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지점장이 집으로 마중을 올 정도… “현재 공개되어 난리난 전원주의 재산 수준..” 얼마나 규모가 크면 그런 대우까지..

SBS ‘미운우리새끼’에서 전원주가 이상민, 김준호를 만나 큰 재산을 모으는 비법을 소개했다.

전원주는 서울에 소유한 건물 30억원과 10억원 상당의 금화, 예금 자산 등 총 50억원을 모금했다고 밝혔다. 내가 은행에 내리면 매니저와 경비원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은행에 그녀를 위한 별도의 금고도 있습니다.

평생

조연과 단역만 했던 전원주는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수십억의 재력가가 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그녀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면 해답이 나옵니다.

많은 양을 잘 다듬은 날은 일당을 더 주셨고, 대충 다듬은 날은 일당을 조금 주셨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전원주는 열심히 일하면 좋은 대가가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6.25가 터지며 보따리 하나만 들고 피난을 오게 된 전원주와 가족들은 그때부터 맨땅에 해딩하는 수준의 고난을 겪게 되는데요.

그녀의 어머니는 노점에서 도넛과 떡을 만들어 팔았는데, 전원주에게도 매일 나무 쟁반에 도넛을 담아 팔게 했다고 합니다.

할당량을 다 팔아야 집에 올 수 있었으며 팔고 나면 어머니는 용돈을 주셨다고 하는데요.

 

 

밑천을 마련해 비단 가게를 열게 된 어머니는 가게에 나갈 때마다 떡을 해서 매장에 놓고 손님들에게 드렸는데, 맛있는 떡을 먹은 손님들은 빈손으로 나가지 않고 비단을 사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또, 어머니는 마당 넓은 주택에 사시면서 큰 가마솥에 밥과 국을 만들어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나누어 주기도 하셨고, 나중에 전원주가 단역배우를 전전할 때 어머니는 촬영장에 밥을 이고지고 와서 밥을 먹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베푸는 삶을 사시며 자연스럽게 어머니를 존경하게 된 전원주.

전원주는 어머니의 권유로 숙명여대 국어국문과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자는 초등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던 시절, 어머니는 세상에 눈이 트인 분이셨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여교사는 신붓감으로 1위였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인물이 없던 전원주에게 엄마는 좋은 직업을 만들어주려고 교사로 진로를 정해주신 것이었는데요.

 

 

교사가 되고 전원주는 어느 중학교의 담임을 맡았지만, 작은 키 때문에 칠판에 글씨 쓰기도 힘들었고, 가르치는 학생들이 심지어 키가 더 커 혼낼 때도 얼굴을 들고 혼내야 했다 보니 교사에 대해 점점 회의감이 들게 됩니다.

당시 잘나가는 성우로 영화의 주인공, 여배우 목소리도 많이 맡을 정도로 전원주는 맹활약했지만, 그런 딸이 연예인을 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팔자 센 여자들이나 연예인을 한다’라며 반대하셨고, 전신 거울을 보여주며 ‘니 낯짝을 봐라 네가 연예인 얼굴이냐. 자기 자신을 알아야지. 그래서 내가 선생을 만든 건데 팔자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느냐’라며 심하게 반대를 하셨다고 합니다.

 

게다가

티비 방송이 개국하며 라디오에서 브라운관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지만, 전원주가 얼굴이 따라주지 않으니 밑바닥 역할만 맡게 되죠.

이러한 딸을 보고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 보기 매우 창피했다고 합니다.

늘 앞치마를 두르거나 아기를 들쳐 업고 가정부, 사극의 주모 역할만 맡게 되니 어머니는 전원주가 늘 1등이길 바랐지만 단역을 전전하는 모습에 속이 많이 타게 됩니다.

이후로도 전원주의 무명생활은 3년도 5년도 아닌 무려 30년이나 지속되는데요.

당시 여배우들 사이에도 시샘이 많아 서로 무언의 신경전을 많이 했는데, 역할이 늘 하찮았던 전원주는 배우들로부터도 늘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너무 서러워 화장실에서 울기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둘은 여행도 다니며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지금도 전원주의 침대 옆엔 여운계 사진이 있어 힘들 때 혼자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 전원주에게 어머니는 좋은 자리에 시집을 보내려고 여기저기 알아본 끝에 당시 의사 집안의 잘생긴 훈남에게 시집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불행히 닥치게 되죠.

