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슬픈 일이 또 어디에… “충격 추성훈 부친의 갑작스러운 비보..” 그의 “마지막 한 마디에” 빈소가 눈물 바다가 된 사연..

최근 종합격투기 선수 추성훈이 충격적인 부친상을 당했습니다.

추성훈의 소속사 ‘본부 이엔티’는 다음과 같이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추성훈의 부친 추계이 씨가 향년 73세로 금일 별세하셨다. 추성훈은 한국에서 소식을 접하자마자 일본으로 급히 귀국한 상태며 장례는 가족 및 친지들과 조용히 치를 예정이다. 추성훈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더더욱 슬픔이 커진 상태다. 추성훈을 비롯한 가족분들에게 깊은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라고 덧붙이며 추성훈을 대신하여 갑작스러운 소식을 대중들에게 전하였죠.

본론

들어가기 앞서, 애도를 표하며 부친을 떠나보낸 추성훈의 슬픔이 빨리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추성훈의 부친 추계이 씨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했을 당시 여느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들과는 어색한 모습을 보였지만, 애교를 부리는 손녀 추사랑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추성훈도 엄한 줄만 알았던 부친이 이렇게 손녀를 이뻐 줄은 몰랐다며 자신과 아버지에 대한 그동안의 어색한 관계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는데, 대체 일본에서의 어떤 경험과 설움이 이 부자 사이를 오랫동안 갈라놓았던 걸까요.

오늘은 작고한 추성훈 부친이 남겼던 슬픈 마지막 유언과 더불어 추성훈의 아버지가 존경받을 수밖에 없던 그 이유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합니다.

추성훈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가 박쥐 같은 인생이라고 비난합니다.

즉,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으로 돈을 번다는 주장이죠.

특히 추성훈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비난하는데, “나에게 한국과 일본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조국이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중에서 만약 한곳이라도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란 추성훈의 고백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비난론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 출신임을 이용하는 것일 뿐, 추성훈의 본질은 뿌리 깊은 일본 사람’이라고 맹렬히 주장하지만, 추성훈 부친과 추성훈이 살아왔던 과정은 오히려 정반대의 스토리였습니다.

재일교포 3세인 추성훈의 아버지는 1973년 한국 전국체전에 참가했으며,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될 만큼 뛰어난 유도선수로 활약했던 인물입니다.

 

이런

부친의 밑에서 자란 추성훈은 3살 때부터 유도 조기 교육을 시작했으며, 그 재능을 인정받아 유도 명문학교의 1순위로 스카우트되었던 인재였습니다.

추성훈은 자신이 속해 있던 지역에서 3연속 우승을 차지했지만, 재일교포 출신이 꼬리표가 되면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낸 아픔이 있죠.

 

 

실제로 추성훈의 부친은 추성훈이 귀화를 하겠다고 말하자 집안의 장손이 일본인이 돼버리니 추 씨 가문이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죠.

 

추성훈

집안의 한국 국적에 대한 애착이 실로 대단한 이유 중 하나는 추성훈을 제외한 부모님과 여동생은 한국 국적을 끝까지 유지했다는 사실입니다.

6살 터울 추성훈의 여동생은 오빠 추성훈과 마찬가지로 일찍이 유도선수의 길을 걸으며 추성훈과 함께 한국으로 건너왔었는데, 그녀 역시 파벌과 편파 판정에 상처받아 결국 유도선수의 길을 포기하고야 맙니다.

추성훈의 여동생 또한 조국이 미워지며 일본 귀화를 고려했을 법도 한데, 끝까지 그녀는 한국 국적을 고집하며 일본인들의 차별을 꿋꿋이 이겨나가는 중이죠.

아마도 추성훈이 했던 고민을 추성훈의 여동생 또한 똑같이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추성훈의 여동생은 귀화를 거부했고요.

여동생마저 국적을 지키는 상황에서 귀화를 선택한 추성훈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실제로

일본 귀화 결정 이후 부자 사이는 많이 서먹해졌다고 고백합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추성훈의 부친은 아들의 의견을 따랐지만, 내심 속으로는 추 씨 집안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많이 서운하고 괴로워했을 거라 사료됩니다.

하지만, 추성훈의 귀화 결정 이전에도 이 부자 사이는 서먹했던 걸로 알려졌는데, 부자가 평생을 어색하게 지냈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스토리가 존재합니다.

추성훈의 아버지는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해 말하길 “재일교포이자 유도선수로서 일본에서 많은 차별을 당해왔다고 하죠.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오직 강해지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항상 누구와도 맞서 싸울 수 있는 그런 힘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라고 토로합니다.

