년부터 5년 동안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이 시기에 방송인인 그는 대인기피증까지 생기면서, 지속된 은둔생활로 인생에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김국진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평소 훌륭한 그의 인품을 잘 알고 있던 지인들은 꾸준히 김국진에게 방송 복귀를 권했고, 그러한 도움을 받은 그는 간간이 방송에 얼굴을 드러내며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는 재기의 신호탄을 쏠 수 있었죠.

김국진은 2007년 ‘무릎 팍 도사’에 게스트로 출연한 후, ‘라디오스타’에 MC로 합류하면서 다시 방송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비록 초창기에는 달라진 방송 트렌드에 적응을 못 하는 듯싶었지만, 이내 자신감을 찾으며 ‘라디오스타’의 확실한 MC로 자리매김했죠.

2000년대 후반부터 김국진은 많은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합니다.

 

비록

예전만큼의 폭발적인 인기는 아니었지만, 그는 친근하고 편안한 스타일로 대중들에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라디오스타’에서 그는 1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고, 이외에도 여러 방송사의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지금까지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죠.

2015년 SBS의 ‘불타는 청춘’은 김국진과 강수지에게 ‘치와와 커플’이라는 별칭을 안기며, 두 사람 사이에 얽혀 있던 인연의 끈을 풀어주었습니다.

사실 강수지는 90년대 자신의 전성기 시절 콘서트에 꼭 김국진을 초대했고, 김국진은 바쁜 와중에도 꼭 강수지의 공연만큼은 보러 갔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마침내 2018년 5월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국진이 빵’ 출시 당시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개런티 한 푼 받지 않은 것만 봐도 평소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상상이 되는데요.

 

항상

남을 먼저 생각 챙겨주기로 유명했던 김국진은 여러 방송에서 이런 미담들이 쏟아졌죠

김숙은 “김국진 선배님 진짜 멋있었어요. 지방에 행사 갔었는데요. ‘너네는 이 행사 돈을 받고 오니?’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무대 경험 쌓으라고 하시던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김국진 선배님이 ‘그런 게 어딨냐. 너희들도 개그맨인데 행사비를 받아야지’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행사비를 똑같이 나눠 받았아요”라며 당시 미담을 펼쳤습니다.

김용만은 “방송을 그만두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저한테 갑자기 느닷없이 찾아와서 3000만 원을 그냥 저를 줬어요. 이거는 돈을 떠나서 이러한 개념, 그러한 개념, 자잘한 개념 이런 것들을 갖다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거랑 좀 다르게 차원이 다르게 생각을 하는 분이에요”라며 일화를 전했습니다.

김수용은 “결혼할 때 제가 좀 어려웠죠. 국진이 형이 ‘신혼여행 어디 갈 거야? 내가 보내줄게’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누가 신혼여행 경비를 주나요. 제가 진짜 잘되면 갚아야 할 대상 0순위예요”라며 미담을 전했습니다.

김국진 씨는 항상 변함없이 모두에게 잘해주셔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하며, 승승장구하는 길만 걸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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