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그토록 안 보이더니 결국..” 결혼 이후 잠적하듯 사라진 그의 놀라운 현재 근황과 이야기를 알아보시길 바랍니다..

배우 박신양 씨는 연기 잘하기로 소문이 난 배우죠.

요즘

스크린에서 보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있지만, 예전에는 연기 하나만으로도 믿고 볼 수 있는 배우였는데요.

그는 지난 2002년 백혜진 씨와 결혼을 발표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박신양은 결혼 당시 21살밖에 되지 않은 신부가 재벌 딸이라는 점도 놀라웠지만, ‘이혼녀’라는 루머가 돌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죠.

그런데 최근에는 응급실에 실려가 다섯 시간 동안 긴급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전해져 많은 이들이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도대체 연기력과 스타성을 인정받으며 최고의 인기 배우였던 그가 드라마 ‘동네 변호사 조들호’ 이후 4년째 방송에서 자취를 감춘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박신양은 부인 백혜진 씨와 만난 지 4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하지만, 부인 집안과 더불어 과거가 큰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었죠.

 

그와

백혜진 씨가 처음 만난 것은 친한 후배와 함께 부산으로 휴가를 떠났던 호텔 헬스클럽에서 백혜진 씨를 처음 보았는데요.

당시 백혜진 씨는 운동복 차림으로 러닝머신에서 뛰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는 순간 첫눈에 내 사람이라는 느낌이 왔다’라며 그가 말하길 “첫눈에 반했다는 건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니에요. 그때는 안경도 쓰고 있지 않았거든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혜진이에게 마음 한쪽이 쏠렸어요. 언젠가 안성기 선배에게 ‘결혼은 어떻게 하는 거냐’라고 물었더니, ‘때가 되면 되는 거야’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혜진이에게 말을 걸었고, 혜진이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라고 했는데요.

처음부터 결혼을 생각했던 그는 며칠 뒤 편지로 자신의 마음을 전합니다.

두 사람은 첫 만남 이후 박신양이 촬영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만났고, 처음에는 백혜진 씨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그를 부담스러워 할까봐 주로 차 안에서 만났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백혜진 씨의 어머니와 함께 영화도 보러 다니고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자유롭게 데이트를 즐겼다고 합니다.

13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도 두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죠.

2002년 백혜진 씨와 결혼 발표 당시, 여러 루머로 인해 축복받아야 할 결혼식이 얼룩져 상처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당시 백혜진 씨가 ‘시집을 한 번 갔다 온 이혼녀’라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소문의 대상인 백혜진 씨의 전 남자친구는 고교 시절 교제하던 남성으로 전해지는데, 전 남자친구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상황이라 비자 발급이 어렵게 되자 미국 시민권자인 백혜진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혼인 신고를 한 것이었죠.

 

한편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백혜진 씨의 부모는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했는데, 사실상 이들은 사실혼 관계가 아니었기에 해당 소송은 승소했고, 사실상 백혜진은 박신양과의 결혼이 초혼인 셈입니다.

결혼도 하기 전부터 소문이 무성하게 양산돼 박신양과 백혜진 모두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행복하게 사는 걸로 갚겠다’라는 말로 수많은 의혹들을 일축했고, 20년 넘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첫 만남에 온몸의 전율을 느꼈다’라는 박신양과 결혼 20년 차에도 떨림을 느낀다는 아내 백혜진 씨.

 

당시

박신양의 배우자 백혜진 씨가 하겐다즈 및 샤프 에비에이션 창업주의 손녀임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 기업은 1991년 국내 시장 진출 이후 지금껏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업계 매출 1위를 놓치지 않고 있죠.

또 박신양의 장인어른 역시 세계 항공사 사위인 노스트 웨스트 항공의 국내 대리점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하겐다즈 및 샤프 에비에이션의 도합 매출은 1700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박신양은 원래 건축학도를 꿈꾸던 학생이었는데, 그의 집안은 이공계열 종사자들이 많아 그 역시 자연스럽게 이공계열로 꿈을 정하게 되었죠.

 

그러나

학교를 다니면서 어느 순간 그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왜 사람들은 한쪽 방향으로만 가지?’, ‘왜 다들 정해진 쪽으로만 움직일까?’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리고 그는 친한 친구의 말 때문에 진로를 수정하게 되는데, 바로 ‘우리 연극 영화과 갈래?’라는 말이었죠.

박신양은 조금 생각하더니 ‘그러자’라고 했고, 실제로 동국대 연극 영화과로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는데 친구는 농담으로 한 말이었고, 그 친구는 수학과로 진학하죠.

 

 

어쨌든 연극 영화과로 진학한 박신양은 1년쯤 수업을 듣고 우연히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듣게 되는 일이 생겼는데,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너무나 절망한 박신양은 그만 화장실에서 토하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나 얇고 가벼워서 배우로서는 한계가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인데요.

그때 그는 멘토인 안민수 교수를 만나게 되는데, 안 교수는 그의 발성을 고쳐주기 위해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었고, 박신양은 그 이후 20여 년 가까이 발성을 고치기 위해 훈련을 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대목이었습니다.

