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기 싫어서 그래… “가수 김완선이 단호하게 “비혼 고백한” 충격적인 이유.. 마지막 연애만 10년 전…

당시 김완선은 은퇴 무대에 서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는데 훗날 김완선은 ‘저때 눈물을 흘렸던 건 슬퍼서가 아니라 거짓말을 해야 하니 마음이 괴로워서 눈물을 흘린 것이었다’라며 당시의 심정을 고백했죠.

그렇게

홍콩과 대만에서 약 5년간 활동을 하고 국내에 복귀한 20대 후반의 김완선에게 많은 신경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10년이 넘게 활동을 했어도 수입을 정산해 주지 않은 이모의 실체를 그제서야 알게 된 것도 있고, 15살 때부터 이모의 통제하에 있으면서 늘 억눌려지기만 했던 자유에 대한 갈망과 이제는 자아를 되찾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솟구치면서 드디어 김완선이 자기 스스로 이모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된 것이죠.

 

당시

김완선 씨는 어차피 돈도 없었으니 가수 생활을 그만둬도 별로 어렵지 않을 텐데, 가수가 될 수 없으니 그냥 호떡집을 차리고 회사를 그만둬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모 집.

 

 

김완선은 집에 돌아온 후 ‘쇼생크탈출’을 한 자리에 다섯 번이나 봤는데 주인공의 이야기가 남의 인생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완선은 영화 말미 주인공이 마침내 느낀 자유의 향기를 맡으며 동질감을 느끼고 환호했다고 한다.

김완선 씨 어머니는 학교를 자퇴하고 가수 활동을 하다가 10년 넘게 이모에게 혼나다가 20대 초반에 궁핍하게 집으로 돌아온 셋째 딸 김완선 씨의 처지에 안타까움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

 

 

당시 김완선의 시간은 15살 중학교 시절로 한정돼 이모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김완선 어머니는 뭘 사든 중학생들이 사주는 것만 샀다고 한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필통, 학용품 등을 사용하게 되어서 안타까웠습니다.

내 딸이 믿었던 남동생에게 속고 속았다는 사실은 영원히 내 마음 속에 남을 것입니다.

김완선은 늘 자신의 자존심을 억누르고 통제하려던 이모에 대한 원망으로 인해 잠에서 깨어나야 할 정도로 화를 푸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사람이 그것을 조종하는 사람이라면 리모콘을 사용해서요.

하지만 김완선이 이모에게 더욱 화를 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모님이 잘 먹고 잘 사셔서 김완선 씨한테 돈 쓰고 사치스럽게 사시면 덜 억울하겠지만, 이모님도 바지 두 벌, 블라우스 두 벌 입고 몇 년을 사셨고, 한 번도 병원에 안 가셨어요. 몸이 아파서 자신을 위해 돈을 쓰지 않으면 김완선이 남편에게 돈을 모두 줬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한백희는 당뇨병 합병증으로 7년간 투병하다 2006년 세상을 떠났다. 집에 모아둔 돈은 물론이고 10억 원이 넘는 빚이 남았고, 병원비를 빌릴 곳도 없어 김완선에게 연락했다.

 

이어

김완선은 전성기 시절 한 달 수입에 집 3채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수입을 벌어들였다고 하는데, 지금으로 환산 해 보면 1000억 원이 넘는 김완선 수입을 한백희의 남편이 다 가져다가 탕진을 한 셈입니다.

김완선은 천성이 착해서인지 자기에게 그렇게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안겨준 이모를 그래도 못 본 척할 수가 없어서 한백희의 마지막 생활비와 병원비 등을 다 김완선이 일하면서 도와줬다고 하죠.

“완선이를 한 번도 따뜻하게 안아준 적이 없었다.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하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된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하죠.

대한민국 연예계에 굵직굵직한 신화를 남기고 1949년생 한백희는 그렇게 58세의 젊은 나이에 초라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1986년 데뷔 후 20년 만에 평생 애증의 관계였던 이모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 김완선 역시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완선은 2010년 하와이에서 귀국 후 ‘무릎 팍 도사’에 출연해 그동안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세세히 밝혔습니다.

김완선이 이모와 활동을 하면서 13년 동안 한 번도 정산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과 24시간 감시를 당하며 통제된 환경에서 친구도 전혀 못 만나고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라 팬들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처음으로 방송에서 자신의 아픔을 직접 고백하며, 자기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김완선은 여전히 이모에 대한 애증이 남아있어서인지 이모 한백희의 아들을 자신의 매니저로 곁에 두고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의 자아를 철저히 짓밟고 큰 상처를 준 이모가 괘씸하기도 했지만, 이모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오히려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이모에게 남은 가족을 김완선이 모른 척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렇게 점점 이모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삶을 되찾기 시작한 김완선이지만, 그렇다고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올해 55세가 된 김완선은 여전히 10대 20대 시절 이모에게 받았던 가스라이팅의 잔재 속에 그대로 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주변을 안타깝게 했죠.

심지어 김완선은 쇼핑을 하는 것도 힘들어하고 자동차를 구입할 때도 카탈로그만 보고 구입을 할 정도로 그렇게 늘 매사에 무기력한 상태로 늘 피곤한 상태로 그렇게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은영 박사는 김완선이 중학교 때 이미 가수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이모를 따라나선 것을 보면 원래 김완선은 자기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오랜 기간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컨트롤 당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그런 심리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김완선이 엄청난 감정을 소모했고 그렇게 이미 오래전에 김완선은 정서적으로 지친 상태였는데 그게 아직까지 회복이 안 된 상태로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휴대폰

방전된 배터리가 다시 제대로 작동하려면 재충전이 필요하듯이, 김완선 역시 활기차고 활동적인 삶을 다시 살기 위해서는 소진된 에너지를 보충해야 한다. 하지만 이전에는 그런 노력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김완순은 늘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에서 생활하는 김완선은 연애나 결혼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일하지 않는 날에는 좀 쉬어야 하는데, 데이트 한다고 화장하고 꾸미고 하는 생각만 하면 생각만 해도 피곤해진다.

김완선은 10년 넘게 연애를 하지 않았고, 마지막 연애 때도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 지쳐 헤어지기로 결심했고, 그때부터 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연애나 결혼에 관심을 두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은영 박사의 말처럼 김완선은 더 이상 에너지가 고갈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을 차단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의사는 “우울증은 아니지만 너무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다 보니 만성화되고, 이것이 진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무기력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의

사람은 어떤 상황에 따라서 기분이 좋았다가 울적했다가 늘 업앤다운이 있기 마련인데 김완선은 그냥 늘 기분이 다운된 상태로 그걸 자신의 성격이라고 믿으며 그렇게 지내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걸 전문 용어로 ‘기분 부전증’이라고 하는데, 김완선은 일단 ‘기분 부전증’ 문제부터 해결을 해야 다른 것들을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오은영 박사는 김완선에게 적극적인 치료를 조언했습니다.

대부분의 ‘기분 부전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태인지조차 잘 모르고, 그렇게 늘 기분이 다운된 상태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하죠.

이제는 적극적으로 치료도 받으면서 삶의 즐거움도 되찾고 인생에 행복도 많이 누리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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