 

이런

모습을 일본인들에게 보인다면 재일교포는 쉽게 먹잇감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추성훈 아버지의 강박관념은 자연스럽게 추성훈에게도 이어졌었죠.

때문에 추성훈의 아버지는 자칫 추성훈이 무르고 약해질까 두려워 사랑보다는 항상 엄하게 대했으며, 강한 사람을 만들고자 집착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추성훈이 잘못을 하면 엄청나게 때리는 방식으로 훈육했다는데, 훗날 이 훈육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눈시울을 붉히며 자책하였죠.

 

 

“나도 성훈이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로부터 굉장히 엄하게 교육받으며 자랐었다. 때문에 아들이 생긴 다면 나만큼은 따뜻한 아버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성훈이에게 부드러운 사랑보단 엄한 회초리만 든 것 같아 후회된다. 나이가 들수록 성훈이에게 사랑을 양껏 주지 못한 게 미안할 따름이다”라며 TVN 예능 ‘아버지와 나’에서 처음으로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었습니다.

이 방송에서 추성훈 부자는 단둘이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었는데, 추성훈은 이종격투기 선수로서 5년간 먹지 않았던 탄수화물 식단을 아버지와의 여행을 위해 먹었다고 고백하여 찡한 감동을 전달하기도 하였죠.

그리고 훗날 다른 방송에서 일본 기화 때문에 속상했을 부친을 위해 만약 자식이 생긴다면 한국식 이름으로 짓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추성훈의 딸 추사랑의 이름은 일본이 아닌 한국식 이름이었던 거죠.

그리고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편한 추성훈이지만 끝까지 추사랑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유도 부친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 싶은 게 여러 이유 중 가장 크다고 전했습니다.

 

사실

추사랑은 한국식 이름으로 인해 일본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하와이행을 선택했다는 건 너무나도 유명한 사실입니다.

추성훈은 딸과의 교감을 높이려고 베이비 마사지 자격증을 땄을 정도였으며, 추사랑을 안고 있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고 말할 정도로 연예계에서 대표적인 딸바보 아버지로 그동안 잘 알려져 왔었습니다.

하지만, 추사랑의 따돌림 때문에 사회성이 부족해진 이상 징후를 보이자 딸을 끔찍하게 사랑하기로 알려진 추성훈은 엄청난 충격을 받기도 했죠.

추성훈은 항상 아버지를 무서워하며 강해져야 한다고만 교육받았었기에 자신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눈물을 흘렸었던 적은 없다고 했을 만큼 완전히 감정이 메마른 건조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추사랑을 낳고서부터 감정적으로 복받치는 순간이 많아졌다며 추사랑이 자는 모습만 봐도 본인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하죠.

사랑이만 생각하면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나고 잘 자고 잘 먹는 모습에도 너무 감사해 눈물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추성훈이 몰랐던 것은 부친도 똑같은 감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한 방송에서 추성훈의 부친은 추성훈이 애기였을 때를 회상하자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어느 에피소드를 고백했습니다.

“성훈이가 태어난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큰 감기에 걸려 정말 죽을 뻔했었다. 병원에 너무 늦게 왔다며 의사마저 가망이 없다고 말했는데, 다행히도 성훈이는 살아났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성훈이가 유도선수 은퇴 이후 이종격투기 선수를 한다고 말했을 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두렵고 걱정됐었다. 경기 중 성훈이가 한 대라도 맞을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는데 내가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내가 더 걱정할까 봐 의연한 척했었다”라며 아들 추성훈에 대한 심정을 눈물을 흘리며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위한 마음으로 다음의 유언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추성훈의 할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신 과정을 오래 지켜봤었다. 아버지가 병들고 힘든 모습을 보이면 아들로서 얼마나 슬플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는 사랑을 충분히 주지도 못했는데 성훈이에게 이런 슬픔까지는 주기 싫다. 때문에 내가 만약 아픈 순간이 오면 절대 연명치료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가정에선 강한 남편과 아버지보다는 자상하고 따뜻한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라며 아들 추성훈에 대한 깊은 사랑이 담긴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추성훈은 죽도록 맞는 게 일상이었다며 아버지에 대한 무서움을 드러냈지만, 여러 고백과 유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로 추성훈의 부친은 따뜻한 아버지였죠.

 

다만

강해져야만 살아남는 재일교포이기에 사랑보다 강하게 키우는 걸 집착했던 것이죠.

부디 하늘에 계신 그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라며 추모의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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