몇 년 정도 피나는 노력을 해서 인생이 바뀌었다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고치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는 소리는 처음 들은 탓인데요.

물론 그런 사례는 적진 않겠지만,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지금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졌는데요.

박신양은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사회에 나오면서 많은 혼란을 겪었고, 다시금 선생님을 찾기 위해 이번엔 모스코바행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그의 열정은 비행기 안에서 외국어를 익히기 위한 알파벳을 외웠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었죠.

해외 연극학교에서 연기 공부를 하던 중, 박신양은 양윤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유리’의 출연을 요청받고 귀국합니다.

영화인 ‘유리’에서 박신양은 극한 상황에 놓인 다양한 역할을 맡아 신인답지 않는 대담한 연기로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죠.

박신양의 출세작은 이정국 감독의 ‘편지’로 최진실과 공연한 이 영화에서 박신양은 사랑하는 아내를 남겨두고 악성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지고지순한 남편을 연기하여 많은 관객들을 울렸는데요.

극장 등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서울 개봉관에서만 80여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을 터뜨리면서 박신양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한석규를 긴장하게 만듭니다.

 

이어

박신양에게는 또 한 번의 큰 행운이 찾아오는데, 바로 김유진 감독의 ‘약속’의 대성공이죠.

전도연과 공연한 이 영화에서 박신양은 조직 폭력배 역을 실감 나게 소화했고, 이 영화 역시 그의 열연에 힘입어 서울 개봉관에서만 7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박신양은 흥행 배우로 인정받고, 그는 제7회 이천 춘사 대상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합니다.

이후 ‘킬리만자로의 표범’, ‘달마야 놀자’, ‘인디언 섬머’, ‘범죄의 재구성’ 등에 출연하면서 박신양은 변신을 거듭하는데요.

그런데 박신양을 최고의 인기 스타로 만들어 준 것은 영화가 아닌 바로 tv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었습니다.

김정은과 공연한 이 드라마에서 박신양은 어눌하지만 진지한 매력을 발산하는 재벌 2세의 역을 맡아 여성 시청자를 열광시키면서 시대를 대표하는 로맨틱 가이로 각인되었죠.

천의 얼굴을 가졌다는 게 이럴 때 사용하는 말인 것 같은데요.

 

당시

gm 대우자동차의 모델을 비롯하여 아파트, 노트북 등의 cf 계약만으로 거의 30억 원에 달하는 광고 수익을 올렸죠.

그러다 박신양은 2019년 드라마 ‘동네 변호사 조들호’ 촬영 중 긴급 허리 수술을 받습니다.

당시 소속사 시너지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고질적인 허리디스크가 문제가 돼 지난 새벽 응급실에 실려가 5시간 동안 긴급 허리 수술을 받았다’라며 회복 중인 상황이라고 밝혔죠.

박신양은 이전에도 허리 디스크로 세 차례 수술을 받았는데, 이후 드라마 촬영 중에도 통증을 느꼈지만 촬영 일정 탓에 참아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다

허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고, 왼쪽 다리 마비 증상까지 찾아와 급하게 응급실을 찾았고 긴급 수술을 받게 됐는데 이에 kbs 측은 ‘동네 변호사 조들호’ 2주 결방을 결정했죠.

그러다 최근 그의 근황이 국립 대학원 미술학과 서양화 전공 석사 과정에 진학하기 위한 모집에 응시했다는 사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는데요.

그가 서양화 전공 대학원에 진학하며 수험표를 인스타그램에 공개했을 때 수능을 새로 보는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나저나 이런 기사가 뜨면 달리는 댓글은 뻔하죠.

‘연기 안 하시나?’

그의 인스타에는 수험표 이외에도 자신의 이름을 딴 박신양 장학회인 ‘뻔장학회’를 운영하며 장학생을 모집하는 등의 청년 지원을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박신양의 인스타그램에는 꾸준하게 공개된 미술 작품들이 많았는데요.

이 외에도 이미 130여 점의 작품들이 창고 안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배우 박신양이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여 년 전 유학하던 시절 우연히 작은 미술관에서 보게 된 니콜라스 로에리치의 작품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러고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여 년을 넘게 연기를 하면서 표현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때에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꺼내어 표현하고 싶었던 마음에서 시작된 그림이라고 보여집니다.

 

처음

시작은 집 안에 별도 마련된 작업실이었지만, 도구와 작품들이 늘어나면서 별도의 작업실을 얻을 만큼 상당한 열정을 내비치기까지 했는데, 열정의 끝이 바로 공개된 수험표였죠.

68년생으로 올해 나이 55세인 박신양의 수험표를 본 네티즌들은 ‘늦은 나이에도 도전하는 건 멋진 일’, ‘대단하다’, ‘좋은 그림 많이 보여달라’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화가로서 좋은 그림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그의 연기를 다시 보고 싶어 하는 대중들도 많은데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좋은 작품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그의 활동을 응원하겠습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