어느 날, 남편이 피 토하자 알고 보니 폐결핵 환자였고, 그렇게 전원주는 결혼한 지 3년도 안 되어 남편을 하늘로 보내며 청상과부가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남성은 첫인사 자리에 백구두에 빨간 넥타이, 머릿기름을 바르고 제비처럼 등장한 바람에 어머니는 남자를 보자마자 나가버리시며 전원주에게 “나랑 살 건지 저 남자랑 살 건지 선택하라”라고 말했는데, 전원주는 그 남자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결국 남자와 나가게 되었죠.

남자 역시 전원주처럼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렇게 전원주는 두 아들을 키우며 남편과 5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겨울에 난방도 못했고 비가 오는 날이면 비가 새는 집에서 연탄 땔 돈도 없어 길에서 타다만 연탄을 주워다 떼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가 집으로 찾아왔는데, 한겨울에 차디찬 집에서 떨어진 스웨터를 입고 있던 딸을 보며 어머니는 바닥을 치며 대성통곡하게 되는데요.

게다가 전원주는 새 남편과 부부금슬은 좋았지만, 무려 6번의 유산을 감당하면서까지 아이는 더 낳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후에 당시를 회상하며, “자궁을 몇 번이나 긁어내니 나중에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도 못했다. 이러다 보니 친정엄마가 물을 떠놓고 빌고 있더라. 지금 사람들은 이해 못할 것이다. 나 또한 정말 부끄럽다”라며 첨단 시설이 부족하던 시대에 무리한 시술로 목숨을 위협받던 당시 상황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친정엄마에게 피임도 못한다고 많이 혼났는데, 유산 과정에서 병원에서 약도 먹고 쓰러지고 정말 너무 힘들었지만 스스로 몸을 망가뜨리면서까지 그녀가 지키고 싶었던 건 안정된 가정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전 남편 아들에 현 남편 아들이 있는데, 세 아이까지 생기면 안 되겠더라. 그런 과정은 더 불안하다”라며 결국 철칙을 지켰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전원주의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넌 왜 아버지와 성이 다르니?”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털어놓자, 전원주는 꿈에도 생각 못 한 아들의 말에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전원주는 ‘아들의 내면을 몰랐다’라며 재혼한 남편도 성을 맞추자고 했지만, 아들의 조상과 핏줄을 지켜주려고 했던 일이 되레 큰 상처를 남긴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는데요.

 

이후에도

전원주는 너무나 바쁜 연기 활동으로 식구들을 돌아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이 죽고 싶기까지 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자 전원주는 너무나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됩니다.

게다가 그녀는 이후 ‘이 큰 여자가 너무 많이 웃는다’라고 괴롭고 혐오감을 준다는 황당한 이유로 40일간 방송 정지까지 당하게 되는데요.

전원주는 “방송국 윗선에서 내가 너무 시끄러웠는지 연출들이 드라마에 들어가기만 하면 무조건 나를 죽였다”라고 털어놓으며, “연속극 들어가서 죽이면 정말 기분 나쁘다. 죽는 것도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교통사고 나서 즉사당했다. 그럴 때는 어떤 사람의 말도 위로가 안되고 자제력이 사라진다”라며 속상하고 애통한 심정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연기생활 50년 중 30년 동안 가정부 역할만 한 그녀는 “주인공은 조금만 얘기해도 나보다 돈도 더 많이 받는다. 그러나 나는 밥상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애까지 업고 뛰어다녔다”라며 서러움을 회상하기도 했는데요.

전원주는 그 말을 듣고 결국 성형수술을 포기했는데, 이후 혼자 괴로움의 길을 걷던 중 시장에서 깔깔깔 웃는 아줌마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전원주는 웃음을 듣고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으며 ‘바로 저거구나’하며 영감을 받게 되는데요.

 

이후

그녀는 집에서 매일 거울을 보며 웃음을 연습했는데, 아이들이 “엄마. 그만 좀 웃어 무서워. 귀신 나올 것 같아”라고 할 정도였고, 남편마저도 “당신 미쳤냐”라며 화를 내는 바람에 전원주는 밖으로 나와 길거리에서 웃음을 연습하게 됩니다.

전원주는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방송국 연출자 앞에서도 캐릭터 맞는 역할이 있으면 섭외해달라는 의미로 우습지도 않으면서 맨날 깔깔깔 웃는 얼굴을 보이고 다녔는데요.

그런데 그녀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요?

전원주의 작전이 드디어 방송국 피디들로부터 환영받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웃는 사람 얼굴에는 침 못 뱉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침을 못 뱉는 정도가 아니라 그때부터 전원주의 인생에는 행운이 펼쳐지기 시작하는데요.

