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이 동양 문화 중에서 의외로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부모를 공경하는 효도 문화 및 2~3대가 어우러져 사는 대가족 문화입니다.
동양은 서양보다 훨씬 더 오래된 농경 사회와 유교적 문화를 보유했기에 가족에 대한 애착과 유대감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다고 알려져 있었죠.
그래서
오죽했으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한국 속담이 나왔겠냐고 자랑하는데, 사실 이 속담은 우리가 아닌 영어권 국가에서 탄생한 속담입니다.
가족 간의 유대감이 다른 관계보다 우선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속담이었죠.
때문에 가족을 이용하고 파탄 내었던 이번 박수홍의 친형 사건은 한국 연예계에 관심을 갖는 서양인들조차 굉장한 분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형제들의 유산 상속 갈등이나 유대관계가 적은 부모 자녀 간의 재산 갈등은 동서를 막론하고 흔하게 접하는 사례이지만, 박수홍의 사례는 글로벌 엽기 사건에 가까우니까요.
평생을 바쳐 효도를 하고 가족을 부양했는데 친형 부부는 동생을 살아생전 이용한 것도 모자라 동생의 죽음 이후까지 계획하며 8개에 달하는 사망보험금을 가입했고, 박수홍의 아버지는 흉기로 위협하고 직접적인 구타와 협박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모친은 아들 덕에 방송도 출연하고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살더니만, 아들의 결혼을 반대한 것도 모자라 사기 친 장남의 편을 들어주고 있죠.
또한 증언을 번복하며 박수홍을 배신한 셋째 동생은 물론 ‘삼촌 재산은 내 거야’라고 자랑하는 조카마저 존재하고요.
그래서 이 사건이 국내를 떠나 전 세계적인 엽기 사건으로 소개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믿을 건 가족밖에 없는 현실에서 가족 전체에게 배신당한 박수홍은 야산에 올라가 스스로 생을 끝내려 했으나, 하늘도 그가 불쌍하고 안타까웠나 봅니다.
23살 연하의 사랑하는 부인이 생겼으며, 동료들이 그의 편에서 함께 싸우고 있으니까요.
그중에서 박경림은 이번 재판을 뒤집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박경림은 얼마 전 박수홍의 결혼식에서 혼주 역할을 맡았을 정도로 엄청나게 끈끈하고 오래된 평생의 우정을 나눈 관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박수홍의 사건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고 분노 함께 싸워줬는데, 이번 재판에서 박경림 그녀가 보여준 엄청난 반전 활약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먼저, 그전에 박경림이 박수홍을 왜 그토록 아끼는지 사연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수홍과 박경림의 첫 만남은 무려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박경림은 중학교 1학년 때 국립극장에서 열린 행사에 갔던 적이 있는데, 진행자로 예정된 김국진의 사고로 박수홍이 진행을 대신하게 되었죠.
박경림은 이날 박수홍을 처음 본 시간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생긴 사람이 모델처럼 걸어와서 내 주위의 한 자리에 앉았었다. 그 잘생긴 사람이 박수홍이었고, 나는 당돌하게도 옆으로 다가갔다. 당시 나는 14살의 패기로 22살인 박수홍에게 홀린 듯 다가가서는 ‘옆자리에 앉아도 될까요?’라고 물었는데, 박수홍의 이어지는 행동이 놀라웠다. 박수홍은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내가 앉을 자리에 놔줬는데 그때부터 내 평생의 마음속에 박수홍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다.’ 편지를 써도 되냐’라고 물었더니, 박수홍은 흔쾌하게 주소를 적어줬고 반신반의 마음으로 편지를 보내니 일주일 만에 친필로 답장이 왔다. 나는 당시에 박수홍에게 받았던 답장과 사인이 담긴 사진을 아직까지 갖고 있다”라며 박수홍과의 첫 인연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털어놓았습니다.
어찌 보면 20대 오빠를 좋아하는 흔하디흔한 사춘기 첫사랑 같은 느낌이었죠.
박경림은 박수홍의 팬클럽 초대회장이자 마지막 회장일 정도로 열성적으로 박수홍을 응원하였고, 중학교 시절부터 아주 친밀한 사이가 됐습니다.
하지만
박수홍이 감자골 사태로 방송이 중단되며 군대를 가게 되었는데, 박경림은 박수홍이 군대를 가기 전인 1993년에 이미 팬클럽을 만들어 놓고는 박수홍이 전역 후 첫 방송을 하자 100명이 넘는 엄청난 방청객을 동원했죠.
군대에 있는 연예인의 팬클럽을 박경림 혼자서 3년 가까이 키워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박남매라고 불릴 만큼 이 둘은 연예계의 대표 절친으로 활약해 왔죠.
흔히 대중들은 박경림이 박수홍의 덕을 보고 성장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박수홍이 박경림의 덕을 봤다고 말할 정도로 많은 도움을 얻어왔습니다.
90년대 말부터 예능에 등장했던 박경림은 특유의 입담과 사각턱 그리고 쉰 목소리로 2000년대 초반에 엄청 전성기를 구가하며 박경림 신드롬을 전국에 일으켰었죠.
방송 3사의 예능 MC는 물론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도 섭외되었고, ‘착각의 늪’이란 곡을 히트시키며 20만 장의 앨범 판매까지 올린 인물입니다.
그녀가 2001년에 받은 MBC 연예대상은 2018년 이영자가 대상을 받기 전까지 무려 17년 동안 유일하게 대상을 받았던 마지막 여성 연예대상자일 정도였죠.
잘나가던 박경림은 자신의 앨범 및 방송에 박수홍을 꽂아주다시피 할 정도로 박수홍을 적극적으로 도와줬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토로합니다.
“수홍이 오빠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어요. 부친의 3번 사업 실패로 어렵게 자랐기에 친한 동생으로서 꼭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박수홍을 도와주며 그가 인생역전을 했던 과정을 앞서 전부 보아온 그녀는 박수홍이 친형 때문에 전 재산을 잃게 되자 자신의 일처럼 분노하고 슬퍼한 건 당연했죠.
이런 상황 속에서 형수는 재판 중 뻔뻔하게도 법인 자금 횡령을 부정하며 말하길, “남편과 본인은 박수홍의 방송 활동을 위해 상품권을 구입하여 로비를 했는데 로비 대상은 방송 관계자와 박경림을 비롯한 유명 MC들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변명하였습니다.
이에
박경림은 “선물을 받은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단 한 명도 없다. 내 증언으로도 부족하면 추가 증인을 얼마든지 불러낼 수 있다. 또한 선물 대상이라고 밝혔던 피디들과 동료 연예인들의 진술서를 확보할 수 있다”라는 적극적 주장을 통해 재판에서 형수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을 무력화시켰다고 전해집니다.
박경림은 박수홍과 30년 동안 활동하며 친형 부부와도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기에 향후 친형 부부의 거짓말을 그 누구보다 잘 밝혀내고 증언할 거라고 예상되는데, 비록 박수홍은 이번 사건으로 가족을 잃었지만, 형제와 같은 박경림이 있어 다행으로 보입니다.
이는 그동안 박수홍이 훌륭한 인성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반증이기도 하겠죠.
남은 박수홍의 인생이 행복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