그 웃음으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하성댁으로 캐스팅이 된 전원주는 많은 사랑을 받았던 국민 드라마에 이후 7년 8개월이나 출연하며 드디어 인기 배우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그녀는 너무 기쁜 나머지 매일 논밭에서 일하는 연기를 땡볕에 하루 종일 해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 드라마 이후 시골에 가면 사람들이 화성 주택 전원주를 알아보게 되었고, 게다가 몇 년 후 인생을 바꾼 CF 한 편이 온 국민을 흔들어놓기까지 하게 됩니다.

바로, 국제전화 광고로 이 광고 후 전원주는 한 달에 7개씩 광고 제의가 들어오며 몸값이 치솟게 되는데요.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며 그녀는 자신의 성형수술을 말려준 인왕산 점집에도 고마움을 표하러 다시 찾아갔지만, 없어진 바람에 아쉬워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후 배우로서 전성기를 달리기 시작하며 큰돈을 벌기 시작한 전원주.

하지만, 수십 년간 힘든 인생을 살아온 그녀는 1원 한 푼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는데요.

버는 돈은 모두 다 저축했고, 신발이 탈색되거나 망가지면 꼭 고쳐 신었습니다.

화장품은 샘플을 활용했고 옷은 협찬을 받거나 할인해서 샀는데, ’20년 된 옷도 어차피 유행은 돌고 돌아 복고풍이 유행하는 것 아니냐’라며 곰팡이를 털고 고쳐서 입었습니다.

빨래도 손빨래를 많이 했고 잘 때는 모든 전기 코드를 뽑았는데, 기상 한 시간 전에는 무의식적으로 전기장판 코드를 뽑았습니다.

 

또한

빈 그릇 운동 본부 홍보대사를 맡아 밥이나 음식도 남편하고 먹을 만큼만 준비해 일절 버리는 법이 없었고, 수십 년 전 시집올 때 쓰던 물건도 아직까지 쓰는 게 많을 정도로 웬만한 물건은 버리지도 않고 재활용해서 쓰레기도 별로 나오지 않았는데요.

녹차도 두세 번 우려먹고 남는 것은 얼굴 화장품으로 재활용했고 연말이나 명절 때 집에 선물이 쌓여도 한쪽에 보관해 놓고, 옛날 것을 닦아서 썼습니다. 또한 콩을 삶은 물을 버리지 않고 마셨고 밥 지을 때도 넣었고 시간은 돈이라는 생각에 핸드폰도 꼭 필요한 말만 하고 딱 끊었는데요.

그렇게 전원주는 나중에 은행에 가면 번호표를 뽑을 필요가 없는 호사까지 누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녀가 은행 예금액으로 VIP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빠서 아플 틈도 없지만, 몸을 움직여야 보약을 안 먹고 건강할 수 있고 나중에 연예인 실버타운 건립 등 뭔가 뜻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활짝 웃으며 말하는 전원주.

하지만, 그렇게 건강했던 그녀도 어느 순간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하는데요.

그녀는 작은 키를 커버하기 위해 굽 높은 구두를 자주 신었더니, 어느 날 지하철을 탔는데 허리가 어찌나 아픈지 자신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지르면서 주저앉게 됩니다.

병원에 갔더니, ‘척추관 협착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 전원주는 이후 맹장에도 문제가 생기며 맹장 수술까지도 받았고, 급기야 몇 년 전 남편을 하늘로 보내고 우울증과 건망증에 시름하게 되며 기억력도 떨어지고 사람도 못 알아보겠다며 치매 증상이 오는 것 같다고도 털어놨는데요.

전원주의 남편은 간암으로 10년을 병상에서 투병하며 열여섯 번이나 수술을 한끝에 그만 얼마 전 하늘로 떠나고 말았는데, 바쁘게 일하러 다니느라 남편의 임종도 보지 못했다는 전원주는 남편에게 ‘이제 편안한 세상에서 있어라. 못 따라가겠다. 많이 밉기도 했는데 지금은 미운 감정도 하나도 없다. 당신이 정말 보고 싶다’라며 남편과 하늘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전원주는 과거 어머니도 중풍으로 쓰러져 13년이나 병상에 누워 있다가 딸이 유명해진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바람에 평생의 큰 한으로 남아있다고 하는데요.

속 썩였던 어머니께 효도하고 싶었지만 부모는 자식이 효도할 때를 기다려주지 않더니, 이제 평생 고락을 함께한 남편마저도 떠나고 결국 자신마저도 이런저런 병에 시달리며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는 전원주.

어느덧 구순을 향해 가는 그녀가 부디 오래도록 건강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너무나 힘든 인생을 살아온 전원주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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